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하고 고요해지면서
이택민 지음 / 책편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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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밤을 보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조금 슬픈 내용의 꿈을 꾸었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에서 깬 나는 침대 주변을 잠시 서성였다. 그러나 한 번 달아난 잠은 좀체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몇 번을 뒤척이다 나는 결국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었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얼마나 책을 읽었던 것일까. 독서등을 끄고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듯 몸이 찌뿌둥했다. 아침 운동을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 번을 고민하다 어렵게 집을 나섰다. 몸도 마음도 서글픈 아침이었다.


"동네 한 바퀴를 뛰다 보면 러너스 하이를 느낀다. 강을 따라 페달을 굴리다 보면 라이딩 모드가 켜지곤 한다. 마찬가지로 수련을 하다 보면 첨벙하고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러너스 하이도, 라이딩 모드도, 첨벙하고 고요해지는 마음도 대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 더 이상 시도치 못할 것 같을 때, 파도처럼 한꺼번에 닥쳐온다."  (p.172 '저자의 말' 중에서)


요가에 관련된 에세이를 읽었던 건 이번이 두 번째이지 싶다. 신경숙 작가의 에세이 <요가 다녀왔습니다>를 읽었던 게 첫 번째, 표절 논란으로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작가가 15년 넘게 한 요가에 마음을 담아 펴낸 이 에세이를 읽는 동안 나는 왠지 모르게 삶이 참 덧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후 3년이 흘렀다. 나는 다시 이택민 작가의 요가 에세이 <첨벙하고 고요해지면서>를 읽었다. 내가 딱히 요가에 관심이 있거나 주변에서 요가를 배우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시절 잘 아는 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웠던 나는 도시 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요가라도 한 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던 것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동네의 요가원을 알게 되었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남성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이 갔다. 한 번쯤은 요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도 언제부턴가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요가원에 연락하고 수강권을 끊기엔 용기가 부족했다. 낯설고, 어색하고, 잘하지도 못할 텐데... 그냥 혼자 할 수 있는 러닝이나 계속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에세이 수업 커리큘럼을 작성하는데 불현듯 요가 생각이 났다."  (p.13)


요가를 처음 접한 작가가 요가원에 다니면서 느끼고 체험했던 일상을 책으로 엮은 것이지만, 책의 내용은 일상을 담은 일기처럼 편안하게 읽힌다. '요가 체험기' 또는 '요가 수련기'일 수도 있는 이 책이 이렇게 편안하게 읽히는 까닭은 요가와 우리의 일상이, 요가와 글쓰기가 서로 동떨어지지 않고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근력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그보다도 먼저 유연성이 떨어져 다치기 쉽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말하자면 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진다는 것인데 나 역시 실감하는 부분이다. <첨벙하고 고요해지면서>를 쓴 이택민 작가의 나이를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적은 나이가 아닐 것으로 추측한다. 요가가 필요했던 까닭도, 용기를 내서 요가원을 찾아간 것도 작가의 몸이 원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삶이라는 칠판이 빼곡해질 때까지 수련을 이어가다 보면 나는 나만의 풀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 답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정답이 아닐지라도, 오직 나에게만은 안성맞춤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린 모두 저마다의 난제가 주어진 삶을 살고, 그 해답은 오직 자기 내면 안에 은밀하게 존재한다. 비록 넉살이 말한 "정답들 사이에 더 인기 있는 오답"은 못될지라도, 나는 나만의 보폭으로 요가와 글을 통해 천천히 나의 난제를 풀어나갈 것이다."  (p.168~p.169)


가뜩이나 힘든 월요일, 간밤에 잠을 설쳐 몸이 영 맥을 못 추는 나는 점심을 먹은 후에도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술도 못 마시는 내가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날이면 유난히 요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더 깊게 든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을 마냥 꺼리는 나의 성격 탓에 그런 생각들은 그저 생각으로만 그칠 뿐 실행에 옮겨진 적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따금 요가를 생각하고 언젠가 요가원에 들러야겠다 결심하기도 한다. 짝사랑 앞에서 수줍어하는 고등학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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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에는 언제나 소위 '빌런'이라고 불리는 악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지하철 빌런이나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주차 빌런도 있다. 게다가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하는 특이한 빌런들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분노를 유발하기도 하고, 가짜 화재 신고나 112 신고를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개중에는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빌런들의 활약(?)은 여전히 뜨겁다. 심지어 어떤 이는 원고 투고 후 매일 출판사에 전화를 하는, 이른바 원고 투고 빌런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제는 모처럼 도서관 나들이를 갔었다. 자주 가다 보니 도서관 직원들은 대체로 낯이 익은데 그중 한 분과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 왈,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는 것처럼 매일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한 민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반바지 차림에 가방을 메고 나오는 그 사람은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슬리퍼로 갈아 신고 미리 예약한 컴퓨터 좌석에 앉아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한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뭐 그렇다 치는데 문제는 그다음,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던 그 사람은 한쪽 발을 다른 쪽 무릎에 올려 놓고 발바닥을 주물럭거리곤 하는데 그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만지기도 하고, 자세를 삐딱하게 앉아 옆 좌석의 사람과 종종 마찰을 빚기도 한다는 것. 게다가 조금 덥다 싶은 날에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기도 하고, 발을 씻기도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현장을 목격한 다른 이용자들이 직원에게 자주 신고를 한다는데, 그때마다 주의를 줘도 막무가내라는 얘기였다. 연세도 많이 든 어르신이라 심하게 말을 할 수도 없으니 직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참 별별 사람도 많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사람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능선에 놓인 운동기구, 소위 '산스장'에도 올여름에 나타난 빌런이 있다. 나이도 지긋한 그분 역시 빌런으로서의 모든 재능을 갖추고 있다. 다른 이의 눈치를 보지 않는 능력도 탁월하고, 막무가내 고집불통의 재능도 우수하다. 민소매 운동복 차림으로 산스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산스장에 하나뿐인 역기를 독차지한다. 모기를 쫓기 위해 준비한 스프레이로 주변을 정리하고, 누운 자세로 역기를 몇 번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 후 그 자리에 앉아 다른 이는 그 시간에 역기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몇 발자국 옆에는 벤치도 있는데 그분은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다. 그렇게 역기를 전세 낸 채 몇십 분을 보낸다. 출근 때문에 기다릴 수 없는 나는 역기 대신 다른 운동(팔굽혀펴기와 같은)을 하고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다. 역기 옆의 작은 공터에서 훌라후프를 돌리는 어르신들도 그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역기 거치대에 앉아 도통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산스장의 빌런으로 등극하신 그분도 이따금 피곤한 탓인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아침에 만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마주치는 빌런들에게는 몇몇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데 조금 어려운 점이 있거나 제대로 된 공공의식을 교육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른바 사회성이 뒤떨어진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원시부족사회에서 살다가 많은 규칙과 법이 존재하는 문명사회로 어느 날 갑자기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불쌍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화를 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우리는 지금 수많은 빌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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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5-09-14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고시공부 하던 시절에 돈이 없어서 신림9동 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그때 기억이 납니다. 대체 몇년판인지 모를 오래된 법서 잔뜩 쌓아놓고 있던 초로의 수험생... 지금도 거기 있을까 모르겠네요.

꼼쥐 2025-09-15 16:17   좋아요 0 | URL
그분은 아마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겠죠. 그 자리를 다른 빌런이 대체하고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미림여고 올라가는 그 길이 눈에 선하기는 하지만.
 
사랑령 - 지금, 사랑을 시작하라
이용현 지음 / 필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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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읽기 좋은 달달한 책입니다. 잊었던 사랑을 다시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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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령 - 지금, 사랑을 시작하라
이용현 지음 / 필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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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았을 때의 느낌부터 말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다. 포켓북 형식으로 꾸며진 이 책은 한 손안에 들어올 정도의 아담한 사이즈의 양장본인데, 표지는 키스를 하고 있는 두 남녀의 사진과 책의 제목 등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집이다. 그럼에도 나는 8,90년대의 향취를 책에서 느꼈다. 뭔가 낡고 구시대적인 느낌 때문은 아니었다. 그 시절의 시집 스타일이 딱 그랬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에 사람들은 약속이 있어 외출하는 날이면 손가방 한켠에는 언제나 작고 가벼운 책 한 권을 챙겨 가곤 했었다. 읽든 안 읽든 상관없이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도 사람들은 자신의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거나 신문을 펼쳐 읽곤 했다. 내가 읽는 책의 속도처럼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아스라한 추억만이 켜켜이 쌓여갔다. 이용훈 작가의 <사랑령>을 받아 들었던 나는 책을 읽기도 전에 기억도 가물가물한 과거의 어느 시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령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랑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랑을 잊지 말라는 다짐이며, 사랑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격려이며, 사랑을 실천하라는 다정한 선언이다."  (p.7 '들어서며' 중에서)


책에도 유행이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필사가 유행인 요즘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시구나 낭만적인 에세이의 문장 일부를 독서록에 옮겨 적곤 한다. 때로는 철학이나 심리학 서적의 아포리즘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영향이 출판계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서인지 예전 스타일의 포켓북 형태의 책을 자주 보게 된다. 내가 <사랑령>을 손에 들고 옛 추억에 젖어들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어쩌면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우리의 귀에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일상의 작은 소리들이 사랑을 대신한다. 당신에게 사랑은 어떤 소리인가.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듣지 못했던 삶의 배경음에 사랑의 소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p.65 '사랑의 소리' 중에서)


제1장 '사랑령의 선포', 제2장 '존재와 사랑', 제3장 '사랑의 표현', 제4장 '사랑의 실천', 제5장 '사랑의 장애물과 시간', 제6장 '사랑의 힘'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어쩌면 필사에 적합한 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사랑'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왜 늘 사랑이 고프고 사랑에 굶주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하는 문제이다. 현대인이 정작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의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는 까닭이요, 미래의 불안을 잊기 위해 사랑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현대인이 느끼는 강박적인 불안이 우리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음미하는 시간마저 빼앗아 간 느낌이다. 나는 얇디얇은 이 책을 아주 천천히 읽어보기로 했다.


"사랑령은 명령이 아닌 초대다. 더 충만한 존재가 되기 위한 따뜻한 초대. 지금, 여기서 사랑을 시작하라는 다정한 권유.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더라도 사랑의 실천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p.155 '에필로그' 중에서)


멀쩡한 계절 가을이 오면 나는 충만함보다 가슴 아릿한 슬픔이나 허전함을 먼저 느끼곤 한다. 사랑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사랑령>을 다 읽었던 간밤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하염없이 내렸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서성거렸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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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냄새가 짙어지는 계절입니다. 그렇습니다. 봄은 색이 선명해지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냄새가 도드라지는 계절입니다. 여름과 겨울은 오히려 그 풍성하고 빈약함으로 인해 우리의 오감이 지나치게 부풀거나 묻혀버리곤 합니다. 말하자면 무뎌지는 것이지요. 열대야가 사라지고 아침 기온이 선선해지면서 우리는 멀리서 풍기는 작은 가을꽃의 향기와 도로 곳곳에 위치한 맨홀의 하수구 냄새와 등산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땀냄새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어느 여인의 향수 냄새 등 미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냄새들을 감각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가을은 각종 냄새의 향연이자 각축장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른 계절에 비해 과하지 않은 향수를 사용했을지라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부쩍 예민해진 후각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가벼운 해프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데가 있어서 좀체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등을 보이며 서서히 옅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때가 여러 번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힘들었던 계절을 무사히 버텨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등산로에서 알밤을 줍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벌써?' 하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나는 여전히 앤 그리핀의 소설 <그 여름의 항해>를 읽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 소설을 다 읽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여름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있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대해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대통령의 의견을 존중하는 호의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역대 대통령 중에 순발력 있고 똑똑한 대통령을 꼽자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 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겠습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을 순전히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연속선상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순발력은 그들에 비해서도 탁월한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비가 예보되어 있는 오늘, 하늘은 마냥 어둡고 답답합니다. 그리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여러 냄새는 가을로 가득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감각기관은 그 기능을 잃고 나날이 쇠퇴하지만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기관은 꽤나 오래도록 그 기능을 유지하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과학자들이 이르기를 우리는 어떤 냄새를 통하여 과거를 떠올리고 오래된 기억을 추억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냄새가 뇌의 기억과 감정 처리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지요. 가을이 오면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싶습니다. 가을은 냄새가 도드라지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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