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는 일이 때로는 한심하고 역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예컨대 오늘 같은 날이 그랬습니다. 잠깐 얼굴이나 보자는 전화에 '합석할 사람이 또 있느냐'고 묻지도 않은 채 '그러마'고 대답했던 것이 제 실수라면 실수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거리를 30분쯤 운전을 하여 도착한 약속 장소는 무슨무슨 가든이라는 간판이 걸린, 그닥 마음이 내키지 않는 장소였습니다. 내게 전화를 했던 사람은 도착한 지 꽤 되었는지 고기를 굽는 불판은 검게 그을러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도 두어 개 놓여 있었습니다. '이거 잘못 걸렸구나.'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그를 두고 그냥 돌아설 수도 없어 어정쩡한 자세로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테이블 맞은편에서 대작을 하던 사람이 내게 인사를 하기 전까지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었는데, 언젠가 지금과 같은 술좌석에서 몇 번 마주쳤는지 안면이 익은 듯도 하였습니다. 내가 술을 못한다는 것을 익히 아는 지인은 술을 권하지는 않았지만 앞에 앉았던 사람은 내게 한사코 술잔을 쥐어 주며 술을 따랐습니다. 받아만 놓으라면서.
삼겹살이 까맣게 타들어가도 두 사람은 도통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마지못해 나는 고기를 굽고 팔자에도 없는 술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거기까지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습니다. 두 사람은 거나하게 술기운이 올랐는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으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인의 고향이 경상도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앞에서 대작하던 사람의 고향은 내 관심사도 아니었고 지역색으로 누군가를 경멸하거나 헐뜯는 사람을 인간 이하로 보는지라 그 사람이 전라도 사람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술기운이 오른 두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침을 튀기며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다가 급기야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판에 박힌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사람들은 야비하기 이를 데 없다는 둥, 어디 사람은 뒤통수를 잘 친다는 둥, 어디 사람은 빨갱이라는 둥, 무식하다는 둥 그들의 주장은 하나같이 논리도, 근거도 없는 헛소리였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과학적 근거나 논리를 들어 말하라고 몇 번이나 말하였지만, 그들의 뇌 어딘가에는 그들의 조상이나 어느 정치인 또는 일부 언론의 주장이 마이크로 칩으로 내장되어 있는지 앵무새처럼 같은 얘기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인간의 탈을 쓴 인조인간이나 로봇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결국 그들 둘만을 남겨둔 채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가겠다는 인사도 없이 말입니다. 어찌 그들을 정상적인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그들은 그저 허깨비에 불과한 놈들이었습니다. 그런 놈들을 만나기 위해 비싼 연료를 소모한 것도, 귀한 시간을 허비한 것도 후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인간 같지도 않은 그런 놈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허깨비들이 비싼 밥을 먹고 있습디다. 아직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