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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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한다'는 기준이 뭘까. 모른긴몰라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어떤 것들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게다. 살아간다는 건 어쨌든 뭐든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하다 못해 겨우 숨만 쉬는 일일지라도. 크게 따질 일도 아닌데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참 까칠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괜히 시비나 거는...

 

김신회 작가를 알게 된 건 지난해 4월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은 후였다. 방송작가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작가 역시 읽는 이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글들을 선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내가 작가의 글에 매료된 것은 딱히 그 하나의 원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면서도 쉽게 풀어쓰는 작가의 글은 다른 어떤 사람이 읽는다 해도 그 매력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썼던 리뷰의 제목은 '자박자박 슬픔이 차오르는'이라는 다소 닭살스러운 것이었다.(http://blog.aladin.co.kr/760404134/9277430)

 

김신회 작가의 신작 에세이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는 휴식다운 휴식을 갖지 못해왔던 작가가 갑자기 주어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깨우치게 된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총 4부 48 꼭지의 글(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로 엮은 책이다. #1 '나를 돌보겠습니다', #2 '게으르게 산다는 건 멋진 일', #3 '무턱대고 최선을 다하진 않겠습니다', #4 '그래도 나에겐 내가 있다'는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 적용했던 엄격한 잣대를 거두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자는 취지의 여러 글들을 만날 수 있다.

 

"물건과 소비를 줄이는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많던 미니멀리스트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그들의 단출한 집과 소지품을 떠올려보면 나야말로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바로 금기 미니멀리즘. 이제라도 '무엇무엇을 하면 안 된다' '무엇무엇을 해야만 한다'라는 수칙을 하나둘 버리고 스스로에게 숨 쉴 틈을 마련해주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p.135 '금기 미니멀리즘' 중에서)

 

최근에 나는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책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였다. 낯선 제목의 그 책은 10년 넘게 정신과를 전전했던 저자가 최근에 만난 정신과 전문의와 나눈 12주간의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 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글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건 순전히 입소문 덕분이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우리나라에서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정신 질환은 스스로가 앓아봤거나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가까운 사람을 돌본 경험이 있지 않고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나도 어찌어찌 구매를 하게는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다 읽지 못한 채 미뤄두고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답답한 마음에 '후~' 하고 여러 번 한숨을 토해야만 했다.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아 한도 초과의 사회 부적응자로 만드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김신회 작가는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가급적 미래 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 일기도 안 쓰는데 무슨 내일 일기까지 쓰느라 미리 걱정하고 염려하나 싶어서. 자꾸만 고갈되어가는 에너지를 생각해서라도 내일 할 걱정을 미리 당겨쓰지 않기로 했다. 내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처럼 내일 걱정도 내일로 미뤄보는 것. 처음이 어렵지 하다보면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p.209 '안 써요, 미래 일기' 중에서)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현실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에 아등바등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남과 비교하여 굳이 할 필요도 없었던 일에 기를 쓰고 달려드는 모습은 얼마나 비참한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노래했던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삶은 소풍이라 생각하며 살면 좋겠지만 이따금 그리 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안달복달 애를 끓일 일은 아니지 싶다. 작가는 이 책이 '자기 돌보는 일에는 꼴등인 사람이 안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일기'라고 했다. 이 리뷰 역시 작가를 닮은 평범한 독자가 쓴 한 편의 노력 일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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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슬픔을 화나 분노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게 다 아무개의 탓이라거나 마땅한 분노의 대상이 없다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그때 이렇게만 했더라면, 자책하면 할수록 슬픔은 일시적으로 슬픔의 형태를 숨긴 채 분노의 감정으로 쉽게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문득 슬픔으로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난주 목요일, 간호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나의 거친 손길을 묵묵히 참아주던 아내는 나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후 나는 세상과 유리된 듯한 비현실적인 일상을 일주일째 견뎌내고 있다. 수면제 없이는 단 한 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수면제를 복용한 후 잠깐 잠들었다가도 서너 시간만에 잠에서 깨면 그 후로는 줄곧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쇼윈도에 보이는 어느 메이커의 의류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서 있기도 하고, 푸른 하늘과 선선한 날씨에도 미안한 마음에 그만 울컥 눈물이 솟기도 했다.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도 주책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늦은 밤 아들과의 통화에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곤 한다. 의욕이 없는 것은 물론 '저건 해서 뭐하냐'는 식의 무기력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까닭에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다. 매사가 그렇다. 심지어 밥을 삼키는 일조차 힘에 겨워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다.

 

지금 이 짧은 글을 쓰는 것조차 내게는 너무나 힘이 드는 일이다. 잠깐이나마 나를 확인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이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라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 역시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것은 두렵다거나 공포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자책과 회한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진실로 답답한 것은 아내에게 궁금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물어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저녁 어스름이 빠르게 내려앉고 있다. 두려운 밤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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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9-21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을 옆에서 지켜주셨으니까요.
...
기운 내세요.

2018-09-2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금요일 2 - 완결
배진수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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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큰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갑작스러운 일이라면 공포는 배가된다. 자책과 회한이 뒤섞이고, 현실로부터 강제 추방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기억은 본디 스러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어떤 기억은 희미하던 기억을 되살리고 때로는 없던 기억마저 덧붙임으로써 시간이 갈수록 더 선연한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그야말로 자가증식을 하는 줄기세포처럼 스스로의 몸집을 나날이 키워가는 기억도 있다. 그렇게 몸피를 키운 기억은 한 인간을 잠식하고 급기야 사망에 이를 만치 큰 공포로 작용하기도 한다.

 

웹툰 작가인 배진수는 그의 책 <금요일(禁曜日)>에서 인간 본성의 심연에 뿌리 깊이 내재된 불안이나 공포를 만화라는 특수한 매체를 통해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공포를 주제로 한 대개의 만화가 말초적이고 찰나적인 충격 요법을 그 도구로 하지만 배진수 작가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자신의 수명을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한 사내가 파멸되는 과정을 그린 '거래소'라든가, 미래로 소환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전송' 등 우리가 한 번쯤 상상해보았음직한 이야기들이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공포스럽게 등장한다.

 

이에 비해, 과거를 재구성하고 구현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과거의 데이터는 다 수집돼 있거든요. 누락된 부분이 있다 해도, 역예측으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고요."

즉,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과거의 어느 지점을 특정지어 현재에 구현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전송'이라 부릅니다. 그러니..."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여기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냥 거기에서 과거에서 아무 일 없이 생활하고 있는 오리지널 '나'를 이 시대에 구현해낸 유기체에 불과하다고 했다. (p.240~p.241)

 

2012년 10월 4일부터 2014년 9월 12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되었던 웹툰『금요일』의 완결편이라는 이 책은 1부 RULE, 2부 WISH, 3부 LIVES, 4부 CHOICE, 5부 RISK 등 주제에 따라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로, 각각의 이야기는 한 편의 만화라고 치부하기에는 부족한, 만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뭔가 묵직하고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져준다.

 

"근본적으로 이 작품은 공포보다는 블랙코미디에 가까우며, 선뜻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과 이것이 불러오는 연민, 즉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만화입니다. '인간애'라는 주제를 가슴에 품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아마 제 의견에 동감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공포는 대개 인간의 '무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근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다고 해서 그게 과연 공포스럽기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만화라는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 다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근원적인 질문들을 더욱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게 나의 솔직한 감상평이다. 쉽게 쓰인 철학서를 한 권 독파한 느낌이랄까, 암튼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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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관심은 온통 부동산에 쏠려 있는 듯하다. 그것도 전국의 모든 부동산이 아니라 수도권의 부동산, 특히 서울의 아파트 시세가 되겠지만 말이다. 물론 집을 소유하지 못한 무주택 서민이나 평생 집 한 채 겨우 마련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집값이야 오르든 말든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방송에서는 연일 부동산 폭등을 기사화하여 내보내고 정부에서도 대책을 세우니 마니 떠들어대는 통에 나도 모르게 관심을 두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 집값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금리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11월 연 1.25%에서 0.25% 인상한 이후 1.50%의 기준금리를 꾸준히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기준금리는 계속하여 상승해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투자처를 잃은 뭉칫돈이 갈 곳은 딱 한 군데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다고 금리도 낮은데 적금을 들 수도 없고,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금리 인상 덕분에 국내에 유입된 외국 자본은 연일 셀 코리아(sell Korea)를 외치는데 미친놈처럼 주식을 살 수도 없고 말이다.

 

저금리 기조로 인한 대한민국의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경고는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다. 미국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Mckinsey)는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가계부채 위험국'으로 꼽기도 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또한 가계부채로 인한 경기침체 위험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2014년부터 한국은행을 이끌어온 이주열 사단은 이런 경고들을 무시한 채 저금리 기조를 고집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시장을 잡는 데 정부의 재정정책이나 세금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게다가 일반 선진국들의 DTI는 통상적으로 28-36% 선인 반면 우리나라는 50-60%를 유지해왔다. 대출 원리금 상환이 소득의 50-60%가 되어도 문제가 없다는 발상, 한발 더 나아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대출 규제완화를 주장했던 최경환 전 장관은 저금리로 인해 대출의 질이 좋아졌다는 둥 해괴한 발언을 일삼기까지 했다. 이로 인하여 가계부채는 꾸준히 증가하여 올 1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천468조 원에 이르렀다. 이게 과연 서민들의 생계비 조달을 위한 대출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하는 게 서민들의 팍팍한 삶 때문일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오히려 한미 간의 금리 역전 현상이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이처럼 백약이 무효인 부동산 불패 신화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게 과연 현 정부만의 책임인가. 아니면 띨띨했던 이전 정부의 경제관료들과 한국은행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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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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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초등학교 여름방학 과제에서 단골손님처럼 빼놓지 않고 등장하던 게 있었다. 지금이야 방학 숙제도 거의 없고 그런 과제를 내준다고 하더라도 태반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다고 말할 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선생님 말씀이 곧 법이나 다름없었던 시절이니 만큼 부담스럽고 벅찬 과제라고 할지라도 반기를 들거나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그것은 바로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이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에게 왜 그런 과제를 주었는지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이들은 당연한 듯 주변의 풀과 꽃을 뽑아 잘 씻은 후 책갈피에 꽂아 말리고, 매미, 잠자리, 나비, 사슴벌레 등을 잡아 압핀을 꽂아 말리기도 했다. 그 하나하나가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게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의 고사리 손으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비나 잠자리의 날개처럼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부서지는 것들은 매우 세심한 주의를 요하기도 했다.

 

닷 허치슨이 쓴 스릴러 소설 <나비 정원>은 그 시절에 했던 곤충채집을 떠올리게 했다. 생명을 잃은 나비가 아주 작은 손길에도 쉽게 부서져 형체를 잃고 공기 중으로 흩어진던...

 

"정원사는 열여섯 살 아래는 납치하지 않았어요. 확실하지 않으면 나이가 지나치게 많은 쪽도 피하고요. 그래서 나비로 사는 수명은 최대치가 오 년이었어요. 겹치는 세대를 뺀다 해도, 나비가 여섯 세대는 벌써 충분히 넘어선 거예요."    (p.111)

 

소설은 아동 범죄국 특별수사관 빅터와 '정원사'에게 납치되어 온갖 고초를 겪다 가까스로 구출된 이 나라의 대화로 풀려나간다. 열여섯 살부터 스무 살이 안 된 소녀들을 납치해서 등에 갖가지 나비 날개를 본뜬 문신을 크게 새기고, 등이 완전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혀 자신이 구축한 비밀 정원에서 스물한 살까지 자신의 소유물로 살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섬뜩하다 못해 괴이하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저택에 유리 지붕이 덮인 거대한 정원을 꾸미고, 정원 안에는 인공의 높은 절벽과 그곳에서 떨어지는 폭포, 색색의 꽃들과 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꽃과 함께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나비도 무수히 많은 이 정원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외부 사람들과는 완전히 차단된 비밀 공간이다. 말하자면 그곳은 신처럼 군림하려 했던, 자신만의 에덴동산을 꿈꾸려 했던 한 남자가 삼십 년 넘게 범죄 행각을 벌이던 범죄의 온상이었던 셈이다.

 

그곳에 끌려온 소녀들은 등에 커다란 나비 문신을 새긴 채 정원사의 성적 노리개로 살아가게 되지만 임신을 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살해하기도 한다. 정원사는 문신이 끝난 소녀들에게 자신이 지은 이름을 부여하고 그녀들이 살던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도록 유도한다.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듯했던 나비 정원의 정체는 스물다섯 명의 소녀들이 구출됨으로써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고, 구출된 소녀들은 가족을 만날 준비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여자애가 내 말을 듣는지 확실치 않았어요.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자애가 갑자기 앞으로 몸을 던지며 두 팔로 내 허리를 휘감고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더니, 너무나 커다란 충격과 슬픔에 빠져들며 또다시 목청껏 울어대는 거예요. 나는 쓰다듬지도 어루만지지도 않았어요. 손을 꿈쩍도 안 했어요. 정원사가 그러는 걸 증오하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요. 하지만 따듯한 맨살에 손을 계속 올려놓았어요. 내가 옆에 있다는 걸 알도록."    (p.163)

 

구출된 스물다섯 명의 소녀들 중 '마야'라고 불리는 소녀만 아동 범죄국 수사관 빅터와 에디슨에게 불려 가 심문을 받는다. 8살에 부모가 이혼한 후 외할머니댁에서 자랐던 '마야'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짐을 싸들고 뉴욕으로 온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모여 살게 된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정원사의 눈에 띄어 납치된다.

 

"나도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결국엔 집으로 여겼으나, 거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쁜 걸 너무 많이 겪었으니, 정원으로 끌려오기 전까진 정말 험하게 살았단 느낌이 강했던 거예요. 하지만 블리스는 아니었어요, 최소한 나만큼은. 정원에서 사는 것보다 너무 좋았던 거예요."    (p.190)

 

본명이 무엇인지, 뉴욕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지, 자신에 대한 정보는 도통 말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마야'를 찾았던 까닭에 수사관들은 그녀가 피해자들의 리더임에 틀림없다고 믿었고 심문 과정에서도 시종일관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마야'를 보면서 그녀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열정이 타올라, 아동 범죄국 수사관은 누구보다 먼저 망가지다 새하얗게 타버린다. 아동 범죄국에서 삼십 년을 일하는 동안, 빅터는 그런 수사관을 많이도 보았다. 좋은 수사관이든 나쁜 수사관이든 상관없이."    (p.108)

 

그렇게 되짚어가면서 수사관들은 '마야'를 통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간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피해자인 '마야'와 FBI 수사관 빅터, 에디슨에 의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단순하면서도 지루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같은 일본식 스릴러물에 익숙해 있는 한국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소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보면 청소년들의 심리와 남성의 성적 욕망 및 소아성애적 심리를 잘 그리고 있다. 극적인 반전이나 빠른 이야기 전개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의 심리에 주목하면서 읽다 보면 이 소설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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