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 심리학, 어른의 안부를 묻다
김혜남.박종석 지음 / 포르체 / 201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 전체에서 하나의 연령대를 콕 짚어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나는 왠지 40대를 생각할 때마다 시골집 마당에 놓인 고무대야를 떠올리게 된다. 건조한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너른 마당 한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고무대야는 주변 풍경에 적절히 녹아들지 못한 채 쓸쓸함만 더한다. 아마도 나는 40대를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절반을 돌아 반환점에 이른 40대는 30대의 연장선에 놓인 자연스러운 연령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별개의 연령대를 억지로 이어 붙인 듯한, 왠지 어색하고 툭 불거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나는 인생의 40대를 꽤나 불안한 연령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느 연령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비교 불가의 독특함이 있기에 40대는 그저 인생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김해남, 박종석 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쓴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으며 나는 내내 40대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두 명의 저자 역시 인생의 고비를 넘기는 불안한 연령대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우울은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 중의 하나다.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등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우울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우울은 인생을 살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좌절에 직면했을 때 이를 내적으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우울은 고통스럽지만 정상적인 우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우울감도 사라진다." (p.5 'Prologue' 중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의 감기와도 같다는 우울의 다양한 얼굴들을 설명하고 있다. 우울증, 조울증, 상실과 애도, 공황장애, 우울성 인격, 번아웃 증후군, 만성피로 증후군, 허언증, 현실 부정, 강박증, 불안장애, 무기력감, 자해, 화병, 섭식장애, 성공 후 우울증, 외로움 등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상처와 그 진단 방법을 설명함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공황장애를 흔히 '짐작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큰 공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섭다고 생각하면 더 무서운 것이 된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어르고 달래며 잘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발작이 온 그 순간에 호흡이나 자기 암시 등을 차분히 행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공황장애로 힘들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죽음이나 공포,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괜찮아질 거라는 긍정적인 믿음이다." (P.61)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빠르게 치료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치료를 끝까지 미루는 탓에 정신 질환으로 인한 범죄나 자살 등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극단적 선택을 뉴스로 읽을라치면 나는 마치 나 자신의 일인 양 마음이 무거워진다. '따지고 보면 사는 게 별것도 아닌데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건 도대체 무엇인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한숨이 터져 나온다.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었다네. 제대로 난 길을 몰랐기 때문이라네."라는 단테의 시 구절처럼 우울은 길을 잃은 상태와 비슷하다.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서 길을 잃고 두려움과 고통에 짓눌려 헤매고 있을 때, 우선은 그 어두운 안개 속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하다." (p.163)

 

우리는 이따금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마주칠 때 마치 자신이 전문가라도 되는 양 당사자의 의지 운운하면서 질환의 원인이 오직 당사자의 책임인 것처럼 의지박약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우울증은 가뜩이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좌절, 절망으로 아파하는 병인데 곁에서 치료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환자는 그야말로 물러날 곳이 없는 천 길 벼랑에 서는 꼴이 되고 만다. 예컨대 '우울증에는 밖에 나가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게 좋다.'는 식의 조언은 정말 도움은커녕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p.258)

 

우리가 주변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이를 잘 돌봐야 하는 이유는 당사자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목적도 있지만 정신질환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에게도 쉽게 전염된다는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선정한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열 가지 중에서 네 번째'를 차지한다는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희망의 끈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울과 건강하게 이별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작은 희망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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