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섣부른 욕심이나 과한 경쟁심이 앞서면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얻는 것은 물론 하고자 하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생각만 앞서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 누구나 한두 번의 경험이 있겠지만 어떤 운동이든지 운동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힘을 빼는 방법'인데 이게 어찌나 어려운지 대개는 힘을 빼는 방법만 배우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다. 힘을 빼는 요령도 터득하지 못한 채 말이다.

 

글쓰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강하면 생각은 경직되게 마련이고, 글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채 되는 대로 쓰겠다, 생각하면 기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기도 비슷하다. 회사의 프레젠테이션도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점점 더 굳어지게 마련이고, 달달 외웠던 발표문도 전혀 생각나지 않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마 말은 글과 달라서 말을 매끄럽게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흠이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을 맺는 정치인이나 목회자, 아나운서 등은 자신이 했던 말로 이득을 보기보다는 말 때문에 화를 입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나의 여동생이 모 방송국의 보도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던 터라 아나운서와 기자들의 세계를 조금은 알고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권력층이나 부유층과 접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도 역시 권력지향적 인간이 되거나 오히려 그와 같은 모습을 보는 것조차 싫어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두 부류로 나뉘는 듯하다. 대표적인 권력지향적 인간형으로 민경욱이나 한선교를 들 수 있겠다. 권력자에게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약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인간형. 권력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어떠한 말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간성. 그들은 생각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늘 자신의 욕심이 앞서는 까닭에 듣는 이의 고충은 배려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소식을 전하면서도 웃는 낯이었고, 고성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대통령이 북한과 협의해 진화를 지시했다며 빨갱이라고 하는가 하면 헝가리 유람선 사고 때도 골든 타임이 기껏해야 3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도 천렵질에 비유했다. 소위 아나운서 출신의 그가 말 때문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끝내려는 모양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에세이 <힘 빼기의 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친구 하나는 “병원 가서 엉덩이에 주사 맞을 때 말야, 간호사가 ‘엉덩이 힘 빼세요’ 하면 엉덩이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버린다구”라고 말했다. 쓰고 보니 이 말은 그다지 적절한 예시 같지는 않다. 하여간 힘 빼기의 기술은 미묘한 고급 기술이다." ('힘 빼기의 기술'  중에서)

 

김하나의 글에 비유하자면 민경욱 의원에게 "말에 힘 빼세요." 했더니 말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버린 형국이다. 그도 역시 힘을 빼는 미묘한 고급 기술은 배우지 못했던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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