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부모님을 뵙지 못한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얄팍한 속셈을 안고 서울에 갔었다.  승용차를 타고 가지 않은 탓에 고속버스와 지하철, 마을버스를 번갈아 갈아 타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주눅들게 한다.  과거에 익숙했던 그 방식은 세월의 경과와 함께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다 놓은 듯하다.   지하철의 승강장과 선로부를 구분짓는 스크린 도어를 통해 그 느낌은 더욱 생생해졌다.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울이 아닌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승강장으로 진입하며 지하철이 일으키던 바람에 머릿결이 흩날리던 기억과 덜커덩거리는 소음의 기억은 스크린 도어라는 낯선 구조물이 과거와 현재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림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를 연결할 적당한 그림을 찾지 못한 채 답답한 마음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마을버스 승강장에서 줄을 지어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 섞였을 때 그 어색함.
영영 변하지 않을 듯하던 거리의 풍경은 건물의 높이 만큼이나 위압적인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갑작스런 나의 방문에 어머니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세월의 무게는 당신의 키도 낮추어 놓는 듯했다.
우리는 언젠가 그렇게 차츰 낮아지다가 결국 땅속에 묻히는 날을 수동적으로 맞이하는 게 아닐까?  집사람과 아들녀석을 대동하지 않고 노부모를 찾아 뵙는 일이 나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느껴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께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호스를 통하여 소변을 받아내는 탓에 진한 지린내가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아들을 위해 늦은 점심을 차리시는 어머니.
어색한 침묵을 멈추려는 어머니의 노력은 항상 과거에 머문다.
모자 사이의 대화도 어느 순간부터 과거의 창을 통하지 않고는 이어가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 대화마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늙으신 어머니는 현재를 붙들 기운마저 소진한듯 오롯이 과거에만 머문다.  나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딱히 정한 곳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짧았던 봄이 여름의 중간에 위치한듯 무덥다.
나는 그런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다 오늘에서야 업무에 복귀했다.
무거운 마음만큼 하늘도 무겁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기운 없는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오늘처럼 긴 하루를 또 언제 맞게 될런지...
일찍 자려고 해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성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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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네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편지로 남겼었지.
사람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고 좋은 생각은 무시로 떠오르니 그때마다 잊지않고 종이쪽에 적고 시간을 내어 다듬는 것이 쉽지만은 않더구나.  
게다가 나의 게으름이 수시로 훼방을 놓아 한동안 손을 놓는 일이 다반사란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네게 대화로 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단다. 
나의 말을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삶의 고비를 한번도 겪지 않은 네가 지금 꼭 들어야 할 말도 아니기 때문이지.  
먼 훗날 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 지금 쓰는 나의 편지가 네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뿐이란다.

아들아

알고있니?
그동안 너를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단다.
그것이 비단 여기에서 그칠 일은 아닐테지만, 그간의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너는 내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 되어 주었단다.
그뿐이겠니.  
나의 잘못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바로잡아 준 것도 실로 너의 도움이라고 말할 수 있단다.
너의 행동이 내게는 무언의 스승이었던 셈이지.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구나.

아들아

너와 떨어져 살면서부터 너의 하루하루가 늘 궁금했단다.
저녁에 주고받는 전화통화에서 나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해결해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걸 알고 있니?  어제 일어난 일이나 몇시간전에 있었던 일도 너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
너의 말투를 빌리자면 이랬단다.  "글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한없이 좋았단다.  지금 사는 이 순간에 집중할뿐 흘러간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모습은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꿈꾸던 삶이었단다.
어제의 통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는구나.
학교에서 남들은 이미 다 받은 어린이날 선물을 너만 못 받고 있다가 어제서야 받았다고 내게 말했었지.  나는 속으로 한참을 웃었단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네게 줄 선물을 받으러 오라는 것을 너는 까맣게 잊고 있지는 않았니?  너의 관심을 끄는 다른 일에 너는 넋을 놓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단다.  너 혼자 뒤늦게 받은 선물이 다른 아이들보다 몇배의 기쁨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니?  그렇게 잘 잊는 네가 필요한 것들은 너무도 자세히 기억하는 것을 볼때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단다.  어쩌면 그리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별하는지...

아들아

지금의 네 모습을 앞으로도 잘 간직하렴.
지난 일들 중에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단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 여행에 올라 타렴.  그리고 네가 맞는그 순간을 맘껏 즐기렴.
지난 일을 되새기고, 다가올 미래를 염려하며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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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음악편지 - 교양 있는 초등학생을 위한 클래식 음악동화 지식을 여는 아이
신경애 지음, 조현경 그림 / 주니어중앙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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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동화를 읽었다.
실생활과 밀접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와는 달리 동화나 시를 읽으면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빛으로 되돌아 가는 느낌이다.  머리도 마음도 평온한 휴식을 취하는 듯 한없이 평화롭다.  
이 책의 부제는 <초등학생을 위한 클래식 음악동화>라고 적혀 있다.
대중가요와 팝에 익숙한 아이들이나 클래식 음악에 거북함을 느끼는 어른들이 이 책을 읽고 클래식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작가는 바랐으리라.  책 읽는 것과 음악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음악만 들으면 하품을 하는 장난꾸러기 훈이는 어느 날 예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누나 현이를 따라 엄마와 함께 현이의 학교를 구경하러 간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하였던 훈이는 컴퓨터 게임이나할 요량으로 들어선 학교 도서실에서 자물쇠가 달린 먼지투성이의 책을 한 권 줍게 된다.  제목도, 지은이도 없는 이상한 책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꺼냈을 때 누나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자 표지에는 신기하게도 <쇼팽의 음악편지>라는 글자가 새겨지는가 하면 잠겨 있던 자물쇠가 저절로 열리고 책갈피 사이에서 한 장의 시디가 빠져나왔다.
공중에서 빙빙 도는 시디에서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쇼팽의 영혼이 나타나 훈이에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작곡한 음악 이야기를 들려준다. 
1810년에 태어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바르샤바에서 성장한 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 연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한 채 오스트리아 빈으로 그리고 프랑스 파리로 떠돌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불운한 삶.  사랑했던 연인 마리아와의 이별 그리고 쇼팽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  섬세하고 연약했지만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삶을 불태웠던 피아노의 시인 그리고 결핵으로 점철된 불운했던 생애와 조국 폴란드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살았던 쇼팽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듣게 된 훈이는 이제 음악을 좋아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만난 한 선배형 때문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으려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음악 감상에 무슨 공부가 필요하랴 싶겠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하듯 클래식도 그랬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피아노 소품이나 바이올린 소품서부터 관현악곡과 성악곡의 감상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순서를 밟아 <클래식 백과 대사전>을 밑줄을 그으며 공부했었다.  그리고 짬이 나면 KBS 제1FM을 들으며 내가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며 그 리듬을 되새겼다.  그렇게 반복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토록 멀리하던 클래식과의 간격은 점차 좁혀졌고 선배형과  연주회에도 동행하게 되었다.   음악은 리듬의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며 박자의 붓으로 그리는 풍경이다.  그 숨겨진 언어를 이해하면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영혼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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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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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 아마 지어낸 이야기 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쌀밥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다섯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맷돌에 간 옥수수와 감자를 섞어 지은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었다.  지금이야 그렇게 먹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쌀밥만 먹던 사람들은 건강식이라고 부러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옥수수밥이라는 것이 워낙 소화가 빨리 되는지라 할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배 꺼진다며 뛰지 말라는 당부를 입에 달고 사셨다.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뛰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는 늘 잔소리로 들렸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우리집은 저녁만 먹으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었다.  산촌의 해는 유난히 일찍 진다.  그렇게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에는 허기로 잠이 깨곤 했었다.
간혹 간식으로 고구마를 삶아 놓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없을 때에는 주린 배를 쓸어내리며 해가 뜰 때까지 달아난 잠을 원망하며 이리 저리 몸을 뒤척여야 했었다.
그 첩첩산중에서 도시로 이사를 하고 나는 처음으로 쌀밥을 먹어 보았다.  반찬이라고는 왜간장 하나였지만 나는 반찬 없는 맨밥으로도 그 하얀 쌀밥을 다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로 배를 곯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도 제 시간에 끼니를 챙기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그런 나의 모습을 아내는 어른이 되어서 괜한 일로 짜증을 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볼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배고픔의 기억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 지글러에 의해 씌어졌다.
제목만으로도 짐작하겠지만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로 발생하며,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오천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비극적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지구의 한쪽편에서는 비만으로 죽어가고, 단른 한쪽편에서는 부족한 식량으로 생명을 선별하는 현실, 삼림파괴로 메말라 가는 농토와  기아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국제기업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생존을 갈망하는 그 사람들의 배고픔을 테러의 도구나 전쟁의 잔해 쯤으로 치부하는 정치인들, 소는 배불리게 먹이면서 사람은 굶어 죽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행태를 우리는 맬서스적 자연도태로 이해할 수 있을까?  가난 구제는 임금님도 못한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그들의 배고픔을 먼 나라 이야기로 눈 감아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기아로 죽어가는 끔찍한 현실을 아들 카림에게 들려주는 대화 형식으로 차분하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의 배후에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거대한 괴물이 지배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수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학문적, 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 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P.162)
저자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이 각성하고 연대하여, 기아를 극복하고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데 힘쓰자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정글 자본주의다.  세계경제는 식량 생산, 판매, 무역, 식량 소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P.169)
우리는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밝힌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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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경제학
세일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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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교육에 있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려서부터 경제에 대한 체계적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소중한 가치로 대우받는 것이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의 교육에서 경제 부분은 항상 뒷전이었다.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상은 점점 높아지는 반면 경제적 지식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는 누군가의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왜냐하면 경제적 지식이 높은 사람이 그 지식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경제적 부를 획득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경제학도 근대 산업사회 이후 놀라울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개인이 갖추어야 할 경제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우리 나라의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경제 교육은 애덤 스미스의 고전 경제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경제 뉴스를 들어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잉글리쉬 디바이딩 현상을 언급하면서 영어를 강조하기는 해도 이코노믹 디바이딩 현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경제적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생활에서는 돈 계산만 잘하면 누구나 경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바라는 것은 경제적 풍요이다.  그 목표가 높다는 데 문제가 있고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이코노믹 디바이딩 현상은 한층 심화된다.  경제 지식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 놓이는 것이다.  소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약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에 의한 부의 집중, 그리고 서민 경제의 붕괴는 피할 수 없는 결과로 굳어지는 것이다.  경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소수 재력가에게는 100 % 맞는 말이다.  어쩌면 위기의 반복은 부의 집중을 가속화 시키는 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즉 서민의 경제적 손실이 고스란히 소수 자본가에게 부의 증가로 전이되는 것이다.  경제는 낭만이나 감성이 아닌 냉정한 현실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돈을 터부시하는 우리 나라의 국민적 정서와 소수 권력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2008년 말부터 Daum 아고라 경제토론방에서 인기를 끌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미네르바'가 떠오른다.  그러나 저자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기업의 임원을 지낸 분이라고 한다.  저자는 일반인을 위한 경제 상식 및 말못 인식하고 있는 개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챠트와 통계적 수치로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저축, 시장의 원리와 부동산 및 환율의 전망,  경제위기의 원인과 미래에 다가 올 대공황과 우리의 생존 전략 등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경제학 분야의 서적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수작을 찾기 어렵다.  맨큐의 경제학이 학문적 입장에서 좋은 책이라면 이 책은 분명 실생활에 있어 잘 씌어진 책이라 말할 수 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해도 여유 시간에 파트별로 나누어 읽어도 좋을 듯하다.  

경제적 이상과 실제적 경제 행위의 격차를 좁히는 것은 경제적 지식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이 꿈꾸는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전적으로 ’운’에 의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운’이란 일상에서 반복되는 습관적 현상이 절대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앞에는 항상 행운이 따라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습관적 ’좌절’만 맛보게 된다.  자신의 경제 행위를 단순히 ’운’에 맡길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경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제 행위를 반성하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행운을 움켜쥐려 하지만 정작 찾아 나서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준비된 자에게만 행운도 미소를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목표와 계획을 세운 사람이라면 그 안내서를 보고 자신이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길에 존재할지 모르는 위험성도 살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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