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의사
포프 브록 지음, 조은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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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4일 밤 어느 방송국의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피부과 의사 행세를 해온 연극배우의 실체를 파헤쳤다. 출연했던 작품만 40여 편에 달하는 중견 배우였던 홍 씨는 직접 극본을 쓸 만큼 재능이 많았던 사람인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가 사람들은 그가 필리핀에 가서 공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후 홍 씨는 레이저기 납품업체 직원들을 졸라 작동법을 배워 근무했던 병원의 의사 몰래 불법 시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의료기기의 작동법을 배운 홍 씨는 불법 시술을 넘어 피부과를 개업하기에 이른다. 병원이나 의원은 의사만 개업할 수 있지만 의료생협은 의사만 고용하면 일반인도 개업할 수 있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2016년 부산에서 병원을 개업한 홍 씨는 원장 행세를 하면서 다수의 환자에게 무면허 의료 시술을 했다는 게 골자였다. 이날 방송에서는 그로부터 시술을 받고 부작용에 시달리는 피해자들도 등장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도 쉽게 알 수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걸까?  그것은 아마도 더욱 젊고 예뻐지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구를 어느 사기꾼이 교묘히 파고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두들겨보는 돌다리의 숫자도 적을 뿐 아니라 숫제 점검도 없이 사기꾼의 말 한마디에 쉽게 넘어간 피해자도 다수일 터, 과학이나 제도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여러 욕구가 존재하는 한 그 욕구를 이용하여 다른 계획을 획책하거나 도모하려는 사기꾼은 언제든 발호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기 행각이 있었다. 피해 규모로 본다면 홍 씨는 뻔뻔한 사기극의 주인공 '존 R. 브링클리'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대중의 탐욕을 그 표적으로 삼았던 것과 연기와 언변이 탁월했던 점은 유사하다.

 

"물론 의료 사기는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나 번성했었다. 대부분의 사기가 탐욕을 표적으로 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의료 사기는 칼 융의 명제인 '죽음에 대한 공포와 기적에 대한 갈망'을 깊숙이 파고든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대체로 바보가 된다." (p.23)

 

논픽션 작품의 대가 포프 브록이 쓴 <돌팔이 의사>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는 아니겠지만 시신의 숫자로 따지면 결선까지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의료 사기를 저지른 천재 악마 '존 R. 브링클리'와 그를 끝까지 뒤쫓은 '피시바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브링클리는 시들어가는 정력을 회복시켜주겠다며 염소의 고환을 제거해 사람의 음낭에 넣는 외과수술을 시행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염소 고환 이식술을 통해 발기부전 치료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그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듣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자가 되었다. 당시 미국 의사들 수입이 7,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었는데 그는 자그마치 1,2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는 단순히 의료 사기꾼에서 그치지 않았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뛰어났던 그는 광고를 위해 라디오 방송국과 송전탑을 짓고, 컨트리 뮤직을 처음으로 라디오에 도입하기도 하였다. 브링클리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의학적인 조언을 함으로써 수많은 가정을 병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염소 고환 이식술을 통해 많은 남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그는 주지사에 출마하기도 했다.

 

"'돈을 벌기 위한 계산'과 '자신을 신과 혼동하는 사고'가 섞인 브링클리의 특이한 기독교관에는 반유대주의 요소가 늘 도사렸다. 브링클리는 1932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위치타의 목사였던 제럴드 B. 윈로드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대부분의 국제문제가 유대인 음모론이라 지적했고, '전통적이고 신을 두려워하며 자녀를 둔 미국인들'만을 축복해주었다. 암울했던 1930년대에 유럽에서 파시즘이 폭발하자,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상들이 마치 배수관의 뱀처럼 출몰했다." (p.325)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모든 게 어리석고 황당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회춘도 좋지만 염소의 고환을 자신의 음낭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게 말이나 돼?'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도 현재의 상식과 기준에서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 의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당시의 의학적 수준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시술법을 개발했다고 한다면 그의 말에 반문을 제기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게다가 죽음에 대한 인간의 숙명적인 공포를 완화하기 위한 자구책이 될 수도 있는 회춘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더해진다면 그 믿음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예뻐질 수 있다고 광고를 하면 면허도 없는 가짜 의사에게 수천 명이 달려드는 판이니... 인간의 탐욕을 파고드는 사기꾼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회춘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탐욕도... 사기꾼에게 속지 않는 비결은 자기 스스로에게 언제나 '나의 탐욕은 안전한가?'라고 묻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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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가깝게 지내는 친구 한 명이 있다. 그의 야구 사랑이 어찌나 크고 열정적이던지 야구 경기가 시작되는 봄서부터 가을까지 응원팀을 따라 전국을 돌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가장이 빠진 그의 식당은 온전히 아내의 부담으로 지워졌고, 아이들을 돌보며 식당 운영까지 도맡아야 하는 그의 아내는 잠시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따금 지나는 길에 들러 보면 바빠서 겨우 눈인사만 건넬 뿐 도무지 짬을 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친구는 아내의 무던한 성격 덕분에 꿋꿋하게 응원을 다니곤 했는데 오죽하면 친구들이 원정 응원은 좀 심한 게 아니냐고 질책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그렇게 야구라면 죽고 못 살던 친구가 최근에는 야구와 완전히 담을 쌓고 지내는 게 아닌가. 물론 그 사실을 제일 반긴 사람은 그의 아내가 되겠지만 친구들 역시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그의 아내 앞에서는 괜스레 죄인 된 느낌을 받곤 하던 게 일거에 사라졌으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완전히 변한 게 아닐지도 모르니 조금 더 두고 보자는 다른 친구들의 제안도 있고 해서 꾸준히 지켜보았던 바 야구장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애들도 커가는데 유일한 낙이었던 야구마저 손을 끊었으니 얼마나 허전할까 싶어 어제는 친구들 몇몇이 모여 점심을 같이 먹었다. 말하자면 위로 점심이라고나 할까.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식당을 들어서는 친구에게 다들 위로의 말을 한마디씩 던지는데 친구는 이렇다 저렇다 대꾸도 없이 빈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허겁지겁 달려드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깨작거리며 겨우 젓가락질을 하는 친구에게 "너 야구 끊으니까 제수씨가 맛있는 걸 많이 해줬나보다. 음식을 앞에 두고 그렇게 깨작거리는 걸 보니." 하고 농을 던져도 특별히 대꾸가 없었다. 식사가 거의 마무리될 즈음 친구는 갑자기 자신이 응원하던 팀에 대한 디스를 시작했다. 그가 오래전부터 응원하던 팀은 한화 이글스였는데 야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들도 한화의 성적이 리그 최하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친구는 우리나라 야구도 성적이 안 나오는 팀은 2부 리그로 강등을 하는 게 옳다며 그런 아마추어 수준의 실력으로 관중들의 돈을 받고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한껏 열을 올렸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바쁜 일이 있다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바빴다. 친구는 롯데와 한화는 2부 리그도 모자라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못을 박았다. 야구 문외한인 우리들은 그저 그러려니 입을 닫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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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7-25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화...답답하긴해요ㅠ

꼼쥐 2019-07-26 12:01   좋아요 0 | URL
친구의 말에 의하면 타자가 삼진을 당하고도 씩씩 웃거나 투수가 홈런을 맞고도 웃는 등 한화의 선수들은 열정과 오기가 없는 듯하다고 하더군요. 그게 제일 화가 난다고.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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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매번 감사와 칭찬의 말로 되갚아지는 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서, 또는 남들이 모르는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하는 행동으로 오해받을 때도 더러 있고, 그보다 더 큰 루머나 험담 수준의 말을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동기의 순수성이나 열성을 의심받게 되는 것인데 오해를 받는 당사자는 속마음을 까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 되고 만다. 사람 사는 곳이니 그만한 오해는 참고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더 큰 오해를 살지라도 억울한 건 낱낱이 드러내고 풀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러한 판단이 쉽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임솔아의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는 표제작을 포함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단연 표제작인 '눈과 사람과 눈사람'인데, 소설에 등장하는 나와 영혜, 지원, 민조, 규미는 우연한 기회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가 생각지도 못한 오해와 불신을 받게 된다. 그 시작은 이랬다. 재작년 가을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나래씨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처럼 공감 버튼을 누르고 '연대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기곤 했는데, 어느 날 자신이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는 호소와 함께 누구라도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는 나래씨의 요청 글에 죄책감을 느낀 사람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고소 위협을 받는 사람도 있었고,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연대에도 자격이 있겠지요. 우리에겐 그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봤어요. 나래씨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앞장서서 싸워왔어요. 나래씨는 피해자들의 싸움에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족속을 보듯이 우리를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요?" (p.183)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에 동참하면서부터 진천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게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지원은 산책을 할 겨를이 없어졌고, 영혜는 십 년 넘게 키워온 화분들을 죽였고, 규미는 삼 개월 동안 이삿짐을 풀지 못했고, 아토피를 앓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민조는 아이가 불안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 중 한 명이 자살 시도를 했을 때 영혜가 백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카드로 결제했을 때 인터넷에서는 영혜가 으스대며 카드를 내밀었다는 둥 거액을 쉽게 결제하는 모습에서 없는 자의 소외감을 느꼈다는 둥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일도 있는 자들이 차지한다는 둥 여러 안 좋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그 모든 피해를 속절없이 견딜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받은 피해를 속속들이 밝히면 그것을 빌미로 성폭력 가해자들의 공격이 이어질 수도 있는 까닭에.

 

소설에는 새해 첫날을 낀 연휴 동안 지원이 사는 진천으로 여행을 가는 내용이 그려진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민조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나와 영혜, 규미 그리고 지원은 각자의 노트북을 통해 영상 채팅을 한다. 나래씨의 블로그에 올라온 입장문은 연대하는 사람들로부터 피해자가 착취당하고 이용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입장문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나와 영혜, 지원, 규미, 지원이었다. 그들이 모인 목적은 이 일에 대해 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모으다보면 글로 정리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일수록 항상 그 현장에는 자기 밥그릇을 채우려는 은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재래시장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떠나가는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조금씩 마음을 보태는 사람부터 현장에 상주하며 함께 싸우는 연대자, 그리고 피해 당사자까지, 이 모든 이들이 백 퍼센트 순결하지 않은 경우를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p.194~p.195)

 

우리는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난민이나 성폭력 피해자 연대에서... 그런 오해와 불신, 갈등과 법적 다툼에 의해 연대는 깨지게 마련이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만 남는다.

 

"한 사람이 뭉친 눈에 다른 사람이 뭉친 눈을 더했다. 쪼그려앉아 눈덩이를 굴렸다. 두 손으로 눈덩이를 토닥이고 다시 굴렸다. 넷이서 눈덩이를 들어올렸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덩이 위에 우리가 만든 눈덩이를 올려놓았다. 영혜가 눈밭에서 솔방울을 찾아왔다. 지원은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나와 규미는 돌멩이를 찾아왔다. 이목구비를 만들고 두 팔을 만들었다." (p.199)

 

소설의 마지막엔 네 주인공이 눈사람을 만드는 장면이 그려진다. 약한 사람들의 연대는 결국 흩어진 눈송이를 모으고 손으로 다진 작은 눈덩이를 굴려 더 큰 눈덩이를 만들어 눈사람으로 세우는 일과 같다는 것을 일깨운다. 약한 자들의 바람막이가 되기 위한 연대가 오히려 서로 간의 불신과 반목 속에서 쉽게 깨지는 경험이 반복되면 될수록 연대의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진다는 이치를 작가는 독자에게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연대와 지지를 결코 철회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태곳적부터 이어져온 연대의 DNA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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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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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기본적으로 이상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작가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이상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고, 특별한 삶을 살았거나 지금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열심히 만나거나, 찾아내거나 또는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으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겠다. 작가로서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면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남들과 다른 독특한 시선이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연예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우리가 자주 읽는 문학 작품은 대개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편적이거나 평범한 삶은 문학의 객체로서 흥행 가치가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우리의 삶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있는 대부분을 그들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어느 것 하나가 특별하다거나 이상할 뿐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모든 걸 아우른 채 보너스처럼 하나가 더 첨가된 것일 뿐 보편의 부재는 전혀 아니다. 결국 문학가가 된다는 건 평범 너머의 다른 하나를 취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남들 다 하는 건 뭐든 빼놓지 않고 겪어봤음은 물론 웬만한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했던 일도 무엇 하나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비로소 문학가로서의 자격을 갖춘 셈이 된다.

 

"어릴 때도 잡지에 심리테스트, 성격테스트만 나오면 질문들 옆에 빈 네모칸에 체크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요즘도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올린 테스트 결과가 뉴스피드에 줄줄이 올라오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손가락이 움찔거린다. 좋아하는 색깔로 내 성격을 알려주고, 몇 가지 질문에 답만 하면 좌뇌형인지 우뇌형인지 알 수 있고, 내게 맞는 남자친구 유형을 알 수 있고, 내가 살 만한 세계도시를 골라준다니!" (p.27)

 

문소영의 에세이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작가의 특별한 이력과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는 산문집이다. 자신을 한없이 게으른 인간이라 말하면서도 나름 완벽주의 성향 탓에 괴롭다는 작가는 '미술 작품에서, 또 영화, 웹툰, 광고, 길거리 디자인을 비롯한 모든 시각 문화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그리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다는 특이한 이력도 문학가로서의 자격에 신뢰를 더한다.

 

"생각해 보면 비교적 일찍부터 주변에서 예기치 않은 죽음을 여러 번 봐왔다. 대학교 때 동기 두 명이 각각 교통사고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고, 교수님 한 분도 심장마비로 요절했다. 그때 그분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적었다는 걸, 그리고 그땐 내가 어른인 줄 알았는데 지금 대학생들을 보니 병아리들로 보인다는 걸 떠올리면, 채 다 피지도 못하고 가지에서 떨어진 그들의 젊음에 새삼 가슴이 서늘하고 아릿해진다. 몇 년 전에는 신문사 선배 두 분이 두 주 간격으로 각각 불의의 사고와 지병으로 별세해 모두들 혼이 반쯤 나갔던 일도 있다." (P.277)

 

작가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동안 읽고 보아 왔던 책, 영화, 그림, 사진, 도자기 등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려서 자신만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40여 편의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1부 '게으르게', 2부 '불편하게', 3부'엉뚱하게', 4부 '자유롭게', 5부 '광대하게', 6부 '행복하게'라는 부제도 재미있다. 출산율 최하위 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싱글 여성으로서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해법이 불편하기도 하고, '계속 끄적거리라'는 프랭크 매코트의 명언이 무기력하게 게으른 자신에게는 서늘하고 무거운 충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행복 경쟁'을 하다 보면 '왜 행복해야 하나?'라는 질문까지 나오게 된다는 작가.

 

문소영 작가의 에세이는 자유분방한 작가의 성격이나 본성대로 살고 싶어 하는 작가의 꿈이 글에서 묻어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꿈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 이를테면 관습이나 주변 환경에서 오는 장애물 등에 대한 작가 자신의 불편한 심기들도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들 각자의 현실이 그리 녹녹지 않으며, 매번 그런 현실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마음속 구호를 힘차게 외치면서 말이다.

 

오늘 보았던 어느 신문의 기사에는 '밥 한 번 편하게 먹자'라는 문구로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동에게는 식사 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어느 파스타 가게의 훈훈한 소식과 함께 그의 선행이 SNS를 비롯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선한 영향력에 동참하고자 하는 식당, 극장, 카페, 학원 등 다양한 업종의 업체가 결식아동에게 식사나 음료를 제공하고 공연 할인이나 무료 수강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연락해왔다는 소식이 실렸었다. 우리가 읽는 신문이 매일 이런 기사들로 넘쳐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끔찍한 사건 사고에 진저리를 치다가도 이따금 읽게 되는 이와 같은 따뜻한 소식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 게 아닐까. 문소영의 에세이와 우연히 읽은 어느 신문 기사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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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끄물끄물합니다. 높아진 습도 탓인지 한여름 무더위가 몸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풍 다나스가 한반도를 관통하지 않고 해상에서 소멸했다는 것일 테지요. 이런 우중충한 날씨에도 모 정당의 정신 나간 사람들은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설치했나 봅니다. 시민들의 원성과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그들이라고 못 들을 리 만무할 텐데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거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연예인 같으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죠.

 

낮에 지인 몇 명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대화는 역시 아베의 경제 전쟁과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주였습니다. 그중에는 4월에 예약했던 일본 여행을 최근에 취소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일본 제품은 가급적 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만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 하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역시 타격을 받지 않을까 다들 우려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방 후 우리 스스로 청산하지 못했던 친일 잔재를 아베로 인해 조금씩 청산하고 있다는 것과 그동안 잊고 지냈던 '애국심'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하면서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기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게다가 친일파의 후손들 역시 자신들이 취해야 할 스탠스가 애매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일본과 아베를 옹호하자니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내쳐질 것 같고, 일본에 대해 욕을 하자니 자신의 선조를 욕하는 것 같아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주변에서는 어차피 한 번은 터질 일이 터졌다고들 말합니다.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가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는 거죠. 그게 지금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경제는 조금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총선에서는 친일파의 후손이나 '토착 왜구'로 지칭되는 지일파를 뽑지는 않을 테고, 대일 의존도가 높았던 부품 소재 산업에 대한 자생력도 높아짐으로써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거라는 전망입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나 위기를 통해 단합하고 그 단결된 힘으로 국가를 발전시켜 왔으니까 말이죠.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비가 개고 'KBO 리그 올스타전'이 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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