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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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물리적인 힘이 직접적으로 가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장 비열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차별이 있는 사회는 비록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지연이나 학연 등 어떤 이유로든 틈만 나면 뭉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의 패거리 문화에서 차별과 소외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중대한 범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코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는 차별과 소외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혐오와 폭력, 강박과 차별의 현장을 끄집어내어 하나도 괜찮지 않은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냄으로써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한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갈등이 심한 국가에선 사회 곳곳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반성을 유도하기보다는 자칫 새로운 갈등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굴에서 정신만 차려봤자 산 채로 죽듯이 사회구조라는 벽은 개인의 의지로 쉽사리 깰 수 없다. 깨져야 할 벽은 안 깨지는데 역효과는 크다. 무엇이든 개인이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식의 접근은 피해자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우를 범한다. 왕따의 피해자에게 '너도 원인 제공이 있다'면서 폭력을 묵인하는 사회, 성범죄를 걱정하는 여성들에게 '늦게 다니지 않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으면' 위험해지지 않는다는 망언을 조언이랍시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 (p.230)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회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지표가 사회 갈등 지수이다. 한 사회의 노사 갈등, 윤리적 갈등, 문화적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지역 갈등 같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을 합쳐 수치로 표현한 것으로서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정책의 효율성이 낮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높을수록 사회 갈등 지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갈등구조는 좀 더 특이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2016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총 3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PART 1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만', PART 2 '그게 다 강박인 줄도 모르고', PART 3 '불균형 사회, 나와 너를 성장시키는 법'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양성평등, 노키즈존, 사회적 약자와 성 역할에 대한 편견,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등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지, 주변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심을 전하고 싶거나 존엄한 개인으로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리겠지만, 문화라는 오래된 습속에 길들여지면 원래의 길에서 한 걸음조차 옆으로 내딛기가 힘들다. 나아가 타인이 다른 방향으로 한 걸음만 옮기려는 것도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정말로 필요한 부끄러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누군가를 상식적으로 아프게 한다." (p.113)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내 집이니까 아무리 쿵쾅거려도 괜찮다는 발상, 일상적인 외모 비하나 성 소수자에 대한 지나친 적대의식,자신의 기준에만 사로잡혀 타인의 영역을 무시로 넘나드는 꼰대 행각,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강박에서 비롯된 수많은 차별, 예외적인 기준만 주입하여 보편적 기준이 무시되는 사회, 자신의 신체와 외모, 패션감각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사회 등 외부의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비정상도 그런 비정상이 없을 듯한데 우리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당연시하거나 우리의 틀에서 벗어난 정상적인 사람들을 강하게 배척하곤 한다.

 

"웃자고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데 지출하지 않고 사회가 좋아지길 희망하는 건 모순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 정치인들을 감시할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주면 결국 사회는 한 단계 성장한다. 내가 발 뻗고 잘 지름길이다. '한때'가 지독히도 오랫동안 우리 주변을 부유하면서 '부끄러움'의 본질을 망각시키는 현실이 싫다면 그 반대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지향하는 단체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p.272~p.273)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오늘, 이른 귀성 차량의 행렬이 고속도로 곳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휴게소마다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넉넉했으면 좋겠다.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도 무례한 시선으로 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기준과 다른 사람은 모두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기준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명절이 명절다우려면 말과 행동에 앞서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되짚고 생각해야 한다. 갈등 유발 요인은 많고 갈등 관리는 현저히 부족한 우리 사회이기에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대화도 없이 무작정 배척할 게 아니라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면 굳이 피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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