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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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의 시간적 여유만 생겼다 하면 뻔질나게 해외여행을 다니는 친구가 있다. 그런 까닭에 친한 친구들마저 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 전화 목소리를 들었던 게 언제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친구와의 대면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그의 아내가 이따금 이쪽 소식을 저쪽에, 저쪽 소식을 이쪽에 전해주곤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아내는 불평 한마디 없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나 졸업도 하기 전에 서둘러 결혼했던 친구는 슬하에 여식을 한 명 두었으나 지금은 취직하여 제 밥벌이를 할 정도로 장성했으니 가장으로서 그의 책임도 반쯤 감해진 듯 보인다. 그런 까닭에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언제나 그 친구에 대한 '유비통신'이 안주처럼 올라오곤 한다. 어디어디에 현지처가 있다는 둥, 돌쟁이 아들이 있다는 둥 근거도 없는 이야기들이 끝없이 생성되곤 한다.

 

"왜 그렇게까지 여행을 다니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서 이제는 여행간다는 말을 가능한 한 주변에 하지 않게 됐다. "뭐 하러 또?"라고 물으면 답할 말이 궁색하기도 하고, 사실 뭘 하러 가는 게 아니다. 목적 없이 있으려고 간다." (p.158)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첫 여행에세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를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 생각이 났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이다혜 기자 또한 여행에 있어서는 중독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다혜 기자나 친구가 생계를 작파한 채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오직 여행만 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친구 역시 주어진 직분에 성실히(?) 임한다는 걸 알기에. 그러므로 이 책은 장기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는 아니다. 주말이나 단기간 휴가를 이용하여 짬짬이 떠나는 평범한 여행자에게 꼭 맞는 책이다.

 

"여행의 무엇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지금 나의 대답은 이렇다. 공기가 다르고, 그 안에 있는 게 좋다. 그 나라의 음식 냄새, 사람들의 분위기, 역사의 문화자본 같은 모든 것들이 그냥 그 안에 서 있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느껴진다. 낯선 풍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더 공부하고 싶어지고 호기심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p.263)

 

친구에게 해외여행이 취미로 굳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배낭여행을 간다며 짐을 꾸려 떠나더니 연휴가 다 끝날 즈음해서 귀국했다. 몇 년 전 설연휴 기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 틈만 나면 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몇 달 전부터 여행 목적지를 알아보고 준비물이나 교통편, 숙박시설 등 여행에 필요한 일반적인 정보를 꼼꼼하게 알아보는 것도 이니었다. 여행을 떠나기 일이 주 전부터 이용 가능한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는 게 다였다. 말하자면 비행기 티켓에 맞춰 여행지가 결정되는 셈이었다.

 

"내가 여행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되뇌는 점이 있다면,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일 것." 오로지 그것을 더 여유 있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p.14)

 

친구는 그나마 건강한 남자 여행자이기 때문에 한국에 남겨진 가족들의 걱정과 근심을 조금쯤 덜어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저자인 이다혜 기자는 여자 홀로 여행하는 것에 대해서 '혼자 여행하는 독신녀의 건강 염려증'이나 '여자에게 여행이란'과 같은 소제목의 글을 통하여 여성 여행자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이기에 여행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 외에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는 팁, 여행지에 사는 지인의 집에 폐를 끼치지 않고 얹혀 지내는 기술 등 참고할 만한 정보들이 빼곡하다.

 

언젠가 나는 늦은 저녁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를 여행 마니아로 이끌었던 첫 여행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쌓인 스트레스가 워낙 심해서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며칠 쉬고 나면 그래도 살 만하지 않을까 싶었단다. 그런데 여행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했고 다시 다시 떠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짧은 여행을 두어 번 반복하고 나자 자신이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더란다.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에? 사는 게 무의미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등등 자신을 향해 할 수 있는 여러 질문을 다 던져보았다고 했다.

 

"여행 중독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인 가본 땅은 다 밟아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단 무조건 나가고 봐야 하는 인간도 있다. 난 후자 쪽이다. 안 가본 땅에 대한 신비가 적은 편이다. 내가 아는 곳을 더 잘 알고 싶다." (p.114)

 

그러나 친구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의외의 지점으로 나를 이끌었다. 두어 번의 여행 후 고민하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때, 가벼워진 마음으로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의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말할 수 없이 두려워지더란다. 첫번째 여행을 떠날 때의 스트레스는 비길 바가 못될 정도로 그 두려움은 컸다고 했다. 팔십 년의 인생에서 자신은 이미 죽음 쪽으로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더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허방을 짚은 듯 아득하기만 할 뿐, 한줌도 되지 않는 시간을 걸어온 듯한데 벌써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여유로운 시간이면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자신은 그것을 잊기 위해서라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일과 집안의 대소사로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모든 게 멈춘 듯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면 그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더란다. 자신이 외국을 찾는 건 어쩌면 허무로부터의 도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는 생각을 접고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신은 그래서 떠날 뿐 여행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라고. 나는 친구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그것이 삶의 허무일지라도. 여행을 떠나기 위한 구차한 변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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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뻘-짓'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제 경험으로는 그렇더군요. 이를테면 조직폭력배들도 저희들끼리 건달이니 양아치니 하면서 등급을 매기거나 계급에 따라 넘버 원, 넘버 투, 넘버 쓰리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헛짓거리에도 분명 등급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제가 경험한 '뻘-짓'의 등급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이나 조직의 사적 이익이나 쾌락을 목적으로 한 '뻘-짓'이 가장 낮은 등급(3등급)이고, 자신이 하는 짓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면서 상급자의 명령이나 잘못된 신념에 의해 저지르는 '뻘-짓'이 다음(2등급)이며 비록 자신에게는 어떠한 이득도 없는 듯 보이지만 타인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가장 상위(1등급)의 '뻘-짓'이 아닐까 싶습니다.

 

3등급의 '뻘-짓'은 주로 조직폭력배와 같은 좀 덜 떨어진 사람들의 행위가 대부분인 듯합니다.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용이나 호랑이와 같은 문신을 온 몸에 새긴다거나 과도하게 체중을 늘리는 것들이 그에 해당하겠지요. 아, 또 있군요. 조직폭력배는 아니지만 요즘 보이는 자유당의 행태가 조직폭력배와 비슷하기는 합니다. 나라의 안보가 엄중한 시기에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 장외투쟁을 한다거나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를 부결시킨 후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조폭들의 '뻘-짓'을 능가하는 면이 있지요. 국민의당도 자유당의 '뻘-짓'이 몹시 부러웠는지 질세라 그들과 동조하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다음 총선까지 국민당이 존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말이죠. 당대표인 빨간놈과 안찰스의 '뻘-짓'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이 뭔 짓거리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고 동조하는 당원들과 동조자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이런 '뻘-짓'들에 비해 남을 웃기기 위해 하는 몸개그나 슬랩스틱(slapstick)은 얼마나 건전한 '뻘-짓'인지요. 자격 미달의 국회의원들의 '뻘-짓'을 보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꼬박꼬박 세비를 주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개그맨의 몸개그 대가를 올려주는 게 나을 듯합니다. 댓글부대를 동원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전 정권의 수장들이 했던 '뻘-짓'도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뻘-짓'공화국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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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겠다 -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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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기억을 소환하려는 듯 미세먼지의 농도가 짙다. 밭은 기침. 우울한 하늘. 화석연료를 불태워 식어가는 체온을 덥혀야만 하는 시기가 다시 또 도래한 것이다. 반복되는 미세먼지의 공습. 달아날 곳이 없다는 사실이 탁한 하늘만큼이나 나를 또 우울하게 한다. 달아날 공간이 없는 막다른 골목의 사람들은 어쩌면 과거의 어느 시간대로 자신의 기억을 되돌리려 하지 않을까? 현실을 잊기 위해, 푸르렀던 과거의 어느 가을날을 소환하기 위해. 김탁환의 에세이 <읽어가겠다>를 읽으며 나도 또한 과거를 향해 달아나본다.

 

"누군가를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네 번이나 만났다면 특별한 인연이라 여기고 연인이 되거나 벗이 될 겁니다. 저는 스물세 편의 소설과 지금까지 네 번 만났군요. 어떤 책과 사람은 스치듯 잊히지만, 어떤 책과 사람은 마음에 머물며 또 한 번의 재회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p.7~p.8)

 

소설가 김탁환은 그의 기억 속에서 길어올린 스물세 편의 소설을 <읽어가겠다>에 담았다. SBS 라디오 프로그램 '책하고 놀자'에서 그가 소개했던 150여 권의 책 중에서 가려 뽑은 소설들을 이 책에 실었다고 했다. 대개는 각기 다른 작가의 소설을 한 편씩 소개하고 있지만 같은 작가의 작품이 두 권 소개되는 경우도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남방우편기',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과 '녹턴', 존 버거의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과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 그렇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part 1.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것들'에 12권의 책이, part 2. '자부심도 나의 것, 경멸도 나의 것'에 11권의 책이 소개되었다. 1부의 시작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크 눌 프, 소리내어 한 자씩 끊어 읽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이 남자가 어렸을 때부터 무척 맘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치고 힘들 때면 집는 여러 권의 책들 중에 꼭 '크눌프'가 들어 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작가가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슬픈 책으로 꼽는다. '너무나도 힘든 상황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란다. 어린 시절 '플랜더스의 개'라는 텔레비젼용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지독한 슬픔을 배웠다는 작가는 52부작의 만화가 방영되는 매주 아침마다 삼십 분을 울고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또 삼십 분을 울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죽음을 직시하라고 알려주는 동화가 무척 드물지요. 산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만 보여주는 동화가 대부분입니다. 죽음을 다루더라도 아주 아름답게 살짝 겉만 건드리고 넘어가지요. 소멸에 관한 책, 불행에 관한 책, 죽음에 관한 책이 동화에도 핵심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p.37)

 

작가가 소개하는 대개의 책들은 제목이 낯설지 않다. '어린 왕자', '모모', '모두 다 예쁜 말들', '한 여자', 남아 있는 나날', '디어 라이프', '이것이 인간인가', '서부전선 이상 없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달과 6펜스', '폭풍의 언덕' 등 누구에게는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책들 일색이다. 그러나 각각의 책에 대한 작가의 소감은 일반 독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작가의 직업이 소설가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라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책과 더 가까워진 까닭이 아닐까 싶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디어 라이프'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뻑뻑한 단편들을 한꺼번에 읽으면 안 됩니다. 한 편 읽고 하루 쉬었다가 또 한 편 읽고, 단편이 열 편, 자전적 이야기가 네 편 정도 실려 있으니까, 한 달 정도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어요. 각 편마다 생각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빨리 읽으면 중요한 지점들을 놓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p.132)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는 독자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면서 또 다른 독자나 작가로 성장하듯이 김탁환의 '읽어가겠다' 역시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독서력을 자극하여 작가가 소개하는 소설 모두를 읽고 싶어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존 버거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는 기억들로 가득 차 있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 '우리가 젊음이라 부르는 책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작가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이라기보다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이자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즐겨 읽었던 책을 통하여, 자신이 즐겨 들었던 음악을 통하여 내가 있는 지금 이곳으로부터 달아나기도 한다. 그 오래된 기억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슬픈 현실을 벗어나도록 하게도 한다. 자신이 읽었던 책을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나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구애의 몸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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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별것도 아닌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말도 아니고 주변에서 이따금 듣게 되거나 어느 시시한 잡지에서도 흔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문장도 책을 읽어나가다가 갑자기 멈춰서서는 '그래, 맞아. 정말 그렇지.'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첫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애가 처음 보는 눈에 황홀한 듯 빨려드는 것처럼 말이다.

 

씨네 21 이다혜 기자의 여행 에세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를 읽다가 문득 시선이 멈추었던 문장은 이랬다.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나중에 다 없어지고 나서야 깨닫는 자산이 있다. 육체적 젊음이나 시간 같은 게 그렇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무리 반복해서 듣는다 해도 가슴에서 절절히 느껴지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20대의 젊음이 유지되는 시기에는 꼼꼼히 계획하지 않아도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아무리 촘촘한 계획을 짜더라도 그 중 절반 이상을 하기 힘들어진다.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에 따라 시간의 가치도 달라지게 된다. 시간 내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전에 나이가 들면 하나의 일을 하면서도 생각이 어찌나 많아지는지 일의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젊은 시절에는 하나의 일을 할 때면 오롯이 그 일에 집중할 뿐 다른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미는 일부러 멀리 하고 고민만 가까이 하려드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 작정한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그렇게 된다. 검찰이 신청한 국정원 댓글부대의 영장 모두를 기각했던 오모 판사도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도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하는 일 자체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모두 다 기각시켜버린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국민들의 비난을 워낙 많이 받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를 대신해 변명하자면 멍 때리다가 그만... 그랬던 게 아닌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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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나면 이따금 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는 건 처음이지 싶습니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나에게는 다만,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남들과는 조금쯤 다른 어떤 특별한 의미의 공간으로 존재해 왔던 건 확실한 듯합니다. 내가 영화관에 갈 때는 주로 남들 몰래 혼자서 가기 때문입니다. 영화관에 가는 걸 일부러 숨기거나 비밀에 부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요. 영화를 본다는 게 무슨 불법행위도 아니고 특별히 감춰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나는 '영화는 혼자 보러 갈 것' 이렇게 규정처럼 만들고서는 지금껏 꾸준히 지켜왔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관은 마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밀스러운 공간, 현실로부터 안심하고 달아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느낌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굴'과도 같은 것일 테죠. 말하자면 내가 영화를 관람하는 한 시간 이상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인 셈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조용히 생각한다거나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의 긴장감을 좀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을 때 영화관만 한 공간이 없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이런 까닭에 관람할 영화는 비교적 까다롭게 고르는 편입니다. 가급적이면 현실과 거리가 먼 영화를 고르기도 합니다. 현실과 너무 가까운 영화는 내가 영화관에 가는 목적을 상쇄시키기 때문이지요. 어떤 경우에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로맨틱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영화를 보았을 때는 스토리는 전혀 생각나지도 않고 기껏해야 출연한 배우의 얼굴만 겨우 기억할 뿐입니다. 창피한 얘기이지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적도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랬던 내가 최승호 PD가 만든 영화 <공범자들>을 보았다는 건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 우르르 몰려가서 영화를 보았으니 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졸거나 딴생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영화를 본다는 것이 내게는 연장된 현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입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이 영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오면서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어떻게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정기국회를 전면 보이콧하고 있는 자유당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그들이 왜 그와 같이 아무런 명분도 없는 일에 당의 사활을 걸게 되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듯합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조폭들의 '으~~리'를 답습하고 있는 셈이지요. 자신들이 그만큼 써먹었던 사람을 헌신짝 버리 듯 내팽개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죠.

 

영화는 쫓고 쫓기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김장겸, 김재철, 고대영 그리고 이명박 등의 출연자들은 최승호 PD의 인터뷰를 쌩까거나 못 본 척 달아나거나 일방적으로 무시해버립니다.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에 의해 300여 명의 언론인들이 징계나 해고를 당하는 동안 우리나라 언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공영방송은 그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쯤으로 흐릿해졌던 것입니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기획 탐사 프로그램의 일인자였던 MBC가 어떻게 그리 처참하게 가라앉게 되었는지 국민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공영방송을 손아귀에 넣으려 햇던 주모자들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공영방송 직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국민들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직원들의 잘못만 크게 부각되었던 것이지요.

 

영화의 장면 장면들은 모두가 다 현실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떻게 저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했던 걸까?' 무척이나 의심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정말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용마 해직 기자가 자신의 몸에 암덩어리를 키우고 있는 동안, 김민식 PD가 일인시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정말 그들과는 다른 공간에서 공범자들의 편에 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10년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유행어가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정부의 통치가 아니라 어느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 개그 같았던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든가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입니다. 조폭과 진배없는 자유당 국회의원들은 MBC 사장 김장겸을 구원하기 위해 오늘도 그들이 있어야 할 국회는 비워둔 채 청와대로 고용노동부로 하릴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KBS와 MBC의 노조원들은 오늘도 파업을 이어가고 있고 말이죠. 이것이 현실입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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