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그야말로 결과를 알고 있는 자작극인 셈이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제 스스로 걸려드는 웃지 못할 일도 겪게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는 감쪽같이 속는 것이다. 그러다 이따금 지진이나 홍수, 폭설이나 가뭄 등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겪고 나면 '아, 내가 바보처럼 또 속고 말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열에 아홉은 그마저도 깨닫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제 경주에서 있었던 강력한 지진은 그곳으로부터 꽤나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강한 진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첫 지진이 있었던 시각에는 밖에 있었던 탓에 잘 느끼지 못했지만 집 안에서 맞았던 두 번째 지진의 충격은 가히 사람들을 놀래키고도 남을 만큼 강력한 것이어서 아파트 전체가 휘청 하는 느낌이 들었고,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공포는 생각보다 더 심했었다. 나는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데 진동이 느껴졌던 그 순간 '대피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그마저도 귀찮아 TV를 켜고 금세 자리에 앉고 말았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과 아내에게 잠시 통화를 했고, 허둥대며 지진 소식을 전하기에 바쁜 방송 관계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평온한 듯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멀쩡한 몸으로 일어나 여느 날처럼 아침 운동을 나갔고, 먼 산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 소리에 '혹시 지진 때문에?'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고,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 몇 알을 주워 부지런한 청설모 커플에게 던져주었다.

 

추석이 내일 모레, 바빠 보이는 사람은 오직 정치인들뿐이고 귀성을 준비하는 사람들 얼굴에는 왠지 모를 피곤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쩌면 지진에서 얻은 깊은 깨달음의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 일과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내일부터 이어지는 추석 연휴와 생각지도 못했던 지진의 공포. 오늘 만났던 사람들마다 지진과 추석의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게 있었다. 이 모든 게 허방을 짚는 일일지언정 한가위 명절은 행복하게 맞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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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9-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꼼쥐 2016-09-15 08:14   좋아요 0 | URL
초딩 님도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가족 친지분들과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