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한낮을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정말이지 시간은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도 아니요,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을 내가 최초로 새롭게 밝혀낸 것도 아니지만 휴일 아침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몰랐던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설프지만 이런 느낌은 마치 마음이라는 너른 들판을 시간이라는 강물이 제멋대로 굽이쳐 흘러가는 듯하달까, 암튼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던 시간은 밭은 목줄에 이끌려오던 인간을 미처 배려하지 못했다는 듯 이따금 선물처럼 무엇인가 툭 하고 내던지기도 한다. 그럴라치면 우리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어 주어진 선물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끝없이 달라붙던 몇몇 질문들을 잠시 내려놓게도 된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 시간이 가는 대로 이끌려 갈 줄만 알았지 도대체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곳에 가면 뭐가 좋은지 도통 알 길이 없었으니까.

 

밖에는 지금 운무가 짙게 내려앉은 듯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최근 몇 주는 주말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아닌가 싶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숨을 쉴 때마다 매캐한 먼지가 가슴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를 읽고 있다. 적어도 두세 번은 읽었던 책인데 처음인 듯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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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파울로 코엘료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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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부터 튕겨져 나온 삶의 파편들은 저마다의 색깔과 고유의 무늬를 지니게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들을 수도 없는 고유의 곡조와 리듬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소설은 삶의 악보이자 스스로 음을 내는 연주곡인 셈입니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마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노래가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불리어지고 그 과정이 마침내 내 눈과 귀를 통해 확인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히피(Hippie)>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주위를 둘러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인간의 눈에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태양의 전통'이다. 태양의 전통은 모두의 전통이다. 연구자들이나 종교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을 위해 존재한다. 힘은 인간이 지나는 길 위의 온갖 사소한 것들 속에 있다. 세상은 진실한 교실이다. 지고의 사랑이 당신이 살아 있음을 알고서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걸 가르칠 것이다." (p.42)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히피>는 동명의 주인공인 파울로가 두 차례의 히피 여행을 통해 삶의 지혜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친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1968년 여자 친구와 함께 잉카 문명의 유적지 마추픽추를 향해 배낭여행을 떠났던 파울로는 그의 첫 여행길에서 '세상은 진실한 교실'임을 깨닫지만, 돌아오던 길에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2년여 후 그는 이제 단신으로 유럽 여행을 떠납니다. 유럽이 처음이었던 파울로는 우연히 들렀던 암스테르담에서 매력적인 여인 카를라를 만나게 됩니다. 네팔 카트만두로 갈 영혼의 동반자를 물색하고 있던 카를라는 브라질 청년 파울로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남자임을 직감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숨긴 채 그의 곁으로 다가갑니다.

 

"사랑은 이 땅에서의 우리 사명과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을 깨닫게 해준다. 가슴에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선과 보호의 그림자가 뒤따르고, 그들은 힘든 순간에도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또한 빛을 담는 그릇이자 비옥함의 보고이자 길을 밝히는 등불인 사랑하는 이의 존재 외에는 그 어떤 조건이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줄 것이다." (p.320)

 

최소한의 경비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던 파울로는 결국 카를라와 함께 카트만두행 '매직 버스'에 탑승하게 됩니다. 그들이 탄 '매직 버스'에는 다양한 탑승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평행현실을 탐구하는 아일랜드 청년 라이언과 그의 연인 미르트, 남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환자들을 치유하다 성직자의 꿈을 꾸게 된 영국인 의사 마이클, 파울로의 트라우마를 보듬어주는 인도인 운전사 라훌, 자신의 성공을 유일한 삶의 가치라고 믿었던 자크가 몇몇 사건을 겪은 후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딸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 프랑스 부녀 자크와 마리 등. 자유로운 삶과 진리를 찾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은 긴긴 여행길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외형상으로는 사실 무척이나 단순합니다. 70달러라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싼 가격으로 유럽에서 신비의 땅 네팔로 여행하게 될 '매직 버스' 탑승객들. 수학여행 버스처럼 낡고 불편한 버스였지만 그들은 동유럽과 터키를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긴 여정을 함께 합니다. 물론 미성년자였던 두 명의 소녀가 중간에 강제 하차를 하게 되지만 나머지 승객들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거나 서로를 격려하면서 여행을 계속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깨우쳐간다는 내용입니다.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타인도 믿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배신을 당하더라도 - 그런 때는 언제든 오기 마련이고, 그저 살다보면 겪게 되는 일일 뿐이다 -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건 그것이다." (p.116)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는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에 매료되기보다는 간결하고 확실한 필치로 삶의 의미를 전달하는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스토리 라인은 그저 소설을 구성하는 하나의 형식 또는 사진 속 풍경이나 소설 속 배경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그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 말이지요. 예전에 읽었던 그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비슷했던 듯합니다. 그 책에서도 수피즘의 큰 스승, 나스루틴의 강연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이 책에서도 수피즘이 등장합니다.

 

"나는 인생의 제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요. 나는 마침내 가장 단순하고 예상치 못했던 것들, 예컨대 부모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등을 통해 영혼을 살찌울 수 있었소. 따라서 수피즘의 지혜는 거의 대체로 성스러운 경전에 나와 있지 않다오. 그보다는 이야기나 기도나 춤이나 명상 속에 있지." (p.309)

 

요르단의 정치 불안으로 '매직 버스'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게 됩니다. 파울로는 그곳에서 춤추는 데르비시를 찾아 헤맵니다. 반면에 '자신의 힘이나 용기를 끊임없이 증명하며 자신의 한결같은 공격성과 통제 불가능한 경쟁심에 지쳐 있던' 카를라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며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실한 사람의 의미를 깨닫게도 되지요. 기쁨에 찬 그녀는 파울로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파울로는 이제 이튿날이면 자신이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고 또 헤어진 수많은 연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태어난 나라에 가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실의에 빠진 순간에 용기 있는 척하는 방법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것들을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정말로 순환하는 공간을 돌고 있었다. 기쁨을 거두고 고통을 되돌려주었다가, 다시 고통을 거두고 기쁨을 되돌려주면서." (p.211)

 

일주일을 머물기로 했던 버스는 사흘 만에 다시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보다는 영혼의 발견에 더 관심이 많았던 파울로는 결국 '매직 버스'에 오르지 않습니다. '매직 버스'에 탑승한 카를라와는 헤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들은 각자가 선택한 구도의 길을 따라 스스로의 길을 걷게 되는 셈입니다.

 

"태양에 절을 하시오. 태양이 영혼을 가득 채우도록 내버려두시오. 지식은 환영이고, 황홀경은 현실이지. 지식은 우리를 죄책감으로 채우지만, 황홀경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가 존재하기 이전과 파괴된 이후의 우주인 그분과 교감하게 해준다오. 지식을 추구하는 건 바로 옆에 깨끗한 우물을 두고서도 모래로 몸을 씻으려는 것과 같달까." (p.252)

 

우리는 어쩌면 인생이라는 '매직 버스'에 무임으로 승차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울로와 카를라가 그랬던 것처럼 각자가 선택하는 길도 다르고, 내려야 할 목적지도 다르지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그리고 신의 참뜻을 헤아리는 구도의 동행자들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각자가 선택한 방법이나 목적지는 다를지언정 목표는 하나인 셈이지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당신과 내가 서로를 격려하고 돕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을 그대에게 말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와 당신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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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 날씨였다. 며칠째 계속되는 미세먼지의 공습으로 어쩔 수 없는 외출마저 꺼려지더니 오후에는 잠시 진눈깨비가 내렸다.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사람들이 답답한 날씨만큼이나 어두운 낯빛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이런 추세라면 마스크 대신 방독면을 써야 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듯하다. 상상하기도 싫은 불길한 예감이지만 말이다.

 

 

논픽션 작가 제이 그리피스가 쓴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를 읽고 있다. 작가의 문장은 야생의 감촉을 그대로 전달하는 양 순수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나는 빙하의 얼음에 뺨을 대보고 온천수를 직접 마시며, 인간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은 전망을 보고 싶었다. 이 감정은 가공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맹렬한 감정이었다. 나는 영혼의 가장 민감한 부분으로 삶에 부딪고 싶었다.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 손톱에 낀 딱딱한 진흙 부스러기,맨살에 내리쬐는 태양, 입술을 찢는 얼음,몸속으로 밀려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조수를 느끼고 싶었다. 완전히 잠기는 것, 그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딱히 기억나는 일도 없는데 하루가 무참히 흩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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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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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올해 대학을 졸업한 조카에게 선물했던 책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때 책의 목차만 보고, 본문은 읽지도 않은 채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조카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과 함께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며 일독을 권했었다. 내가 먼저 읽고 권하는 것처럼. 인간의 행동이란 이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알량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한 줌 권위를 지키기 위해 별 필요도 없는 수고를 감수할 때가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은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뇌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의 의사결정, 창의성, 놀이, 결핍, 습관, 미신, 혁신, 혁명 등 인간의 다양한 행동과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통해 인간을 다각도로 이해하려 하고 있다. 물론 '이러이러하게 하면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모두에게 적합한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다면 각자의 성향에 맞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숲 속으로 들어가 인간의 본질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수만 발자국의 탐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제 겨우 뗀 열두 발자국은 그 첫걸음이라 하겠지만, 기꺼이 과학자들과 함께 탐험에 합류해 주세요. 우리가 당연하게 믿고 있던 사실들이 전복되는 유쾌한 경험을, 통념과 익숙한 상식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p.12 '프롤로그' 중에서)

 

예컨대 선택지가 많은 상황보다는 더 적은 선택지 하에서 소비자의 구매율이 높게 나타난다거나, 작금의 세대가 정답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성장한 까닭에 결정장애를 앓는 사람이 많아졌다거나, 결핍을 모른 채 성장하여 지적 호기심을 느껴보지 못했다거나 하는 것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사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전제된 상태에서 긴 시간에 걸친 점진적인 개혁이 필수적이겠지만 그러자면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이 한 단계 더 성숙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수학적 추론을 가르치고, 틀에 박힌 언어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교육이 곧 사고와 철학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42)

 

저자는 개인의 좋은 의사결정에 주목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지,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등 우리가 그동안 궁금해했거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우왕좌왕했던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물론 대중을 상대로 한 과학서적인 까닭에 다소 피상적이거나 과학적 실험의 결과물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전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의 목표가 성공이 아니라 성숙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습관은 안락하고, 포근하고,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여기까지 끌고 왔지만, 새로고침이 주는 뜻밖의 재미, 유쾌한 즐거움은 여러분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겁니다. '내가 지금처럼 10년 살아봤더니 이 삶이 주는 즐거움이 뭔지 충분히 알겠어. 그럼 이제 새로운 삶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해볼까?' 하는 설렘으로 새로고침을 시도해보시면 어떨까요." (p.154)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일자리 행정통계 결과'에 따르면, 영리 기업 가운데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7.4년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3.0년에 그쳤다고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 좋든 싫든 우리는 첫 직장에서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며, 경력을 인정받고 이직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공부를 하여 7년을 주기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회사원이라면 더 빈번하게 이직을 준비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크나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오랜 습관이 주는 안온함을 포기하고 7년마다 한 번씩 리셋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서.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종종 이유도 없이 멍해질 때가 있다. 어디가 아프거나 탈이 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멍한 상태에서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나는 과거에 내가 간절히 원했던 모습도 아니요, 같은 모습으로 여러 해 유지해온 것도 아닌 까닭에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무척이나 생경하다. 게다가 내 삶의 끝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으니 나는 지금 삶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없다.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도 도통 모르는 것 투성이이니 때로 멍해지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편집, 검색, 빠른 모드 전환 등 스마트폰적인 사고를 하는 시간과 책을 읽고 오래 생각하고 멍 때리면서 사색하는 시간 사이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이 균형이 내 삶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채우는 역할을 했는데, 인생 몰입 기술은 이균형을 깨뜨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 매 순간 '인생 내비게이션'을 켜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 테니까요. 내 삶을 다양한 모드로 전환하면서 원하는 정보는 빨리 얻고 실수할 확률은 좀 더 줄어들겠지만, 깊이 사색하고 오래 성찰하는 삶과는 좀 더 멀어지게 될 겁니다." (p.280)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의 인생이 '탐험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길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고, 놀이를 통해 더 나은 대답을 찾아가며,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으로 혁명을 일구어가며, 사려 깊게 준비한 탐험가의 자세로 성취를 이루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자신을 인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읽지도 않고 짐짓 읽은 체한 게 부끄러워 뒤늦은 독서를 한 나처럼 무작정 미루거나 버틸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일단 부딪혀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해결책을 생각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삶을 살아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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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유튜브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블로그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나는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런 매체보다는 조금 구닥다리 느낌이 들지언정 따스한 정감이 흐르는 글을 읽는 게 훨씬 더 편하고 기분이 좋다. 물론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에 비하면 괘나 까다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성스레 읽었던 글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몇 번이고 끄집어내어 되새김질하듯 곰곰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말이다.

 

블로그를 오래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 입에 담지도 못할 비난이나 욕설을 담은 글을 내가 쓴 글에 댓글로 달기도 하고, 나로서는 문장의 해석조차 불가능한 댓글을 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 내가 대처하는 방법은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못 본 척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별 이상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왜 자신의 댓글에 답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더러 만나게 된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논쟁이나 토론은 상대의 수준이 나와 엇비슷할 때 가능하다. 예컨대 대학생과 세 살배기 아이는 토론의 상대가 될 수도 없고 정상적인 토론이 가능하지도 않다. 댓글을 다는 상대방이 나에 비하면 세 살배기 아이처럼 지적 수준이 낮다고 깔아뭉개려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보기에 나의 지적 수준이 한참 어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이다. 내가 답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기 때문이구나, 하고 쿨하게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아무튼 괜한 오해나 시비는 없었으면 한다. 내가 쓴 글을 제발 읽어달라고 강권한 적도 없고, 댓글을 간청한 적도 없으니 얼굴도 모르는 서로가 감정을 가질 필요가 무엇이겠나.

 

푸근한 겨울 날씨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미세먼지로 인한 자발적인 감금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추위가 몰려오더라도 맑은 하늘을 보고 싶다. 이래저래 우울한 주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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