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나면 이따금 영화를 보기는 하지만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는 건 처음이지 싶습니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나에게는
다만,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남들과는 조금쯤 다른 어떤 특별한 의미의 공간으로 존재해 왔던 건 확실한 듯합니다. 내가 영화관에 갈 때는 주로 남들
몰래 혼자서 가기 때문입니다. 영화관에 가는 걸 일부러 숨기거나 비밀에 부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요. 영화를
본다는 게 무슨 불법행위도 아니고 특별히 감춰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언제부턴가 나는 '영화는 혼자 보러 갈 것' 이렇게
규정처럼 만들고서는 지금껏 꾸준히 지켜왔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관은 마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밀스러운 공간, 현실로부터 안심하고 달아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느낌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동굴'과도 같은 것일 테죠. 말하자면 내가 영화를 관람하는 한 시간 이상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인
셈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조용히 생각한다거나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의 긴장감을 좀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을 때 영화관만 한 공간이
없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이런 까닭에 관람할 영화는 비교적 까다롭게 고르는 편입니다. 가급적이면 현실과 거리가 먼 영화를 고르기도 합니다.
현실과 너무 가까운 영화는 내가 영화관에 가는 목적을 상쇄시키기 때문이지요. 어떤 경우에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로맨틱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영화를 보았을 때는 스토리는 전혀 생각나지도 않고 기껏해야 출연한 배우의 얼굴만 겨우 기억할 뿐입니다. 창피한 얘기이지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적도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랬던 내가 최승호 PD가 만든 영화 <공범자들>을 보았다는 건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
우르르 몰려가서 영화를 보았으니 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졸거나 딴생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영화를 본다는 것이 내게는 연장된
현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입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이 영화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오면서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어떻게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정기국회를 전면 보이콧하고 있는 자유당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그들이 왜
그와 같이 아무런 명분도 없는 일에 당의 사활을 걸게 되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듯합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조폭들의 '으~~리'를 답습하고 있는
셈이지요. 자신들이 그만큼 써먹었던 사람을 헌신짝 버리 듯 내팽개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죠.
영화는 쫓고 쫓기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김장겸, 김재철, 고대영 그리고 이명박 등의 출연자들은 최승호 PD의 인터뷰를 쌩까거나 못
본 척 달아나거나 일방적으로 무시해버립니다. 공영방송을 망친 주범들에 의해 300여 명의 언론인들이 징계나 해고를 당하는 동안 우리나라 언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공영방송은 그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쯤으로 흐릿해졌던 것입니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기획 탐사 프로그램의 일인자였던
MBC가 어떻게 그리 처참하게 가라앉게 되었는지 국민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공영방송을 손아귀에 넣으려 햇던 주모자들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공영방송 직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국민들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직원들의 잘못만 크게 부각되었던
것이지요.
영화의 장면 장면들은 모두가 다 현실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떻게 저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했던 걸까?'
무척이나 의심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정말 남의 일처럼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용마 해직 기자가 자신의 몸에 암덩어리를 키우고 있는
동안, 김민식 PD가 일인시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정말 그들과는 다른 공간에서 공범자들의 편에 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10년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유행어가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정부의 통치가 아니라 어느 개그 프로그램보다 더 개그 같았던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든가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는 말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행어입니다. 조폭과 진배없는 자유당 국회의원들은 MBC 사장 김장겸을 구원하기 위해 오늘도 그들이 있어야 할 국회는 비워둔 채 청와대로
고용노동부로 하릴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KBS와 MBC의 노조원들은 오늘도 파업을 이어가고 있고 말이죠. 이것이 현실입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