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살다 보면 소형 승합차가 코너를 돌 때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있단다.
지금의 일상이 못 견딜만큼 힘든 것은 아니지만, 몸으로 견디는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견뎌야 한다는 의무감이란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치를 강조하는 네 엄마의 원칙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쯤 그것을 어기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느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거울에 네 입 안을 구석구석 비춰 보아도 구멍이 크게 뚫린 이(齒)를 전혀 발견할 수 없을 때, 너는 양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양치를 하는 그 순간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거야.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산다는 것은 `의무감으로 가득한 별난 놀이터’에서 맘껏 놀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과 같다.
우리는 선뜻 어떤 놀이기구에도 손을 얹을 수가 없단다.
늘 언저리에서 맴돌며 주저하다가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아들아

지난 주말에는 엄마와 함께 `제23회서울국제유아교육전’에 다녀왔다지?
동행하지 못했던 나는 괜한 죄책감과 함께,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임무를 방기한 채 모든 것을 네 엄마에게만 떠맡기고 있다는 미안함으로 고개를 떨구었단다.
초등학교 1학년인 네게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겠지만, 번잡함을 싫어하는 엄마는 그닥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들아

어제와 달리 오늘은 가을 햇살이 무척이나 좋았었단다.
네가 자라 어른이 되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빛나는 가을볕처럼 여유롭고 따뜻한 시선이면 더 좋을테고.
너는 가을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저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 마음으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간절한 마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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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5일.  날씨 : 흐림(또는 우울함)

먹장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금방이라도 눈이 펑펑 내리고 나는 잠시 동안 가벼운 공포에 휩싸일 듯한 그런 날씨.
두 팔을 겨드랑이 밑에 깊이 묻고, 몸을 잔뜩 옹송그린 채, "날씨가 왜 이래?"하며 불평 섞인 말을 내뱉는 어느 여직원의 뒷모습.
이런 날씨는 커다란  창을 통하여 바라보던 우울한 기억 - 그것이 나의 아내와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와의 기억인지 모호한 - 과 어두운 배경,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미래형 시제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복합시제에 현재는 없다.

명절 연휴를 오래 쉬었던 탓인지 밀린 업무가 짓누른다.
`많다'는 것은 `'하지 않음' 또는 `체념'과 같은 말이다.
지난 주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 그야말로 핑계일 뿐이다 - 아내와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였다.
9월에는 한 사이트에서 우수 블로거로 뽑혀 작은 선물을 받았고, 알라딘에서 신간 평가단이 되었고,  어느 서평 이벤트에 참가하여 책도 두어 권 받았다.
이런 소소한 변화가 내가 잊고 있는 현재를 자각하게 한다.

여전히 눈은 내리지 않고 - 눈이 오기에는 여전히 기온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 나는 촛점을 잃은 눈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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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자연 

저자 : 제인 구달, 세인 메이너드, 게일 허드슨 지음 / 김지선 옮김 

출판사 : 사이언스 북스 

 

 

얼마 전 제인 구달의 또 다른 작품 <희망의 이유>를 읽었었다. 

법정 스님의 추천 도서이기도 했던 그 책은 내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었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가 침팬지를 연구하며 평생을 보냈던 그녀의 삶과 자연과 생명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 환경파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직 희망은 있다고 말하는 제인 구달.  나는 여전히 그년의 광팬으로 남아 있다. 

제인 구달의 새 작품 <희망의 자연>, 정말 읽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김주영 외 지즘/지식 파수꾼(경향미디어)/ 

 

 

 

 

대한민국 대표 작가 15인의 거제 탐방기.  

김주영,구효서,성석제,박상우,백가흠,해이수, 하성란, 권지예, 전경린, 김별아 등 좋아하는 작가들이 가득하다.  때로는 내가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의 표현으로 읽을 때 그 감동이 배가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글 잘쓰는 작가라면 더욱 좋다. 
  또 최석운, 박병춘, 이인, 황주리, 서용선, 강경구, 김선두, 김정연, 박철환, 서시환 등 화가 19명의 그림도 같이 감상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지 않는가. 

 

 

나만 위로할 것 

김동영 지음/달/ 

 

 

 

 

참으로 오랫만에 만나는 김동영의 작품이다.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이후 무려 3년만에 출간된 그의 여행기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작가의 글에는 아련한 향수가 배어 있다.  가끔 울음이 터져나올 듯한. 

이번에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단다. 화산과 눈으로 뒤덮인 먼 북쪽 나라. 

지금은 잊혀진 한 편의 동화를 들려줄 것만 같은 그런 여행기가 아닐까? 

기다림에 나는 좌불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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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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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습관을 뒤돌아 보면 나이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지적 호기심이나 재미를 위해서, 청소년기에는 지적 호기심과 더불어 지적 허영을 위해서, 젊은 시절에는 물질적 성취나 성공을 위해서 책을 읽었다면 요즘은 나의 생각이나 사색의 결과가 작가와 얼마나 일치하느냐가 책을 읽는 동기와 감동의 기준이 되곤 한다.
책에서 읽지는 않았지만 "이럴 것이다." 또는 "그렇지 않을까?"하고 내내 생각해 오던 것을 처음 읽는 책에서 명쾌한 말로 쓰여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나는 짜릿한 흥분과 감동을 감출 수 없다.  나의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며, 책을 끝까지 정독할 힘을 얻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마치 오랫동안 사귄 친구와 마주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나는 모든 경계를 풀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작가의 의견을 수용하게 된다.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나는 기꺼이 작가와 친구가 될 수 있음이다.

나는 나의 존재를 자각합니다.(P.22)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나는 동시대의 어떤 작가나 성직자에게서도 이와 같이 자신에 찬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결코 자기과시나 허언이 아닌 이 한마디 말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너무 도덕적이 되면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신을 속이게 된다고 말하는 소로우의 확신은 반평생을 살아온 내게도 진실로 다가온다.  가식적이거나 덧씌워진 설명이 아닌 진실을 직시하는 소로우의 냉철함은 자연과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사색한 사람만이 갖게 되는 특권이다.
"당신과 빛 사이를 그 무엇도 가로막게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형체로서만 존중하십시오.  천상의 도시를 방문할 때는 누구의 소개 편지도 필요 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며 곧장 신을 만나기를 청하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당신 곁에 동행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 세상에 홀로임을 기억하십시오."(P.23)

육체에 운동이 필요하듯이, 정신에는 몰입이 필요합니다.(P.95)
나는 얼마 전부터 TV를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할 때 까닭 없이 쉽게 피로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을 소로우의 주장에 근거하여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인간이 태어날 때 온전했던 영혼(또는 영성)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각적 영상이나 생각에 의해 쉽게 손상을 입거나 분해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인간에게 너무나 유혹적인 것이어서 나이가 들수록 깊이 빠져들곤 한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보듯 1초에 24장의 그림이 지나가는 엄청난 속도는 인간의 영혼을 공기와 같은 작은 미립자로 산산이 흩어지게 한다.

초를 세분화하는 현대인의 습성은 생각에도 영향을 미쳐, 한가지 주제에 진득하게 매달릴 수 없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영혼은 깨지고 부서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높아지게 되고, 영혼의 지구력은 약해져만 간다.  자연의 변화 속도가 비교적 느린 것은 아마도 인간의 영혼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는 신의 배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소로우가 문학에서 시를 좋아했던 이유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소설과는 달리 한가지 주제에 깊이 빠져들어 오랫동안 사색할 수 있게 하는 시는 영혼을 온전하게 유지시키고, 손상된 영혼을 치유하하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태고적부터 시가 유일한 문학으로 자리를 지켜왔고, 소설은 발전하지 않았던 까닭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소설은 현대인의 취향에 맞춘, TV나 영화 대용에 불과한 것이다.   학문에서 수학이 일찍부터 발전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학만큼 몰입하기에 좋은 학문도 드물다.  잠깐 동안의 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을 하는 현대인들은 모두 중증의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졌고 아무 의심도 없이 그것을 수용한다.

하버드 신학대학을 졸업한 블레이크와 13년 동안 주고받은 소로우의 편지는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육체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는 데는 즉각적이지만, 정신의 배고픔과 갈증을 충족시키는 데는 얼마나 게으른가? 하고 묻는 소로우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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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
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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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가위 명절을 쇠고 마음이 스산하여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 윤구병님의 새내기 농촌 체험기라 할 수 있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였다.
어제는 점심을 먹고 햇살 좋은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소슬한 막새바람이 부는 한적한 공간에도 아이들 웃음 소리가 싱그럽다.
공원 한켠에는 키 작은 다복솔과 이름 모를 수입 활엽수들이 어색한듯 ’더불어 숲’을 이루고 있다.
작은 땅뙈기에서도 생명은 저리도 넉넉한데 나 같은 도시내기들은 한겨울처럼 외롭다.
삶이 시리도록 춥고, 작가의 글은 머리가 아리도록 아프다. 

 볕이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
이런 날은 항상 슬그머니 과거로 뒷달음질을 치려는 생각과 한바탕 드잡이질을 해야 한다. 
단풍이 들기 전까지는 생각도 현재에  발을 꽁꽁 묶어 놓아야 하는 도시의 시계는 잠시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생각도 이럴진대 일탈을 꿈꾸는 몸뚱아리야 더 일러 무엇하리요.

불현듯 저자가 부러워진다.
대학 교수로 15년을 살았던 생짜배기 ’도시 촌놈’이 어찌 농촌에 가서 살 생각을 했을까?
바람처럼 흩어지는 도시의 시간대(時間帶)에서 어느날 문득 유성처럼 내팽겨쳐졌던 것인가, 아니면 이 앙다물고 제 발로 도시 시간대의 인력장에서 벗어난 것인지... 
시간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오늘처럼 가을이 깊어가는 볕 좋은 날엔 부는 바람마저 도시의 그늘에서 속력을 더한다. 
덩달아 도시인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급기야 째깍이는 초침마저 바빠진다.
철모르던 사람이 철따라 흐르는 시골의 시간대에서 일머리가 트이고 일손이 익어가는 과정은 도시의 시간처럼 늘리거나 줄어들 수 없는 자연의 엄정한 시간에 따른다는 것을 작가는 세월에 묻혀 배우고 있었다.

 "생명의 시간 가운데 텅 빈 시간이란 없다.  사람이 마음대로 분으로, 초로 쪼개서 그 안에 특정한 인간 집단의 삶의 방식, 가치관, 관습과 도덕을 아로새길 등질적이고 획일적인 시간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도시인들은 문명을 통해서 그런 시간을 창조해냈다.  그 도시가 바빌론이건, 아테네건, 로마건, 뤄양이건, 도쿄건, 서울이건, 워싱턴이건 상관없이, 모든 도시는 도시인들이 추상해낸 등질적인 공간 표상에 따라 인간만을 위한 삶터로 바뀌고, 그 안에서 도시인들은 미개한 야만인들의 나라 아프리카를 두부모처럼 잘라내어 식민지를 만들거나 하룻밤 사이에 직선으로 삼팔선을 그어 야만스러운 미개인 ’조센진’들이 아들의 가슴에, 아비의 등에, 형제의 옆구리에 총칼을 들이대게 만든다."(P.296) 

더디게 흐르는 듯 보여도 생명의 에너지를 허투루 소비하지 않는 자연의 시간에 적응하는 것은 ’도시 촌놈’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탐욕만 키우는 도시의 시간대에서 물질과 향락의 노예가 된 도시인들이 세월따라 사랑과 정을 키우는 자연의 시간대에 적응한다는 것이 어줍잖은 말로 사랑을 고백하는 풋내기 첫사랑의 낭만처럼 쉬운 일일까마는 작가는 잘도 적응하나보다.
철학을 전공한 작가가 산 설고 물 설은 곳에서 잊혀져가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야기들이 내게 푸근함으로 전해지기 보다는 날선 비수로 꽂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습니다.  사랑은 늘 현재입니다.  ’사랑했노라’는 말도 빈말이고, ’사랑하겠노라’는 말도 헛된 약속입니다.  사랑에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늘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저세상이거나 관념의 공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는 오늘 이 순간이고 지금 이곳입니다.  우리가 뿌리내리고 사는 구체적인 현실이고 더 어렵게 말하면 ’현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P.256)

언젠가 내가 아는 스님 한 분이 다 먹은 수박의 껍질을 다람쥐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라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명을 키우는 넉넉함이 한없이 그리운 날이다.
메말라 가는 사랑이 이 가을에 여무는 씨앗처럼 단단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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