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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누구나 그렇지만 삶의 실제와 자신의 바람은 늘 어긋나게 마련이다. 그것은 동물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들에게도 꿈이나 바람 같은 게 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성격이나 성향이 밝다고 해서 그의 삶도 늘 꽃길만 걸으라는 보장은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손으로 셀 수 없는 숱한 부침의 날들을 겪다 보면 '내가 이러자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하고, '나는 어쩌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라 흐르는 시간을 아무런 걱정도 없이 그저 평화롭게 관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시봉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올해 만 네 살이 된 수컷 비숑 프리제다. 시봉이라고 부르면 알은척을 안 하고, 꼭 이시봉이라고 성까지 불러야지만 뒤돌아보거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리다는 종종 이시봉을 '노숙견'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시봉이 없는 자리에서 그랬다. 이시봉이 일 년 넘게 미용실을 가지 않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도 '노숙자'라고 불러야 마땅하다(혹 모르지, 나 없는 곳에선 그렇게 부를지). 나 또한 일 년 넘게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심한 곱슬머리라서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p.10)
이기호의 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은 작가의 능청스러운 넉살과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실 우리나라 소설 대부분이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심하게 사실적이거나 문체와 구성 역시 지극히 점잖고 무거워서 독서의 목적이 현실로부터 살짝 비켜가거나 한 발 떨어져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현실과 이어진 끈을 놓지는 않되 소설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은 충분히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바람이었다. 물론 독자들 개개인의 다양한 취향을 소설가가 일일이 맞춰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의 이러한 바람에 비추어 볼 때 이기호의 소설은 꽤나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개들은 보이지 않는 희망에 들뜨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희망만 면밀히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도 서로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희망은 대부분 상대와 관계없이, 상대를 신경쓰지 않은 채, 자기 내부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대부분의 희망은 권태에서 온다). 그래서 그 희망이 좌절되었을 땐 상대를 아예 파멸로 몰고 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서도 상처받는 쪽은 되레 자기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p.204)
소설은 20대의 청년 이시습의 가족과 반려견인 이시봉의 이야기다. 타이어 공장을 퇴사한 후 피자집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반려견으로 데려온 비숑 프리제 한 마리, 그것이 바로 이시봉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퇴근을 하던 아버지가 도로에 뛰어든 이시봉을 구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뜨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이 이시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이시봉을 냉대하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딱히 하는 일 없이 지내던 이시습은 술에 빠져 폐인처럼 지낸다. 반면 매사에 똑부러지는 성격인 여동생 이시현은 그와 같은 환경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외동딸로 자란 어머니가 외할머니의 병환으로 집을 비우게 되고, 시습, 시현 남매와 반려견만 남은 집에 반려견 교육 업체인 '앙시앙 하우스' 관계자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시봉이 과거 유럽 왕실에서 기르던 고귀한 혈통의 후예라며 자신들에게 이시봉을 양도하면 거액의 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시습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이시봉을 돌봐주기로 했던 리다가 시습 몰래 '앙시앙 하우 사람들에게 이시봉을 넘기는데...
"실제로 우리집에서 팔 년째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 이름이 이시봉이다. 이시봉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이야기 하나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만 이렇게 길어지고 말았다. 소설은 강아지에 대해 말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강아지를 둘러싼 인간의 책임을 묻기엔, 여전히 유효한 장르이다." (p.525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은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되면서 독자의 흥미를 북돋운다. 앙시앙 하우스의 대표인 정채민이 프랑스 유학 시절 만나게 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통한 비숑 프리제의 한국 유입,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번성했던 비숑 프리제, 즉 이시봉의 선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노조 활동을 하던 이시습의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고 이시봉을 반려견으로 데려오게 된 사연과 그 후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시봉의 선조에 대한 이야기도 일부 다른 책에서 참고한 것은 있으나 이 소설에 맞게 편집되고 각색되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시치미를 뚝 뗀 채 그 이야기가 마치 권위 있는 다른 책에서 인용된 것인 양 가상의 도서 제목과 저자를 표기하기도 한다. 왕실에서 보호되었던 이시봉의 선조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천일야화처럼 꾸며진 이야기이지만 책에서 인용된 것인 양 표기함으로써 권위를 갖게 된다.
업무 때문에 며칠 바빴던 나는 이제야 겨우 한시름 놓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힘든 일 하나를 처리하고 나면 뭔가 뿌듯하고 마음이 턱 놓이곤 했었는데 나이가 드니 그런 극적인 기분은 잘 들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를 빼먹거나 잃어버린 듯한 불안한 느낌도 괜스레 들고, 조만간 다른 큰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더 열심히 소설을 읽는지도 모른다. 억지로라도 나는 현실의 뜨뜻미지근한 기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로는 아주 기쁘고, 때로는 아주 슬프기도 하면서, 때로는 사심 없이 웃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