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문학은 기본적으로 이상하거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작가 자신이 남들과 다른 이상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고, 특별한 삶을 살았거나 지금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열심히 만나거나, 찾아내거나 또는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으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할 수도 있겠다. 작가로서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면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남들과 다른 독특한 시선이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연예인이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우리가 자주 읽는 문학 작품은 대개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편적이거나 평범한 삶은 문학의 객체로서 흥행 가치가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우리의 삶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있는 대부분을 그들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어느 것 하나가 특별하다거나 이상할 뿐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이상하다거나 특별하다는 건 모든 걸 아우른 채 보너스처럼 하나가 더 첨가된 것일 뿐 보편의 부재는 전혀 아니다. 결국 문학가가 된다는 건 평범 너머의 다른 하나를 취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남들 다 하는 건 뭐든 빼놓지 않고 겪어봤음은 물론 웬만한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했던 일도 무엇 하나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비로소 문학가로서의 자격을 갖춘 셈이 된다.
"어릴 때도 잡지에 심리테스트, 성격테스트만 나오면 질문들 옆에 빈 네모칸에 체크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요즘도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올린 테스트 결과가 뉴스피드에 줄줄이 올라오면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손가락이 움찔거린다. 좋아하는 색깔로 내 성격을 알려주고, 몇 가지 질문에 답만 하면 좌뇌형인지 우뇌형인지 알 수 있고, 내게 맞는 남자친구 유형을 알 수 있고, 내가 살 만한 세계도시를 골라준다니!" (p.27)
문소영의 에세이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작가의 특별한 이력과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는 산문집이다. 자신을 한없이 게으른 인간이라 말하면서도 나름 완벽주의 성향 탓에 괴롭다는 작가는 '미술 작품에서, 또 영화, 웹툰, 광고, 길거리 디자인을 비롯한 모든 시각 문화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그리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다는 특이한 이력도 문학가로서의 자격에 신뢰를 더한다.
"생각해 보면 비교적 일찍부터 주변에서 예기치 않은 죽음을 여러 번 봐왔다. 대학교 때 동기 두 명이 각각 교통사고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고, 교수님 한 분도 심장마비로 요절했다. 그때 그분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적었다는 걸, 그리고 그땐 내가 어른인 줄 알았는데 지금 대학생들을 보니 병아리들로 보인다는 걸 떠올리면, 채 다 피지도 못하고 가지에서 떨어진 그들의 젊음에 새삼 가슴이 서늘하고 아릿해진다. 몇 년 전에는 신문사 선배 두 분이 두 주 간격으로 각각 불의의 사고와 지병으로 별세해 모두들 혼이 반쯤 나갔던 일도 있다." (P.277)
작가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 자신의 경험에 비춰 그동안 읽고 보아 왔던 책, 영화, 그림, 사진, 도자기 등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려서 자신만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40여 편의 글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1부 '게으르게', 2부 '불편하게', 3부'엉뚱하게', 4부 '자유롭게', 5부 '광대하게', 6부 '행복하게'라는 부제도 재미있다. 출산율 최하위 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싱글 여성으로서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해법이 불편하기도 하고, '계속 끄적거리라'는 프랭크 매코트의 명언이 무기력하게 게으른 자신에게는 서늘하고 무거운 충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행복 경쟁'을 하다 보면 '왜 행복해야 하나?'라는 질문까지 나오게 된다는 작가.
문소영 작가의 에세이는 자유분방한 작가의 성격이나 본성대로 살고 싶어 하는 작가의 꿈이 글에서 묻어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꿈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 이를테면 관습이나 주변 환경에서 오는 장애물 등에 대한 작가 자신의 불편한 심기들도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들 각자의 현실이 그리 녹녹지 않으며, 매번 그런 현실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마음속 구호를 힘차게 외치면서 말이다.
오늘 보았던 어느 신문의 기사에는 '밥 한 번 편하게 먹자'라는 문구로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동에게는 식사 비용을 받지 않는다는 어느 파스타 가게의 훈훈한 소식과 함께 그의 선행이 SNS를 비롯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선한 영향력에 동참하고자 하는 식당, 극장, 카페, 학원 등 다양한 업종의 업체가 결식아동에게 식사나 음료를 제공하고 공연 할인이나 무료 수강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연락해왔다는 소식이 실렸었다. 우리가 읽는 신문이 매일 이런 기사들로 넘쳐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끔찍한 사건 사고에 진저리를 치다가도 이따금 읽게 되는 이와 같은 따뜻한 소식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구나' 하고 느끼는 게 아닐까. 문소영의 에세이와 우연히 읽은 어느 신문 기사가 묘하게 오버랩되는 그런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