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볼라벤'이 언론이나 정부가 요란을 떤 것에 비하면
조용히(?) 물러갔다는 느낌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오늘 낮에는 제법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소나무를 보며
'아, 솔잎에도 앞뒤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껏 활엽수의 넓은 나뭇잎만 앞뒤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
침엽수인 소나무의 잎도 그 색깔이며 표면이 앞과 뒤가 다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솔잎은 바람의 기세에 눌려서인지
잔뜩 움츠린 모습이 안돼 보이고
쓰러질듯 위태위태한 모습에 가슴을 졸였었다.
내가 더욱 놀랐던 것은 바람이 잠시 잦아들었을 때의
소나무 모습이었다.
푸르고 정정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한나절의 바람에 시달린 소나무는
마치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처럼
솔잎마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 나무도 고난을 겪으면 늙는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뿌리와 흙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나무는 지금보다 더 잘 자라겠지만
그 짧은 순간의 고통은 우리네 인간처럼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음을 잘 알 듯하다.
우리는 말이나 언어가 아닌,
우리들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체험을 통하여
신과 소통하고 있음을 조금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