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머리가 좋다."

오늘은 이 말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보려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안철수 전 의원은 머리가 좋은 듯합니다. 그건 일정 부분 사실일 테고 말이죠.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인정하는 '엄친아'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머리가 좋다는 건 전적으로 칭찬의 말은 아닌 듯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권모술수에 능하다는 것, 다른 사람에 비해 경쟁의식이 강하다는 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 전 의원이 정치에 입문한 지도 벌써 만 5년이 지났다는 걸 어느 뉴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문재인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를 이루었을 때의 모습은 그가 정말로 머리가 좋다는 걸 보여주었던 단적인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죠. 학벌이나, 지식,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께 뒤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바 오히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신이 그보다 못한(또는 못하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대통령 후보직을 넘겨주어야 했던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지요. 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닌 문재인을 대통령 후보로 밀었던 국민들이 바보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으로 탄생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로 활동할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듯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지요. 결국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혹은 문재인을 싫어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민주당을 탈당했지요.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지적 능력으로 가볍게 이길 수 있으리라 자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의 착각은 늘 그런 식이니까 말이죠. 머리만 좋고 경쟁의식만 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삶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흘러간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곧 다가올 미래의 현실로 확신하는 것이지요. 지금도 그는 자신의 그러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정치를 포기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지적능력은 집단지성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집단지성이 지지하고 응원하는 건 개인의 지적능력이 아니라 도덕심과 정의이지요. 아무리 완벽한 계획일지라도 허점은 존재하게 마련이고 집단지성의 시각에서는 그러한 허점이 너무도 쉽게 발견되곤 하지요. 한 사람이 아닌 다수의 관찰이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허위 사실 공표와 같은 음모도 결국 머리만 좋은 누군가가의 계략에서 비롯된 것일 테제요. 대선 기간만 하더라도 완벽한 계획이라며 자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었고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자유당 정진석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인해 온 나라가 들끓고 있더군요. 제가 생각할 때 정진석 의원도 머리가 좋은 분인 듯합니다. 그의 말인 즉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지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민 대부분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에 의한 살인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머리만 좋은 정진석 의원이 미처 몰랐다는 것입니다. 머리만 좋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지요. 집단지성을 취합하고 통괄하는 리더의 자격이 과연 어떤 것인지 정진석 의원이나 안철수 전 의원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언젠가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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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미래 -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라
신미남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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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열린 자유한국당의 한 토크 콘서트장에서 했던 홍준표 대표의 말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여성 정책 혁신을 위한 토크 콘서트-한국 정치, 마초에서 여성으로'라는 토크 콘서트를 공개 행사로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서 홍준표 대표가 "트랜스젠더는 들어봤는데 젠더폭력은 무슨 뜻이냐?"고 해 빈축을 샀던 것이지요.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현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미남 퓨어셀파워 대표가 쓴 <여자의 미래>를 읽으면서 홍준표 대표의 말이 떠올랐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여성은 그저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 교육과 집안 살림을 총괄하는 '집사람' 내지는 '안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공개적인 석상에서는 아내에게 쥐어 산다는 둥 꼼짝도 못한다는 둥 엄살을 떨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적 차원에서 꺼낸 말일 뿐 실천적 차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학창시절 '양성평등'이 논술이나 토론의 단골 주제로 올라왔던 것처럼 말이지요.

 

6대 종가의 맏며느리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저자의 분투가 새삼 대단해 보이는 까닭은 그녀가 지나왔던 그 시절의 사정을 저도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의식과 허울뿐인 법조문에서 대한민국 여성의 인권은 크게 나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과거 20여년 전, 저자가 첫 직장에 출근하던 1995년 그 때와 비교해 확실히 좋아졌다고 체감하는 사람들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신입 사원 채용면접에서 희망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던 여성 지원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직급이 높아질수록 회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고 있고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21세기에는 여성의 역할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여성은 그 자체로 21세기에 알맞은 경쟁력을 타고났다. 조직과 업무 환경, 기업 문화도 여성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시대가 일하는 여성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 많은 여성이 가정과 일 사이에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커리어 도약을 이루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시대를 이끌어나갈 여성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다면 여성이 가진 탁월한 능력에 힘입어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을 금방 갖추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리고 이 시대에 필요한 여성의 진정한 강점이다." (p.100)

 

저자가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요인 세 가지로 꼽은 것은 '육아', '유리천장', '심리적 장벽'이었습니다. 그에 더하여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세상, '시월드'와 아이들의 치열한 입시전쟁 또한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첫 직장에 입사했던 1995년 겨울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에서 그녀는 간신히 살아남았고 절망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강한 궁금증과 마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나니 교통사고 이후의 삶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처럼 덤으로 주어진 것 같았다. 나는 삶과 죽음이 찰나적 순간으로 나뉘면서도 마치 하나의 선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이해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몫이 아니며, 죽음이 찾아오는 시간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소중한 삶 앞에서 내가 물어야 할 것은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었다." (p.108)

 

이 책에서 저자는 30여 년간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 저자가 겪었던 경험과 실수,여성들이 꾸준히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장 '현실', 제2장 '미래', 제3장 '기회', 제4장 '전문가', 제5장 '리더', 제6장 '삶'이라는 구분으로 여성이 사생활과 일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리더이자 전문가가 되는 실질적인 조언을 담았다고 하겠습니다.

 

저자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공학박사, 경영 컨설턴트, 벤처기업 창업가, 대기업 사장이라는 길을 걸어온 그녀였기에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워킹맘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일과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다만 '절대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녀를 결국 포기하지 않게 하였고,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약사 면허가 있는 제 아내도 아이가 태어나자 하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두 명의 아이를 낳는 요즘 세태에서 오롯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인생 전체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뿐이고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우선인 사람도 있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나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자녀와 함께하길 선택하는 일 또한 위대한 결정이고, 그 길 또한 내 어머니의 인생처럼 위대하고 고귀하다. 다만 어떤 결정이든 선택은 엄마인 내 몫이고,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p.254)

 

곧 있으면 추석연휴를 맞이하게 됩니다. 명절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전전긍긍 미리부터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양성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녀의 균등한 가사 분담에 앞서 결혼한 자녀의 완벽한 독립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귀성과 의무적인 귀성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미래>는 여자보다 남자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힘을 합쳐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여성의 삶에 대한 남자들의 바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미안해지는 명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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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시간을 특별한 일도 없이 얼쩡거리다 보니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곳의 기사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도 훌쩍 지났는데 식당 안은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였다. 왁자한 분위기의 식당 한켠에 앉아 꾸역꾸역 '혼밥'을 먹는 것만큼 처량한 일도 다시 없을 터였다. 대부분의 테이블은 손님들로 채워져 있었고 주방 가까운 곳의 원탁 테이블만 비어 있었다.

 

4인용 원탁을 혼자 차지한다는 게 어쩐지 죄를 짓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혼자 앉아 서둘러 밥을 먹고 있는데 처음 보는 중년 여인 한 분이 맞은 편에 앉아도 되겠냐며 물어왔다. 앉지 말라고도, 앉으라고도 할 수 없어 잠시 우물우물 입만 놀리고 있었는데 그 분은 내 허락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혹시 빈 자리가 없는지 둘러보니 점심시간도 웬만큼 끝나가는지 빈 테이블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먹던 밥을 들고 자리를 옮기기도 어색하여 그 자리에서 마저 먹기로 맘을 먹었다. 나는 졸지에 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보며 어색한 점심을 먹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감색 야구모자에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쓰고 청바지에 가벼운 티셔츠 차림의 여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투박한 가죽 시곗줄이 눈에 들어왔다. 선입견일 테지만 평범한 직업의 여성은 아닌 듯 보였다.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밥만 퍼 넣었다. 내가 밥을 다 먹어갈 즈음 앞에 앉은 여인이 다시 내게 물었다. "막걸리가 맛있는데 한 잔 하시죠?" 하기에 나는 술을 못 마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 식당에서는 수정과와 막걸리를 후식 음료로 내놓고 있었는데 손님 일인당 한 잔씩은 공짜로 허용하고 있었다. 누가 지켜보며 일일이 감시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자 여인은 "그러면 선생님 대신 제가 한 잔 더 마셔도 되겠어요? 딱 한 잔씩만 공짜라는데." 하기에 나는 그러라고 했다. 여인이 막걸리를 가지러 간 사이에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푸석한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나는 목필균 시인의 시 한토막 나직하게 읊어본다.

 

9월 -목필균

 

태풍이 쓸고 간 산야에

무너지게 신열이 오른다

 

모래알로 씹히는 바람을 맞으며

쓴 알약 같은 햇살을 삼킨다

 

그래, 이래야 계절이 바뀌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한 계절이 가는데

온몸 열꽃 피는 몸살기가 없을까

 

날마다

짧아지는 해 따라

바삭바삭 하루가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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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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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게 바로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에 비하면 르포나 다큐멘터리는 얼마나 밋밋한가. 권력자가 소설을 싫어하는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일사분란함이 없는 것이다. 장편소설에 대한 평가가 이럴진대 짧디짧은 길이의 단편소설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그래서인지 인생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글이 단편소설이라고 배웠던 학창시절의 지식은 우리가 시험과 무관한 나이가 되어서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한토막의 짧은 이야기를 시간이 날 때마다 이리 굴려보고 저리도 굴려보면서 질리지 않고 한나절 갖고 놀 수 있는 영혼의 장난감이 바로 단편소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었던 게 2주도 더 지난 듯하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을 비롯하여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린 이 책은 작가가 지금껏 써온 작품에 견주어 볼 때 잘 쓰겠다는 욕심을 일부 내려놓은 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쓴 소설들로 꾸려지지 않았나 싶다. 초기작품이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출간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꽤나 철학적으로 인식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나이대에 있음 직한 젊은이의 허세였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랬던 그도 이제는 중견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소설보다는 산문이 더 좋다는 일부 독자들의 평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표제작인 '오직 두사람'은 특별했던 부녀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대학교  교수인 아버지와 딸 현주는 각별한 사이였다. 현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군에 간 오빠와 수험생인 여동생을 두고 아버지는 두 사람만의 유럽여행을 강행했다. 그 일로 인하여 가족간의 균열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현주에 대한 편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만 떠나게 된 한 달간의 유럽여행. 결국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동생 현정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고 독립을 한 오빠는 거제도에 산다. 아버지는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둔 환자로 남았다. 그 부담은 오직 현주에게 지워진다. 익명의 언니에게 쓴 현주의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끝내 어떤 해답도 안겨주지 않는다.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엄마나 현정이와 나누는 대화에는 어둠이 없어요. 밝고 따뜻해요. 특히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하죠. 외국어 같았어요. 왜 외국어로 말을 하면 좀더 이성적이 된다잖아요.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잇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p.38 '오직 두 사람' 중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던 부부가 11년만에 극적으로 되찾은 아들로 인해 또 다른 갈등과 불행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의 '아이를 찾습니다', 어른이 되어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인생의 원점', 한때 잘나가던 소설가인 '나'는 계약금만 받고 글은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소설 집필을 종용받고 뉴욕으로 갔으나 본의 아니게 사장의 아내와 동침을 하고 미친듯이 소설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의 '옥수수와 나', 연락을 끊은 채 살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뉴욕에 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슈트', 출판사 사장인 주인공과 그의 직원인 최은지, 동종업계의 사장이자 주인공의 친구인 박인수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최은지와 박인수', 신입사원 연수를 온 4명의 주인공들이 한 방에 갇힌 채 생활하며 탈출을 꿈꾼다는 이야기의 '신의 장난'이 이어진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잇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p.92 '인생의 원점' 중에서)

 

작가는 이 책에 실린 7편의 중단편에서 다양한 상상을 펼쳐 보인다. 소설이 픽션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 심한데...' 생각한 적도 있다. 그것은 작가에게도 실험적인 글쓰기와 같은 일종의 도전이였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신의 장난'은 인생을 빗대어 쓴 우화처럼 읽힌다. 남자, 여자 각각 2명씩인 점도 그렇고, 그들을 한 방에 몰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들 각자가 탈출을 시도하는 방식도 다 제각각인 점도 그렇다. 지구를 하나의 방으로 생각했을 때 '신의 장난'에 펼쳐진 소설 속 공간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인 셈이 된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구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p.270 '작가의 말' 중에서)

 

어제까지 청명하던 날씨는 오늘 들어 급변했다. 중국에서 몰려온 미세먼지와 낮게 드리운 구름, 후텁지근한 날씨... 아침에 도로변에 떨어진 낙엽을 열심히 쓸어 모으고 있는 환경 미화원을 보았다. 이른바 조락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잦은 행사에 일일이 다 참석하는 일도 버겁지만 밖으로만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다잡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2주도 더 전에 읽은 김영하의 소설집. 그 책에 실린 짧은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한나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면서 시간만 소일했다. 영혼의 장난감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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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침묵의 느낌을 너는 알까? 물론 전혀 모르지는 않겠지. 너도 나이가 있으니까. 싸늘한 분위기와 냉랭한 시선이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포승줄처럼 옥죄어오고, 어느 순간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기억에도 없는 죄를 마구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 느낌 말이야. 엄마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연인으로부터,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그와 같은 시선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적이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은 있을 거야.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지. 관계의 단절이 그닥 두렵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자리를 그냥 박차고 나가지 불편함을 참아가면서 상대방의 심기를 살피지는 않았을 거야. 자리를 피하지 못했던 건 결국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이전처럼 관계를 지속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의 수모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 말이야.

 

그러나 둘 사이가 사랑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일지라도 그런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내 모르는 바가 아니란다. 예컨대 어렵게 들어간 회사의 직장 상사로부터 그런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가입한 어느 모임에서의 작은 실수로 인해 그 자리에 모인 여러 사람으로부터 냉랭한 시선을 받기도 하지. 범죄 피의자가 문책을 받는 느낌일 거야.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신이 그 억울함을 감내하고 있다는 건 본인도 상대방으로부터 뭔가 얻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야. 이를테면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쉽게 그만 둘 수는 없다거나 모임원 중에 한 사람을 맘에 두고 있는 까닭에 모임을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지. 차라리 말로 질책을 하거나 욕이라도 한마디 퍼붓는다면 오히려 견딜만 하다고 느꼈을지도 몰라. 그러나 상대방도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침묵의 시선만 보낼 뿐이라는 걸 너도 언젠가 알게 될거야.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

 

어렸을 때의 너는 당차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너를 보면서 세월이 빠르구나 생각했단다. 사회생활이 쉽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네가 생각하는 만큼 힘든 것도 아니란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어색한 상황들을 이따금 만날 수는 있을 거야. 그러나 너라면 잘 헤쳐나갈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단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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