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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달라 보인다.

단순히 해가 바뀌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십여 년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 담배의 지배력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해마다 이맘때면 금연을 한답시고 호들갑을 떨 때도 나만 홀로 초연했었다.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아내의 잔소리가 있기는 했으나 그냥 견딜 만했다.  그랬던 내가 금연을 결심하고 담배를 끊자 아내는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아무튼 내게 세상은 흡연을 할 때의 세상과 흡연을 하지 않을 때의 세상, 단 두 개의 세상으로 보일 뿐이다.  서서히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까닭에 글을 쓸 때는 가급적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12월에 출간된 에세이 중에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나는 결국 <정글만리>를 읽고 리뷰를 쓰지 못했다.  쓰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옳다.  조정래 작가도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생각했었다.  아끼는 작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상상력의 발현보다는 중국에 대한 면밀한 취재에 스토리를 슬쩍 얹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던 <정글만리>.  그의 산문집은 어떤 내용일지...  또 다른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오프라 윈프리 쇼>를 단 한 번이라도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녀의 긍정적 에너지에 쉽게 동화되리라 생각한다.  방청객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모두를 쥐락펴락 했던 그녀의 탁월한 진행 능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었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결코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았던, 강인한 인간의 표본과 같았던 오프라 윈프리의 삶에서 얻어진 귀한 교훈들, 이 책은 그런 책일 것이라 믿는다.

 

 

 

 

 

 

장르가 다른 예술계의 두 거장이 나누는 대화는 가벼운 듯하면서도 그 깊이가 다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여러 곡의 음악 제목이 등장한다.  주로 재즈 음악이 많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화를 실은 이 책은 하루키의 열혈팬인 내게 설렘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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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1-0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정글만리를 보며 썩 좋은것은 아니였는데 꼼쥐님의 글을 읽으니 저만 그런 생각을 갖었던게 아니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처음 읽어본 조정래 작가님의 글이였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였거든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태백산맥은 구입해놨는데 아직 펼쳐보진 못했어요. 오프라윈프리의 책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네요^^ 긍정적 에너지를 받기 위해서라도 읽어보고 싶어요^^

꼼쥐 2015-01-04 15:46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태백산맥>은 대작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아마도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정글만리>는 마치 오랫동안 중국을 취재한 어느 기자의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조금 민망한 그런 작품이었죠. 이렇게 말하면 작가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중국발 미세먼지 탓인지 목 안이 칼칼하고 가슴이 답답하지만 요 며칠 푸근한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이제 내일 하루만 지나면 2014년은 과거의 기억 속으로 영원히 묻힐 것입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한 해를 잘 보냈다는 뿌듯함보다는 왠지 모를 헛헛함이 밀려오는 게 사실입니다. 처음과 끝은 항상 맞물려 돌아가는 것임에도 '처음'보다는 '끝'에 오랜 시간 눈길이 머물고 떨쳐버릴 수 없는 진한 아쉬움과 미련을 품게 마련이지요.

 

세월의 흐름은 몸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늙게 하나 봅니다. 까닭도 없이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걸 보면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는 남보다 뒤처진다는 것,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머지않은 미래에 폐기처분의 신세를 면키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기를 쓰게 되는가 봅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쓴 <오래된 미래>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라다크에서 늙어감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자연 순환의 일부로 여겨진다. 흔히 한동안 떠나 있다가 오랜만에 라다크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지난번 보았을 때보다 많이 늙었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을 겨울에서 봄으로의 변화를 말하듯 아무렇지 않게 할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더 늙어 보인다는 말을 듣기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나이를 겁내며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삶의 각 단계는 그 나름의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중에서)

 

나도 모르게 왠지 헛헛하고 쓸쓸해지는 이 즈음에는 의지가 될 만한 무언가가 절실해지곤 합니다. 그 대상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좋아하는 음악이나 그림이든, 혹은 책이든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다가오는 2015년에는 라다크 사람들처럼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에 쫓기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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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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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소설을 즐겨 읽는다. 바꾸어 말하자면 과거의 어느 한때 나는 소설 이외의 다른 책에 매료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이루어진 정의나 명제, 진리라고 믿어 의심지 않았던 이론이나 역사적 사실은 얼마나 내 가슴을 뛰게 했던가. 간혹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기억하는 멋진 문장을 그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또 얼마나 달콤했던지. 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지식, 세상의 모든 진리를 내 머릿속에 모두 지니고 있는 양 제 분수도 모르고 으스대며 철없이 굴었던지.

 

그러나 내가 굳게 믿었던 진리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한순간에 뒤집어지고 새롭게 등장한 이론에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을 때 나는 구시대의 인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한낱 허섭스레기로 치부되기 일쑤였으니 내가 한때 불변하는 진리로 믿었던 어떤 것들도 다만 한 개인의 주장, 한 사람의 목청에 불과했음을 부득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나의 현학은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 동안에만 유효했던 한시적인 어떤 것, 바람처럼 가벼운 유행에 지나지 않았음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그와 같은 것임을 나는 뒤늦게 깨우쳤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런 것이다. 소설은 적어도 작가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어떠한 명제에 이르게 하거나 정의되지 않은 삶의 방식을 제멋대로 강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삶, 이런 인생도 있음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뿐이다.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작가 자신은 잘 알고 있다.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와 같은 진리의 가변성, 지식의 다양성, 하나로 취합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을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무지에 대한 인식,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전제 없이는 소설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소설은 백지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요즘 안다는 건 무엇이고 모른다는 건 또 무엇인지 혼자 곰곰이 생각할 때가 많다. 안다는 건 경험에서 나오니 사실 아는 건 과거에 안 것이다. 과거에 알았다고 해서 지금도 아는 건 아니다. 지금은 '모른다'에서 '안다'로 가는 어떤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그걸 가장 잘 표현하는 동사는 아마도 '산다生'가 아닐까? 산다는 건 경험을 통해 몰랐다가 알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미래에 어울리는 동사는 '모른다'뿐이다. 정리하자면 '과거-안다. 현재-산다. 미래-모른다'의 공식이다." (p.202)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은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나 자신 혹은 나 아닌 타인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마음 지도(地圖)'쯤으로 읽힌다. 내가 소설가가 될 가능성이 단 일 퍼센트도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란 인간은 평생 나 자신조차도 속속들이 다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대충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는 개연성은 있지만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고 그래서 어떤 결과를 보았고 결국 어떤 깨달음을 얻었느냐 하는 문제에는 영 자신이 없다. 작가의 말마따나 '개연성은 있지만 핍진성이 없다.'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선을 행하는 게 어려워진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위를 바라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윤리적 행위는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시작된다." (p.157)

 

소설가 중에는 작정하고 나서서 된 사람도 있겠지만 우연찮게 된 사람도 많은 듯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내 생각에 그것은 '무지에 대한 인식 또는 좌절에 대한 반동(reaction)'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삶은 그야말로 살아지는 것이지 단순히 머리로 사고되거나 생각하는 것이 곧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즉 소설에서의 삶도, 우리의 삶도 인식론적 차원의 삶이 아니라 경험론적 차원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p.218)

 

마음만 먹는다고 누구나 다 소설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될 필요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 자신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무지(無知)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소설을 쓰기 위한 기술적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 할지라도 제대로 된 소설은 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소설을 쓴다는 것 혹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다만 모를 뿐'이라는 자기 고백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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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1차로인 도로에서 신호대기를 하거나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우회전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지. 어느 정도 운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타나는 반응은 운전자의 성격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나는 듯합니다.

 

제가 만일 편도 1차로의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면 대개는 중앙선 쪽으로 제 차를 가깝게 붙여 우회전하는 차량의 소통을 방해하지 않으려 하는 노력합니다. 내 뒤에 오는 우회전 차량이 방향지시등을 켠 채 경적을 울리며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딱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간혹 자신의 차를 차로의 중앙에 떡하니 세워 놓은 채 뒷차량이 우회전을 하던 말던 전혀 개의치 않는 운전자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저는 그 차량의 운전자가 운전 경험이 전혀 없는 완전 초보이거나 일부러 심술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우회전을 하려는 뒷차량의 차로를 확보해주고는 싶으나 운전 실력이 부족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라거나 충분히 비켜줄 수 있는 운전 실력은 되지만 못 들은 체 무시하는 경우이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주 고약한 심보이지요. 나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너도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는 투의 막가파 식 운전 행태라고나 할까요.

 

물론 신호대기를 하는 차량의 운전자가 어떤 위반을 한 것은 아니지요. 법적으로 비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단순히 배려의 차원에서 행하는 일일 뿐이지만 무대포로 버티고만 있는 차를 뒤에서 지켜볼 때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더군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도 심술이 나서 비켜주지 않고 버텨본 경험이 있습니다. 저도 언제나 미소만 짓는 천사는 아니거든요. 주로 택시가 그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일반 차량의 운전자는 대개 우회전 방향지시등을 켠 채 한두 번의 짧은 경적을 울림으로써 자신이 먼저 가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만 일부 택시 운전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더군요. 예컨대 '내가 우회전 하려는데 네가 감히(?) 내 앞길을 막아?'하는 표정으로 귀가 먹먹할 정도로 경적을 길게 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순 심사가 뒤틀리곤 합니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태워야 사납금도 벌고, 집에 있는 자식들의 용돈도 줄 수 있기에 늘 바삐 돌아다닐 수 밖에 없다는 건 잘 알지만 적어도 앞 차량의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니만큼 짧고 가볍게 울릴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지요.

 

저는 외국에서도 몇 번 운전을 해본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 운전자만큼 안하무인의 운전자를 만났던 경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을 운전하는 외국에서의 경험과 오랫동안 운전했던 국내의 경험을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한 게 죄라면 죄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약간의 배려로 서로의 마음을 기분좋게 할 수 있다면 웃을 일 없는 요즘과 같은 시기를 그래도 잘 버텨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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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꽝 멸종 프로젝트 - Dr.심의 몸 개그, 그것이 알고 싶다
심현도.이형진 지음, 성낙진 그림 / 청춘스타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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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침운동은 내게 일상처럼 흔한 일이 되었지만, 간혹 알람이 서너 번 이상 울릴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오늘만 쉬어' 라고 말하는, 너무나도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찌나 달콤한 유혹인지 나는 금세 '고마워'라고 대답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아침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 치는 겨울날이나 생각만으로도 끈적끈적한 땀이 배는 것 같은 여름날에는 더더욱.

 

내가 이렇듯 아침운동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건강을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내 나무'를 만나는 즐거움이 그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마다 오르는 산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등산로 옆으로 우거진 나무들을 볼 때마다 나는 푸근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것은 마치 몇 십년지기 친구를 만나 잠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에 쫓기는 탓에 대개의 나무들과는 눈인사만 주고받지만 등산로에 인접한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만큼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포옹을 하듯 한 번씩 안아보곤 한다. 가슴에 꼭 끌어안고 가만히 귀를 대보면 물관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오늘 아침에도 운동을 나갔었다. 쌀쌀한 날씨 탓이었는지 산에서 단 한 명의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다. 가을에 보았던 구 많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간 것인지... 내가 이렇게 근 이십여 년이 넘는 동안 꾸준히 아침운동을 이어 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달리 비결이랄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나의 아침 시간은 비교적 단순하다. '알람이 울린다. - 일어난다. - 옷을 입는다. -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 산에 올라 운동을 한다. - 내려온다. - 샤워를 한다. - 아침을 먹는다.' 이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하는 행동의 전부이다. 나는 이런 일련의 행동에 대해 '왜?'라고 묻거나 '오늘도?'라고 토를 달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행한다. 나는 인간이 어떤 고상한 목적을 가져야만 행동한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로봇처럼 아무 생각이 없어야 싫은 일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읽었다기 보다는 보았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은 <몸꽝멸종 프로젝트>. 웹툰 형식의 책인지라 짧은 시간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필요한 부분은 다시 펼쳐볼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것은 부록으로 딸려온 '스킨 폴드 캘리퍼'였다. 그게 뭐냐고? 말하자면 피하 지방 측정계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기계는 아니다. 플라스틱에 눈금이 그어진, 버어니어 캘리퍼스나 마이크로미터를 연상케 하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이용하여 피부의 피하지방을 측정하고, 측정된 값을 통하여 자신의 비만도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들게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인바디 측정을 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간단히 측정할 수 있다는 말씀 되시겄다.

 

이 책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다이어트와 운동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참고할 만한 책이다.이 책의 저자인 심현도가 말하기를 러닝머신만 내내 달리다 오는 아주머니들, 잘못된 운동법으로 체형이 나빠지는 젊은이들 등 실제적으로 피트니스 센터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인구는 30%도 안 된단다. 그러므로 이 책에 소개되는 필살 홈짐 운동법은 주로 집에서 하는 운동법으로 몸 전체의 밸런스를 끌어올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가끔 어려운 이론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뭐 그 정도야 눈 딱 감고 건너뛰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살이 빠지는 게 주목적이니까.

 

나는 사실 다이어트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체중이 늘거나 줄지도 않는다. 부작용이라면 한번 산 옷을 소매가 헤질 때까지, 혹은 무릎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입는 까닭에 의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본의 아니게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지만 그 반대로 좋은 점도 있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내 또래의 사람들은 마치 아우슈비츠에라도 끌려가는 듯 다들 사색이 되곤 하지만 나는 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다이어트에는 왕도가 없다. 다만 꾸준함만이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말 : 이 책의 리뷰를 제대로 쓰려면 포토 리뷰가 제격이지만 나는 예전부터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리는 일에 알레르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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