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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게 바로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에 비하면 르포나 다큐멘터리는 얼마나 밋밋한가. 권력자가 소설을 싫어하는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일사분란함이 없는 것이다. 장편소설에 대한 평가가 이럴진대 짧디짧은 길이의 단편소설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그래서인지 인생의 한 단면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글이 단편소설이라고 배웠던 학창시절의 지식은 우리가 시험과 무관한 나이가 되어서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한토막의 짧은 이야기를 시간이 날 때마다 이리 굴려보고 저리도 굴려보면서 질리지 않고 한나절 갖고 놀 수 있는 영혼의 장난감이 바로 단편소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읽었던 게 2주도 더 지난 듯하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을 비롯하여 일곱 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린 이 책은 작가가 지금껏 써온 작품에 견주어 볼 때 잘 쓰겠다는 욕심을 일부 내려놓은 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쓴 소설들로 꾸려지지 않았나 싶다. 초기작품이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출간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꽤나 철학적으로 인식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나이대에 있음 직한 젊은이의 허세였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랬던 그도 이제는 중견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소설보다는 산문이 더 좋다는 일부 독자들의 평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이다.
표제작인 '오직 두사람'은 특별했던 부녀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대학교 교수인 아버지와 딸 현주는 각별한 사이였다. 현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군에 간 오빠와 수험생인 여동생을 두고 아버지는 두 사람만의 유럽여행을 강행했다. 그 일로 인하여 가족간의 균열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현주에 대한 편애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만 떠나게 된 한 달간의 유럽여행. 결국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동생 현정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고 독립을 한 오빠는 거제도에 산다. 아버지는 이제 죽음을 코앞에 둔 환자로 남았다. 그 부담은 오직 현주에게 지워진다. 익명의 언니에게 쓴 현주의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은 끝내 어떤 해답도 안겨주지 않는다.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엄마나 현정이와 나누는 대화에는 어둠이 없어요. 밝고 따뜻해요. 특히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하죠. 외국어 같았어요. 왜 외국어로 말을 하면 좀더 이성적이 된다잖아요.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잇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p.38 '오직 두 사람' 중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던 부부가 11년만에 극적으로 되찾은 아들로 인해 또 다른 갈등과 불행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의 '아이를 찾습니다', 어른이 되어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인생의 원점', 한때 잘나가던 소설가인 '나'는 계약금만 받고 글은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소설 집필을 종용받고 뉴욕으로 갔으나 본의 아니게 사장의 아내와 동침을 하고 미친듯이 소설을 쓰게 된다는 이야기의 '옥수수와 나', 연락을 끊은 채 살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뉴욕에 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슈트', 출판사 사장인 주인공과 그의 직원인 최은지, 동종업계의 사장이자 주인공의 친구인 박인수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최은지와 박인수', 신입사원 연수를 온 4명의 주인공들이 한 방에 갇힌 채 생활하며 탈출을 꿈꾼다는 이야기의 '신의 장난'이 이어진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잇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p.92 '인생의 원점' 중에서)
작가는 이 책에 실린 7편의 중단편에서 다양한 상상을 펼쳐 보인다. 소설이 픽션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때로는 '너무 심한데...' 생각한 적도 있다. 그것은 작가에게도 실험적인 글쓰기와 같은 일종의 도전이였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책의 마지막에 실린 '신의 장난'은 인생을 빗대어 쓴 우화처럼 읽힌다. 남자, 여자 각각 2명씩인 점도 그렇고, 그들을 한 방에 몰아 넣은 사람이 누구인지 끝내 밝혀지지 않는 것도 그렇고, 그들 각자가 탈출을 시도하는 방식도 다 제각각인 점도 그렇다. 지구를 하나의 방으로 생각했을 때 '신의 장난'에 펼쳐진 소설 속 공간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인 셈이 된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구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p.270 '작가의 말' 중에서)
어제까지 청명하던 날씨는 오늘 들어 급변했다. 중국에서 몰려온 미세먼지와 낮게 드리운 구름, 후텁지근한 날씨... 아침에 도로변에 떨어진 낙엽을 열심히 쓸어 모으고 있는 환경 미화원을 보았다. 이른바 조락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잦은 행사에 일일이 다 참석하는 일도 버겁지만 밖으로만 뛰쳐나가려는 마음을 다잡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2주도 더 전에 읽은 김영하의 소설집. 그 책에 실린 짧은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한나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면서 시간만 소일했다. 영혼의 장난감 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