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013년!

어쩐지 서먹하고 낯선 이름이다.  매년 그랬다.  여름이 오기 전에 익숙해질 테지만 그때까지는 이 낯선 친구와 데면데면한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지난 해(年)가 툭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익숙했던 것과의 이별은 매번 한줌의 회한과, 쓸쓸함과, 그리움과, 동경이 교차하며 뒤섞여 가벼운 혼란 속으로 빠트린다.  그럴 때마다 내게 질서를 부여하고 더이상의 방황을 막아주었던 것은 시간과 기다림이었다.  나는 오늘도 시간 속에서 기다리는 연습을 한다.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저자가 혹시 장 지오노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고, 가능성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지난 20여 년 동안 1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정해진 길을 따라 흘러간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심심한 일일까?  삶은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긴 시간의 고통과 지루함을 단 한방에 날려버릴 놀라운 선물을 준비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리즈 머리의 삶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삶이 결코 무의미하다거나 시시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현실에서 목격함으로써 커다란 용기를 얻곤 한다.

 

 

 

 

 

 

 

여행 에세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성용의 『생활여행자』와『여행생활자』이다.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이나 <인도방랑>도 빼놓을 수 없다.  일상에 묶여 죽음처럼 짙은 음영 속에서 살면서 햇빛 찬란한 거리를 숨쉬고자 하는 욕구를 나는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대신하고 있다.  '언젠가'라는 미래형이 '영원히'가 될 수 있음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한동안 여행 에세이를 읽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끌었나 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순간 떠오르는 것은

 

되르테 쉬퍼의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이다.  호스피스 병동의 요리사인 루프레히트 슈미트의 일상을 담은 책인데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눈물을 찔끔거리며 읽었던 기억은 또렷하다.  우리가 모든 가식과 위선을 떨쳐버리고 가장 순수하게 누군가를 대할 수 있는 시간은 때어날 때와 죽을 때 뿐이지 싶다.  그러므로 죽음을 앞둔 사람의 일상은 수채화저럼 담백하고 투명하다.  그 모습에 나는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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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다.

여러 행사가 겹치는 연말의 특수성도 그 까닭이려니와 무엇보다도 내 몸이 버텨주지 못한 원인이 더 크다 하겠다.  며칠 동안 심한 몸살을 앓았다.  만사가 귀찮고, 속이 메슥거려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곡기를 끊고 지내다 보니 기운은 점점 떨어져 급기야는 팔자에도 없는 링거를 맞기까지 했다.  살다보니 별 일을 다 겪는다.

 

그렇게 앓아 누웠다가 조금 나아져 슬슬 일을 시작하려니 벌써 2012년의 마지막 주일이란다!

세월 참 빠르다.  어제 밤에는 쏟아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섰다.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를 적당히 걸었다.  발 아래서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밟히는 느낌이 좋았다.

 

기사를 보니 교수들이 뽑은 2013년의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이 선정됐다고 한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노나라의 좌구명이 춘추를 해석하여 엮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용어로서 서울대 이종묵 교수님이 추천했단다.  이와 더불어 모든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자는 뜻의 '원융회통'(圓融會通)과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같이 한다는 뜻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있었으나 대학교수 626명 중 30%의 지지를 받은 '제구포신'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단 하루만 남은 2012년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뽑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권말이면 어김없이 불거지는 권력형 비리와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 그리고 대선 후보자들의 구호처럼 들리는 '비리척결!'  더구나 현 정권에서 보여졌던 사회 지도층의 비리는 극에 달한 느낌이었고, 대선을 치르면서 계층간, 새대간의 갈등이 한층 고조되었다.  새 정부의 해법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더 심화시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제 다음주 화요일이면 2013년 계사년(癸巳年)의 새해가 밝는다.

지난 해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잊고 새해에는 나를 비롯한 모든 블로거님들의 가정에 행복만 가득하기를... 

 

 

 

 

 

어부사(漁父辭) - 굴원

 

屈原旣放(굴원기방) 游於江潭(유어강담) 行吟澤畔(행음택반)-굴원이 죄인으로 몰려 추방돼 시를 읊조리며 강가를 방황하는데

顔色樵悴(안색초췌) 形容枯槁(형용고고)-얼굴빛은 초췌하고 형색은 수척할세라

漁父見而問之曰(어부견이문지왈) 子非三閭大夫與(자비삼려대부여)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어부가 굴원에게 묻는다.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屈原曰(굴원왈) 擧世皆濁(거세개탁) 我獨淸(아독청) 衆人皆醉(중인개취) 我獨醒(아독성) 是以見放(시이견방)-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 혼자 맑고 깨끗할 뿐 모두가 욕심에 취해있고, 나 혼자 이성이 밝고 청렴하므로 이를 죄로 몰아 이렇게 쫓겨 이 곳에 왔노라.”

 

漁父曰(어부왈) 聖人不凝滯於物(성인불응제어물)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임 없이 꽉 막히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니

世人皆濁(세인개탁) 何不?其泥而揚其波(하불굴기니이양기파)-세상 사람들 모두가 흐려 악에 물들어 있다면 어찌 뻘속에 함께 있으며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중인개취) 何不飽其糟而?其?(하불포이조이철기리)-많은 사람들이 사리사욕에 취해 있다면 그 술 찌꺼기라도 먹고 그 박주(薄酒)라도 마시면서 세인과 더불어 살지 않고 혼자 모나게 하고

故深思高擧(하고심사고거) 自今放爲(자령방위)-어째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한 행동을 해 스스로 자신을 원지로 추방당하게 하는가.”

 

屈原曰(굴원왈) 吾聞之(오문지)-굴원이 말하기를 “내 듣자하니

 

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새로 머리를 씻은 이는 반듯이 관을 털어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이는 반듯이 옷을 털어 입는데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어찌해 맑고 깨끗한 몸으로 저 더러움을 받게 할 수 있겠는가?

 

寧赴湘流(영부상류)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목세속지진애호)-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고 말지언정 결백한 몸에 어찌 세속의 더러움을 뒤집어 쓸 수 있겠는가.”

 

漁父莞爾而笑(어부완이이소)-어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호의를 표시하고,

鼓?而去乃歌曰(고설이거내가왈)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뱃전을 두드리며 떠나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창락지수탁혜)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遂去不復與言(수거불복여언)-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침내 떠나 버리곤 다시 말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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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의 기세만큼이나 대선 후유증이 심각하다.

이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보았던 며칠 동안의 열병이나 가벼운 감기 수준의 패배의식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로 분출되고 있다.  이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정치인에게 돌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책임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사실이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21일 새벽 트위터에 "오랜만에 술 마시고 대취해서 울었다. 원래 술 마시면 꺼이꺼이 잘 운다"라고 적었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백모(27)씨는 "선거날부터 이틀째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속이 메슥거리고 입맛이 없다."고 호소했다.(서울신문 2012년 12월 22일자)

 

이것은 비단 온라인과 SNS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대선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건만 오프라인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지지했던 사람들을 기준으로 철저히 양분되고 있다.  대선 전에도 그렇게 친한 관계는 아니었더라도 얼굴을 돌릴 정도로 반목하며 지내던 사이는 더더욱 아니었는데 대선 후에는 노골적으로 외면하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한 신경정신과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자신이 당연히 믿었던 것, 반드시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거기서 오는 실망감 자체가 매우 컸을 것이다.  물론 집단적인 현상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반응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쉽게 내려진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작금의 상황은 예전처럼 쉽게 봉합되고 마무리될 상황이 전혀 아니라고 본다.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과거의 참여정부나 현 정부의 출범 초기에도 일시적인 대선 후유증은 존재했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과는 표출되는 양상이 확연히 달랐었고,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결과에 승복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국민들 전체를 극단적으로 양분시켰고, 이러한 결과는 이념적 문제보다는 세대간 갈등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과 그 이하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적극적 배려와 희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기성세대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했다.  자신들의 밥그릇과 영달을 위해 청년들의 희망을 꺾은 셈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세대가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며 그 보답으로 지금의 청년 세대는 우리가 노인이 되었을 때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우리들을 돌볼 것이다.  당장 먹기는 곶감이 좋다는 식의 우둔한 욕심은 기성세대의 자세가 아니었다.  한 치 앞을 헤아리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작태는 자라는 후손들에게 모범은커녕 불신과 분노만 심어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선거는 3포세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넘어 자제력을 잃게 하는 분노의 단계로 발전시켰다.  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까?  그 원인은 이번 선거의 특이성에서 찾을 수 있다.  애초부터 이번 선거는 진보와 보수,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의 극단적 대결 양상을 띠었다.  예전의 대선에서 보였던 전략적 제휴(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는 일체 성립되지 않았고, 정치권은 안보와 평화, 동과 서, 노와 소, 남과 여, 성장과 분배 등 충돌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끌어들여 전쟁과 다름없는 대결의 장으로 만들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도층마저 어느 한 쪽 편에 설 것을 요구받았다.  정치권에서 조장한 이러한 대결 구조는 방송 매체에 의해 부풀려지고 격화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청년층이나 노년층 모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투표에 올인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는 수적 열세에 있는 젊은 층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다.  그렇다면 다음 선거라고 이런 구도가 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여당을 적극 지지했던 5,60대의 장년층이 5년 후라고 해서 급격하게 감소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무도 자명한 이 현실 앞에서 청년층이 그들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도 지금처럼 높은 투표 열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청년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예컨대 여당의 후보가 지금의 당선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비록 패배했다고 할지라도 일시적인 감정으로 툭툭 털고 자신의 본업으로 되돌아 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공약이나 국정 운영 능력으로 검증받기보다는 방송과 조직력, 지역 기반을 등에 업고 겉껍데기 뿐인 허상의 이미지에 투표한 이번 선거는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방법도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인다.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 덕, 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 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여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헨리 죠지의 "진보와 빈곤, 187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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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서른 살이 온다면
양 제니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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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은 한 편의 '줄놀음'과 같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작수목 위에 단단히 비끄러매진 시간의 동아줄 위에 서서 많은 구경꾼들의 박수를 받으며 한판 신명나게 놀다 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줄은 두발반쯤의 적당한 높이였으면 좋겠습니다.  팽팽히 당겨진 그 줄 위에 서서 어릿광대와 우스개 소리도 주고 받으며 때로는 쪽빛 하늘을 향해 뛰어 올라 내가 가진 재주를 맘껏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삼현육각의 연주에 맞춰 내가 선뵈는 잔노릇에 구경꾼들도 한나절 즐겁겠지요.

 

그런데 말이죠.  때로는 허방을 짚고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가 건너야 할 줄은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구경꾼들의 응원을 받고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줄에 오릅니다.  창옷을 고쳐 입고 머리에 쓴 초립에는 공작꼬리털로 한껏 멋을 부리고 손에 든 부채를 활짝 펴겠습니다.  후들거리던 다리도 이제 팽팽한 긴장감 속에 안정되었고 조금의 반동만으로도 하늘 높이 날아 오를 듯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 무리의 구경꾼 앞에 선 외로운 줄광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동아줄은 그 길이가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에게는 30m의 긴 줄이 주어지는가 하면 누구에게는 채 한 발도 되지 않는 짧은 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짧은 줄 위에 선 줄광대는 줄의 탄력을 이용하여 남보다 더 높이 뛰어오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숫제 줄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어찌할까요?  힘들게 작수목 위로 올라섰건만 보이는 것은 오직 허공뿐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이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이나 곁에서 재담을 준비하던 어릿광대 모두 발만 동동 구를 뿐 달리 방안이 없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을 듯합니다.

 

여기 그런 아가씨가 있습니다.  이름은 양제니.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셋입니다.  줄놀음으로 치면 이제 막 작수목을 올라 줄 위에 설 준비를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녀에게는 작수목을 오르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가뿐히 오를 작수목을 여덟 번이나 미끄러져 굴러 떨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올라 선 것이랍니다.  지켜보는 어릿광대와 구경꾼들도 모두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을 졸였겠지요.

 

"내게 찾아온 손님을 사람들은 '암'이라 부릅니다.  이제 나는 여덟 번째 손님을 맞았고, 다시 그 모든 손님을 이겨내고 일어서려 합니다.  그 과정은 세상 누구도 쉽게 겪어보지 못한 아픔의 과정이었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2등으로 졸업하고 대학을 4년 만에 우수하게 졸업해, 의사가 되는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나의 모습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P.18)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쳐야만 했습니다.  생후 6개월부터 찾아든 암과의 사투.  그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던 배구는 뼈암 수술과 함께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고, 대학 3학년에 찾아온 뇌암과 뼈암의 재발.  그녀는 대학교 3학년 1학기에 있었던 뇌암 수술 후에 자신이 죽더라도 엄마는 꼭 살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죽는다는 것,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데,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엄마에게 무너지는 아픔을 가져다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일어난 일, 그래서 다시 다가올 참지 못할 고통을 견디는 일 때문에 두려워하기에 앞서 난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절망적일지 먼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의 약속을 받아내야만 했다."   (P.136~137)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의 동아줄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줄 위에서 펼칠 잔재비를 기다리는 수많은 구경꾼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언제가 될지, 또는 짧은 도막줄이 될지, 줄타기 놀음의 모든 요소(익살스런 재담과 줄 소리, 춤, 아니리, 기예)가 어우러진 판줄이 될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저 그녀의 화려한 몸짓을 기대하는 한 명의 구경꾼으로서 그녀의 비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삶이란 폭풍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이 아닐까요."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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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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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찍은 사진에서는 하늘을 닮은 자유가 넘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는 삶처럼 덧없는 한줄기 바람이 흐르고, 순간의 황홀이 사진 속에서 잠시 머문다.  제주의 부드러운 곡선과 그것을 뚫고 자라는 나무와 이불처럼 포근한 구름, 그리고 사랑을 닮은 석양.  그러나 그는 자유를 닮은 하늘을 향해 떠나고 빈 바람이 몰아치는 초원에 이제 그는 없다.  그가 찾던 지상의 아름다움은 더이상 찍을 게 없기에 그는 서둘러 떠난 것일까?

 

"살다보면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 분노,두려움, 절망, 그리고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 할 때마다 나는 자연에서 해답을 구했다.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통해 해답을 구했다.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나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느끼고,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며 자연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난치병이라는 사실마저 잊고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쓴다."   (P.243)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인디고 서원을 운영하는 허아람의 저서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를 읽었을 때였다.  그분은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가 복잡한 세속의 도시 속에서 참으로 허망한 것들을 좇아서 살고 있구나.  자연은 영원한데 그 영원한 생명성 앞에서 오직 그 아름다움만을 좇아서 평생을 산 이런 예술가를 보니 정말 단순한 혁명의 삶을 이분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연말 또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뭔가 본연적인 삶의 아름다움과 계획을 꿈꾸는 분이라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라는 사진집을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영갑 작가는 20년이 넘는 시간을 제주도 들판에서 사셨죠.  더 겸손하고 겸허하게 이 아름다운 삶을 우리가 행복하고 열심히 살아야 될 이유, 이 책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중에서>

 

가끔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의미없는 논쟁처럼 삶을 아름답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짧다는 것을 미리 감지했기에 그렇게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몸을 혹사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이 그토록 짧았던 것인지 하는 의문이 불현듯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오곤 한다.  그러나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요절한 많은 천재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영역 밖에서 서성이던 많은 범인(凡人)들의 삶에 비해 그들의 삶은 얼마나 압축적이고 치열했던가 하고 느끼게 된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제주도가 좋아서 무작정 정착했던 1985년 이래로 루게릭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2005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오직 제주의 풍경을 띡는 데만 몰입했다.  그가 남긴 사진은 지금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전시되고 있지만 그 사진을 보며 작가의 치열했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겨진 모든 유작들은 오롯이 산 자의 차지로 남았다.  그렇게 쉽사리 잊혀질 인생이었더라면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중산간의 초원을 찍은 그의 사진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밤이 되면 갤러리는 적막하다.  적막함을 즐기며 홀로 정원을 걷는다.  몸이 피곤해지면 편안한 상태로 침대에 눕는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밤늦도록 사진 작업에 매달렸을 테지만 이젠 한가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루게릭 병이 내게 준 선물이다."    (P.211)

 

몇 년을 수도하면 이런 경가에 이르는 것일까?  죽음마저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세계.  그는 그 평화의 땅에서 자유로웠을까?

겨울 바람이 차다.  23.5도만큼 기울어진 채 쉼 없이 도는 이 지구가 쓰러지지 않는 까닭은 결국 김영갑 작가처럼 자신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열정 때문이라고 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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