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중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축구 중계를 보게 되었다. 한국과 에콰도르가 맞붙었던 U-20 월드컵 준결승전 경기 말이다. 새벽 3시 30분부터 경기가 시작되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중계방송을 꼭 보겠노라 작정한 것도 아닌데 일찍부터 잠이 깨고 말았다. 대략 3시를 전후하여 잠에서 깬 듯한데 억지로 다시 자려고 하니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지고, 한 번 달아난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새벽에 할 일이라곤 5시 30분에 운동을 나가는 것밖에 딱히 정해진 게 없으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축구 마니아도 아닌 내가 신새벽에 홀로 일어나 축구 중계를 보는 풍경은 그닥 아름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일단 중계에 빠져들다 보니 축구 경기는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쫄깃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하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긴 경기는 언제나 재미있다고 느끼게 마련이지만 말이다. 어떤 종목이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경기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경기가 아닐까.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전.후반 본경기로 끝이 났지만, 시간은 내가 매일 운동을 나가는 5시 30분 직전이었고, 부족한 잠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은 '그냥 잠이나 자자' 하는 유혹의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그러나 1시간쯤 더 잔다고 해도 피곤이 풀릴 것 같지도 않고, 막상 자려고 누우면 쉽게 잠이 들 것 같지도 않아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운동에 나섰었다.

 

오전에 나도 모르게 잠깐 졸았다. 바깥공기는 조금 탁하고, 가볍고 날카로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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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 전체에서 하나의 연령대를 콕 짚어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나는 왠지 40대를 생각할 때마다 시골집 마당에 놓인 고무대야를 떠올리게 된다. 건조한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너른 마당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고무대야는 주변 풍경에 적절히 녹아들지 못한 채 쓸쓸함만 더한다. 아마도 나는 40대를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절반을 돌아 반환점에 이른 40대는 30대의 연장선에 놓인 자연스러운 연령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별개의 연령대를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왠지 어색하고 툭 불거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나는 인생의 40대를 꽤나 불안한 연령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느 연령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비교 불가의 독특함이 있기에 40대는 그저 인생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김해남, 박종석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쓴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으며 나는 내내 40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두 명의 저자 역시 인생의 고비를 넘기는 불안한 연령대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우울은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 중의 하나다.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등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우울은 인생을 살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좌절에 직면했을 때 이를 내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우울은 고통스럽지만 정상적인 우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우울감도 사라진다." (p.5 'Prologue'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의 감기와도 같다는 우울의 다양한 얼굴들을 설명하고 있다. 우울증, 조울증, 상실과 애도, 공황장애, 우울성 인격, 번아웃 증후군, 만성피로 증후군, 허언증, 현실 부정, 강박증, 불안장애, 무기력감, 자해, 화병, 섭식장애, 성공 후 우울증, 외로움 등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상처와 그 진단 방법을 설명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공황장애를 흔히 '짐작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큰 공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섭다고 생각하면 더 무서운 것이 된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어르고 달래며 잘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발작이 온 그 순간에 호흡이나 자기 암시 등을 차분히 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공황장애로 힘들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죽음이나 공포,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괜찮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믿음이다." (P.61)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빠르게 치료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치료를 끝까지 미루는 탓에 정신 질환으로 인한 범죄나 자살 등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극단적 선택을 뉴스로 읽을라치면 나는 마치 나 자신의 일인 양 마음이 무거워진다. '따지고 보면 사는 게 별것도 아닌데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건 도대체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네. 제대로 난 길을 몰랐기 때문이라네."라는 단테의 시 구절처럼 우울은 길을 잃은 상태와 비슷하다.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과 고통에 짓눌려 헤매고 있을 때, 우선은 그 어두운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하다." (p.163)

 

우리는 이따금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마주칠 때 마치 자신이 전문가라도 되는 양 당사자의 의지 운운하면서 질환의 원인이 오직 당사자의 책임인 것처럼 의지박약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우울증은 가뜩이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좌절, 절망으로 아파하는 병인데 곁에서 치료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환자는 그야말로 물러날 곳이 없는 천 길 벼랑에 서는 꼴이 되고 만다. 예컨대 '우울증에는 밖에 나가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게 좋다.'는 식의 조언은 정말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p.258)

 

우리가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이를 잘 돌봐야 하는 이유는 당사자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목적도 있지만 정신질환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에게도 쉽게 전염된다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선정한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열 가지 중에서 네 번째'를 차지한다는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희망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울과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작은 희망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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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섣부른 욕심이나 과한 경쟁심이 앞서면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는 것은 물론 하고자 하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생각만 앞서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 누구나 한두 번의 경험이 있겠지만 어떤 운동이든지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힘을 빼는 방법'인데 이게 어찌나 어려운지 대개는 힘을 빼는 방법만 배우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다. 힘을 빼는 요령도 터득하지 못한 채 말이다.

 

글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하면 생각은 경직되게 마련이고, 글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채 되는 대로 쓰겠다, 생각하면 기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기도 비슷하다. 회사의 프레젠테이션도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점점 더 굳어지게 마련이고, 달달 외웠던 발표문도 전혀 생각나지 않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마 말은 글과 달라서 말을 매끄럽게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흠이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을 맺는 정치인이나 목회자, 아나운서 등은 자신이 했던 말로 이득을 보기보다는 말 때문에 화를 입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나의 여동생이 모 방송국의 보도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던 터라 아나운서와 기자들의 세계를 조금은 알고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권력층이나 부유층과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도 역시 권력지향적 인간이 되거나 오히려 그와 같은 모습을 보는 것조차 싫어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두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대표적인 권력지향적 인간형으로 민경욱이나 한선교를 들 수 있겠다. 권력자에게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약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인간형. 권력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어떠한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간성. 그들은 생각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늘 자신의 욕심이 앞서는 까닭에 듣는 이의 고충은 배려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소식을 전하면서도 웃는 낯이었고, 고성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대통령이 북한과 협의해 진화를 지시했다며 빨갱이라고 하는가 하면 헝가리 유람선 사고 때도 골든 타임이 기껏해야 3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도 천렵질에 비유했다. 소위 아나운서 출신의 그가 말 때문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끝내려는 모양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친구 하나는 “병원 가서 엉덩이에 주사 맞을 때 말야, 간호사가 ‘엉덩이 힘 빼세요’ 하면 엉덩이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버린다구”라고 말했다. 쓰고 보니 이 말은 그다지 적절한 예시 같지는 않다. 하여간 힘 빼기의 기술은 미묘한 고급 기술이다." ('힘 빼기의 기술'  중에서)

 

김하나의 글에 비유하자면 민경욱 의원에게 "말에 힘 빼세요." 했더니 말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버린 형국이다. 그도 역시 힘을 빼는 미묘한 고급 기술은 배우지 못했던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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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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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담' 하면 역시 일본  출신의 작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기담집도 여러 권 존재하고 중국 기담집이나 기타 다른 나라의 기담집도 즐비하건만 이상하게도 '기담' 하면 일본 작가가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일본인들의 '기담' 사랑이 유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뜻 머리에 스치는 책만 하더라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이나 오노 후유미의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아사노 아쓰코의 <기담>, 아사베 다쿠의 <기담을 파는 가게> 등이 있다. 그리고 제목에는 기담이 빠져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금빛 눈의 고양이> 역시 기담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기담' 하면 일본의 이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야마시로 아사코. 2005년 괴담 전문지 <유幽>로 데뷔한 그는 기담 전문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별나고 괴상한 이야기들만 다루기보다는 설화에 나오는 신비한 소재들을 바탕으로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은 그의 재능이 잘 반영된 책이 <엠브리오 기담>이다. <엠브리오 기담>에는 표제작인 '엠브리오 기담'을 비롯하여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연작 기담집으로 작가는 책에서 항상 길을 잃는 이즈미 로안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여행과 공포를 대비시키고 있다.

 

"내가 로안의 여행에 동해하지 않게 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이즈미 로안은 길치였다. 그는 확실히 여행에 익숙했다. 지치지 않게 걸을 줄도 아는지 하루 종일 걸어도 기운이 넘쳤다. 하지만 백이면 백, 길을 잃는다." (p.13)

 

이즈미 로안은 그가 거래하는 의뢰처(책 집필을 의뢰한 상점)에서 여행 비용을 지원받아 길 안내서를 쓰기 위한 취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아직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훌륭한 효능을 지닌 온천이나 한 번쯤 볼 만한 사찰을 소개하기 위해 입소문만 들으면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오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와 몇 번인가 만나 말을 섞었을 때 그는 '나'(미미히코)에게 같이 여행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일자리가 궁하던 '나'는  로안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다.

 

로안과 함께 떠난 세 번째 여행지는 무릎 통증에 좋다는 온천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주나 걸려 도착한 장소였다. 그러나 온천은 없었고, 완전히 지친 몸으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서 로안 때문에 길을 잃었고, 갈 때는 지나지 않았던 이상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날이 저물어 여러 명이 공동으로 쓰는 큰 방에서 자게 되었다. 안개에 파묻혀 모든 게 희미했던 그 마을에서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산책에 나섰는데 개울가에서 우연히 무엇인가를 먹고 있는 개들을 보았고, 개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숙소로 가져오게 된다. 새벽녘에 눈을 뜬 로안은 내 손바닥에 얹힌 물건이 인간의 태아(엠브리오)라고 했다.

 

"인간의 태아지. 모른단 말인가? 인간은 갓난아이가 되기 전에 모친의 배 속에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네. 어제 나카조 산원産院이 있었던 걸 기억하는가? 나카조는 예로부터 낙태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지. 분명 그곳 의사가 여자 배 속에서 빼낸 태아를 근처에 버린 게야." (p.17)  

여행에 넌덜머리가 났던 '나'는 여행 세 번만에 로안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금세 죽을 줄 알았던 엠브리오는 예상을 깨고 꿈틀거리며 살아 있었고,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형제도 없었던 '나'는 엠브리오의 입가를 쌀뜨물을 묻힌 헝겊으로 축여 주기도 하고, 미지근한 물을 받아 씻겨 주는 등 애정을 갖고 돌보기 시작했다. 이즈미 로안과의 여행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나'는 노름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쉽게 돈을 잃고 말았다. 돈을 벌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던 '나'는 집 한구석에 암막을 치고 엠브리오를 감춰 놓은 뒤 사람들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엠브리오를 구경시켰다. 엠브리오를 보겠다는 관객은 끊이지 않았고, '나'는 큰돈을 벌게 되었지만 노름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지고 말았다. 노름꾼 우두머리로부터 빚 독촉을 받게 된 '나'는 엠브리오를 지키기 위해 도망갈 궁리를 하고 이즈미 로안에게서 비바람을 막을 도구를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이 녀석에게 지독한 짓을 했다. 내가 이 녀석에게 좋은 아버지였다면 어째서 이런 오밤중에 강가에 멍하니 서 있겠는가? 어째서 이 녀석에게 차가운 바깥바람을 맞히겠는가? 나는 태아를 손으로 감싼 채 지금까지의 행동을 되돌아보며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p.30)

 

로안은 '나'와 태아 단둘만의 여행을 반대했다. 얼어 죽기 십상이라는 이유였다. 대신에 그가 아는 사람 중에 아이를 원하는 부부가 있으니 '나'의 노름빚을 그들이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태아를 그들에게 넘기자고 제안했다. 태아를 가져간 부부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태아를 배 속에 넣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로안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다녀오던 중 갈림길에서 쉬고 있는데, 근처에 사는 아이들 무리가 지나갔고, 그들 무리 중 한 소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아이가 말하길, 예전에 소녀는 나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내 손바닥 위에서 잠들고, 밥그릇에 받은 미지근한 물로 목욕도 하고, 내 가슴에 딱 달라붙어 잠들면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소녀는 이제 갓 트인 말로 열심히 설명했다." (p.35)

 

'기담'이란 게 늘 그렇지만 때로는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에이, 말도 안 돼.'라는 생각과 함께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담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교훈도 은연중에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따금 '기담집'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이야기들을 현실에서 마주치는 까닭에, 때로는 '기담'보다 더 이상한 이야기들을 현실에서 전해 듣는 까닭에 '기담'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아닐까.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까닭도 사람들의 입과 입으로 '기담' 역시 끊이지 않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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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세상의 모든 책은 심리서적이다."라고 했더니 그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책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 날건달도 아니고 소위 책을 좀 읽는다는 놈이 어떻게 이런 무식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간 후 그도 다시 냉정을 되찾은 듯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 서둘러 말을 멈췄다. 적어도 친구에 대한 예의상 더 이상의 심한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래. 심지어 개인의 정서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과학서적도 말이야." 그는 여전히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내가 납득하거나 수긍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 봐. 밑도 끝도 없이 내뱉듯 툭 하고 던지지 말고." 하면서  의자의 등받이 쪽으로 허리를 젖혔다. 나와 조금 더 멀어짐으로써 사적인 친밀감에서 벗어나 일말의 객관성을 획득하려는 듯. "이를테면 내 생각은 책을 읽는 독자가 책을 처음 받아 드는 순간부터 명확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까닭에 모든 서적은 심리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야. 누구나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잖아. 내용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저자를 좋아해서일 수도 있고, 표지가 예뻐서일 수도 있고, 기술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을 수도 있고, 주변의 누군가로부터 추천을 받았을 수도 있고, 읽기는 싫지만 내일 당장 책의 내용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을 수도 있고, 아무튼 자신의 귀한 시간을 책 읽는 데 쓴다는 건 심리적으로 동해야 한다는 거지. 그러니 세상의 모든 서적은 심리서적이라고 해도 억지는 아니라는 얘기야. 예를 들면 전에 만났던 어떤 사람이 자기계발서를 읽고 나한테 책을 읽은 소감을 말했던 적이 있는데, 책의 내용보다는 다른 책과 비교해서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다고 한 시간 이상을 설명하는데 결국 그것은 그분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순전히 기분이겠지만, 심리적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기계발서뿐만이 아니야. 과학서적도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서 좋았다든가,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분야를 다루어줘서 좋았다든가 하는 심리적 문제로 연결되는 게 다반사이지."

 

한참을 듣고 있던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 같아. 이 자리에서 콕 집어 반박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하였다. '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다.'라고 썼던 데이비드 실즈의 명제가 독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넣는 것처럼 때로는 가까운 사람과 하나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된다. 논리적으로 맞든 그르든, 비약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화의 내용이 이전과 조금 달라짐으로써 우리는 분명 세상이 달라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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