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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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지?' 의아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람들의 기호도, 관심도, 웃음이나 낭만 코드도 다 제각각이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최근에 골랐던 책 중에는 마저 다 읽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던 책이 있다. 요나스 요나손이 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그것이다. 황당한 이야기의 연속, 나의 웃음 코드와는 번번이 빗나가는 썰렁함, 낯선 지명과 이름들의 연속, 도대체 나는 뭘 의지하여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얇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다 읽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랬던 게 엊그제인데 또 다시 나는 요나스 요나손의 책을 고르고 말았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그것이다. 저자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고른 내 잘못이 컸지만 책을 읽기도 전에 하품부터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젠장!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하련만 집에 들어 오는 순간부터 내 대화 상대라고는 TV나 라디오, 컴퓨터가 유일하니 그들이 내 욕설에 맞장구를 쳐줄 리도 만무하고 등을 토닥이며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넬 리도 없지 않은가.

 

눈물을 머금고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읽어야지', 이를 악물었다. 장장 541쪽의 험난한 여정. 이건 뭐 숫제 마운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거나 진배없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읽어나갔다. 소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남동쪽 소웨토(흑인 거주지)에서 시작된다. 시너에 중독된 엄마를 돌보며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날라야 했던 소녀 놈베코. 분뇨 수거인에서 갑작스레 관리자가 된 그녀는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던 옆집 아저씨로부터 글을 배우고 매일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똑똑하게 말하는 방법도 터득한다. 유난히 셈에 밝았던 그녀는 우연히 손에 넣은 다이아몬드를 들고 소웨토를 탈출한다. 단순히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목적으로.

 

놈베코는 보도를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보상을 받기는커녕 가해자에게 보상하기 위해 7년 동안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가 간 곳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던 비밀 연구소 '펠린다바'. 교통사고 가해자였던 엔지니어는 그 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서 그는 오로지 아버지의 권력과 부유함 그리고 넘치는 행운으로 남아공 최고 핵 전문가가 된 인물이다. 놈베코는 연구소에 있던 모든 책을 독파하여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엔지니어를 도와 무난히 핵폭탄을 생산하게 되지만 생산된 핵폭탄은 여섯 개가 아닌 일곱 개였다.

 

연구소를 감시하고 있던 이스라엘 첩보원 모사드 A와 B를 따돌리고 스웨덴으로 망명한 놈베코. 그러나 그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잘못 배달된 핵폭탄 한 기를 떠안게 되고 망명자로서 인정도 받기 전에 핵폭탄과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 여차저차 하여 놈베코는 둘 중 하나만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쌍둥이 형제 홀예르1, 홀예르 2. 그리고 CIA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불안증에 걸린 미국인,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짝퉁 사기'를 일삼는 중국 여자들과 철거 예정지의 주택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핵폭탄 처리 방법을 고민하면서 말이다.

 

놈베코는 그 와중에도 스웨덴어를 배우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홀예르 2를 사랑하는 놈베코와 존재하지만 생각할 줄 모르는 홀예르 1을 사랑하는 셀레스티네의 좌충우돌 생활기가 그려지고 놈베코는 결국 스웨덴 수상과 국왕을 만남으로써 핵폭탄을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스웨덴 방문 기념품과 함께 중국으로 보낸다. 뿐만 아니라 놈베코와 홀예르 2는 수상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획득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복귀한다. 스웨덴 대사의 자격으로 말이다.

 

작가는 황당한 인물과 황단한 설정을 통하여 세계의 역사를 풍자하고 가장 낮은 신분인 놈베코로 하여금 지배층을 조롱하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체제를 비판한다. 작가의 생각은 여과없이 소설에 반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핵무기의 개발, 인권이나 환경문제 등 현대 사회의 부조리가 패키지로 등장하는 셈이다.

 

 "이로써 조지 W. 부시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반면, 알 고어는 심지어는 스톡홀름의 아나키스트들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환경 운동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부시는 사담 후세인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무기들을 모조리 파괴해 버리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p.386)

 

작가는 분명 특이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나와는 웃음 코드가 맞지 않았을 뿐. 얼마 전에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만큼이나 새로운 소설이지만 서양 작가의 풍자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작가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인지 아무튼 나는 힘겹게 읽었다. 정말 힘들었다. 힘들다는 게 감상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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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4-12-03 23:48   좋아요 0 | URL
아직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사 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데요....저도 끝까지 못 읽으면 어쩌죠...

꼼쥐 2014-12-04 18:1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악물고 한번 읽어보시죠. 그러다 이가 부러지면 책임질 수는 없지만.

별족 2014-12-04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끔찍했어요-_-;;;

꼼쥐 2014-12-04 18:14   좋아요 0 | URL
저는 다 읽지도 못하고 중도 포기했어요.ㅜㅜ

완벽한위로 2014-12-04 10:03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던 100세 노인을 정말 힘들게 읽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ㅁ-;

꼼쥐 2014-12-04 18:15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책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것 같아요.
최악이거나 최상이거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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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해 겨울방학에 나는 '명심보감'을 외우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뜻하는 바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당시 어머니는 하숙을 쳐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계셨고, 하숙생 중에는 몇 달 밀린 하숙비를 떼어 먹고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그 사람들은 으레 필요도 없는 옷가지며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를 마치 꼭 다시 오겠다는 맹세의 일환인 양 손도 대지 않은 채 떠나가곤 하였다.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올 것을 굳게 믿었던 까닭인지 아니면 물건에서 어떤 단서를 찾기 위함이었는지 어머니는 언제나 그 물건이 놓였던 자리를 한동안 정리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아두셨다. 약간의 미련이 묻은 그 옷 보따리를 말이다.

 

그해에도 그렇게 떠난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옷 보따리 속에서 모서리가 너덜너덜 닳아빠진 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명심보감'이었다. 기껏해야 '아들 자, 계집 녀'를 지나 '배울 학, 학교 교'의 수준에 이르렀던 나의 한자 실력으로는 눈에 익은 글자를 찾아내는 데만도 가뭄에 콩나듯 하였다. 버릴까? 하다가 왜 갑자기 마음을 돌이키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불현듯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전에 없던 호승심이 치솟았던 것이다. '이번 겨울 방학에 이 책이나 외워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친구들 앞에서 어려운 말을 줄줄 읊어대는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가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었다. 참으로 인연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명심보감' 외우기는 그해 겨울의 엄혹한 추위처럼 맵고도 쓴 것이었다. 자치기를 하자는 친구의 유혹도, 외발 스케이트를 타는 스릴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나는 집 밖 출입을 삼가한 채 명심보감과 한자 사전을 끼고 살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참담했다. 명심보감 초략본 19편 247조 중 계선편 11조를 간신히 외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알량한 지식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자왈, 위선자 천보지이복'으로 시작되는 명심보감의 문구를 이제 막 변성기가 시작되는 걸걸한 목소리로 읊을라치면 친구들은 마치 공자의 현신을 뵙는 듯 존경과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하였다. 개중에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한수 배움을 청하는 친구도 가끔 있었다. 나는 그럴 때면 '네깟 것들이 설명을 해준들 이해나 할 수 있겠냐'는 표정으로 뒷짐을 진채 한껏 점잔을 빼곤 하였다. 나와 공자의 첫 만남은 그렇게 특별했었다.

 

내가 공자를 다시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이었던 어느 봄날의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던 나에게 후광이 비치는 듯 밝게 빛났던 '논어'. 나는 익숙한 스승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웠었다. 그때 나는 '그래, 대학생이라면 적어도 '논어'는 읽어줘야지.'하는 심정으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미련없이 꺼냈던 것이다. 스승님을 다시 뵙는데 그깟 돈이 대수이겠는가. 그러나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의 깊이는 '명심보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내내 잘 읽지도 않는 논어를 마치 부적처럼 가방에 고이 모시고 다녔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만 주야장천 읊어대면서. 그랬던 내가 최근에 공자를 다시 만난 것은 우간린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통해서였다. 나에게는 이제 유식한 문구를 읊어댄다고 해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봐 줄 만한 친구도 없고, 그때의 치기는 더더욱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단순한 한자의 뜻풀이가 아닌 이야기와 에피소드의 방식으로 쓰였으므로 마음을 담아 조용히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공자의 가르침은 고지식하다거나 구태의연하다고 말한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장 보편적인 지혜는 쉽게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심오한 진리를 쉽게 설명하기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이제 나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의 의미를 간신히 깨우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아는 공자는 자신의 지난했던 삶의 체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무엇보다 가장 쉬운 말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은 의미를 새록새록 깨닫게 되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아, 진즉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초석이다. 단언컨대 공자의 가르침을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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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첫눈인가 봅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저는 올해 들어 처음 보는 눈이니 제게는 첫눈인 것입니다.  부유하는 눈송이들은 지구의 중력과는 무관한 듯 그저 가볍습니다.

 

오늘 아침, 여느 날처럼 어둠에 싸인 산을 올랐을 때 저는 내심 눈 덮인 산길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바람만 거셀 뿐 눈은 내리지 않더군요.  어제 내린 비로 낙엽이 쌓인 등산로는 조금 질척거렸고 미끄러웠습니다.  밤새 불었던 바람은 마른 가지를 부러트려 등산로 여기저기에 흩어 놓았고, 어둠에 익숙지 않은 나의 발부리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비인지 진눈깨비인지 잠시 흩뿌렸습니다.  오늘의 날씨에 지레 겁을 먹은 등산객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유난히 인적이 드물었던 오늘의 등산로에는 바람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어둠은 끝내 걷히지 않았고, 그 어둠 속에서 젖은 낙엽들만 밟혔습니다.

 

빗줄기로 시작된 오늘의 눈은 소나무 위에 슬몃 얹혀 12월의 첫날을 기억하게 합니다.  지금 밖에는 부유하듯 눈발이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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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4-12-0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곳에도 첫눈이 많이 왔답니다.
그런데 지붕에는 첫눈치곤 많이 내려쌓였는데요.
길바닥에는 거의 쌓이지 않고 금방 다 녹더군요.
여태까지 따스한 늦가을 날씨가 물러가지 않았던 탓 같습니다.

조금 전, 밖에 나가 이웃집 승용차 지붕에 쌓인 눈을 뭉쳐
밤하늘 높이 던져올려봤네요.^^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던진 눈뭉치를 받다가
잘못 받는 바람에 부서진 눈뭉치가
몸속으로 들어가 가슴 밑에서 차갑게 녹았습니다.
첫눈과의 상견례를 꼼쥐 님 윗글을 읽다가 이렇게 치렀답니다.^^

꼼쥐 2014-12-02 09:41   좋아요 0 | URL
아~~그러셨군요.
저는 오늘 아침 산을 올랐을 때 쌓인 눈을 밟는 느낌이 좋았어요.
떨어진 기온에 비해 많이 춥지는 않았구요. 아마도 바람이 잦아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뭇가지 위에도 소복소복 눈이 쌓여 있더군요.
 
그래도, 사랑 - 언젠가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지만
정현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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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얘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사실 제 취향은 아닙니다. 저는 글쎄, 뭐랄까 세심하거나 다정한 성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내용부터 먼저 살피다가 뒤늦게서야 표지를 살피곤 하지요. '아, 이 책의 표지가 이랬구나'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우연처럼 말이죠. 사람을 만날 때도 그래요. 어제 만났던 사람도 그날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도통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날 그 사람의 표정이 어땠는지, 목소리 톤은 어땠는지, 웃음 소리는 밝거나 어두웠는지 또렷이 기억하곤 하지요. 그런 성격을 가진 제가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기 전에 표지부터 말한다는 건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표지의 색깔은 음, 화이트 그레이라고 해야 할까요. 종이 표면은 천을 직조한 듯한 격자 무늬의 엠보싱이 보이구요. 중앙 상단에는 잠기지 않은 옷핀이 그려져 있고, 그 밑으로 '그래도,/사랑'이라는 책 제목이 행을 나누어 쓰여져 있습니다. 색깔은 암녹색쯤으로 보입니다. '사랑'의 '사'자와 '랑'자 사이에 부제인 듯 작고 검은 글씨로 '언젠가/너로 인해/울게 될 것을/알지만'이라는 문장이 역시 행을 나누어 쓰여져 있습니다. 그 밑으로는 약간의 여백을 두고 '정현주 지음'이라는 검은 글씨체가 보입니다. 표지에서 받은 저의 느낌은 깔끔하고 단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현주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음,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저는 처음인 것 같아요. 라디오 작가라고 하는군요. <별이 빛나는 밤에>, <최강희의 야간비행>,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FM데이트 강다솜입니다> 등 화려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40 편의 사랑 이야기도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의 데일리 코너인 ‘그 여자의 노란 일기장’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청취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새로 써서 엮었다는군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 뒤에는 작가가 보았던 영화나 책, 그에 어울리는 노래 등을 소개하며 작가 자신의 느낌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책은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SCENE 1 만나고', 'SCENE 2 사랑하고', 'SCENE 3 헤어지고', 'SCENE 4 그리워하고', 'SCENE 5 다시 만나다'의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뒤에는 장윤주, 최강희, 김동영의 추천사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책에 소개된 영화와 책과 노래의 제목이 색인처럼 실려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작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연 하나하나를 모두 읽고, 선별하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인생을 배울테니까요. 조금 길다 싶지만 작가가 선별한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사를 하고 며찰 뒤,

고양이가 사라졌다.

여자는 추운 겨울의 밤거리를 다니며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으나

골목 가득 냉정한 어둠만 가득 차 있을 뿐,

익숙한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달조차 얼어버릴 것 같은 밤.

여자는 온몸이 굳도록 골목을 헤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에 살던 집에 가보았다.

 

고양이는

거기 있었다.

 

주인이 바뀌어

아무리 소리를 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문 앞에 있었다.

그것이 꼭 자신의 모습 같아서 여자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주인이 떠난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고양이와

사랑이 떠났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사랑을 기다리는 여자.

 

둘은 함께 새로운 집으로 돌아왔고

여자는 말 없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이제는

여기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야."

 

그것은 마치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고양이가 다가와

얼어붙은 손을 따뜻하게 핥아주었을 때,

여자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편안하구나'하고 웃었다. (p.286~p.287)

 

제가 이따금 듣게 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는 '여성시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올라오는 시청자 사연은 어느것 하나 허투루 들을 수가 없습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저는 어쩌면 그 사연 하나하나를 통하여 인생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도, 영화도, 노래도 그런 것이겠지요. 이 책에 실린 사연들은 모두 사랑과 이별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랑, 참 쉽다' 느꼈지만 사랑 앞에서 늘 망설이고 주춤거렸던 제 젊은 날의 모습이 아로새겨졌습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사랑도, 이별도 삶의 한 과정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사랑 앞에서 늘 망설이고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이 사람이다' 확신할 수 없는 게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설프고 서툰 사랑마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하고 황폐한 것인지요. 정현주 작가의 <그래도, 사랑>은 참 괜찮은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구성도 괜찮은 것이구나 느꼈다는 게 옳겟지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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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이따금 비가 내렸습니다.

나는 이 문장을 쓰고 몇 번인가 되짚어 생각해야 했습니다. 바람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비가 먼저였는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거듭하여 생각하느냐 비난할 분도 분명 있을 터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 문제에 골몰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논리로 따지자면 너무나도 하찮고 가치가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정말 하찮은 일에 너무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기는 가깝거나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요. 현실에서는 내 앞에 닥친 일에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처할 방법만 찾는 데 골몰하기 마련이니까요. 지나고 나면 훤히 보이는 일인데 현실에서는 왜 그다지도 어려운 것인지요.

 

나는 끝내 바람이 먼저였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습지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주말의 풍경은 지금처럼 바람이 불고 이따금 비가 내리는 날씨는 분명 아니었을 것입니다. 암갈색의 플라타너스 낙엽이 차도 위에 시체처럼 흩어져 그 스산함을 더하는...

 

가깝고도 먼 미래에 나는 또 어떤 식으로 오늘을 평가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씀씀이는 나날이 줄고 있는데 생활비는 왜 다달이 늘어나는가? 하는 문제에 시간을 더 할애해야 했었다고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구요. 아무튼 나는 오늘 바람이 먼저였는지 비가 먼저였는지 골똘히 생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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