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맞는 포근한 오후입니다. 미세먼지 탓인지 시야는 온통 희끄무레 탁하기만 하지만 말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의 개막식이 있는 오늘, 연일 계속되는 한파로 많은 사람들이 한걱정을 했는데 이만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 이후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져 왔던 추악한 관행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최영미 시인에 의해 폭로된 문단 내 성폭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닌데 우리는 어지간히도 오랫동안 그깟 것 하나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관행이라거나, 예술이라거나 그딴 식으로 포장해 왔던 것이지요. 남성 문인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성희롱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의 경험담이 무시로 나오기도 하고, 그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마치 훈장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술이나 관행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법망을 잘도 피해 왔던 것입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해묵은 논쟁으로 그때그때의 사건을 무마하면서 성과 관련된 중대 범죄를 한낱 가십거리로 폄하하거나 싸구려 연예 기사쯤으로 치부해 왔던 것이지요.

 

그게 비단 문단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요. 소수의 몇몇 사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분야, 이를테면 의료계나 미술계나 음악계 등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대기업의 오너에게 줄을 대려는 사법부의 인사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봐주기 재판을 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적폐는 곳곳에 산재하지만 이를 유지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개혁을 거부한 채 관행이라거나 정치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지요.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만천하에 진실이 드러나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는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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