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침묵의 느낌을 너는 알까? 물론 전혀 모르지는 않겠지. 너도 나이가 있으니까. 싸늘한 분위기와 냉랭한 시선이 마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포승줄처럼 옥죄어오고, 어느 순간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기억에도 없는 죄를 마구 만들어내야 할 것 같은 느낌 말이야. 엄마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연인으로부터,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그와 같은 시선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적이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은 있을 거야.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지. 관계의 단절이 그닥 두렵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 자리를 그냥 박차고 나가지 불편함을 참아가면서 상대방의 심기를 살피지는 않았을 거야. 자리를 피하지 못했던 건 결국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이전처럼 관계를 지속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의 수모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 말이야.
그러나 둘 사이가 사랑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일지라도 그런 상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내 모르는 바가 아니란다. 예컨대 어렵게 들어간 회사의 직장 상사로부터 그런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하고, 자신이 가입한 어느 모임에서의 작은 실수로 인해 그 자리에 모인 여러 사람으로부터 냉랭한 시선을 받기도 하지. 범죄 피의자가 문책을 받는 느낌일 거야.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신이 그 억울함을 감내하고 있다는 건 본인도 상대방으로부터 뭔가 얻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야. 이를테면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쉽게 그만 둘 수는 없다거나 모임원 중에 한 사람을 맘에 두고 있는 까닭에 모임을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지. 차라리 말로 질책을 하거나 욕이라도 한마디 퍼붓는다면 오히려 견딜만 하다고 느꼈을지도 몰라. 그러나 상대방도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침묵의 시선만 보낼 뿐이라는 걸 너도 언젠가 알게 될거야.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
어렸을 때의 너는 당차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지.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너를 보면서 세월이 빠르구나 생각했단다. 사회생활이 쉽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네가 생각하는 만큼 힘든 것도 아니란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어색한 상황들을 이따금 만날 수는 있을 거야. 그러나 너라면 잘 헤쳐나갈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단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