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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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물리적인 힘이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장 비열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차별이 있는 사회는 비록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지연이나 학연 등 어떤 이유로든 틈만 나면 뭉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의 패거리 문화에서 차별과 소외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는 차별과 소외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혐오와 폭력, 강박과 차별의 현장을 끄집어내어 하나도 괜찮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냄으로써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갈등이 심한 국가에선 사회 곳곳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반성을 유도하기보다는 자칫 새로운 갈등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굴에서 정신만 차려봤자 산 채로 죽듯이 사회구조라는 벽은 개인의 의지로 쉽사리 깰 수 없다. 깨져야 할 벽은 안 깨지는데 역효과는 크다. 무엇이든 개인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식의 접근은 피해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우를 범한다. 왕따의 피해자에게 '너도 원인 제공이 있다'면서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 성범죄를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늦게 다니지 않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으면'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망언을 조언이랍시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 (p.230)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회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지표가 사회 갈등 지수이다. 한 사회의 노사 갈등, 윤리적 갈등, 문화적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지역 갈등 같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을 합쳐 수치로 표현한 것으로서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낮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높을수록 사회 갈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갈등구조는 좀 더 특이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2016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총 3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PART 1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만', PART 2 '그게 다 강박인 줄도 모르고', PART 3 '불균형 사회, 나와 너를 성장시키는 법'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양성평등, 노키즈존, 사회적 약자와 성 역할에 대한 편견,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등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지, 주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심을 전하고 싶거나 존엄한 개인으로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겠지만, 문화라는 오래된 습속에 길들여지면 원래의 길에서 한 걸음조차 옆으로 내딛기가 힘들다. 나아가 타인이 다른 방향으로 한 걸음만 옮기려는 것도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정말로 필요한 부끄러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누군가를 상식적으로 아프게 한다." (p.113)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내 집이니까 아무리 쿵쾅거려도 괜찮다는 발상, 일상적인 외모 비하나 성 소수자에 대한 지나친 적대의식,자신의 기준에만 사로잡혀 타인의 영역을 무시로 넘나드는 꼰대 행각,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강박에서 비롯된 수많은 차별, 예외적인 기준만 주입하여 보편적 기준이 무시되는 사회, 자신의 신체와 외모, 패션감각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 등 외부의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비정상도 그런 비정상이 없을 듯한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당연시하거나 우리의 틀에서 벗어난 정상적인 사람들을 강하게 배척하곤 한다.

 

"웃자고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데 지출하지 않고 사회가 좋아지길 희망하는 건 모순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정치인들을 감시할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면 결국 사회는 한 단계 성장한다. 내가 발 뻗고 잘 지름길이다. '한때'가 지독히도 오랫동안 우리 주변을 부유하면서 '부끄러움'의 본질을 망각시키는 현실이 싫다면 그 반대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지향하는 단체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p.272~p.273)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이른 귀성 차량의 행렬이 고속도로 곳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휴게소마다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넉넉했으면 좋겠다.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도 무례한 시선으로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기준과 다른 사람은 모두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기준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명절이 명절다우려면 말과 행동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되짚고 생각해야 한다. 갈등 유발 요인은 많고 갈등 관리는 현저히 부족한 우리 사회이기에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대화도 없이 무작정 배척할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면 굳이 피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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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도 필요에 따라 말끔히 없애버리거나 상황에 맞는 적당한 감정을 새로이 만들어내거나 뒤섞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나이만 먹었지 수양은 되지 않아서인지 감정 조절에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런 모습의 나를 향해 '그 나이 먹도록 도대체 뭐했누?' 하고 혀를 끌끌 찰 분이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의 됨됨이란 게 제 스스로 깎고 다듬어가는 것이어서 조금만 게을리해도 사람이 감정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되레 감정이 사람을 지배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걸 진즉 알았더라면 인격의 수양에 좀 더 힘을 쏟았을 텐데 나는 이미 그 시기를 놓친 게 아닐까 싶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개막되자 이런저런 소식이 쏟아지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미국을 대표하여 방문한 펜스 부통령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의 행보를 보면서 지난 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국격의 실추가 이토록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치솟는 화를 누르기 어려웠다.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남북한이 동시 입장하자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펜스와 아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문 대통령이 주최하는 개막 리셉션장에도 늦게 나타나 빈축을 사는 등 외교적 결례를 서슴지 않았다. 아베는 한 발 더 나아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라며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주권침해이자 내정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말도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아베와 펜스는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보지 않은 셈이다.

 

이런 문제는 정치인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 NBC의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일본이 한국을 1901년부터 1945년까지 강점했지만 모든 한국인들은 일본이 문화 기술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본보기였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도 남북 선수단이 들고 공동 입장한 한반도기 사진을 설명하면서 "독도는 일본이 소유한 섬"이라고 보도해 물의를 빚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화를 내야 마땅한 기사였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김정은의 특사단과 북한 응원단은 비난하면서도 펜스와 아베의 행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펜스와 아베를 향해 체면상 호래자식이라고는 못할지언정 비난의 말은 한마디 해야 하지 않았나. 자유당이 미국이나 일본의 정당이 아니라면 말이다. 개막식이 있은 지 며칠 지났건만 생각할수록 화가 치민다. 모처럼 날씨는 화창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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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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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환생을 소재로 한 소설에 끌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환생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에 대한 갈망이나 염원 또는 호기심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더해져서 환생은 그저 누군가가 꾸며낸 상상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하던 사람도 결국에는 '나의 삶도 이번 생에서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닐지도 몰라.'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p.181)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 또한 환생에 대한 우리의 판타지를 소설로 쓴 작품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달이 차고 기우는 '영휴(盈虧)'로 은유한 이 소설은 자신이 사랑했던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시 만나서 사랑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주인공 루리의 삶을 주 테마로 하면서도 소설을 한 꺼풀 더 들여다보면 겉모습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이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소설의 도입부는 상당히 복잡하게 시작한다. 영문을 모르는 독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소설의 주인공인 오사나이 쓰요시는 유명 여배우가 된, 오래전에 사고로 죽은 자신의 딸의 친한 고교 동창생이었던 미도리자카 유이와 그녀의 어린 딸 미도리자카 루리를 만나기 위해 도쿄로 나왔지만 지하철역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11시 약속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바람에 약속 장소에는 시간에 맞춰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이었던 오사나이 루리와 이름이 같은 미도리자카 루리는 일곱 살 소녀 같지 않은 말투와 행동으로 주인공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일들을 끄집어내고, 자신이 교통사고로 죽은 주인공의 딸이라고 주장한다. 주인공과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도입부를 지나면 이야기는 환생을 계속하게 된 루리의 삶을 좇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시골 출신인 오사나이 쓰요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한 사립대에 진학한다. 그를 깊이 사랑했던 한 여인도 그를 쫓아 도쿄로 왔다. 같은 고등학교 2년 후배이기도 했던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오사나이가 속했던 클럽에 가입하여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갔고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취직을 한 후에도 두 사람의 교제는 끊어지지 않았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둘 사이에 갑자기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둘은 결혼하였고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딸 오사나이 루리가 태어난다. 평범했던 딸은 독한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린 이후 다른 사람처럼 변해갔다. 눈치가 빠르고 운전도 척척 잘하는 아내 고즈에와는 달리 오사나이는 둔하고 눈치 없는 사람이었던 까닭에 딸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오늘 당신이 없을 때 딱 한 번 그런 눈빛으로 나를 봤어. 소름 돋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눈빛이었어. 아키라 군은 어디서 왔니, 하고 물어봤는데, 그랬더니 루리가 내 쪽을 돌아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야. 안색을 살피는 눈으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으로. 이 사람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까? 하는. 나쁘게 말하면 생판 처음 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역시 표현이 잘 안 돼.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건 분명해." (p.36)

 

루리가 행방불명이 되어 오사나이와 고즈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찰로부터 루리를 인계받은 오사나이는 집을 무작정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게 된 루리를 향해 여행이 하고 싶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하라고 타이른다. 그 후 루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았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루리는 엄마인 고즈에의 차를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아내와 딸을 잃은 오사나이는 자신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고즈에의 친구의 남동생인 미스미 아키히코가오사나이를 찾아오고 그로부터 길고 긴 이야기를 전해듣게 된다.

 

"18년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시작된 동일한 망상. 환생의 시나리오. 신혼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아니, 분명 신혼 이후 몇 년이 지나서도 그 생각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미스미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서 아내에게 의심을 받는 횟수는, 오히려 해마다 늘어갔을 것이다." (p204)

 

스무 살의 미스미 아키히코를 지독히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사키 루리. 승승장구하는마사키 류노스케의 아내이기도 했던 그녀는 아이가 생기지 않자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비를 피하러 들어간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생 미스미 아키히코를 만난다. 그리고 둘은 가까워진다. 그러나 스물일곱 살의 유부녀인 그녀와 대학생인 미스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어느 날 마사키 류노스케의 선배인 야에가시 씨가 '좀 죽어본다'는 묘한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사키 루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사키 루리 역시 지하철 전동차에 치여 죽는다. 그리고 환생을 거듭하며 사랑을 이루려는 루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토 쇼고의 소설 <달의 영휴>는 사랑을 위해 환생을 거듭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독자들에게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끊임없이 묻고 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사랑의 열기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가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게 옳은 것인지, 죽음과 같은 어둠의 흔적을 이겨내고 달처럼 밝은 사랑을 흐트러짐 없이 이어가는 게 옳은 것인지 각기 다른 독자들의 대답을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한 생애를 살면서도 끝없이 흔들리는 사랑의 덧없음으로 인해 우리는 이런 불가능의 판타지를 끝없이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사랑의 호흡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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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맞는 포근한 오후입니다. 미세먼지 탓인지 시야는 온통 희끄무레 탁하기만 하지만 말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막식이 있는 오늘, 연일 계속되는 한파로 많은 사람들이 한걱정을 했는데 이만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 이후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져 왔던 추악한 관행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최영미 시인에 의해 폭로된 문단 내 성폭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우리는 어지간히도 오랫동안 그깟 것 하나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관행이라거나, 예술이라거나 그딴 식으로 포장해 왔던 것이지요. 남성 문인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성희롱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의 경험담이 무시로 나오기도 하고, 그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술이나 관행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법망을 잘도 피해 왔던 것입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해묵은 논쟁으로 그때그때의 사건을 무마하면서 성과 관련된 중대 범죄를 한낱 가십거리로 폄하하거나 싸구려 연예 기사쯤으로 치부해 왔던 것이지요.

 

그게 비단 문단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요. 소수의 몇몇 사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분야, 이를테면 의료계나 미술계나 음악계 등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대기업의 오너에게 줄을 대려는 사법부의 인사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봐주기 재판을 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적폐는 곳곳에 산재하지만 이를 유지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개혁을 거부한 채 관행이라거나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지요.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만천하에 진실이 드러나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는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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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커리어 - 업의 발견 업의 실행 업의 완성, 개정판
박상배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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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시간을 설렁설렁 흘려보내다 보면 좋든 싫든 미래의 어느 때를 맞이하게 될 테고 그 순간에 우리는 지난 과거부터 쭉 바라 왔던 시공간에 내가 완벽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미래의 어느 순간만 기다리며 현재의 순간순간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나쳐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에 등 떠밀려 떼기 싫은 발걸음을 억지로 떼는 셈인데 현실과 맞바꾼 우리의 미래는 과연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미래라는 신기루만 좇으며 그 실체와는 영원히 조우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까.

 

"연금에 기대는 것보다는 더 확실하게 노후를 준비할 방법이 있다. 바로 '빅 커리어(Big Career)'를 만들어 '원할 때까지 현역'으로 남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일하는 것보다 좋은 노후 대비책은 없다." (p.16)

 

박상배 본깨적연구소 대표의 신작 <빅 커리어>는 불확실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목조목 짚으며 장기적인 플랜으로서의 대비책을 제시한다. 인생 전체를 학업(1~30세), 의업(31~50세), 근업(51~70세), 전업(71~100세)으로 나누고, 인생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시기인 의업 단계를 다시 습득자, 근로자, 숙련자, 창조자로 세분화함으로써 향후 노년의 시기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 책에 소개한 빅 커리어는 '단순 직무'를 벗어난 '나만의 업(Life Work)'을 찾고, 현재의 자리에서 업(業)을 개척하고 만들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즉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력을 잘 쌓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빅 커리어'다." (p.28)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직금을 비롯한 약간의 금전적인 준비를 제외하면 노후 대책이라고는 손을 놓고 지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부터가 그렇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은다 할지라도 막상 하던 일을 그만두면 이후의 삶을 지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지만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이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자주 듣지만 현실에서 부대끼는 잡다한 일도 버거워하는 마당에 시간을 쪼개어 자기계발에 힘쓴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유일한 버팀목이다. 때로는 로또복권과 같은 뜻밖의 행운을 바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 대한 광풍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자신의 현장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하는 것이다. 자신의 업무 방식이 최선이었는지, 상대가 만족했을지, 어떻게 하면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기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현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p.232)

 

자신의 일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필요한 일을 실행하고, 실제로 업무에 적용해 나이에 개의치 않고 원하는 만큼 일하며 걱정 없는 노후를 맞고 싶다면, '나만의 업'을 완성하는 빅 커리어 프레임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발견해야 한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프로젝트, 취미, 스트레스, 쓰레기로 구분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선택과 집중을 반복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속에서 미래 걱정 없는 새로운 일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빅 커리어는 대단한 한방으로 만들어내는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현장에서 하루에 단 1 퍼센트의 시간을 어제와 다른 관점으로 질문하는 과정 속에 싹이 트는 것이지요. 사람은 늘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생각하고 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으로 현장을 바꿔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p.253)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확실한 대안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책으로부터 도움을 구하지 않는 까닭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저자가 제시하는 간단한 방법으로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행복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거나 지금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과도한 노력을 요구하는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상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거나 잠을 줄여서라도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식의 방법론은 '자기계발서'에 대한 불신만 조장하는 게 사실이다.

 

이 책에서 권하고 소개하는 방법들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점검하고 미래의 대안을 찾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2016년 5월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열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시작했던 빅 커리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도 싣고 있다. 일본의 야마로쿠 간장이나 전지현 GS25 점주, 김수용 엠케이메탈(주) 대표 등 빅 커리어를 실행했던 사람들의 사례를 읽는 것만으로도 의욕과 열정이 샘솟는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약간의 후회와 아쉬움을 남겨주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또한 그런 세월을 많이도 흘려보냈다. 그러나 무심히 흘려보낸 세월의 대가가 자신이 바라던 미래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세월의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 실천하지 않으면 바라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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