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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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사회는 어쩌면 다른 누군가를 낙인찍는 일에 아주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말이지요. 국민성이 나쁘거나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런 문화에 오래도록 익숙했던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약자나 소외된 사람을 돕는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라거나 종북으로 낙인을 찍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 또한 바보 천치로 인정받기 십상인지라 한 번 그렇게 낙인이 찍히면 그 주변 사람들 역시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을까 봐 그 사람을 멀리하곤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문화로 인해 잘못을 저지르고도 쉽게 인정하기는커녕 되레 큰소리를 치거나 약자를 경멸하고 더욱더 따돌리려 했던 것이지요.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다수의 편에 설 준비가 되어있었지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문가 그룹의 '낙인찍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지요.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젊은 여인이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는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고, 그녀를 북돋아 줄 생각이었다.「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평론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젊은 여인은 그의 논평을 곧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틀 후 바로 그 평론가의 비평이 신문에 실렸다." (p.11)

 

그 젊은 여인은 어찌 되었을까요? 안타깝게도 비극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아름답고 재능이 있던 젊은 여인은 깊이가 없다는 세간의 혹평으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마감했던 것이지요. '좀머 씨 이야기'와 '향수'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관대하지 않습니다. 관대하기는커녕 냉정하고 몰강스러운 곳이죠. 약자나 소수자에게는 더더욱 살기 어려운 곳일 뿐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냉정하게 드러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평은 항상 그런 식입니다.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지적하거나 칭찬하는 대신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법이지요. 작품에서 '깊이가 없다'는 평론가의 평은 그야말로 흔하디 흔한 평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깊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나 깊이가 있다 없다를 어떤 기준으로 가름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평론가 자신도 쉽게 대답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평론가의 평이 그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평론가의 평은 아무런 비평이나 근거도 없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전파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전파된 평은 일반인에 의해 아주 쉽게 인용될 테고 말이지요.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라고 생각하게 된 젊은 여인은 외출도 하지 않고 방문도 거부한 채 알코올과 약물 남용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간 여인은 139미터 아래로 뛰어내림으로써 생을 마감합니다. 젊은 여인의 그림에 대해 평했던 평론가는 젊은 여인이 그렇게 끔찍하게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현하는 단평을 문예란에 기고합니다.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p.17)

 

이와 같은 낙인찍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이지요. 이명박 정권 시절의 환경부 장관이었던 이만의 씨는 "역사적 소명의식의 바탕에서 4대강 사업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말씀드린다. 나중에 4대강 정비 사업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만 지금까지 그가 책임을 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당시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배척하고 여러 단어로 낙인찍었던 사실에 대해서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좌파, 빨갱이, 용공... 저속한 언어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언론을 통해 낙인을 찍어왔던 정치인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전문가 입네 떠드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 대해서도 자살을 미화한다는 둥 온갖 잡설을 내뱉는 잊혀진 인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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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점령한 도시의 한낮은 말매미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휴가지로 떠난 도시인들의 빈자리를 대신하기라도 하려는 듯 때로는 '쏴' 하고 높아졌다가 약속이나 한 듯 일시에 잦아들곤 합니다. 그것은 마치 대숲을 건너가는 바람 소리와 닮았습니다. 고막을 때리는 듯한 소음으로 인해 짧은 여름밤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집니다. 늦도록 잠들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어제 오후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요란한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폭염으로 푸석하게 말라가던 대지가 흠뻑 젖어드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추는 빗줄기. 푸르게 되살아나는 나뭇잎들. 비를 피해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사람들. 나는 그런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거짓 고백을 해서라도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어느 청춘의 간절함처럼 폭염 속에서 비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그렇게 간절했나 봅니다.

 

오늘 하늘은 다시 맑았고 쏟아지는 열기로 사람들은 지쳐갑니다. 다만 태풍 종다리의 영향인지 간간이 남쪽 먼 바다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흐르는 땀을 쓸어갑니다. 일요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평범한 하루가 또 그렇게 흘러갑니다. 밖은 여전히 무덥고 멀리서 전해오는 반가운 기별처럼 이따금 바람이 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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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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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는 여름에 보아야 제맛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럴 것이다. 냉방이 잘 되는 영화관에서 오싹하고 으스스한 기분으로 1시간여를 보내다 보면 흐르던 땀도 쏙 들어갈 테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공포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싫어한다고 말하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공포 영화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으로 출발한 것이 차츰 '공포영화 기피증'으로까지 발전한 셈인데 그 출발점은 아마도 로브 라이너 감독의 '미저리'가 아니었나 싶다.

 

'미저리'가 내게 안겨준 공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극 중 주인공인 애니가 소설가 폴을 자신의 집에 납치하여 감금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는 스토리에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작가를 팬으로서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나는 즐겨 읽었던 스티븐 킹의 작품마저 멀리 하게 되었다. 단순히 '미저리'의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의 전문 인터뷰어로 잘 알려진 지승호 작가와 소설가 정유정의 대담집이자 정유정 작가의 영업비밀(?)을 다룬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영화 '미저리'에 얽힌 개인적 경험이 떠올랐다. 정유정의 소설 대부분을 읽어보았던 나로서는 흥미 있는 주제이기도 했고 내가 비록 '미저리'의 애니와 같은 사생팬은 아니지만 정유정 작가의 은밀하고 솔직한 속내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로 가는 첫걸음은 자신의 장르라고 짐작되는 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분석하면서, 해부학을 공부하듯 하나하나 읽어야 한다. 노트를 마련하고, 장르, 구조, 플롯, 상징, 인물의 성격, 문장 등을 세세하게 기록하면서 연구해야 한다. 특히 본인에게 재미있거나 인상 깊었던 소설이라면 책장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공부하길 권한다(내 경우, 스티븐 킹의 <미저리>와 <사계>가 그랬다). 하다 보면 어떤 패턴을 볼 수 있게 된다." (p.69)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등단을 향한 여정', 2부 '이야기와 이야기하는 자', 3부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법', 4부 '초고-어차피 90프로를 버릴 원고', 5부 '1차 수정-그 장면이 필요 없다면 과감히 지워라', 6부 '탈고-이제 원고를 거꾸로 읽어보라'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정유정 작가의 집필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빼어난 소설가는 선천적인 재능에 의해 탄생하는 게 아닌가 막연히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이 책을 읽는 순간 말끔히 사라지게 된다. 프로 작가는 다른 전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부단한 공부와 각고의 노력에 의해 서서히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삶 바깥에서 들이닥치는 통제 불가능한 힘, 나는 그것을 '운명의 폭력성'이라고 부른다. 소설을 통해 운명의 폭력성과 마주 선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저항하고, 어떻게 극복하는지, 혹은 침몰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최현수의 세계가 반드시 '댐'이어야 했던 이유다." (p.125)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킹은 "하루에 4시간에서 6시간씩 읽고 써라. 만약 여러분이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좋은 작가가 될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라고 했다. 정유정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는 사실과 간호사라는 전문직을 과감히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다는 점 등 일반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작가는 그런 이야기보다는 소설가가 꿈인 작가 지망생이 소설의 집필 과정에서 부딪치게 될 여러 상황을 선배 된 입장에서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남기 위한 작가만의 비법을 전수하는 셈이다. 초고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탈고까지, 소설을 완성하는 전 과정에 대해 세세히 들려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최고로 좋을 것이다. 그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의지와 능력이 대립하는 경우다. 내 경우 전자를 포기한다. 프로라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 포기 못할 것도 없다. 나는 SF를 좋아하지만 이야기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이 장르는 독자로만 만족한다." (p.251)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을 다 읽은 독자라면 이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쓸 준비만 하면 된다. 초고를 쓸 노트와 소설이 완성되기까지의 길고 긴 시간 동안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생존하는 것처럼 참을 인(忍) 자 세 개만 가슴에 품으면 된다. 언젠가 당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홀린 듯 읽어줄 훌륭한 독자가 될 준비를 갖추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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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잇따른 죽음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게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 이후 대한애국당의 사무총장으로, 박근혜 무죄석방을 외치던 극우논객으로 활동했던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 두 사람은 이념면에서는 서로 대척점에 있었다고 보이지만 이미 죽고 난 다음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기는커녕 망자를 조롱하고 마구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같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라고 하겠다.

 

우리가 어느 누군가를 비난하고 심한 경우 욕설을 퍼붓는 것은 상대방이 살아 있을 때나 하는 일이다. 인간이기에 감정이 있고, 화가 나면 이따금 실수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는데 허공에 대고 그딴 헛짓거리를 한다는 건 자신의 무식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길이요, 자신의 비루함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길이다. 소위 국회의원씩이나 된 작자가 그와 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건 같은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곽상도 의원이 일베나 워마드의 모리배들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면 국민 모두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물론 윤서인이나 극우 성향 유튜버들처럼 논할 가치조차 없는, 금수만도 못한 사람들이야 애시당초 교육이 잘못된 사람들이니 말로 해서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기에 말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지만.

 

정미홍 씨는 최근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주변에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내가 병세가 나빠 너무 예민했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관대해져라."라고. 맞는 말이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나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고인이 된 이 마당에 미워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더구나 그렇게 아팠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지기도 한다.

 

노회찬 의원도 다르지 않다. 가진 것 없는 진보 정당의 정치인으로 그는 무척이나 외로웠을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다른 누구보다 크게 꾸짖었을 그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썼던 그의 유서는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글과 컴퓨터 사장을 지낸 사업가 이찬진 씨와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이 정의당에 입당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망자를 조롱하고 패악질을 일삼는 사람들이 발붙일 수 없는 사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살아 잇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어쩌면 이 땅의 교육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패륜아들을 양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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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부법 - 소심한 외톨이는 어떻게 서울대 의대 수석 합격생이 되었을까?
송용섭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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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들르는 집 근처의 도서관에는 좌석을 미리 예약하여 일정 시간 동안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인지 시험을 준비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즐겨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이름은 몰라도 얼굴만큼은 익숙한, 말하자면 도서관 애용자로서의 동지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들 중에는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에서부터 늦은 나이에 자격증을 따려는 열혈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공부하는 분야도, 나이도 제각각이다. 물론 정년퇴직 후 소일을 하기 위해 나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

 

공부를 하는 열람실 안에서는 서로 눈인사만 주고받을 뿐 스치듯 지나치기 일쑤이지만 어쩌다 우연히 휴게실에서 마주칠 때면 반가운 마음에 자판기 커피를 앞에 놓고 잠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다. 연초에 만났던 여대생 한 명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성균관대를 휴학하고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그녀는 넉넉하지 않은 자신의 가정환경을 말하면서 기필코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다부진 의지만큼이나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를 독하게 파고들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책을 들고 계단에 서서 읽고 있는 모습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녀의 하루는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온전히 공부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는 듯했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주변에서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한 학생은 거의 없을 거라는 점이다. 나와 같은 정도로 많이 공부했다고 인정할 만한 학생을 본 적은 있다. 어떤 과목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공부했다고 인정할 만한 학생을 본 적도 잇다. 하지만 수험생 시절, 모든 과목을 합쳐 나보다 더 많이 공부했다고 인정할 만한 학생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단연코 가장 많이 공부한 학생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p.57)

 

서울대 의예과를 수석으로 합격했었다는 송용섭 씨의 저서 <혼자 공부법>도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이야기, 스스로 학습하는 자율학습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부는 물 건너간 것이라는 이야기. '공부는 결코 선생님이나 스타강사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은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습관이 들지 않은 학생에게는 정말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 아들이 다니는 수학 학원의 원장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하고 있는 그 학원에서 아들은 그럭저럭 잘 따라가고 있는 모양인데 문제는 공부하는 습관과 자세가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중학교 과정은 머리가 좋은, 말하자면 단기 기억력이 좋은 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 시험 범위도 좁고 폭넓은 공부를 요하는 문제도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시험을 코앞에 두고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여도 수업 시간에 어느 정도 땡땡이만 치지 않았더라면 고득점을 받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성실과는 담을 쌓고 사는 아들만 하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게임이나 유튜브를 즐기면서도 평균은 늘 95점 이상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학기에는 평균 99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게 반갑지는 않다. 오늘 학원 선생님과의 통화에서도 그 점을 말씀드렸다. 성실함이 담보되지 않고서는 상위권 성적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고등학교 과정을 생각할 때 공부습관을 들이는 게 급선무라고.

 

송용섭의 <혼자 공부법>은 고교 시절 줄곧 1등만 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대 본과 시절의 경험을 첨가하여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자세히 쓰고 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찾아 끊임없이 자극을 닫을 필요가 있다든가, 공부의 목표는 항상 '만점'이어야 한다든가 하는 내용은 지금 중3인 아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의 공부 의지를 과대평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주는 자극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길 바란다. 맹모삼천지교. 맹자의 어머니가 괜히 세 번씩이나 이사를 했겠는가?" (p130)

 

도서관에 나오던 그 여대생은 요즘 보이지 않는다. 뜻한 바를 이룬 까닭에 더 이상 도서관에 나올 필요성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고 복학을 하여 다른 진로를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그 여대생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바른 공부 습관을 지녔으니 좌절이나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곧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 역시 그와 같은 공부 습관을 형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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