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과거 초등학교 여름방학 과제에서 단골손님처럼 빼놓지 않고 등장하던 게 있었다. 지금이야 방학 숙제도 거의 없고 그런 과제를 내준다고 하더라도 태반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다고 말할 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선생님 말씀이 곧 법이나 다름없었던 시절이니 만큼 부담스럽고 벅찬 과제라고 할지라도 반기를 들거나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 그것은 바로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이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생에게 왜 그런 과제를 주었는지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이들은 당연한 듯 주변의 풀과 꽃을 뽑아 잘 씻은 후 책갈피에 꽂아 말리고, 매미, 잠자리, 나비, 사슴벌레 등을 잡아 압핀을 꽂아 말리기도 했다. 그 하나하나가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게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의 고사리 손으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비나 잠자리의 날개처럼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부서지는 것들은 매우 세심한 주의를 요하기도 했다.

 

닷 허치슨이 쓴 스릴러 소설 <나비 정원>은 그 시절에 했던 곤충채집을 떠올리게 했다. 생명을 잃은 나비가 아주 작은 손길에도 쉽게 부서져 형체를 잃고 공기 중으로 흩어진던...

 

"정원사는 열여섯 살 아래는 납치하지 않았어요. 확실하지 않으면 나이가 지나치게 많은 쪽도 피하고요. 그래서 나비로 사는 수명은 최대치가 오 년이었어요. 겹치는 세대를 뺀다 해도, 나비가 여섯 세대는 벌써 충분히 넘어선 거예요."    (p.111)

 

소설은 아동 범죄국 특별수사관 빅터와 '정원사'에게 납치되어 온갖 고초를 겪다 가까스로 구출된 이 나라의 대화로 풀려나간다. 열여섯 살부터 스무 살이 안 된 소녀들을 납치해서 등에 갖가지 나비 날개를 본뜬 문신을 크게 새기고, 등이 완전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혀 자신이 구축한 비밀 정원에서 스물한 살까지 자신의 소유물로 살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섬뜩하다 못해 괴이하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한 저택에 유리 지붕이 덮인 거대한 정원을 꾸미고, 정원 안에는 인공의 높은 절벽과 그곳에서 떨어지는 폭포, 색색의 꽃들과 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꽃과 함께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나비도 무수히 많은 이 정원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외부 사람들과는 완전히 차단된 비밀 공간이다. 말하자면 그곳은 신처럼 군림하려 했던, 자신만의 에덴동산을 꿈꾸려 했던 한 남자가 삼십 년 넘게 범죄 행각을 벌이던 범죄의 온상이었던 셈이다.

 

그곳에 끌려온 소녀들은 등에 커다란 나비 문신을 새긴 채 정원사의 성적 노리개로 살아가게 되지만 임신을 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살해하기도 한다. 정원사는 문신이 끝난 소녀들에게 자신이 지은 이름을 부여하고 그녀들이 살던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도록 유도한다.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듯했던 나비 정원의 정체는 스물다섯 명의 소녀들이 구출됨으로써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고, 구출된 소녀들은 가족을 만날 준비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여자애가 내 말을 듣는지 확실치 않았어요.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자애가 갑자기 앞으로 몸을 던지며 두 팔로 내 허리를 휘감고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더니, 너무나 커다란 충격과 슬픔에 빠져들며 또다시 목청껏 울어대는 거예요. 나는 쓰다듬지도 어루만지지도 않았어요. 손을 꿈쩍도 안 했어요. 정원사가 그러는 걸 증오하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요. 하지만 따듯한 맨살에 손을 계속 올려놓았어요. 내가 옆에 있다는 걸 알도록."    (p.163)

 

구출된 스물다섯 명의 소녀들 중 '마야'라고 불리는 소녀만 아동 범죄국 수사관 빅터와 에디슨에게 불려 가 심문을 받는다. 8살에 부모가 이혼한 후 외할머니댁에서 자랐던 '마야'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짐을 싸들고 뉴욕으로 온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모여 살게 된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정원사의 눈에 띄어 납치된다.

 

"나도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결국엔 집으로 여겼으나, 거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쁜 걸 너무 많이 겪었으니, 정원으로 끌려오기 전까진 정말 험하게 살았단 느낌이 강했던 거예요. 하지만 블리스는 아니었어요, 최소한 나만큼은. 정원에서 사는 것보다 너무 좋았던 거예요."    (p.190)

 

본명이 무엇인지, 뉴욕에 오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는지, 자신에 대한 정보는 도통 말하지 않았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마야'를 찾았던 까닭에 수사관들은 그녀가 피해자들의 리더임에 틀림없다고 믿었고 심문 과정에서도 시종일관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를 잃지 않는 '마야'를 보면서 그녀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한다.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열정이 타올라, 아동 범죄국 수사관은 누구보다 먼저 망가지다 새하얗게 타버린다. 아동 범죄국에서 삼십 년을 일하는 동안, 빅터는 그런 수사관을 많이도 보았다. 좋은 수사관이든 나쁜 수사관이든 상관없이."    (p.108)

 

그렇게 되짚어가면서 수사관들은 '마야'를 통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간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피해자인 '마야'와 FBI 수사관 빅터, 에디슨에 의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단순하면서도 지루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같은 일본식 스릴러물에 익숙해 있는 한국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소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보면 청소년들의 심리와 남성의 성적 욕망 및 소아성애적 심리를 잘 그리고 있다. 극적인 반전이나 빠른 이야기 전개를 기대하는 독자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의 심리에 주목하면서 읽다 보면 이 소설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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