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다.

여러 행사가 겹치는 연말의 특수성도 그 까닭이려니와 무엇보다도 내 몸이 버텨주지 못한 원인이 더 크다 하겠다.  며칠 동안 심한 몸살을 앓았다.  만사가 귀찮고, 속이 메슥거려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곡기를 끊고 지내다 보니 기운은 점점 떨어져 급기야는 팔자에도 없는 링거를 맞기까지 했다.  살다보니 별 일을 다 겪는다.

 

그렇게 앓아 누웠다가 조금 나아져 슬슬 일을 시작하려니 벌써 2012년의 마지막 주일이란다!

세월 참 빠르다.  어제 밤에는 쏟아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섰다.  눈이 소복이 쌓인 거리를 적당히 걸었다.  발 아래서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밟히는 느낌이 좋았다.

 

기사를 보니 교수들이 뽑은 2013년의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이 선정됐다고 한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노나라의 좌구명이 춘추를 해석하여 엮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용어로서 서울대 이종묵 교수님이 추천했단다.  이와 더불어 모든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자는 뜻의 '원융회통'(圓融會通)과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같이 한다는 뜻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이 있었으나 대학교수 626명 중 30%의 지지를 받은 '제구포신'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단 하루만 남은 2012년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뽑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초나라의 충신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실린 고사성어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권말이면 어김없이 불거지는 권력형 비리와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 그리고 대선 후보자들의 구호처럼 들리는 '비리척결!'  더구나 현 정권에서 보여졌던 사회 지도층의 비리는 극에 달한 느낌이었고, 대선을 치르면서 계층간, 새대간의 갈등이 한층 고조되었다.  새 정부의 해법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더 심화시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제 다음주 화요일이면 2013년 계사년(癸巳年)의 새해가 밝는다.

지난 해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잊고 새해에는 나를 비롯한 모든 블로거님들의 가정에 행복만 가득하기를... 

 

 

 

 

 

어부사(漁父辭) - 굴원

 

屈原旣放(굴원기방) 游於江潭(유어강담) 行吟澤畔(행음택반)-굴원이 죄인으로 몰려 추방돼 시를 읊조리며 강가를 방황하는데

顔色樵悴(안색초췌) 形容枯槁(형용고고)-얼굴빛은 초췌하고 형색은 수척할세라

漁父見而問之曰(어부견이문지왈) 子非三閭大夫與(자비삼려대부여)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어부가 굴원에게 묻는다.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屈原曰(굴원왈) 擧世皆濁(거세개탁) 我獨淸(아독청) 衆人皆醉(중인개취) 我獨醒(아독성) 是以見放(시이견방)-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 혼자 맑고 깨끗할 뿐 모두가 욕심에 취해있고, 나 혼자 이성이 밝고 청렴하므로 이를 죄로 몰아 이렇게 쫓겨 이 곳에 왔노라.”

 

漁父曰(어부왈) 聖人不凝滯於物(성인불응제어물)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임 없이 꽉 막히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니

世人皆濁(세인개탁) 何不?其泥而揚其波(하불굴기니이양기파)-세상 사람들 모두가 흐려 악에 물들어 있다면 어찌 뻘속에 함께 있으며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중인개취) 何不飽其糟而?其?(하불포이조이철기리)-많은 사람들이 사리사욕에 취해 있다면 그 술 찌꺼기라도 먹고 그 박주(薄酒)라도 마시면서 세인과 더불어 살지 않고 혼자 모나게 하고

故深思高擧(하고심사고거) 自今放爲(자령방위)-어째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한 행동을 해 스스로 자신을 원지로 추방당하게 하는가.”

 

屈原曰(굴원왈) 吾聞之(오문지)-굴원이 말하기를 “내 듣자하니

 

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새로 머리를 씻은 이는 반듯이 관을 털어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이는 반듯이 옷을 털어 입는데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어찌해 맑고 깨끗한 몸으로 저 더러움을 받게 할 수 있겠는가?

 

寧赴湘流(영부상류)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목세속지진애호)-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고 말지언정 결백한 몸에 어찌 세속의 더러움을 뒤집어 쓸 수 있겠는가.”

 

漁父莞爾而笑(어부완이이소)-어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호의를 표시하고,

鼓?而去乃歌曰(고설이거내가왈)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뱃전을 두드리며 떠나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창락지수탁혜)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遂去不復與言(수거불복여언)-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침내 떠나 버리곤 다시 말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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