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세워 놓은 것도 아닌데 누군가는 항상 먼저 전화를 걸고, 또 누군가는 어떤 죄책감도 없이 줄곧 오는 전화만 받게 된다. 마치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그리 되도록 정해진 것처럼. 우리가 정한 적 없는 알 수 없는 원칙들은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주야장천 전화만 거는 사람도 어느 한순간 뻗대볼 만도 한데 얼마 못 가서 제 풀에 지쳐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전화를 걸고 만다. 운명처럼 질긴 게 또 있을까.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후자에 가깝다. 갖은 교태를 부려 살갑게 전화를 걸라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상하게도 어떤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한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낼 생각을 하지 못한다. 매번 타박 아닌 타박을 들으면서도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궁금하다거나 그립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런 것을 두고 혹자는 내게 무심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무심한 성격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건 자기변명이 아니다. 그저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주는 것 자체가 싫을 뿐이다.

 

어제는 '간통죄(adultery)'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1953년에 제정되었던 이 법은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예전에 어느 외국인과 '간통죄'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된 법이기에 그 외국인이 보기에도 한국이 참 보수적인 국가구나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간통죄가 폐기되었다고 콘돔 제조사의 주가가 상한가를 치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뭔 연관성이 있는지.

 

오늘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임명되었다. 답이 없는 정부다.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구나 싶다. 그게 대한민국이라는 게 어이없지만. 이따금 하늘을 보지 않는다면 그 화를 어찌 다 삭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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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전날의 무겁고 더딘 시간의 흐름처럼 하늘은 온 종일 어둡고 칙칙한 구름에 가려 시간의 경과를 도통 가늠할 수 없는 하루였어요.  나는 그 거무튀튀한 어둠을 응시하며 냉기가 도는 푸른 빛의 형광등 조명 아래서 긴 하루를 견뎌냈구요.  인터넷에서는 실시간으로 전국의 교통상황을 내보내고 있었지요.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귀성차량의 행렬 속에서 앞 차량의 번호판을 나도 모르게 외우는 것은 얼마나 가치 없고 불행한 일인지요.  나는 그 행렬 속에 끼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우울을 조금쯤 털어낼 수 있었답니다.

 

낮의 어둠은 농도에 있어 밤의 어둠에 뒤진다 할지라도 어깨에서 느껴지는 무게는 밤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어깨를 짓누르는 어둠의 무게를 고스란히 떠받치며 한동안 어깨를 웅크렸던 탓인지 등허리가 뻣뻣하게 굳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정말이지 이런 날은 뭘 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법이지요.

 

그렇다고 설 명절을 애타게 기다리는 건 아니랍니다.  그럴 나이는 한참이나 지났죠.  명절을 애타게 기다리는 건 어쩌면 학창시절에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로는 쭈욱 약간의 중압감과 의무로 명절을 맞이했었던 듯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명절은 차츰, 과거의 낭만은 조금씩 퇴색하고 일 년 중 연휴가 있는 시즌쯤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농도 짙은 어둠이 가볍게 내려앉았습니다.  명절 연휴는 벌써 시작되었군요.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를 읽고 있습니다.  가벼운 어둠 속에서 무거운 문장을 읽으려니 내 몸이 지구 중심을 향해 깊이 가라앉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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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마음도 몸도 늘 바쁘다.

일년 중 가장 날수가 적은 달이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알차게 보내야지 다짐하지만 언제나 빈 결심으로만 끝날 뿐 무엇 하나 제대로 끝을 맺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저 '벌써 3월이야?' 하는 놀람의 말로 지난 2월을 아수워했을 뿐이다.  올해는 숫제 게획도 세우지 않았다.  흐르는 대로 두고 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3월을 맞을 셈이다.  다만 2월이 다 가기 전에 좋은 에세이 두어 권 읽었으면 싶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편견없는 '책사랑' 때문이다.  평생에 걸쳐 책을 좋아했던 그의 한결같음은 문장 곳곳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평생 기교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마음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  헤세는 흔들림 없는 마음을 자신의 영혼에 담아 아무리 우려내어도 마르지 않을 깊은 울림의 글을 남겼다.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대표 작가이자 교육 실천가인 하이타니 겐지로를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작가가 40대 무렵에 쓴 산문을 모았다는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상냥함'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전국민이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듯한 요즘의 우리에게 상냥하다는 말은 너무나 멀어진 느낌이 든다.

 

 

 

 

 

 

 

 

'TED'에서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밋밋한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없던 힘도 짜내어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스(moth)'는 처음 들었다.  테드만큼이나 유명한 스토리텔링 이벤트라는데 말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내가 강제윤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을 읽으려 했는데 나는 그만 강제윤의 <숨어사는 즐거움>을 읽고 말았다.  저자가 다른 같은 제목의 책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말이다.  물론 책이 맘에 들지 않았으면 단박에 던져버렸겠지만 처음 접한 그의 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더 오래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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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제로든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조금 바빴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글 쓰는 일은 관심 밖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내게 금전적으로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한가지 일에 골몰하느라 여타의 다른 일에 일절 손을 놓고 지낸다는 것은 보기 좋지도, 그렇다고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런 핑계가 자칫 나를 무관심이나 게으름의 어떤 영역으로 끌고 가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매일은 어렵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또는 그 이상을 목표로 삼아야겠다는 생각과 적어도 읽었던 책의 리뷰는 빠뜨리지 않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의 1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습관처럼 먹고, 씻고, 잠들었던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여전히 담배는 피우지 않고 있지만 시시때때로 담배 생각이 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낮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기사가 생각난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군대 내 성폭행 관련 발언에서 새누리당 송모 의원이 했던 말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다. 임모 대령이 여군 하사를 성폭행했던 까닭이 외출, 외박을 못해서라니...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육군 여단장을 두고 "들리는 얘기론 (해당 여단장이) 지난해에 거의 외박을 안 나갔다. 가족도 거의 면회를 안 들어왔다"며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이 사람 성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측면을 우리가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언급했단다.

 

이 사람 주장에 따르자면 외박을 나가지도 못하고 나이도 20대인 일반 사병들은 누구나 부대 내에서 성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 아닌가. 그래서 해결책으로 군대 내 위안부라도 두자는 말로 들린다. 이런 썩어빠진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더구나 '하사 아가씨' 발언까지. 구제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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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세월 참 빠르지요? 저도 지난 연말부터 지금껏 꽤나 바쁜 일정을 보낸 듯합니다. 그러나 2015년이 시작된 후 제가 체감하는 하루 하루는 굼벵이처럼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명절이나 주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몸이 바쁜 시간에는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 한가해진 낮시간이나 늦은 밤 홀로 있을 때 시간은 그야말로 멈춰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길 체감하는 세월은 40대는 40km, 50대는 50km의 속도로 흐른다는데 저는 마치 없는 시간을 훔쳐오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하루가 느릿느릿 흐르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느낍입니다.

 

부럽다구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그 비밀스런 방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세월이 천천히 흐르게 하는 비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중독이 될 만한 대상(담배, 술, 마약, 도박, 섹스 등) 하나를 콕 집어 고른다. 중독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2. 자신이 선택한 대상(예컨대 저는 담배를 선택했었죠)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가급적이면 십 년 이상의 중독 상태를 유지한다.

3. 어느 날 갑자기 중독 상태를 해제한다. 시시각각 자신의 중독성을 실감하며 꿋꿋이 참고 버틴다.

 

이해가 되나요? 2015년의 시작과 함께 금연을 한 저는 하루가 이토록 길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흡연의 욕구는 잠들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오죽하면 저는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날 요량으로 그토록 열심이던 아침운동도 그만둘까 생각했을까요. 저보다 먼저 금연을 실천했던 분들이라면 지금의 제 상태를 백번 이해하고도 남겠지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요. "담배 끊는 게 제일 쉽다. 나는 100번도 넘게 끊었다. (Quitting smoking is the easiest thing. I’ve done it hundreds of times.) 그는 한때 그런 말도 했습니다. 건강이 나빠진 최후의 순간을 위해서 나쁜 습관 한두 가지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예컨대 그의 주장은 이런 뜻이었죠. 배가 가라앉을 때 바다에 버릴 짐이 있어야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처럼 건강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하여 건강에 해로운 어떤 습관(이를테면 흡연이나 음주, 마약 등)중에 무엇인가 버릴 게 있어야 자신의 건강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마크 트웨인의 일화 중에는 재미있는 게 많은데 그가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죽은 사람 중의 80%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조금 썰렁한가요? 아무튼 그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 담배 생각이 날 만한 일은 가급적 삼가하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거나, 커피를 마신다거나, 과식을 한다거나... 낮동안에도 아무 생각도 없이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금연한 지 고작 여드레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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