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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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소설 <레몬>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떤 룰처럼 존재해왔던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비교적 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이 세상에 대해 순수한 믿음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구나 아름답다는 이유로, 남들처럼 영악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쉽게 정복되거나 사회로부터 강제 퇴출되는 이러한 현실이 과연 정당한 것이냐고 작가는 묻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해언을 통해서 말이다. 월드컵 열기가 전국을 강타하던 2002년 여름, 당시 열아홉 살이던 해언이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같은 반 친구였던 상희의 눈에 비친 해언은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그렇지만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순진한 소녀였다. 사인은 두부 손상에 의한 죽음. 그러나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17년이 흘렀다.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 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p.179)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던 아빠가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해언은 '무심하고 냉담하고 말도 없고 웃지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소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는다는 이유로 엄마로부터 여러 번의 지적과 꾸지람을 받으면서도 해언은 자신을 지키는 것에 무심한 아이였다. 그런 해언을 곁에서 지켰던 건 동생 다언이었다. 여섯 살부터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고 언니의 옷차림을 신경 쓰는 등 해언에게는 마치 언니인 듯한 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서울로 이사를 온 상희의 눈에 비친 해언은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지닌 친구였고, 해언과 상희가 고3이었을을 때 같은 학교에 입학한 다언은 언니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데다 매사에 싹싹하고 야무졌으며 무엇보다 전교에서 제일 자주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였다. 상희와 같이 문예반 활동을 하던 다언을 대학 교정에서 우연히 만났다. 성형수술을 하여 모든 게 어색하게 변한 비쩍 마른 다언을.

 

"언니는 자기 신체의 아름다움을 우연히 해변에서 주운 예쁘장한 자갈 정도로 취급했다. 사람들에게 내보였을 때 유리한 점이 많다는 건 알았기에 때로 그것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외모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몰랐다. 진주와 자갈의 차이를 모르는 어린애처럼 언니는 무심하고 무욕했다." (p.78)

 

소설은 당시 사건을 한순간도 잊지 못하는 다언의 상상 속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한만우를 담당 형사가 취조하는 장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만우는 신정준이 운전하던 차에 동승한 해언을 목격했던 인물. 그러나 그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동승했던 윤태림이 있었다. 상희와 같은 반이었던 윤태림은 해언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위태로운 예쁨'을 지닌 인물이었다. 운전에만 몰두했던 한만우는 윤태림으로부터 목격 장면을 전해들었고 형사에게 그대로 증언했다. 반면 해언을 자신의 차에 태웠던 신정준은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고 사건은 그렇게 미제로 남았다. 그러나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엄마와 나는 순식간에 추락했다. 엄마는 다니던 숍을 그만두었고 나는 학교를 휴학했다. 우리는 며칠씩 잠만 자거나 며칠씩 잠을 못 잤다. 먹는 것을 잊었고 씻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떻게든 위로 기어올라가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오랫동안 우물 같은 축축한 어둠 속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 (p.72)

 

사건의 용의자였던 한만우와 신정준도 학교를 떠났다. 신정준은 유학길에 올랐고, 한만우는 학교를 자퇴한 후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다 군에 입대한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채 살해되었던 해언. 해언을 잃고 상실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다언은 어느 날 배가 고파 삶은 달걀을 먹다가 계란의 노른자를 보면서 주요 용의자였던 한만우를 찾아갈 결심을 한다. 군에서 앓게 된 골육종으로 의가사 제대를 한 한만우와 난쟁이 병을 앓고 있는 한만우의 여동생. 그리고 한만우의 여동생이 만들어준 계란프라이에서 보았던 애틋한 노란빛. 다언은 한만우로부터 들었던 당시의 상황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데...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상에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또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는 그렇게 한 사람의 죽음을 외면하거나 전혀 모르는 채 사는 까닭에, 또는 세상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게 돌아간다는 이유로 우리는 종종 죽음의 무게를 과소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죽은 자가 살았던 시공간의 영역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조금 뒤틀리고, 때로는 미세한 틈을 만들고, 산 자로 하여금 어제와 달라진 오늘을 살게 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조그맣게 속살거리거나 장난을 쳤다. 그러다보면 웃음소리가 높아지거나 고함을 지르게도 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웃음과 고함의 파문은 널리 퍼져나가는 대신 그대로 응결되어버렸다. 웃거나 고함을 치던 아이가 소리를 뚝 그치는 순간 기분 나쁜 정적이 교실 전체에 무겁게 드리웠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혔고 교실은 진공관처럼 조용해졌다. 이상한 우울과 불쾌가 우리의 미간을 둔중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p.57)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로 시작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문득 떠오르는 오후. 작가 권여선은 자신의 소설 <레몬>을 통해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약자를 극단적인 죽음으로 내모는 작금의 현실 또한 작가의 눈에는 결코 정당하게 보이지 않았을 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단지 세상에 대해 무력하거나 순진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놀잇감이 되고, 종국에는 세상으로부터 축출되거나 격리된다는 건 부당하지 않은가, 작가는 다언의 입을 통해 항의하고 있다. 그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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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를 달구었던 깜짝 이벤트는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느껴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제안에 의해 촉발된 남.북.미 3국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깊지만 교착상태에 놓여 있던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어찌 보면 즉흥적이면서도 쇼맨십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 정세파악을 잘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저돌적 실천의지가 맞아떨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퍼포먼스가 아니었던가.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은 그 장면을 보고 다들 가슴이 뭉클했을 듯싶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일부 극우세력이 존재하긴 했었지만 말이다. 어느 나라건 아베와 같은 또라이들은 늘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장마가 소강상태인지라 여름 더위가 그대로 느껴진다. 높아진 습도와 열기를 더하는 7월의 햇살. 지난해에 비해 장마가 늦어진 탓에 열대야와 찜통 더위의 습격은 조금 짧아질 거라는 기대와 가능성은 있지만 여름 더위는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 공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공포는 언제든 되살아나는 것처럼, 그리고 삶의 공포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요즘 읽고 있는 권여선의 소설 <레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어쩌다 보니 삶과 죽음에 관련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정말 어쩌다 보니.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권여선의 <레몬>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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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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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공간'은 자신만의 은밀한 추억을 떠올리는 장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는, sns를 타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그리고 그 장소에 대한 찬사가 쏟아짐으로써 내가 오히려 으쓱해지는, 남들에게 보여주는 어떤 것인 동시에 '나는 이런 곳도 다녀왔다'는 시각적인 과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공간'은 단순히 사물을 배치하고 사용하는 데 얼마나 실용적인가를 따지는 차원을 넘어 방문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주인이 요구하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고 실시간으로 sns에 공유되는 취향의 대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의 좋은 공간은 실용성과 더불어 시각적인 미와 감성을 덧입힌, 그 자체로서 브랜드가 되는 새로운 의미로 진화하고 있다.

 

"책에서는 공간 디자인 항목을 크게 3가지로 구분했습니다. 1장에서는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영역인 시각적 요소, 즉 보이는 요소들에 대해 점검하고자 합니다. 2장에서는 시각적 요소를 제외한 감각들, 즉 보이지 않는 요소들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이는 소비자들의 심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항목으로 공간에 대한 이미지는 물론 판매와 재방문에도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꾸준히 진화하고 사랑받는 매장들을 사례로 공간 자체가 브랜드가 된 이곳들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p.15 '이 책을 읽기 전에' 중에서)

 

20년 경력의 베테랑 공간기획자인 이경미, 정은아 VMD(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에 의해 쓰인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는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트렌드를 읽고 그에 맞는 콘셉트 설정,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의 소소한 디테일까지 정교하게 공간에 녹여내는 '공간 브랜딩' 노하우의 A to Z이다. 단순히 업종이나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인테리어 수준이 아니라, 입지, 외관, 진열, 조명, 동선, 촉감, 냄새, 소리, 온도, 소품, 포장, 스태프의 애티튜드에 이르기까지 추구하는 콘셉트와 메시지를 공간 전체에 불어넣음으로써 방문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의 손길이 되는 것이다.

 

"공간에서는 아주 작은 소품 하나가 마지막 인상을 결정짓습니다. 제가 아주 예전에 방문했던 일본의 한 작은 중고서점 입구 테이블에는 작은 명함 도장과 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덕분에 그곳의 잔상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작은 매장을 둘러보고 나가면서 그곳의 명함 도장을 직접 종이에 찍어 가지고 나가니 그곳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함께 공간이 저를 배웅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p.89)

 

우리는 이따금 자신이 방문했던 공간에서 받았던 작은 배려로 인해 큰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인 듯 느껴질지 몰라도 당사자는 자신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감동으로 인해 공간에 대한 기억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기회가 되면 또 다른 방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혼밥족의 증가와 1인 미디어의 활성화에 힘입어 공간은 심리적 요소와 소비자를 배려하는 서비스 디자인 영역이 더해짐으로써 공간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는 추세이다.

 

"운영하는 공간 안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팝업스토어의 형태는 공간 전체에 큰 변화를 줘서 쇼룸의 형태로 만들고, 전시회처럼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판매하는 상품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서 홍보하거나 신상품을 런칭할 때 효과적입니다. 동선이나 상품의 위치를 바꿔 새로운 공간을 연출하고 외부까지 크게 변화시켜 임팩트 있게 만든다면 소비자의 궁금증을 유발해 그들을 공간으로 들어오도록 유인할 수 있습니다." (p.184)

 

저자는 제대로 된 취향 저격의 공간을 3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서점의 재부흥과 함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성공 사례로 잘 알려진 '츠타야 TSUTAYA', 뉴트로 감성을 콘셉트로 최근 핫 플레이스로 부상한 익선동과 을지로 거리, 업사이클링 콘셉트의 '대림창고', 넥타이를 만드는 공장에서 전시 공간, 카페로 재탄생한 '스파치오 로사나 올란디',청춘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 브랜드로 성장한 '하우스 오브 반스' 등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감성과 실용성을 더한, 때로는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공간은 그 자체로서 브랜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공간을 둘러보곤 한다. 그곳은 지금 농산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지어져 그리운 고향집은 찾을 길이 없지만 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 속의 그 집을 만나곤 한다. 싸리비로 마당을 싸악 싸악 쓸고 나면 드러나던 뽀얀 속살과 마당가로 피어나던 붉은 맨드라미. 사립문을 밀치고 헐레벌떡 마당 안으로 뛰어들던 형과 누나들. 공간은 이처럼 우리의 눈에 남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 것이며 세월도 지울 수 없는 불멸의 흔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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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슬쩍 미뤄놓았던 일들도 막상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역시 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 한껏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일을 미루는 것으로도 모자라 없던 일을 새로 더 만들기도 하는데 이러다 보면 더 이상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야말로 일이 목까지 차오르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제야 물밀듯 후회가 밀려온다. '좀 더 일찍 몇 가지만이라도 처리를 해 놓을걸...' 하는 생각과 함께 발등에 떨어진 불을 어찌 끌 수 있을까 방법을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 마땅하지만 게으름은 삶에 대한 의욕의 저하일 뿐 나이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듯 보인다. 다음주부터 기말고사를 치러야하는 아들도 시험공부를 마냥 미루기만 하다가 지난 월요일부터 부족한 공부를 겨우 시작하더니 결국 피곤에 지쳤는지 어제는 일찍 자겠다고 깜짝 선언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서. 나는 무리한 공부보다 컨디션 조절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물론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일찍 자는 걸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김희경이 쓴 <이상한 정상가족>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사회가 함께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 없이, 남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불안으로 모두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놀지도 못한 채 일찌감치 떨려나거나 부모의 소망은 충족시켰을지언정 자기 인생을 위해서는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맘껏 놀며 자기 속도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힘껏 가보라고 격려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가 그토록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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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6-29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입니다. 이상한 정상가족 읽고 싶은 책으로 찜합니다^^

꼼쥐 2019-06-29 17:48   좋아요 0 | URL
저자는 아동 학대도 일종의 폭력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닌가 싶어요.
 
위즈덤 - 오프라 윈프리, 세기의 지성에게 삶의 길을 묻다
오프라 윈프리 지음, 노혜숙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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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어떤 방송매체를 보거나 들어야 한다면 TV보다는 라디오가 편하다. 그렇다고 라디오를 자주 듣는 열혈 청취자는 아니지만 라디오는 TV와는 다르게 종속되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다. 라디오를 틀어놓은 상태에서는 책을 읽거나 방청소를 하는 등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할 수 있지만 TV는 그럴 수가 없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매만지고 있을 때도 그런 느낌을 종종 받곤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지나온 삶을 돌이켜볼 때 전체 삶 중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던 게 과연 몇 퍼센트나 될지 생각하면 괜히 우울해지기도 한다. 라디오나 TV의 종속도 뿌리치지 못하는 인간이 운명으로부터의 자유를 성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만 이따금 그런 생각에 빠져들 때면 내가 마치 운명의 마리오네트가 된 느낌이랄까, 아무튼.

 

오프라 윈프리의 <위즈덤>을 읽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프라 윈프리 자신이 제작한 <슈퍼 소울 선데이> 프로그램에서 받았던 감동적인 영적 교훈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위즈덤>은 영적 스승으로 불리는 틱낫한, 파울로 코엘료, 엘리자베스 길버트, 잭 켄필드, 하워드 슐츠 등 사회에서 존경받는 명사 80명이 오프라 윈프리와 이야기하며 풀어놓은 그들의 깨달음과 삶의 지침들을 빼곡히 기록한 책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음 깊이 와 닿았던 말들을 작은 노트에 기록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책에 담았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가 뽑은 키워드는 '깨어 있음', '의도', '마음챙김', '영혼의 GPS', '자아', '용서', '내면에서 문이 열리다', '은총과 감사', '성취', '사랑과 연결'의 10개에 불과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는 각각의 키워드에 적절한 명사들의 사상이나 깨우침을 담기 위해 꽤나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녀가 찍은 사진과 글의 조화를 무척이나 까다롭게 고려한 듯 사진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인해 글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배가 되는 듯하다.

 

"침묵도 기도가 될 수 있죠. 분노도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모두 기도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뭔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p.82 '앤 라모트')

 

 삶의 지혜는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는 것이지 새로운 것을 아는 데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삶에서 어떤 것을 실천하고자 할 때 그것은 신념이나 믿음을 전제로 하며, 처음 또는 그 과정에서 용기와 열정도 필요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조화를 위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랑과 용서의 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실천은 삶의 전부이자 처음과 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을 충만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지혜로운 말들은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영적 여행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 손의 지문처럼 유일무이하다." (p.257 '에필로그' 중에서)

 

오프라 윈프리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왔던 것들을 명사들에게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자신이 했던 질문과 함께 10개의 키워드로 분류하여 묶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오프라 윈프리 역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에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독자들도 쉽게 깨달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곧 '영성이 영성을 알라보고 공명'하는 순간이며 '궁극적인 '아하'의 순간'인 셈이다. 오프라 윈프리가 말하는 '공명'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의 탐구에 있어서는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시기와 장소, 배움의 대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지혜는 단지 머릿속의 지식으로 그칠 뿐 실생활에 필요한 지혜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삶의 지침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위즈덤>과 같은 잠언집이기에 그 많은 깨우침을 모두 다 내 것으로 전환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반이면 어떻고, 단 하나의 깨우침인들 어떠랴. 마음에 와 닿지 않은 것은 다만 인연이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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