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슬픔을 화나 분노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게 다 아무개의 탓이라거나 마땅한 분노의 대상이 없다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그때 이렇게만 했더라면, 자책하면 할수록 슬픔은 일시적으로 슬픔의 형태를 숨긴 채 분노의 감정으로 쉽게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문득 슬픔으로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난주 목요일, 간호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나의 거친 손길을 묵묵히 참아주던 아내는 나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후 나는 세상과 유리된 듯한 비현실적인 일상을 일주일째 견뎌내고 있다. 수면제 없이는 단 한 시간도 잠들지 못하고, 수면제를 복용한 후 잠깐 잠들었다가도 서너 시간만에 잠에서 깨면 그 후로는 줄곧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도 쇼윈도에 보이는 어느 메이커의 의류에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서 있기도 하고, 푸른 하늘과 선선한 날씨에도 미안한 마음에 그만 울컥 눈물이 솟기도 했다.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도 주책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늦은 밤 아들과의 통화에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곤 한다. 의욕이 없는 것은 물론 '저건 해서 뭐하냐'는 식의 무기력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까닭에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다. 매사가 그렇다. 심지어 밥을 삼키는 일조차 힘에 겨워 끼니를 거르기 일쑤이다.

 

지금 이 짧은 글을 쓰는 것조차 내게는 너무나 힘이 드는 일이다. 잠깐이나마 나를 확인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이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라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 역시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것은 두렵다거나 공포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자책과 회한이 끝도 없이 밀려든다. 진실로 답답한 것은 아내에게 궁금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물어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저녁 어스름이 빠르게 내려앉고 있다. 두려운 밤이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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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09-21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을 옆에서 지켜주셨으니까요.
...
기운 내세요.

2018-09-2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