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시간을 특별한 일도 없이 얼쩡거리다 보니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곳의 기사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도 훌쩍 지났는데 식당 안은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였다. 왁자한 분위기의 식당 한켠에 앉아 꾸역꾸역 '혼밥'을 먹는 것만큼 처량한 일도 다시 없을 터였다. 대부분의 테이블은 손님들로 채워져 있었고 주방 가까운 곳의 원탁 테이블만 비어 있었다.
4인용 원탁을 혼자 차지한다는 게 어쩐지 죄를 짓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혼자 앉아 서둘러 밥을 먹고 있는데 처음 보는 중년 여인 한 분이 맞은 편에 앉아도 되겠냐며 물어왔다. 앉지 말라고도, 앉으라고도 할 수 없어 잠시 우물우물 입만 놀리고 있었는데 그 분은 내 허락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혹시 빈 자리가 없는지 둘러보니 점심시간도 웬만큼 끝나가는지 빈 테이블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먹던 밥을 들고 자리를 옮기기도 어색하여 그 자리에서 마저 먹기로 맘을 먹었다. 나는 졸지에 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보며 어색한 점심을 먹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감색 야구모자에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쓰고 청바지에 가벼운 티셔츠 차림의 여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투박한 가죽 시곗줄이 눈에 들어왔다. 선입견일 테지만 평범한 직업의 여성은 아닌 듯 보였다.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밥만 퍼 넣었다. 내가 밥을 다 먹어갈 즈음 앞에 앉은 여인이 다시 내게 물었다. "막걸리가 맛있는데 한 잔 하시죠?" 하기에 나는 술을 못 마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 식당에서는 수정과와 막걸리를 후식 음료로 내놓고 있었는데 손님 일인당 한 잔씩은 공짜로 허용하고 있었다. 누가 지켜보며 일일이 감시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자 여인은 "그러면 선생님 대신 제가 한 잔 더 마셔도 되겠어요? 딱 한 잔씩만 공짜라는데." 하기에 나는 그러라고 했다. 여인이 막걸리를 가지러 간 사이에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푸석한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나는 목필균 시인의 시 한토막 나직하게 읊어본다.
9월 -목필균
태풍이 쓸고 간 산야에
무너지게 신열이 오른다
모래알로 씹히는 바람을 맞으며
쓴 알약 같은 햇살을 삼킨다
그래, 이래야 계절이 바뀌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한 계절이 가는데
온몸 열꽃 피는 몸살기가 없을까
날마다
짧아지는 해 따라
바삭바삭 하루가 말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