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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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문의 답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뉴스가 되느냐 덜 되느냐. 그뿐이죠."    (p.131)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기억할런지 모르겠다. 유부남인 어느 유명 감독과 여배우와의 스캔들 말이다. 그게 어떤 계기로 프라임 뉴스에 올랐고 세간에 화제가 되었는지 나는 도대체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뉴스를 본 사람들은 마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도 되는 양 만나는 사람들마다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은 뉴스의 중심에 섰던 당사자들에겐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일 뿐이고,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말이다. 다만 그들이 일반인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사건이 있기 전부터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들의 행위가 옳았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며칠씩이나 TV 뉴스에 오르내릴 만큼 중대한 범죄였던가? 하는 데에는 머리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 걸 보면 뉴스거리가 차고 넘쳐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우리의 관심을 끌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 사건은 모름지기 따로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것은 사건의 중대성보다는 관심의 지속성이나 SNS를 통한 파급력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윤고은의 <무중력 증후군>은 위와 같은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소설이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도 우리들처럼 뉴스에 몰입하고, 이슈에 열광한다면서 "냄비근성은 비단 한국인만의 얘기도 아니고 그냥 본능적인 우리 모습인 것 같다"고 말하였다. 다만 그녀는 "뉴스를 소비하거나 이슈에 휩쓸리면서도 개개인이 그것을 의식했으면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물론 사건은 늘 일어나지만, 이 주기라는 것은 사회를 뒤흔들 만한 '이슈'가 됨을 말한다. 이슈가 되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신문에 실려야 한다. 일주일 내내 신문 1면을 차지할 수 있다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야 한다. 50일 이상 그것이 지속된다면 타임캡슐에 넣을 만한데, 아직까지 그런 사건은 없었다."    (p.201~p.202)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노시보'이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지금은 부동산회사에서 전화로 땅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전화 상대와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그는 이슈가 될 만한 뉴스를 끝없이 검색하고 소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2의 달'이 출현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두 번째 달에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였고, 모든 이슈는 달에 집중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달'이 출현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나 여러 사건 또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중력을 거부하는 '무중력자'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 것도 '제2의 달'의 출현과 무관치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잠시 세 번째, 네 번째 달이 일정한 주기로 생겨나면서 그동안 급속도로 퍼지던 '무중력 열풍'은 빠른 속도로 식어만 갔다. 이와 같은 달의 '번식'은 세상 사람들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던 게 사실이어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보'의 형이 요리사를 꿈꾸게 되고, 전업주부였던 '시보'의 엄마는 달을 구경하러 간다며 가출을 하였고, 집안일에는 일체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아버지도 점차 가출하기 전의 엄마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뿐만 아니었다. 돈 버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직 소설가를 꿈꾸며 게으른 생활을 이어오던 '시보'의 친구 '구보'도 어느 날 대학 선배와 함께 창업을 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과 우주 관련 사업에 집중했고, 가출을 했다 돌아온 '시보'의 엄마 또한 우주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한 미용실을 차리기에 이르렀다. '시보'네 회사도 달나라 납골당을 분양하면서 이슈에 편승했다. 그러나 보름을 주기로 달이 늘어나자 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익숙함에서 오는 권태로 빠르게 변해갔다.

 

"난무하는 달의 이미지 속에서 나는 종종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달이 하나뿐이던 시절에는 모든 지구인들이 하나의 달을 바라봤을 텐데. 지금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달이 다르며, 동쪽과 서쪽의 달이 다르고, 위층과 아래층의 달이 다르다."    (p.229)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현대인이 겪는 여러 증후군들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 낸 상상력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종편에 출연하는 쇼 닥터를 숙주 삼아 있지도 않은 여러 질병들을 우리는 오직 상상 속에서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 사실 관계를 규명할 것도 없이 여러 뉴스에서 퍼날라지는 동안 별 필요도 없는 약들을 처방받아 이유도 모른 채 복용하는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 가상을 구현하는 증강현실의 '포켓몬 고'처럼 우리는 어쩌면 있지도 않은 가상을 현실에서 쫓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든다. 소설 속의 분화된 달이 우주 쓰레기로 밝혀지는 것처럼 우리가 앓는 여러 증후군들도 언젠가 일상의 흔한 일들로 말해질 날이 결국 오고야 말 것이다. 이슈는 출처의 사실 규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슈화 시키는 사람들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국정원의 직원이 사실도 아닌 기사를 끝없이 리트윗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 대선 후보자로 나선 누군가가 또 하나의 달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조금 허황된 말이지만 일단 믿고 보자는 식의 무뇌아는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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