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살다 보면 소형 승합차가 코너를 돌 때처럼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있단다.
지금의 일상이 못 견딜만큼 힘든 것은 아니지만, 몸으로 견디는 것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견뎌야 한다는 의무감이란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치를 강조하는 네 엄마의 원칙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번쯤 그것을 어기고 잠자리에 들었던 어느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거울에 네 입 안을 구석구석 비춰 보아도 구멍이 크게 뚫린 이(齒)를 전혀 발견할 수 없을 때, 너는 양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양치를 하는 그 순간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거야.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산다는 것은 `의무감으로 가득한 별난 놀이터’에서 맘껏 놀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과 같다.
우리는 선뜻 어떤 놀이기구에도 손을 얹을 수가 없단다.
늘 언저리에서 맴돌며 주저하다가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아들아

지난 주말에는 엄마와 함께 `제23회서울국제유아교육전’에 다녀왔다지?
동행하지 못했던 나는 괜한 죄책감과 함께,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임무를 방기한 채 모든 것을 네 엄마에게만 떠맡기고 있다는 미안함으로 고개를 떨구었단다.
초등학교 1학년인 네게는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겠지만, 번잡함을 싫어하는 엄마는 그닥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들아

어제와 달리 오늘은 가을 햇살이 무척이나 좋았었단다.
네가 자라 어른이 되면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빛나는 가을볕처럼 여유롭고 따뜻한 시선이면 더 좋을테고.
너는 가을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저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 마음으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간절한 마음이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