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지음, 황규백 그림 / 청림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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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배우다>. 책의 제목 치고는 너무나 평범하고 밋밋하다. 평범하다 못해 촌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런 촌스럽고 밋밋한 제목도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저자가 살아온 길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와 같은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을 듯 여겨지기도 한다. 저자가 걸어온 길이 그대로 책의 제목으로 걸린 듯 어디 하나 어색한 구석이 없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괴테 할머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저자 전영애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인생을 배우는, '인생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저자였기에 <인생을 배우다>라는 책의 제목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듯 여겨진다.


"남의 삶을 세세히 알 수야 없다. 그러므로 남들은 대체로 편안하거나 그저 그만한 것 같고 나 혼자만 이런 수렁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오해, 어쩌면 그런 오해를 기반으로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 구절을 대할 때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 내 눈앞을 스쳐가는 삶의 굽이굽이들. 그걸 지나고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p.139)


한국을 대표하는 독문학자이자 독일 바이마르 괴테학회로부터 동양 여성 연구자 최초로 '괴테 금메달'을 받은 명실공히 괴테 권위자이기도 한 전영애 서울대 교수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마음에 떠오르는 단상과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삶의 지혜를 담아 책으로 펴낸 <인생을 배우다>는 저자의 푸근한 인상처럼, 자신의 삶을 통하여 둥글게 마모된 마음의 원형이 여유와 기품으로 묻어난다. 삶 자체로 기쁨이고 선물인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전하고 싶은 욕심, 그것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였다고 밝히는 저자는 자신이 만났던 아름다운 인연들을 소개하며 우리처럼 각박한 현대인들이 이따금 잊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뿐만 아니라 프란츠 카프카, 니체, 쿤체 시인 등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문학세계가 황규백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담겨 있어, 책을 읽는 즐거움과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저 자본의 메커니즘 속에서 마모되지 않고 이런 삶의 이치를 생각하는 순간도 좀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가끔씩, 잠시나마 그 사슬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젊은 날 모습을 유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답게 있어야, 그런 사람들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세상은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p.276)


저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여백서원을 짓고 가꾸었다고 말한다. '혼자 힘으로, 외로움의 힘으로 만든 이 터에서 여러 사람이 쉬고 배우기를' 바라는 뜻에서 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저자와 같은 참어른이 있는가 하면, 159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숨진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끄러운 어른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정치인들을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지 않는 한 우리의 젊은이들은 자본의 메커니즘 속에서 병들고 마모될 게 뻔한 일, 기성세대의 책임이란 바로 그런 것, 자본의 사슬로부터 우리 젊은이들을 구출하여 젊음의 태동을 유지시키는 것이 아닐까. 달리 더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친구들의 소중함을 좀 더 가르쳐야 할 것 같다. 내가 남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나도 자동으로 귀해지는 이 자명한 이치를 마음에 새겨주어야 할 것 같다. 능률화가 가속화되는 미래에는 인구의 8할 정도는 불필요하다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고, 빈부격차의 심화도 심각하게 체감된다. 우리가 파멸로 가는 공룡이 될 수야 없지 않은가."  (p.164)


현 정부 들어 타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이 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에 따라 전에는 없거나 찾기 어려웠던 증오 범죄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야당 대표를 살해하기 위해 칼을 갈고 목을 찌르는 연습을 해온 정신 나간 자도 있었고, 여당의 여성 국회의원에게 상해를 입힌 미성년자도 있었다. 이런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의 정치인들은 그 심각성도 인지하지 못한 채 증오심만 부추기고 있다. 폭주하는 증오 기관차의 끝을 보자는 것. 우리는 그 결말을 향해 오늘도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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