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찍은 사진에서는 하늘을 닮은 자유가 넘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는 삶처럼 덧없는 한줄기 바람이 흐르고, 순간의 황홀이 사진 속에서 잠시 머문다.  제주의 부드러운 곡선과 그것을 뚫고 자라는 나무와 이불처럼 포근한 구름, 그리고 사랑을 닮은 석양.  그러나 그는 자유를 닮은 하늘을 향해 떠나고 빈 바람이 몰아치는 초원에 이제 그는 없다.  그가 찾던 지상의 아름다움은 더이상 찍을 게 없기에 그는 서둘러 떠난 것일까?

 

"살다보면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 분노,두려움, 절망, 그리고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 할 때마다 나는 자연에서 해답을 구했다.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통해 해답을 구했다.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나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느끼고, 아름다운 것만 생각하며 자연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난치병이라는 사실마저 잊고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쓴다."   (P.243)

 

내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인디고 서원을 운영하는 허아람의 저서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를 읽었을 때였다.  그분은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가 복잡한 세속의 도시 속에서 참으로 허망한 것들을 좇아서 살고 있구나.  자연은 영원한데 그 영원한 생명성 앞에서 오직 그 아름다움만을 좇아서 평생을 산 이런 예술가를 보니 정말 단순한 혁명의 삶을 이분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연말 또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뭔가 본연적인 삶의 아름다움과 계획을 꿈꾸는 분이라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라는 사진집을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영갑 작가는 20년이 넘는 시간을 제주도 들판에서 사셨죠.  더 겸손하고 겸허하게 이 아름다운 삶을 우리가 행복하고 열심히 살아야 될 이유, 이 책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중에서>

 

가끔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의미없는 논쟁처럼 삶을 아름답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짧다는 것을 미리 감지했기에 그렇게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몸을 혹사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이 그토록 짧았던 것인지 하는 의문이 불현듯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오곤 한다.  그러나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요절한 많은 천재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영역 밖에서 서성이던 많은 범인(凡人)들의 삶에 비해 그들의 삶은 얼마나 압축적이고 치열했던가 하고 느끼게 된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제주도가 좋아서 무작정 정착했던 1985년 이래로 루게릭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2005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오직 제주의 풍경을 띡는 데만 몰입했다.  그가 남긴 사진은 지금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전시되고 있지만 그 사진을 보며 작가의 치열했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겨진 모든 유작들은 오롯이 산 자의 차지로 남았다.  그렇게 쉽사리 잊혀질 인생이었더라면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중산간의 초원을 찍은 그의 사진에서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밤이 되면 갤러리는 적막하다.  적막함을 즐기며 홀로 정원을 걷는다.  몸이 피곤해지면 편안한 상태로 침대에 눕는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밤늦도록 사진 작업에 매달렸을 테지만 이젠 한가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루게릭 병이 내게 준 선물이다."    (P.211)

 

몇 년을 수도하면 이런 경가에 이르는 것일까?  죽음마저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세계.  그는 그 평화의 땅에서 자유로웠을까?

겨울 바람이 차다.  23.5도만큼 기울어진 채 쉼 없이 도는 이 지구가 쓰러지지 않는 까닭은 결국 김영갑 작가처럼 자신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열정 때문이라고 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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