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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곁에는 언제나 책 한 권이 놓인다

계절을 앞서 바람이 불고

잎새 사이로 잔설처럼 햇살이 쌓인다

오후의 공원벤치엔 어느 사진의 배경을 닮은

노인의 굽은 등이 붙박힌 듯 하염없고

낱글자가 돋아나는 햇살을 천천히 넘긴다

 

대열을 이룬 개미가 느릅나무 기둥을 오른다

'아, 저들도 무엇을 찾는구나!'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이

무엇을 향해 가는 묵묵한 발걸음

 

가는 계절은 또 오면 그뿐

돌아 앉은 노인과 대열을 이룬 개미는

결국

잡히지 않는 바람으로 이 가을의 배경이 된다

 

입자 속으로 낱글자가 사라진다

네 이름을 그예 붙이면

어제와 같은 그날, 네가 웃던 그 시간에

지금과 같은 배경으로 남을 수 있을까

 

두려움 곁엔 언제나 한 권의 책이 놓인다

 

<오늘 오후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었다.  아주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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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대학 시절의 낡은 노트를 뒤적이다 딴에는 소설이라고 끄적거렸던 제법 긴 글을 보게 되었다.  분명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았을 텐데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의 얼굴은 통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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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말라 있었다.

내용에 비해 턱없이 가벼운 논리.  일상에서 벗어난 말은 언제나 뽀얀 흙먼지처럼 날린다.

진주는 말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논리가 부딪힐 때마다 매번 가슴이 답답하고, 불같은 성질의 그도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급기야 몰상식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던, 좋지 않은 기억들이 그녀를 현실에서 한발짝 떨어진 침묵의 공간으로 기어들게 만들었다. 몇 번의 체험만으로도 인간은 쉽게 굴복하고 길들여진다.  그에 비하면 일상의 가벼움은 얼마나 자유롭고 따스한가!

지친 일상만을 분주히 떠들어 대는, 청중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되는 대로 말을 토하는, 조금은 천박해 보일 정도의, 그저 흔하게 보이는 아줌마라고, 진주 자신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와의 대화에서는 언제나 맨밥을 먹는 사람이 쉬어빠진 김치라도 원하듯이 간절한 그 무엇을 갈망하게 했다.  중심에서 벗어난 그녀의 상념은 거실의 벽을 훑고, 부엌에 흩어진 설거지 꺼리를 더듬어 그녀의 구멍 난 양말에 와서야 끝났다.

“지금 듣고 있어?”

그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진주는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응, 듣고 있어.”

“그런데 왜 대답이 없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대답 좀 해라. 아무 대꾸도 없으면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알아?”

그는 분명 수화기 건너편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을 터였다.


  진주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는 더위 속에서 친구의 집을 찾던 그녀는 잠시 땀을 식히려 편의점에 들렀다.  서늘한 냉기에 등줄기의 땀이 잦아들 즈음 진주는 비로소 주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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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서두만 옮겼다.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고, 제목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라는 경제학 공부는 멀리하고 나는 참 쓸 데 없는 일에만 시간을 허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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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일 년 중 책이 가장 안 팔리는 계절 또한 가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새로 출간된 에세이는 대부분 요즘의 시회적 이슈로 주목을 받는 '힐링'과 연관된 책들 일색이다.  출판사 입장에서 한 권이라도 더 팔아 보고자 하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랫말이 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이렇게 시작하는 고은 시인의 <가을 편지>.  김민기가 곡을 붙이고 이동원이 불렀던...  이 노래를 들으면 가을날의 그리움과 짙은 우수가 가슴 속 깊이 묻어나는 듯하다.  그리고 연습장에 그때의 그리움을 어설픈 시로 남기고 싶은 애잔한 느낌이 든다.  나처럼 메마른 사람도 이럴진대, 어느 누구나 가을엔 시적 감흥이 저절로 생겨나는가 보다.  이 계절에는 한 권의 시집이나 시인의 에세이가 제격이 아닐까?

 

 

 

 

 

 

내가 읽어 본 김정한 작가의 작품은 하나같이 편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고독하다는 뜻이다.  멀리 있어도 헤어지고 싶지 않은 심정, 그것이 편지가 갖는 상징성이 아닐까?  여전히 작가는 외롭고 자신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듯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먹물같은 슬픔이 밀려오더라도 한바탕 실컷 울고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길 것이다.  이 가을에.

 

 

 

 

 

 

 

삶에 지치다 보면 내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하고 한번쯤 자문하게 된다.  내가 아닌 주변의 다른 사람만을 위해 내 한평생을 산다면 '나'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해도 미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았던 적이 있었나? 하고 되묻는다.  '아마 그럴지도...'. 나는 명확히 대답하지 못한다.  늘 그렇게 자신이 없다.  오직 나에게는.  여행 에세이스트 테오의 책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작품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슨 실수든 할수 있는 권리가 있어, 단 한가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실수만 빼고,"라고.  우리는 이렇든 저렇든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것은 누군가의 확신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의무도 내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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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볼라벤'이 언론이나 정부가 요란을 떤 것에 비하면

조용히(?) 물러갔다는 느낌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오늘 낮에는 제법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나무를 보며

'아, 솔잎에도 앞뒤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껏 활엽수의 넓은 나뭇잎만 앞뒤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

침엽수인 소나무의 잎도 그 색깔이며 표면이 앞과 뒤가 다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솔잎은 바람의 기세에 눌려서인지

잔뜩 움츠린 모습이 안돼 보이고

쓰러질듯 위태위태한 모습에 가슴을 졸였었다.

내가 더욱 놀랐던 것은 바람이 잠시 잦아들었을 때의

소나무 모습이었다.

푸르고 정정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한나절의 바람에 시달린 소나무는

마치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처럼

솔잎마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 나무도 고난을 겪으면 늙는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뿌리와 흙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나무는 지금보다 더 잘 자라겠지만

그 짧은 순간의 고통은 우리네 인간처럼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음을 잘 알 듯하다.

 

우리는 말이나 언어가 아닌,

우리들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체험을 통하여

신과 소통하고 있음을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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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 편향이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흥미있게 읽었던 분야는 분명 존재하는 듯하다.  그 중 하나는 심리학과 관련된 책들인데, 나는 사실 심리학을 그닥 신뢰하는 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심리(의식 또는 무의식)를 유형의 어떤 것으로 치환하려는 심리학자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이런 치기어린(?) 행동이 과학을 빙자한 말장난이나 언어적 유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더구나 정신분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 내재한 다양한 심리 중 몇몇을 부각시켜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나와 같은 일반인들로 하여금 '그렇구나'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것, 이미 존재하던 대륙을 콜럼버스가 발견하였다는 사실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대륙을 새로 창조한 것인 양 환호하는 모습과 하등 다를 게 없다고 본다.  대체로 약간의 허구가 가미된 문장이나 말은 강한 중독성을 내포하게 마련이어서 한번 맛을 들이면 좀체 벗어아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심리학을 하나의 실증적 과학처럼 믿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심리학은 화학반응처럼 수십 번 또는 수백 번의 실험을 통하여 얻어진 학설이나 이론도 아니요, 우리 앞에서 꼼짝 못하게 증명할 수 있는 이론도 아니다.  그럼에도 심리학자들이 심리학의 과학적 측면을 특히 강조함으로써 대중들의 신뢰를 쉽사리 확보하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아마도 그들이 나쁜 맘을 먹고 사기를 친다면 그들의 술수에 걸려 들지 않을 사람이 없을 듯싶다.

 

그렇다고 내가 심리학을 무시하거나 거들떠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다.  이처럼 심리학을 그닥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심리학 서적을 탐닉하는 나의 이율배반적 행태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어쩌면 나의 이러한 반응 이면에는 유아기부터 형성되어 온 방어기제 '회피'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삶에서 오는 고통이나 부조리한 삶의 흔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공간, 심리적 갈등과 공포로부터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여겼던 마음의 휴식처, 또는 어떤 상상도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안전지대로 나는 독서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설과 철학에 악다구니를 쓰듯 매달렸었다.  자라면서 소설과 철학은 조금 시큰둥해졌지만 심리학과 물리학 등 다른 분야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을 뿐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전문용어로 '회피'는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라고 한다.  부정적 감정으로부터의 도피, 그로부터 비롯된  삶의 의미에 대한 가치 절하, 삶의 열정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며 한없이 서성거리던 나의 청춘.  내 의식은 끝없는 상상의 세계에 중독되듯 이끌렸고, 그럴수록 더욱 독서에 빠져들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용어를 모른다고 삶을 모르는 것도 아니요, 내 삶의 중심부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닌데, 지금도 나는 한동안 책에 빠져들 때면 '회피'에 대하여 생각하곤 한다.  삶은 가슴으로 부딪칠 일이지 독서와 사색으로 멀리서 바라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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