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한낮을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정말이지 시간은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도 아니요,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을 내가 최초로 새롭게 밝혀낸 것도 아니지만 휴일 아침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몰랐던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설프지만 이런 느낌은 마치 마음이라는 너른 들판을 시간이라는 강물이 제멋대로 굽이쳐 흘러가는 듯하달까, 암튼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던 시간은 밭은 목줄에 이끌려오던 인간을 미처 배려하지 못했다는 듯 이따금 선물처럼 무엇인가 툭 하고 내던지기도 한다. 그럴라치면 우리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어 주어진 선물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끝없이 달라붙던 몇몇 질문들을 잠시 내려놓게도 된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 시간이 가는 대로 이끌려 갈 줄만 알았지 도대체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곳에 가면 뭐가 좋은지 도통 알 길이 없었으니까.

 

밖에는 지금 운무가 짙게 내려앉은 듯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최근 몇 주는 주말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아닌가 싶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숨을 쉴 때마다 매캐한 먼지가 가슴까지 파고드는 듯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를 읽고 있다. 적어도 두세 번은 읽었던 책인데 처음인 듯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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