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감옥에 갈 결심


겨울의 뒤꽁무니를 살금살금 밟아가면 꽃이 만발한 봄의 세계를 금세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포근한 주말입니다. 수컷멧돼지들의 발정기도 다 끝나가는 탓인지 다리의 힘이 풀리고 한낮에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그게 어디 생각처럼 쉽기만 한 일이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뒷골목 똘마니들과 마음껏 술이나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 작금의 상황을 잊은 채 몇 날 며칠이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습니다. 리더 멧돼지인 나에 대한 지지율이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뇌물을 받은 아내 멧돼지에 대한 원성도 잦아들 줄 모르니 욱하는 성격의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입니다.


오늘은 전임 리더 멧돼지였던 그네 멧돼지의 생일인 까닭에 마음에도 없는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내가 뒷골목에서 똘마니들과 어울려 다니던 시절, 나는 동운 멧돼지와 함께 그네 멧돼지를 붙잡아 감옥에 처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암컷 멧돼지로는 처음으로 리데 멧돼지의 자리에 올랐던 그네 멧돼지는 몹시 낙담한 표정이었고, 그로 인해 리더 멧돼지의 자리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나였지만 그네 멧돼지를 지지하는 많은 멧돼지들이 안면에 철판을 깔고 나를 지지하게 되었던 건 모두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리더 멧돼지의 자리에 오른 나로서는 애시당초 그네 멧돼지에 대한 원한이 없었음은 물론 감옥에 처넣었던 건 단지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의 결과였다는 걸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생일 축하 인사를 함으로써 나의 성격이 그렇게 모질거나 악랄하지는 않다는 걸 상징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게 이제 다 지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법을 제정할 입법 멧돼지들을 뽑는 선거가 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새로 선출된 입법 멧돼지들로부터 리더 멧돼지의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요구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나와 나의 아내 멧돼지는 물론 나를 지지했던 많은 멧돼지들이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나라의 전체 멧돼지를 위해서는 옳은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능력도 없고, 더 이상 리더 멧돼지를 하고 싶지도 않은 나로서는 감옥에 가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말입니다. 내일 모레는 봄이 온다는 입춘. 봄이 오면 모든 걸 내려 놓고 감옥에 갈 결심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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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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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보다 부업을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피디이면서 동시에 작가인 사람들도 섞여 있는데 김현우 피디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다큐멘터리 피디이자 번역가인 그는 작가로서도 손색이 없는 듯 보인다. 손색이 없다기보다 뛰어나다.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못하는 나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도 없고... EBS 《다큐프라임》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 몇몇을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피디와 작가는 서로 닮아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전달하는 매체가 영상과 언어라는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책 한 권으로 묶일 만큼의 글을 써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동안 뭔가가 정리되기는 했다. 글쓰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직업이었다. 대충 삼십대의 시기와 겹치는 십여 년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나니 뭔가 더 분명히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그건 좀처럼 자신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p.253 '에필로그' 중에서)


작가의 본업인 다큐멘터리 기획 및 촬영을 위해, 그리고 잠시의 짬을 내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기록한 글을 책으로 엮은 <건너오다>는 작가가 다녀온 17개국 38개 도시를 선별하여 실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랑스 파리나 영국의 런던 등도 있고, 미국의 로렌스, 앤아버, 미즐라와 호주의 마운트아니자, 필리핀 아닐라오 등의 이름도 생소한 도시들도 나온다. 특이한 것은 작가가 연출했던 작품 <김연수의 열하일기>의 배경이었던 중국의 변문진과 진황도 등의 기록도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일반 에세이스트라면 결코 닿을 수 없는 지명들이다.


"과거의 국경이었던 곳, 지금은 그런 과거를 전혀 모른 채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변문진의 일면산역에서, 경계를 넘는 방법을 생각했다. 경계를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계가 아니라 경계 앞에 선 나의 마음이다. 그것은 욕심이고, 욕심의 다른 이름인 미련 혹은 집착이고, 두려움이다. 장백산 담배 한 개비가 확인해준 사실이다."  (p.236)


육체의 성장은 시간과 영양을 공급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마음이나 영혼의 성장은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이나 애정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거기에는 반드시 여행과 같은 개인의 적극적인 체험이나 노력이 덧붙여져야만 한다. 어느 낯선 여행지에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삶의 허무나 고독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전보다 한 뼘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넓어진 마음의 여백을 지워지지 않는 삶의 의미로 채워가야 한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버린 나가사키의 도심을 폐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그곳을 '버리지' 않았다. 폐허는 오히려 나의 마음속 정경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버리다'라는 단어는 어쩌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어감만큼 잔인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버림은 어쩌면 무관심의 동의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건 '(버림받는 대상에 대한 악의를 품고) 망가뜨리다'의 의미보다는, '적극적으로 지켜주거나 돌보지는 않는다'의 의미에 가깝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적극적인 관심 혹은 애정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폐허가 된다. 상점들이 문을 닫은 나가사키의 도심에서 나의 마음이 '폐허'라고 느낀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다."  (p.195)


작가의 사색이나 체험의 기록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은 어쩌면 그가 존 버거와 같은 대가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하고, 그것을 의미가 통하도록 수차례 반복하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밝혔던 것처럼 한 권의 책을 써냈다고 그의 삶이 크게 달라질 거야 없겠지만 영혼이 성장하는 만큼 넓어진 마음의 여백이 허무와 공란으로 남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키를 집안 문틀에 새겨 넣는 것처럼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다는 것은 영혼의 성장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이 쓴 책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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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8개의 내륙현이 있고, 그 중 하나가 군마현입니다. 도쿄에서 100km 떨어진 마에바시시를 현청소재지로 하는 군마현은 해발고도 500m 이상의 산지가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하는 화산지대인 까닭에 쿠사츠 온천과 시마 온천 등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그러나 남동부의 토네강 유역에는 간토평야가 펼쳐집니다. 기이하게도 이 지역에서는 많은 만화가들이 배출되었으며, 2차대전 당시 일본 방산업체가 몰려 있던 곳 중 하나인 탓인지 나카소네 아스히로를 비롯하여 총리를 4명이나 배출한 극우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이도 히로토 작가의 애니메이션 <너는 아직 군마를 모른다> 역시 군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지리도 잘 모르는 내가 이웃 국가인 일본의 군마현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다른 데 있습니다. 과거 태평양 전쟁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군마현으로 끌려가 그곳에 있는 공장과 공사 현장에 강제 징용되었음은 물론 일제에 의해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많은 분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자기네 선조의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기 위해 시민단체가 설립한 한국인 희생자의 추도비를 철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게다가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 있을 때마다 일본 정부는 건건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물론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제삼자 변제를 압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외교부는 한국인 징용 희생자의 추도비를 철거한다는 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도 뻥긋 안 합니다. '용산 총독부'다운 태도입니다. 게다가 가미카와 일본 외무상은 정기국회 외교 연설에서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에 근거해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1년 연속으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셈입니다. 이와 같은 저자세 외교로 도대체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국민들의 화를 돋우는 데는 성공하였다고 하겠습니다. 확실하게 말입니다.


현 정부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강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굽실대고, 약자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심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순사와 같은 모습이지요. 그런 까닭에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재갈을 물리고 찬양일색의 언론사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의 간사하고 무도한 태도를 바꿀 방법은 없겠습니다만 실질소득마저 감소하고 있는 국민 대다수의 하루하루는 견디기 힘든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검찰 조사를 받던 LH 전 직원 2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공포의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구명조끼도 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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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지음, 황규백 그림 / 청림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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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책의 제목 치고는 너무나 평범하고 밋밋하다. 평범하다 못해 촌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런 촌스럽고 밋밋한 제목도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저자가 살아온 길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와 같은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을 듯 여겨지기도 한다. 저자가 걸어온 길이 그대로 책의 제목으로 걸린 듯 어디 하나 어색한 구석이 없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괴테 할머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저자 전영애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인생을 배우는, '인생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저자였기에 <인생을 배우다>라는 책의 제목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듯 여겨진다.


"남의 삶을 세세히 알 수야 없다. 그러므로 남들은 대체로 편안하거나 그저 그만한 것 같고 나 혼자만 이런 수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오해, 어쩌면 그런 오해를 기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 구절을 대할 때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 내 눈앞을 스쳐가는 삶의 굽이굽이들. 그걸 지나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p.139)


한국을 대표하는 독문학자이자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동양 여성 연구자 최초로 '괴테 금메달'을 받은 명실공히 괴테 권위자이기도 한 전영애 서울대 교수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마음에 떠오르는 단상과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삶의 지혜를 담아 책으로 펴낸 <인생을 배우다>는 저자의 푸근한 인상처럼, 자신의 삶을 통하여 둥글게 마모된 마음의 원형이 여유와 기품으로 묻어난다. 삶 자체로 기쁨이고 선물인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전하고 싶은 욕심, 그것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였다고 밝히는 저자는 자신이 만났던 아름다운 인연들을 소개하며 우리처럼 각박한 현대인들이 이따금 잊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뿐만 아니라 프란츠 카프카, 니체, 쿤체 시인 등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문학세계가 황규백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담겨 있어, 책을 읽는 즐거움과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저 자본의 메커니즘 속에서 마모되지 않고 이런 삶의 이치를 생각하는 순간도 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가끔씩, 잠시나마 그 사슬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젊은 날 모습을 유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있어야, 그런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세상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p.276)


저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여백서원을 짓고 가꾸었다고 말한다. '혼자 힘으로, 외로움의 힘으로 만든 이 터에서 여러 사람이 쉬고 배우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저자와 같은 참어른이 있는가 하면, 159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숨진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끄러운 어른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정치인들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지 않는 한 우리의 젊은이들은 자본의 메커니즘 속에서 병들고 마모될 게 뻔한 일, 기성세대의 책임이란 바로 그런 것, 자본의 사슬로부터 우리 젊은이들을 구출하여 젊음의 태동을 유지시키는 것이 아닐까. 달리 더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친구들의 소중함을 좀 더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내가 남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나도 자동으로 귀해지는 이 자명한 이치를 마음에 새겨주어야 할 것 같다. 능률화가 가속화되는 미래에는 인구의 8할 정도는 불필요하다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고, 빈부격차의 심화도 심각하게 체감된다. 우리가 파멸로 가는 공룡이 될 수야 없지 않은가."  (p.164)


현 정부 들어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이 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에 따라 전에는 없거나 찾기 어려웠던 증오 범죄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야당 대표를 살해하기 위해 칼을 갈고 목을 찌르는 연습을 해온 정신 나간 자도 있었고, 여당의 여성 국회의원에게 상해를 입힌 미성년자도 있었다. 이런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의 정치인들은 그 심각성도 인지하지 못한 채 증오심만 부추기고 있다. 폭주하는 증오 기관차의 끝을 보자는 것. 우리는 그 결말을 향해 오늘도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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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고명재 산문집
고명재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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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 중 하나는 이따금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푸른 멍 자국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과 부딪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데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고 보면 보란 듯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니요, 행동에 지장을 줄 정도의 중병도 아닌데 병원을 가거나 누군가에게 내보이며 엄살을 떨 만한 거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어디서 무엇에 부딪혔을지 곰곰 되짚어 생각해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아마도 젊은 시절에 비해 피부도 얇아지고 외부 충격에 대한 감각도 둔해진 탓이리라.


우리 신체의 외부 충격에 대한 반응이 감각이라면 우리 영혼의 외피에 가해지는 충격에 대한 반응은 감정이 아닐까 싶다. 신체에 가해지는 외부의 충격, 이를테면 부딪히거나 데거나 추위에 노출되거나 간지럽힘을 당하는 등의 여러 충격에 대해 우리는 각각 다른 형태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외부로부터 듣는 소식, 예컨대 슬프거나 기쁘거나 놀랍거나 화나는 소식 등에 대해 우리 영혼은 각각에 맞는 감정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금씩 둔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을 굳이 노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그것은 죽음에 대한 예방 차원이 아닐까 싶다. 둔해진 감각을 통해 죽음의 고통을 약화시키고 둔감해진 감정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별의 고통을 조금쯤 덜어내는 게 아닐까.


"이처럼 극도로 아름답고 순정한 것은 우리의 기관器官을 철저하게 파괴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분산시켰다. 눈眼으로 견딜 수 없다면 아름다움을 나누자. 그 후로 그것이 밀주처럼 태어났다. 그것은 눈 쌓이는 소리보다 고요한데 귓속에서는 화산보다 크게 울리고 그것은 꽃 하나 없이 백리를 넘어 사람들 마음에 맹렬하고 은은한 향기를 찌른다. 그렇게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음악이 생겼다. 마음을 열고 깊이 맡는 향기가 생겼다. 지금도 우리는 그 노래를 듣는다. 우리는 그것을 시라고 한다."  (p.134)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수시로 점검하고 예민하게 유지해야 한다. 특히 압축된 언어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시인은 하시라도 젊은 감각과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읽는 내내 나는 신체의 감각과 영혼의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이 글은 어쩌면 리뷰라기보다 리뷰를 가장한 나의 생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키워준 비구니 스님을 떠나보낸 후의 슬픔과 그리움이 잘 벼린 칼날처럼 독자들의 가슴을 찌르는,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갈무리하는 시인의 절제된 문장들이 감각과 감정이 날로 둔해지는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을 강에 뿌렸다. 아무리 재를 흘려도 강은 맑게 흐르고 그 강변을 걸으면 당신이 되살아난다. 얼굴에 검댕이 묻고 숯이 번진다. 그러나 이제 숯을 씻어내지는 않는다 열과 빛을 간직한 채 살기로 했다. 서서히 땅거미 내리고 소리가 잠기고 저녁이 오면 강물에 숯이 풀리고 그렇게 모든 강물은 탄천이 되어 우리 속을 세차게 흐르고 있다."  (p.248)


나이가 든다는 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생긴 정강이의 멍을 발견하는 것처럼 영혼의 외피에 생긴 멍울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뒤늦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고,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가슴속 멍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올 것이 있다. 비와 눈은 오는 것. 기다리는 것. 꿈의 속성은 비와 눈처럼 녹는다는 것. 비와 눈과 사람은 사라지는 것. 그렇게 사라지며 강하게 남아 있는 것. 남아서 쓰는 것. 가슴을 쏟는 것. 열고 사는 것. 무력하지만 무력한 채로 향기로운 것. 그렇게 행과 행 사이를 날아가는 것."  (p.253)


꽤나 오래전에 읽었던 책의 리뷰를(리뷰를 가장한 나의 생각을) 쓰자니 문장은 얽히고 생각은 뒤섞인다. 늦잠을 자고 만 휴일의 게으름이 문장 곳곳을 파고들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의 리뷰를 남겨야 하겠다고 결심했던 건 '무력하지만 무력한 채로 향기로운' 시인의 감각이 몹시도 탐나서, 둔감해지는 나의 감각과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아마도 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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