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미래 -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라
신미남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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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열린 자유한국당의 한 토크 콘서트장에서 했던 홍준표 대표의 말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여성 정책 혁신을 위한 토크 콘서트-한국 정치, 마초에서 여성으로'라는 토크 콘서트를 공개 행사로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서 홍준표 대표가 "트랜스젠더는 들어봤는데 젠더폭력은 무슨 뜻이냐?"고 해 빈축을 샀던 것이지요. 대한민국 여성 인권의 현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미남 퓨어셀파워 대표가 쓴 <여자의 미래>를 읽으면서 홍준표 대표의 말이 떠올랐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여성은 그저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 교육과 집안 살림을 총괄하는 '집사람' 내지는 '안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공개적인 석상에서는 아내에게 쥐어 산다는 둥 꼼짝도 못한다는 둥 엄살을 떨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적 차원에서 꺼낸 말일 뿐 실천적 차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학창시절 '양성평등'이 논술이나 토론의 단골 주제로 올라왔던 것처럼 말이지요.

 

6대 종가의 맏며느리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저자의 분투가 새삼 대단해 보이는 까닭은 그녀가 지나왔던 그 시절의 사정을 저도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의식과 허울뿐인 법조문에서 대한민국 여성의 인권은 크게 나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과거 20여년 전, 저자가 첫 직장에 출근하던 1995년 그 때와 비교해 확실히 좋아졌다고 체감하는 사람들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신입 사원 채용면접에서 희망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던 여성 지원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직급이 높아질수록 회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고 있고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인 21세기에는 여성의 역할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여성은 그 자체로 21세기에 알맞은 경쟁력을 타고났다. 조직과 업무 환경, 기업 문화도 여성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시대가 일하는 여성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직 많은 여성이 가정과 일 사이에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커리어 도약을 이루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시대를 이끌어나갈 여성 리더들이 많이 배출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다면 여성이 가진 탁월한 능력에 힘입어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을 금방 갖추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리고 이 시대에 필요한 여성의 진정한 강점이다." (p.100)

 

저자가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요인 세 가지로 꼽은 것은 '육아', '유리천장', '심리적 장벽'이었습니다. 그에 더하여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세상, '시월드'와 아이들의 치열한 입시전쟁 또한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살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첫 직장에 입사했던 1995년 겨울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에서 그녀는 간신히 살아남았고 절망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강한 궁금증과 마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나니 교통사고 이후의 삶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처럼 덤으로 주어진 것 같았다. 나는 삶과 죽음이 찰나적 순간으로 나뉘면서도 마치 하나의 선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이해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몫이 아니며, 죽음이 찾아오는 시간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소중한 삶 앞에서 내가 물어야 할 것은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었다." (p.108)

 

이 책에서 저자는 30여 년간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 저자가 겪었던 경험과 실수,여성들이 꾸준히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장 '현실', 제2장 '미래', 제3장 '기회', 제4장 '전문가', 제5장 '리더', 제6장 '삶'이라는 구분으로 여성이 사생활과 일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리더이자 전문가가 되는 실질적인 조언을 담았다고 하겠습니다.

 

저자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공학박사, 경영 컨설턴트, 벤처기업 창업가, 대기업 사장이라는 길을 걸어온 그녀였기에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워킹맘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일과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다만 '절대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녀를 결국 포기하지 않게 하였고,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약사 면허가 있는 제 아내도 아이가 태어나자 하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두 명의 아이를 낳는 요즘 세태에서 오롯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인생 전체에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뿐이고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우선인 사람도 있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나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자녀와 함께하길 선택하는 일 또한 위대한 결정이고, 그 길 또한 내 어머니의 인생처럼 위대하고 고귀하다. 다만 어떤 결정이든 선택은 엄마인 내 몫이고,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p.254)

 

곧 있으면 추석연휴를 맞이하게 됩니다. 명절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전전긍긍 미리부터 밤잠을 설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양성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남녀의 균등한 가사 분담에 앞서 결혼한 자녀의 완벽한 독립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귀성과 의무적인 귀성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미래>는 여자보다 남자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힘을 합쳐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여성의 삶에 대한 남자들의 바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미안해지는 명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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