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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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어려서부터 수많은 위인들의 삶을 책으로 읽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으면서 자란다.  슈바이쳐, 간디, 세종대왕, 이순신 등 직업도 다양하고 삶의 양식도 달랐던 사람들의 삶을 읽고 또 읽는다.  그럼에도 무엇을 배웠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들 자신이 없다.  나 역시도 그 문제의 답변에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성장한 환경이나 시대가 그들과 현저히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각자가 추구하는 욕심의 문제인 듯하다.

 

위인들의 삶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사는 것은 왠지 다 털어버릴 수 없는 께름직함이 남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위해 살았던 위인의 삶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기는 싫은 것이다.  철저히 분리된 이중적인 가치관 속에서 우리가 존경하는 위인들의 삶이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존 우드도 그랬다.  마이크로소프트(MS) 호주지사장을 거쳐 중국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던 그는 늘 회사일로 바빴고, 그럴수록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졌다.  친구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떠났던 히말라야-네팔 트레킹에서 우연히 둘러 본 네팔의 작은 학교는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저자는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학교의 텅 빈 도서관에 책을 보내주기로 약속한다.  책을 가지고 다시 와달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자는 고령의 아버지와 함께 네팔의 작은 시골 학교를 다시 찾았고, 책을 받은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가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때 선생님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손을 잡았다.  갈색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당신은 우리 아이들에게 대단한 것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답례로 드릴 것이 거의 없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목이 메었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켰음을, 아니 최소한 그 일부를 이루었다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p.46)

 

결국 저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네팔의 어린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을 짓겠다는 꿈을 품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지위와 많은 연봉, 회사가 제공하는 고급 주택과 스톡옵션, 그리고 호주에서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와의 결별을 의미했다.  존 우드의 고민에 대해 그의 친구는 “일회용 반창고를 제거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지. 천천히 고통스럽게, 또는 빠르고 고통스럽게. 너의 선택이야.”라고 조언한다.  친구의 조언을 듣고 저자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비영리 단체인 '룸투리드(room to read)'의 CEO가 되었다.  우드는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있으며, 지금은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히말라야 청소년에게 꿈을 주려면 먼저 자신이 꿈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원금 조성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자선 파티를 열고, 자원봉사자를 물색하고, 네팔 현지에 직원을 고용하는 등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후원금을 조성할 때 가난을 이용하는 것을 되도록 피한다.  이런 영상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죄책감을 마케팅도구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후원자들은 희망을 보고 싶어한다.  나는 가난에 찌든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졸업장을 받은 화사한 어린이들의 모습, 언청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활짝 웃는 소녀, 새로운 우물을 이용하게 된 농부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나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새로 연 도서관을 본, 장학금을 받은 소녀들을 소개하는 기쁨의 눈물이고 싶다."    (p.112)

 

존 우드에 의해 설립된 '룸투리드'는 문맹률 높은 빈국에 학교, 도서관, 컴퓨터교실을 지어주고 여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게 된 과정과 세상의 냉담한 시선, 혼란과 좌절, 흥분과 설렘, 실패와 성공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문맹이면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므로, 가족 전체와 다음 세대에까지 교육을 전달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도록 소녀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도서관 2300개, 학교 200곳, 컴퓨터 교실 50곳, 장학금 수상 청소년 1700명, 책 100만 권. 이 경이로운 숫자는 한 개인의 용기 있는 도전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직원과 델 컴퓨터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 골드만삭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가 돈 리스트윈, 심지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경쟁자인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과 개인을 룸투리드의 후원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생각만 하지 마라.  뛰어들어라.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고려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고, 가족의 의견도 들어야 하고, 계획도 짜야 할 것 같다.  이런 걸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매우 적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p.246) 

 

이 책은 마치 자선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선한 사람들이 펼치는 무협지, 또는 서부활극처럼 읽힌다.  독자들은 실화가 주는 진한 감동과 함께 독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은 온통 선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는 세상,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었던 삶의 방향을 내 이웃과 지구 전체로 향하게 만드는 책이다.  현재 '룸 투 리드'의 지부는 세계 각지에 퍼졌고 우리나라에도 2010년 4월에 지부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네팔에 도서관을 짓겠다는 한 사람의 꿈이 이제는 베트남, 스리랑카, 캄보디아,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 및 세계 각국으로 향하고 있다.  한 사람의 선한 꿈이 세계를 변화시켰고, 그의 꿈은 이제 우리 세대를 넘어 미래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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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던져 놓은 세월의 그물을 통하여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건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대답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잠깐 소나기가 내렸었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닥 친하지 않았던, 어쩌면 데면데면 굴었던, 낯을 붉히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죠.

 

시간이 괜찮다면 차나 한 잔 같이하자는 전화였습니다.

딱히 둘러 댈 핑계도 떠오르지 않아 그러마 대답했습니다.

마지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졌고 그는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조금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말한 후

내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거짓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내세울 것 없는 내게 그는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가볍게 스쳐가는 생각들을 그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제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던 만남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말이죠.

'내가 세월에서 건져 올려야 할 것은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이구나.

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그물을 오랫동안 드리우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진실한 마음 한 조각을 던져주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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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 달동네 외과의사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최충언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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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날씨가 흐리거나 비라도 오는 날에는 몸만 헛헛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방금 전에 점심을 먹고서도 돌아서면 금세 허기가 지는 것처럼 가족이나 친구들과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고서도 돌아서면 무언가 허전하여 채 오 분도 지나기 전에 책을 잡게 되니 말이다.  오늘도 그랬다.  그런 까닭에 장마철이면 나는 항상 여분의 책을 준비해 두곤 한다.  오늘 읽은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도 그 여분의 책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이 다 읽기 전에는 그 진가를 알기 여려울 때가 많은 물건인지라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는 허더분하다.

 

새벽에 비가 내려 자연스레 손이 간 이 책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태석 신부님의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떠오르게 했다.  의사이면서 사제이셨던 신부님은 아프리카 수단의 오지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때의 경험을 기록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읽으며 나는 읽는 내내 눈물을 찔끔거렸었다.  이 책의 저자인 최충언님도 의사이다.  정확히 말하면 외과의사이다.  저자는 부산 송도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달동네에서 의사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며 그들과 정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구호병원은 이름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자선병원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돈 걱정 않고 치료받을 수 있고, 나는 돈 생각 않고 환자를 치료해줄 수 있었습니다.  8년 동안 구호병원에서 일하면서 수녀님들에게 배운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돈은 마귀의 똥'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숙자들의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가난의 향기'라며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p.6)

 

1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

IMF로 구조 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1998년 여름, 부산의 한 종합벼원에 근무했던 저자는 대책도 없이 사표를 내고 두 달을 빈둥거리다가 다시 찾은 직장이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구호병원이었다고 한다.  2006년에 그만둘 때까지 8년 동안을 구호병원의 외과 의사로 산 셈이다.  가족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하는 노숙자와 가난한 달동네의 독거 노인들, 멸시와 천대 속에 살지만 돈이 없어 치료도 받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저자는 의사로서 그들을 보듬고 상처를 치료하며, 그들의 삶을 가슴 아파 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배부른 사람들이 지어낸 말일 것이다.  나누고 나누면 못할 일도 아닐 것인데 힘없는 민중들의 삶은 고달프고 서럽기만 하다.  요한 씨의 겨울나기를 지켜보면서 그의 어깨를 누르는 가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웃으며 살아가야 하겠지?  목련이 봉오리를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봄이다.  요한 씨의 봄이 '말짱 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p.77)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 의료기관도 문을 닫는 요즘,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도 거부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저자의 행동은 시쳇말로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러한 '미친 짓'이 없다면 이 사회는 또 어찌 될 것인가.

저자는 8년을 근무했던 구호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후배와 동업으로 남부민의원을 개업했다고 한다.  사직을 했지만 여전히 구호병원의 외과 과장으로서 일주일에 두 번은 구호병원에서 수술도 하고 진료도 한다고 한다.  이어지는 2장은 그때의 기록이다.

 

2장. 삶의 바다가 물결치는 작은 병원 
가난하여 사망진단서도 끊지 못하는 윤 할머니, 달걀 10개를 촌지로 쥐어주는 아주머니, 한센병으로 오그라든 손으로 점심이나 한 끼 사 먹으라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는 김 할머니, 돈이 없어 무료 진료를 해주다가 환자 유인행위로 취급받던 이야기, 환자 부담금 3천 원이 부담이 되어 진료를 오지 못하는 달동네 사람들, 발가락으로 손가락을 이어 만든 이주노동자와의 우정 등 저자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환자가 나간 뒤 마음이 편치 못해 복도로 나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진찰한 환자가 산복도로를 건너 송도 윗길로 통하는 골목길을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망한 채 걸어가는 뒷모습을 손에 든 담배가 다 타들어가도록 바라보았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저녁 노을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달동네 작은 병원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p.138)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더 중한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내 살기도 바쁘다며 가난한 이웃들의 삶을 애써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요즘처럼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도, 당신도 그렇게 살았던 지난 삶에 일말의 후회가 들지 않을까?  장마철에는 영혼마저 허기가 진다.  나는 몸의 허기를 달래주는 파전처럼, 또는 한 사발의 막걸리처럼 이 책을 읽었다.  영혼의 허기를 달래주는 파전처럼, 또는 막걸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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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ham0 2013-12-05 10: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30년전에 부산 송도의 구호병원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쩌면 ...했더니. 역시나입니다.
참 많은 추억이 있는 병원의 이야기에 다시 그곳으로 가보고 싶습니다.

꼼쥐 2013-12-06 16:41   좋아요 0 | URL
아~~그러셨군요.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야밤산책 - 매혹적인 밤, 홀로 책의 정원을 거닐다
리듬 지음 / 라이온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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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책의 효용을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한다 한들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만약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이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비친 독서하는 나의 모습은 무척이나 따분하고, 단순하고, 고집불통의 그것으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깟 책에 빠져 사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맹목적인 행위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논리를 찾기는 어렵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책을 읽는지, 왜 읽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천편일률적인 독서의 효용론 중에서 '그래, 맞아. 그러니까 책을 읽어야 해.'하면서 무릎을 쳐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책을 읽고, 시간이 날 때면 읽었던 책의 리뷰를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블로그를 한다. 이 단순하고 권태로운 일을 몇 년쯤 하다 보면 '지금 뭐 하는 짓인가?'하는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한두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그럼에도 오래된 습관처럼 자신의 블로그를 찾게 되고, 시큰둥해져 며칠쯤 거리를 두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또 궁금해지고... 마치 연애를 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이 책 <야밥 산책>의 저자인 '리듬'(블로그 닉네임)도 그랬을까? 네이버 파워블로거인 작가는 [달콤 쌉싸름한 일상]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를 방문해 보니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녀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그녀가 쓴 첫 리뷰가 궁금하여 찾아 보니 2007년 3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삭제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면). 책의 제목은 "비프스튜 자살클럽". 리뷰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보이는 짧고 간단한 글이다. 어떤 블로거도 처음에는 늘 그러하듯.

 

 

"이 책에 담은 책들 역시 나의 독서 경험 그대로를 싣고자 했다. 대부분의 책 관련 책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누구나 인정한 텍스트의 책을 담아냈지만 기본적으로 내 독서가 비체계적 중구난방으로 시작되었기에, 그리고 나와 같이 책 읽기를 막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쉽고 재미있는 책이 우선이기에 그저 장르 소설, 만확책이라도 그것이 내게 메시지를 던져준 책이라면 주저 없이 담았다. 블로그 이웃들의 반응도 고려했다. 많은 이웃이 좋아했던 책이라면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으리라." (p.8~9 '프롤로그'중에서)

 

 

<야밤산책>은 총 4개의 '산책길'로 이루어져 있다(엄밀히 말하자면 '부록'까지 5개). '산책길 하나'에서는 주로 작가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으로 꾸며져 있는 듯하다. [아주 보통의 어느 날]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일상의 어느 날 운명처럼 내 손에 들어왔던 그런 책들.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로 시작된다. '산책길 둘'에서는 달달한 사랑 얘기가 주를 이룬다. [문득 네 생각이 나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장에서 작가가 고른 책들은 초콜릿처럼 달달하고 매혹적이다. 얼마 전에 읽은 한스 에리히 노삭의 <늦어도 11월에는>도 담겨 있다.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산책길 셋'에서는 꿈과 현실의 문제를 다룬 책들이다. [때로는 구불구불한 꿈]이라는 부제는 작가의 생각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산책길 넷'에서는 고단한 현실과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책들이다. [이왕이면 남다르게]라는 부제는 다들 그만그만하게 사는 우리의 삶에서 이왕이면 움츠러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작가의 당부라고 읽혔다. 부록에는 독서에 대한 팁이 실려 있다.

 

 

내가 블로그를 한 기간은 작가만큼 길지 않다. 그러나 중구난방으로 책을 읽는다는 점은 그녀와 비슷하다. 누군가 나에게 책은 왜 읽는지, 블로그에 글은 왜 쓰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여전히 '모른다'이거나 '글쎄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블로그로 인해 책과 더 가까워졌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으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가끔은 시골 할머니 집에 내려가 아버지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본다. 세로 글쓰기와 많은 한문 때문에 읽기는 힘들지만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을 읽으며 꿈꿨을 소년 시절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나중에 내 책들을 누군가가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책에 밑줄을 긋고 흔적을 남긴다." (p.353)

 

 

비록 작가는 블로거로 시작하여 한 권의 책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냈지만, 나는 같은 블로거로서 그녀의 글에 댓글을 다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 그녀가 이 책에서 선정한 53권의 책을 다 읽지는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이 책에 등장하는 책들 중에서 가끔 내가 읽었던 책을 만났을 때, 나의 느낌과 작가의 느낌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거니와 작가로 인해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늘어나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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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온 편지
조규찬 글.그림 / 이른아침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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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 각자가 내린 정의를 가만히 들어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쩌면 내가 내리는 정의를 듣고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이란 타인과의 '구별짓기'이다.  외모든, 능력이든, 사상이든, 인격이든, 돈이든, 뭐든 간에 남과 다른 것이 많을수록 그 사람은 성공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믿는 것이다.  '차별화'라고 해도 좋겠다.

 

하여,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당연히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내성을 길러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성공하고 싶다'는 말은 '고독을 감수하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은 '공감과 연대'보다는 '다름'과 '구별짓기'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박은 이따금 과도한 것으로 보여질 때가 있다.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이 습관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때가 그렇다.  예컨대 제복을 입은 예비군들이 엉뚱하고 기괴한 짓을 할 때도 그런 습관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이러한 집단적 광기는 이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는 성공의 개념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결말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성공의 결말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항상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성공과 만족이 어깨를 겯고 걷기 위해서는 고독에 대한 내성이 필수적이다.  남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 혹은 그렇게 되고자 하는 노력은 타인과의 연대를 일정 부분 갉아 먹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 중의 다수가 공황장애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성공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으로 말하면 성공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성공한 까닭이다.

 

'나'란 사람은 남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을 잘 견디지도 못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성공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 축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엄연한 사실이다.  가수 조규찬의 산문집 <달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뜬금없이 들었던 생각이다.  그도 나처럼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고, 그와 비슷한(또는 그보다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부류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대단한 성공을 이루어서도 안 되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다(이 말은 결코 악담이 아니다). 

 

"한때 내 하루의 시작을 지켜보는 걸인에게 나의 희망찬 걸음걸이를 보여주며, 그도 내가 속한 희망의 대열에 속하기를 바란 적도 있다.  그러나 나와 걸인은 공평한 노을에 젖어든다.  같은 희망과 같은 노을에 의지하며 같은 권태를 느끼는 시한부 존재들이다.  때로는 이와 같은 숙명이 적용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보게 된다.  무언가를 묻는 노인에게 노골적으로 짜증내며 다른 곳으로 가보라는 개찰구 옆 매표 창구의 무자비한 중년.  적어도 그만큼은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p.105)

 

나는 사실 연예인이 쓴 어떤 종류의 책도 신뢰하지 못하는 지나친 편견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내가 '꽤 괜찮네'하고 느꼈던 책들이 더러 있다.  배우 최강희가 쓴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도 그 중 하나다.  내가 조규찬의 노래도 변변히 아는 게 없으면서 굳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그가 책의 서문에서 밝힌 발간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 이 책의 어딘가가 아들의 삶을 지탱해 줄 여러 기억 중의 하나로 쓰여질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책을 발표한 일을 변변치 않았던 내 삶에서 이루어 낸 몇 안 되는 의미 있는 일 가운데 하나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p.5 'prologue'중에서)

 

조규찬은 의외로 글을 잘 쓴다.  한편,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게 느꼈겠지만 그는 정말 소심할 정도로 꼼꼼한 사람처럼 보여기도 한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쪼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일기처럼 기록한 책이지만 가끔씩 만나게 되는 기발한 표현들과 건전한(?) 사고방식에 밀려오는 낮잠을 단박에 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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