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우리는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기보다는 지나온 과거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지 않을까 염려하며 노심초사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과거의 기억은 우리가 떠올릴 때마다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번 변형되고 재편집되며 오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특별한 노력을 경주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갈고 닦고 매만지면서 오랜 세월 동안 가꿔온 것이기에 그 기억이 어느 한순간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짠 하고 등장하지나 앓을까 하는 불안,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기억을 끝없이 되새김질하게 됩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한 사람의 편집자이자 제작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유일한 관객으로 초대하고자 함이라는 사실이 다른 영화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군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오산에 다녀왔습니다. 간간이 비가 내렸고 때로는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아들을 차에 태워 집에 도착한 것은 생각보다 이른 시각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공원묘지에 들렀는데 생각보다 많은 방문객들이 있어 조금 놀랐습니다. 추석은 아직 먼 느낌인데 말입니다. 저녁으로 피자헛에서 피자를 배달시켜 먹고 집을 나섰던 게 저녁 7시. 병장이 된 아들은 이제 군복을 입은 모습이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아들을 부대에 내려주고 홀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어두웠습니다.
김탁환의 산문집 <읽어가겠다>를 읽고 있습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책이 처음 출간되었던 10여 년 전에도 나는 이 책을 읽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책에 대한 기억은 흐릿할 뿐 책의 내용은 온전히 새것인 양 남아 있는 게 전혀 없습니다. 뚝 떨어진 아침 기온으로 인해 가을을 실감하였던 나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남방우편기>에 대한 김탁환의 생각을 읽은 후 책을 덮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잠깐 맑았던 하늘엔 다시 먹구름이 몰려와 어두워졌습니다. 아파트 뒤편 놀이터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나온 아이들이 까르르까르르 연신 웃음을 터뜨립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생텍쥐페리에겐 이런 거듭된 단절이 너무나도 강한 충격이었으니까, 삶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갈등이나 마찰은 충격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쟁 전야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담담하게 출격 준비를 하는, 비행이 곧 자신의 직업인 존재들만이 갖는 특별한 감정에 근거하여, 생텍쥐페리는 삶과 사랑과 죽음을 바라봤던 것이겠지요." (p.57)
더없이 좋은 계절에 우리는 괜스레 우울해지거나 그런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는 몇몇 이유를 가슴에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좋은 계절이 1년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다는 것과 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하는 누군가와 영원한 이별을 경험했던 아픈 기억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올해의 가을이 극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지난여름이 너무나 무더웠던 탓일 테지요. 극과 극의 변화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지금은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