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제쳐두었던 지진에 대한 공포를 다시 일깨운 건 어젯밤 8시 33분의 여진이었다. 따로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지만 8시 33분이라는 시각은 최근에 발생한 지진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 보였다. 저녁 밥상을 물린 후 느긋하게 쉬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그 시간에 지진은 마치 장난기라도 발동한 듯 '흠, 다들 아무것도 모른 채 널부러져 있군. 심심한데 어디 한 번 사람들이나 놀래켜줘 볼까.' 하고 잊을 만하면 한번씩 지축을 흔들어놓는 것이다. 그때마다 무방비로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집을 뛰쳐나갔고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이거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냐?'하는 표정으로 화풀이 대상을 찾곤 하였다.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지진이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이라도 한마디 던질 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무방비의 사람들을 놀래키는 건 비단 지진뿐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북한이, 때로는 일본이, 때로는 미국이 '서프라이즈~~!!'하면서 느끼한 표정으로 국민들의 심기를 긁어놓기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가끔일 뿐이고, 우리나라 정치권은 시도 때도 없이 '서프라이즈'를 연출하는 통에 당하는 국민들은 이제 식상하다 못해 지겨운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어제 반기문 띄우기에 나선 정부 여당의 뜬금없는 행동만 하더라도 정치인들의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서프라이즈'의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0여 년을 지하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정부 여당은 저승에 있던 사람을 불러내어 이승의 사람을 다스리는 게 어떻겠느냐 묻고 있는 셈이다. 이 나라에 아무리 인재가 없기로서니 명계에 있던 사람을 국가 지도자로 삼자는 발상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서프라이즈' 차원에서 웃자고 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센스가 없어서야 어디...

 

이제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서프라이즈 퍼포먼스'는 제발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지진으로 인한 '서프라이즈'에 지쳐가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식상한 '서프라이즈'를 보면서 웃어줄 여력은 없기 때문이다. 한·일간의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불가역적'이라는 생뚱맞은 단어를 들고 나왔던 외교부의 애교도 이제는 지겨운 것이다. 이 좋은 계절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정치인들의 '서프라이즈'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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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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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후유증은 비단 육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어수선했던 긴 연휴를 보내고 나면 육체의 휴식과 더불어 정신의 안정을 갈구하게 된다. 예고도 없이 불쑥 끼어들었던 어떤 상념들이 머릿속의 여러 공간을 가득 채운 까닭에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명절이 지나고 나면 세 살배기 꼬마들이 저질러 놓은 난장판의 집안을 정리하듯, 나는 내 머릿속의 상념과 어질러진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여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류하고 잊어야 할 것과 오래도록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을 따로 간추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말하자면 그것은 머릿속 대청소인 셈인데, 방청소에 빗자루와 걸레가 필요한 것처럼 머릿속 청소에도 도구가 필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흩어진 생각을 갈무리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돕는 데에는 인문학 서적만 한 게 없다는 한결같은 생각을 나는 지금껏 신줏단지처럼 믿어왔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살피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내가 이번 명절에 선택한 책이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동시에 다독가로도 널리 알려진 장석주 작가의 글은 공들여 빗어 넘긴 여인네 머릿결처럼 단아하고 정갈하였다. 사계절 동안 책을 읽고 자신이 읽었던 책과 함께 빚어낸 사색의 향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빠져들게 한다. 혹여 다치거나 상처받았을지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조용히 위무하는 듯도 하였다.

 

"대개의 삶이란 결핍이고 누추함 자체인데, 그 결핍을 채우고 누추함을 벗으려는 욕망 때문에 책을 읽는다. 이때 욕망은 나로서 동일성을 유지하고 존속하려는 본성과 더 나은 '나'로 충만해지려는 열망의 합이다. 앎, 지적인 발견, 창조적 생각들의 발현을 위해 책을 읽을 때, 책은 숨은 욕망들을 비춰주고 성찰적 사유로 이끈다. 어떤 책들은 살아 있는 기쁨과 행복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책을 읽는 일은 지복이다." (p.451)

 

'글쎄, 그럴까?' 하는 의문은 책의 어느 문장에나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사유라기보다 건강검진에서 간과하고 빼놓은 영혼의 검진을 다시 하는 듯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하나 묻고 대답한다. 작가가 읽었던 책은 문학, 철학, 미술, 영화, 건축, 여행, 종교, 경제, 야구, 축구 등 분야가 너무나 다양하여 내 어설픈 지식의 발걸음으로는 감히 따라갈 엄두를 내기 어렵지만 나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음을 떼고 그때마다 "휴우!" 하고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억척스러운 현실은 인간을 얼마나 메마르고 혼탁하게 하는지...

 

"깨어 있는 것은 불면을 앓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감싼 밤이다. 그 밤에 불면을 앓는 사람들은 벌거숭이가 되어 표류한다. 움직이지도 않은 채 어디론가 흘러가는데, 흘러가면서 존재의 에너지를 방전시킨다. 마침내 불면은 우리의 의식을 거의 찢어놓는다. 불면이 남기는 것은 육체라는 고독의 응고, 그 속에 깃든 정신의 피폐함이다." (p.153)

 

작가는 책에서 130여 권의 책을 읽고 300권에 이르는 책을 언급한다. 작가에게 책은 그야말로 사유의 통로인 동시에 삶의 귀착점인 셈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책은 어수선한 생각들을 거듬거듬 주워 모으는 도구이자 흐느적거리는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는 지주대로서의 역할만 겨우 할 뿐 우리가 사는 세상 너머의 세상, 말하자면 고차원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출입증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내가 작가를 부러워하는 까닭도 그래서이다.

 

"나는 양식을 구하듯 책을 구해다 읽고 문장 몇 줄씩을 끼적이며. 음악, 바다, 지평성, 아삭하는 소리로 씹히는 사과들, 이빨 아래 물컹하게 으깨지는 붉은 토마토들, 풍부한 즙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는 오렌지들, 고요히 대지를 두드리는 봄비, 해마다 돌아오는 여름의 눈부심, 신록이 주는 기쁨과 위안, 내 안의 단단한 얼음마저 녹이는 사랑하는 이들의 미소들 속에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수액과 꿀을 구하며 '고독의 상상계' 속에 한참 더 머물 참이다." (p.348~p.349)

 

우리가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까닭은 모름지기 자신이 가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일 터, 살면서 가장 소원해야 할 일은 언제든 자신이 가는 길을 훤히 내다보는 일일 것이다. 명절에 듣는 가슴 아픈 소식들, 이를테면 '안골 살던 김아무개가 죽었다더라.', '샘말 살던 오아무개가 아프다더라'하는 말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미망과 고뇌 속에서 헤매고 있음이다. 마음 속에서 불면의 등불 하나 밝히지 못한 까닭이다. 소원을 빌기 전에 마음 속 사유의 밭을 먼저 일굴 일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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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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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문의 답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뉴스가 되느냐 덜 되느냐. 그뿐이죠."    (p.131)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유부남인 어느 유명 감독과 여배우와의 스캔들 말이다. 그게 어떤 계기로 프라임 뉴스에 올랐고 세간에 화제가 되었는지 나는 도대체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뉴스를 본 사람들은 마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도 되는 양 만나는 사람들마다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은 뉴스의 중심에 섰던 당사자들에겐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일 뿐이고,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말이다. 다만 그들이 일반인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사건이 있기 전부터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들의 행위가 옳았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며칠씩이나 TV 뉴스에 오르내릴 만큼 중대한 범죄였던가? 하는 데에는 머리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뉴스거리가 차고 넘쳐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우리의 관심을 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사건은 모름지기 따로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것은 사건의 중대성보다는 관심의 지속성이나 SNS를 통한 파급력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은 위와 같은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소설이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도 우리들처럼 뉴스에 몰입하고, 이슈에 열광한다면서 "냄비근성은 비단 한국인만의 얘기도 아니고 그냥 본능적인 우리 모습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다만 그녀는 "뉴스를 소비하거나 이슈에 휩쓸리면서도 개개인이 그것을 의식했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물론 사건은 늘 일어나지만, 이 주기라는 것은 사회를 뒤흔들 만한 '이슈'가 됨을 말한다. 이슈가 되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신문에 실려야 한다. 일주일 내내 신문 1면을 차지할 수 있다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야 한다. 50일 이상 그것이 지속된다면 타임캡슐에 넣을 만한데, 아직까지 그런 사건은 없었다."    (p.201~p.202)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노시보'이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지금은 부동산회사에서 전화로 땅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전화 상대와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그는 이슈가 될 만한 뉴스를 끝없이 검색하고 소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의 달'이 출현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두 번째 달에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였고, 모든 이슈는 달에 집중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달'이 출현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나 여러 사건 또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중력을 거부하는 '무중력자'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 것도 '제2의 달'의 출현과 무관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잠시 세 번째, 네 번째 달이 일정한 주기로 생겨나면서 그동안 급속도로 퍼지던 '무중력 열풍'은 빠른 속도로 식어만 갔다. 이와 같은 달의 '번식'은 세상 사람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던 게 사실이어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보'의 형이 요리사를 꿈꾸게 되고, 전업주부였던 '시보'의 엄마는 달을 구경하러 간다며 가출을 하였고, 집안일에는 일체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아버지도 점차 가출하기 전의 엄마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뿐만 아니었다. 돈 버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직 소설가를 꿈꾸며 게으른 생활을 이어오던 '시보'의 친구 '구보'도 어느 날 대학 선배와 함께 창업을 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과 우주 관련 사업에 집중했고, 가출을 했다 돌아온 '시보'의 엄마 또한 우주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한 미용실을 차리기에 이르렀다. '시보'네 회사도 달나라 납골당을 분양하면서 이슈에 편승했다. 그러나 보름을 주기로 달이 늘어나자 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익숙함에서 오는 권태로 빠르게 변해갔다.

 

"난무하는 달의 이미지 속에서 나는 종종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에는 모든 지구인들이 하나의 달을 바라봤을 텐데. 지금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달이 다르며, 동쪽과 서쪽의 달이 다르고, 위층과 아래층의 달이 다르다."    (p.229)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현대인이 겪는 여러 증후군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력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종편에 출연하는 쇼 닥터를 숙주 삼아 있지도 않은 여러 질병들을 우리는 오직 상상 속에서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 사실 관계를 규명할 것도 없이 여러 뉴스에서 퍼날라지는 동안 별 필요도 없는 약들을 처방받아 이유도 모른 채 복용하는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 가상을 구현하는 증강현실의 '포켓몬 고'처럼 우리는 어쩌면 있지도 않은 가상을 현실에서 쫓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소설 속의 분화된 달이 우주 쓰레기로 밝혀지는 것처럼 우리가 앓는 여러 증후군들도 언젠가 일상의 흔한 일들로 말해질 날이 결국 오고야 말 것이다. 이슈는 출처의 사실 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슈화 시키는 사람들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국정원의 직원이 사실도 아닌 기사를 끝없이 리트윗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대선 후보자로 나선 누군가가 또 하나의 달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조금 허황된 말이지만 일단 믿고 보자는 식의 무뇌아는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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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그야말로 결과를 알고 있는 자작극인 셈이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제 스스로 걸려드는 웃지 못할 일도 겪게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는 감쪽같이 속는 것이다. 그러다 이따금 지진이나 홍수, 폭설이나 가뭄 등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겪고 나면 '아, 내가 바보처럼 또 속고 말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열에 아홉은 그마저도 깨닫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제 경주에서 있었던 강력한 지진은 그곳으로부터 꽤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강한 진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첫 지진이 있었던 시각에는 밖에 있었던 탓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집 안에서 맞았던 두 번째 지진의 충격은 가히 사람들을 놀래키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것이어서 아파트 전체가 휘청 하는 느낌이 들었고,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공포는 생각보다 더 심했었다. 나는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데 진동이 느껴졌던 그 순간 '대피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그마저도 귀찮아 TV를 켜고 금세 자리에 앉고 말았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과 아내에게 잠시 통화를 했고, 허둥대며 지진 소식을 전하기에 바쁜 방송 관계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평온한 듯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멀쩡한 몸으로 일어나 여느 날처럼 아침 운동을 나갔고, 먼 산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 소리에 '혹시 지진 때문에?'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고,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 몇 알을 주워 부지런한 청설모 커플에게 던져주었다.

 

추석이 내일 모레, 바빠 보이는 사람은 오직 정치인들뿐이고 귀성을 준비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왠지 모를 피곤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면 지진에서 얻은 깊은 깨달음의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 일과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내일부터 이어지는 추석 연휴와 생각지도 못했던 지진의 공포. 오늘 만났던 사람들마다 지진과 추석의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게 있었다. 이 모든 게 허방을 짚는 일일지언정 한가위 명절은 행복하게 맞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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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9-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꼼쥐 2016-09-15 08:14   좋아요 0 | URL
초딩 님도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가족 친지분들과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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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책의 제목만 보면 꽤나 더위가 느껴지는 소설인 듯하다. 말하자면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책을 펼쳐 들고 불과 서너 쪽을 넘기기도 전에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서늘한 느낌으로 인해 당신은 어쩌면 화들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공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도 아닌데 이런 느낌은 도대체 뭔가, 하고 말이다. 더구나 책의 제목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김금희 작가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했던 9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연애 소설집인 듯한데.

 

나는 대체로 순간적인 직감을 신뢰하는 편이다. 남들에 비해 예민하다거나 시쳇말로 '촉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떠오르는 단순한 느낌을 그저 신뢰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무작정'이라는 부사를 앞에 첨가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내 생각에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으면서 느꼈던 '서늘한 느낌'은 '결핍'이나 '허무'의 감정에서 비롯된 '자포자기의 느낌'과도 무척이나 닮아 있는 듯했다.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은 집착이나 소유의식의 결여에서 오는 '열정의 제로 상태'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에 '서늘한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한여름 태양 아래에서도 가벼운 추위를 느끼는 법이니까.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에 나오는 주인공 '필용'은 대기업 영업팀장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좌천되어 건물 지하에 있는 시설관리팀으로 내려간다. 그 후로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자신 스스로가 느끼는 자괴감으로 인해 그는 회사 식당에서의 점심을 포기한 채 무작정 종로 거리로 나선다. 그렇게 무심코 걷던 그 거리에서 '필용'은 대학 시절 자신이 다녔던 어학원과 자주 들렀던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자신이 주문한 햄버거를 먹으며 무심코 바라본 창밖에서 그는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우연히 보게 된다.

 

대학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후배 '양희'가 썼던 연극 대본의 제목이었다. 그 시절 '필용'은 깡마르고 부스스하고 여성적인 매력이라곤 전혀 없었던 '양희'를 그저 햄버거나 같이 먹으며 자신의 허풍을 들어주는 후배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나 선배 사랑하는데" 라고 뜬금없는 고백을 한다. '필용'에게는 감정의 파동을 느끼게 하는 말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 '필용'에게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던 '양희'. 젊은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미래를 위해 하나쯤 보험처럼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욕망이나, 이해타산이나, 자존심이나, 수치심과 같은 속성이 그녀에겐 전혀 없었다. 몇 달 뒤 '필용'은 문산에 있는 '양희'의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필용'은 그녀가 사는 누추한 집과 가난한 가족들을 보았고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양희'에게 사과하는 '필용'. 그러나 '양희'는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보라'고 말한다.

 

어떤 절망적인 현실을 잊기 위해 우연히 들렀던 종로 거리와 그 속에서 대면하게 된 자신의 과거. '필용'은 종로 소극장에서 10여년 만에 재회한'양희'의 연극을 보면서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잊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때 철없음으로 인해 저질렀던 부끄러운 일들이 어떤 것을 계기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날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용서의 대상도, 그래야만 했던 시간도 이미 잊혀져가는 저 과거 속에서 되살릴 방법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데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너무 한낮의 연애'와 함께 '조중균의 세계', '세실리아', '반월', '고기', '개를 기다리는 일', '우리가 어느 별에서', '보통의 시절',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등 9편의 단편이 실렸다.

 

"집집을 돌아다니다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면서 속이 울렁거리는데 집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완고하게 자기 스타일대로 평생을 살고 그러다보면 냄새가 만들어졌다. 그건 특정 영역의 냄새였으며 타인을 밀치는 냄새였다. 자기 고양이를 찾아주러 온 그를 사람들은 깍듯하고 친절하게 대했지만 아무튼 그 냄새는 진저리나게 게별적이고 고유한 것이라서 언제나 부루퉁하고 신경질적이었다."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중에서 p.237)

 

내일이면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이지만 오늘은 선배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양희'의 고백처럼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은 언젠가 또 부끄러워해야 할 과거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지 지난 과거를 붙잡고 사과로 일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소설집에 실린 9편의 단편에는 저마다의 과거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읽으면 무미건조한 문체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읽으면 쿨한 느낌일 수도 있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나는 '고급지다'고 느꼈다. 감정이라곤 조금도 실리지 않은 듯한, 무심한 듯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처럼 작가는 그렇게 소설을 쓴다. 우리의 과거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당신의 과거는 안녕하냐'고 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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