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교가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많은 분들이 "네."라고 대답하겠지요. 물론 "아니오."라고 단언하듯 말하는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느 순간 '나도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닥 선량한(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충실히 믿고 따른다는 의미에서) 종교인이라고 말할 처지는 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종교가 어떤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두고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저는 무신론자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과연 우리의 삶에서 종교는 그 자체로서 필요한 것일까?'하는 질문과 '필요하다면 어떤 시기와 상황이 적절할까?'하는 물음에 답을 구하고자 할 뿐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종교 따위는 필요없는 것일 수도,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일 수도, 또는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인생 전반에 있어 종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종교를 선택해야 하겠다고 느꼈던 시점도 정확하고 시기 적절했던 것일까요? 종교 자체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그 시기의 적절성 말입니다.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선택한 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다니던 유치원의 원장 선생님의 강요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요? '마감 임박'이라는 멘트에 나도 모르게 전화를 거는 홈쇼핑의 충동구매와 같은 행태를 보이지는 않으셨나요? 또는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는 가끔 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분들이 어떤 계기로 종교인이 되었는지, 그때의 순간이 자신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는지 의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일 수도 있지만 제가 그랬으니까요. 정신적으로 황폐화되고 누군가의 위안이나 구원이 절실할 때 저는 종교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던 듯싶습니다. 다들 그렇게 종교를 선택한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던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고, 배려심이 가득했고,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그의 모습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전의 그가 아니란 걸 확인한 사람들은 그의 곁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는 결국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종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는 사람뿐 아니라 신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책에서는 삶이 축제요, 소풍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삶의 일부분인 종교생활도 그런 게 아닐까요? 일종의 정신적 유희나 놀이와 같은 그런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선택하는 순간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신적으로 이성적 판단이 왕성할 때, 편안한 삶이 지속되어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때 종교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의 예에서 신은 인간에게 어떤 혜택을 준 것도 아니지만 해를 끼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엾은 인간은 신을 원망합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예컨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눈앞의 곤경을 벗어나고자 사채의 덫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채업자는 그런 사람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지요. 처음에 사채업자는 선심을 쓰듯 그들을 유혹합니다.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그들은 사채업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문제만 해결했을 뿐 더 크고 어려운 문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습니다. 사채업자는 이제 그들 위에 군림하면서 그들을 조롱하고 협박합니다.
이건 순전히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어리석음은 종교의 선택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을 찾아 떠난 여행』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미국 공영방송 NPR의 해외특파원으로 일하며 전 세계의 전쟁과 가난, 질병 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그 때문에 만성적인 불안증과 우울증이 더욱 악화됐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인생을 신에게 의지하지는 않았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각종 폭력들을 목격하며 종교와 더욱 거리를 두기도 하였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다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고 합니다. ‘신과 종교의 관계는 음식과 메뉴판의 관계와 같구나.’라고 말이죠. “당신의 신을 만나지 못했나요?”는 애당초 틀린 질문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신은 잃어버린 자동차 열쇠나 뉴저지 톨게이트 출구 같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죠. 그는 이 책에서 '신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나의 신을 찾아다니는 대신 신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구축하고 조립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내가 조립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유대교이지만, 지지대는 불교다. 심장은 수피즘으로 되어 있고, 그 밖에도 이 신은 도교의 소박함, 프란체스코회의 너그러움, 라엘교의 쾌락주의 조금을 갖고 있다." (p.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