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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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느끼는 고독감은 그 속의 옅은 감미로움으로 인해 자기 도취에 이르는 실핏줄처럼 가는 숨구멍이 돼주곤 한다. 며칠 전 내려 녹다 만 잔설과 알싸한 추위가 마치 잘 조합된 피아노 협주곡처럼 겨울의 풍미를 더하는 휴일 아침에 나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체실 비치에서>를 읽었다. 작가의 섬세한 필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먼 이국의 어느 바닷가로 나를 안내한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어느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지만 나는 유독 <체실 비치에서>를 좋아한다. 그것은 마치 내 젊은 시절의 벌거벗은 열정을, 인내와 절제로 갈무리되지 않았던 무모함의 실체를, 부풀 대로 부풀었던 자존심의 상흔을 하나하나 훑어내는 것만 같다. 솜이불 속에 박제된 여름날의 더위를 반추하는 것처럼. 나는 칼에 베인 듯 아팠을 젊은 시절의 사랑을, 그리고 실체가 없이 사라진 그 시간의 그림자를 하릴없이 좇고 있다.

 

소설은 스물두 살 동갑내기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매듭 삼아 이들 삶의 앞과 뒤를 조명한다. 로큰롤을 좋아하는 런던대 역사학도 에드워드와 현악 사중주단을 열정적으로 이끄는 왕립음악대학 학생 플로렌스는 그들이 자라온 환경만큼이나 다르지만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에드워드는 뇌손상을 입어 정신착란에 빠진 어머니와 쌍둥이 여동생, 그리고 집안일과 직장일에 지쳐 있던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네 살에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어머니가 보통의 어머니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에드워드는 대학에 진학하여 집을 떠날 결심을 굳히고 공부에만 매진한다. 언제나 손님처럼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반면에 플로렌스는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와 대학교수 어머니를 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체면과 격식을 중시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플로렌스.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섹스 자체를 혐오한다. 상반된 환경에서 자라난 두 남녀는 각자 다른 이유로 서로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결혼에 이르지만 막상 신혼 첫날밤에 대한 두려움은 둘 사이에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칠월 중순의 어느 날 그들은 체실 비치의 외딴 호텔에 있다. 남편과 아내의 자격으로. 소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일 년여의 연애 기간 동안 깊은 관게로 발전하지 못했던 것이 불만이었던 에드워드는 결혼이 “교구 목사의 축복까지 받은 음탕하고 유쾌한 벌거벗은 자유”라고 생각했지만, 플로렌스에게는 하나를 허락하면 또 다른 욕망을 갈구하는, 지속적인 압박 속에 가해지는 “끝없는 갈취”로만 여겨졌다.

 

소설은 두 사람의 감정 선을 따라 진행된다. 마치 세심한 연주자의 깊고 정확한 연주처럼. 소설의 무게중심은 에드워드보다는 플로렌스에게 있는 듯한데 여성의 심리를 어찌나 잘 묘사했던지 작가가 혹 여성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세밀하다. 섹스를 혐오하면서도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려 했던 플로렌스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에드워드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반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첫날밤만을 기다려왔던 에드워드는 아내와의 결합을 서두르다 결국 삽입도 하지 못한 채 플로렌스의 배 위에 사정을 하고 만다. 그 기분 나쁜 경험을 끔찍하게 생각했던 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방에 남겨둔 채 뛰쳐 나간다. 그리고 플로렌스의 행동을 지켜본 에드워드는 오히려 자신이 모독을 당했다고 느낀다.

 

이러한 과정의 심리 변화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플로렌스를 찾아 나선 에드워드와 그를 피해 달아났던 플로렌스의 재회 장면이었다. 플로렌스는 자신의 감정과는 반대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마치 우리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서 퉁명스런 말투로 응대하는 것처럼. 자신의 불안 심리를 낮추기 위해, 또는 자신의 동기를 숨기기 위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욕구나 감정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심리학의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을 작가는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해변에서 등을 돌리고 떠나는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려면서 그녀는 에드워드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는 가방을 싸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결국 파경을 맞는다.

 

"그의 분노가 그녀 자신의 분노를 일깨웠고, 그녀는 갑자기 그들의 문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의견 차이가 날까봐 두려워했고, 이제 그의 분노가 그녀를 그런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있었다." (p.174~p.175)

 

플로렌스와 헤어진 에드워드는 백발의 통통한 노인네가 될 때까지 “반쯤 잠든 상태”에서 살다가, 그제서야 그들 사이에 필요했던 게 ‘사랑과 인내’였음을 깨닫는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이 된 에드워드와 어렸을 때의 나쁜 기억을 품은 채 체면과 격식을 따지는 엄격한 환경에서 자의식 강한 여성으로 성장한 플로렌스는 어쩌면 자신이 갖지 못한 모습을 서로에게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의 결합은 로큰롤과 클래식의 결합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었을 게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p.197)

 

나는 지난 여름의 달뜬 열기가 생각날 때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체실 비치에서>를 떠올리곤 한다. 인내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대지에 내리 쬐던 뜨거운 열기도 이 겨울의 추위 속에서는 한낱 한줌의 추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체실 비치의 자글거리는 몽돌 소리와 함께 환청처럼 되새기고 있다. 한겨울에 읽는 <체실 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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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9 2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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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4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쟁이 피터 - 인생을 바꾸는 목적의 힘
호아킴 데 포사다.데이비드 S. 림 지음, 최승언 옮김 / 마시멜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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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으면 넓을수록 풍요롭고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멀마 전 고등학생 때 만나 지금껏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는 한 분을 만나고 왔습니다. 스님으로서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죠. 속세와 동떨어진 작은 암자에 기거하며 단식과 좌선으로 일관하셨으니 이제는 적당히 사셔도 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아무튼 저는 어떤 고민이 있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곤 합니다. 한번 그렇게 휑하니 다녀오면 마음도 몸도 한결 가벼워지곤 합니다.

 

스님은 그런 저를 보고 이따금 농담삼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천주교 신자가 신부를 찾아갈 일이지 왜 애먼 중을 찾아 오느냐고 말이죠.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종교를 떠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한결 편한 걸요. 차를 타고 서너 시간을 가서 다시 산길을 두어 시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니 제가 사는 곳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죠.

 

이번에는 특별히 당부하실 말이 있었던지 스님이 먼저 청하셨습니다. 드문 일이죠.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는 게 도리이겠으나 세상에 매인 몸이 어디 그리 쉽게 떠날 수 있습니까. 이 핑계 저 핑계로 한참 뜸을 들이다가 간신히 시간을 내어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스님을 뵐 때면 으레 밀렸던 이야기가 늘어지는지라 보통은 하룻밤 신세를 질 각오를 하고 떠납니다. 스님과 하루 반나절 나누었던 대화를 이곳에 다 옮길 수는 없지만 이번 산행에서 깊이 새기게 된 말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나와 죽음과의 거리에 있어. 죽음과의 거리란 시간상의 거리가 아니라 마음 속의 거리를 의미하지. 가령 내일 죽을 사람도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과의 거리가 한없이 멀 테고, 죽을 날이 사오십 년 남은 사람도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고 맏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죽음이 지척으로 가까운 법이지. 어차피 죽음이란 순리이고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순간, 그 사람의 시야는 온 우주를 품을 듯이 넓어지는 게야. 생각해 봐. 어차피 죽는 마당에 욕심낼 게 뭐가 있겠어? 그제서야 나를 잊게 되고, 가족이 보이고, 이웃이 보이고, 우주가 보이는 법이지. 천지개벽이라고나 할까? 하여, 죽음 직전에라도 자신의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겠지. 대개는 내일도 오늘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지금 당장 죽어 나자빠지는 사람이 허다하니까."

 

결국 스님의 말씀은 '죽음과의 거리'를 좁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상으로가 아니라 인식의 차원에서 말입니다. 나의 성공, 나의 가족, 나의 건강 등 오직 나에게만 집중되었던 시각을 이웃과 사회, 혹은 전 인류를 향해 시야를 넓히려면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더구나 젊은 나이에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을 듯합니다.

 

저는 자기 계발서로 분류되는 책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책으로 <난쟁이 피터>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저도 책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울컥하는 감정을 추스려야 했으니까요. 책의 주인공인 피터는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은 아이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학교에서는 늘 놀림과 따돌림의 대상이었구요. 게다가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극적인 반전을 노린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말입니다. 피터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의 막노동꾼이었고, 폭력을 일삼기도 했었죠. 불쌍한 피터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유일했습니다.

 

그러나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피터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죽게 됩니다. 결국 아버지와 둘만 남은 피터에게 불행은 또 다시 닥쳐옵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피터의 아버지를 이웃이 신고한 것이지요. 아버지마저 요양원으로 보내지자 피터는 가출을 합니다.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던 그는 어느 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길이 보이지 않는 외로운 사막에서도, 파도가 무섭게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도 별빛에 의지해 방향을 잡고 두려움을 이겨냈대. 그래서 별빛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꿈이 되고, 사랑이 되는 거야. 피터, 살다 보면 정말정말 힘들 때가 있을 거야. 이 엄마조차 도움을 줄 수 없는 때..., 그때는 별을 한번 쳐다봐. 나의 목적이 뭔가를 생각하고 방향을 확인하는 거지. 그런 다음에는 다시 씩씩하게 걸어가는 거야." (p.46)

 

집에서 갖고 나왔던 돈도 떨어지자 피터는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고, 신원도 불확실한 그로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 그는 택시 회사에 취직을 합니다. 알선료를 지불하면서 어렵게 만든 자리였죠. 택시기사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피터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은 단연 크리스틴 선생님이었죠. 피터의 어머니가 죽은 후 가출한 피터를 찾기 위해 노숙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셨던 분이니까요. 크리스틴 선생님을 통하여 여자친구도 사귀게 됩니다.피터의 택시를 탔던 승객 중에는 무료진료 봉사를 하는 소아마비 의사도 있었습니다. 그는 피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며 사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서로 나누며 사랑하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욕심부릴 때 세상은 한없이 불공평해 보이죠. 왜냐하면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내 것을 먼저 나누고,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면 세상은 공평하게 보입니다.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죠." (p.109)

 

피터의 인생에 멘토 역할을 한 사람은 그 외에도 많았습니다. 노숙자들을 돌보는 알렉스 경, 같은 택시기사이면서 형 동생으로 지냈던 가브리엘, 하버드 법학대학원 교수인 프랭크, 피터의 곁을 지키며 응원을 해주었던 여자친구 미셀 등이 대표적입니다. 불행한 환경이었지만 그의 곁을 지켜주던 많은 멘토가 있었기에 피터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워너 교수의 '회복 탄력성'이 생각나더군요. 피터는 야간 대학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물론 택시기사를 하면서 말이죠. 그후 프랭크 교수의 도움으로 하버드 법학대학원도 마치게 됩니다. 노숙자에서 변호사가 된 신화를 쓴 셈이죠. 그는 교수로 남는 게 어떠냐는 프랭크 교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돕겠다며 뉴욕의 거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비록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고등학교에서 연설도 하게 됩니다.

 

"저를 바꾼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목적의 힘'이었습니다. 그 힘은 나(ME)를 뒤집어 우리(WE)를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가난은 참 많은 면에서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인생을 좌우할 만한 결정적인 변수는 되지 못합니다. 신체적 결함 또는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시련 같은 불가항력적인 고난 역시 우리 삶을 멈추게 할 정도로 중요한 요인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목적이 없다면 삶은 확실하게 엉망이 됩니다." (p.245)

 

저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죽음과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지요? 혹시 영원처럼 먼 거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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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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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지?' 의아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람들의 기호도, 관심도, 웃음이나 낭만 코드도 다 제각각이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최근에 골랐던 책 중에는 마저 다 읽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던 책이 있다. 요나스 요나손이 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그것이다. 황당한 이야기의 연속, 나의 웃음 코드와는 번번이 빗나가는 썰렁함, 낯선 지명과 이름들의 연속, 도대체 나는 뭘 의지하여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얇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다 읽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랬던 게 엊그제인데 또 다시 나는 요나스 요나손의 책을 고르고 말았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그것이다. 저자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고른 내 잘못이 컸지만 책을 읽기도 전에 하품부터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젠장!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하련만 집에 들어 오는 순간부터 내 대화 상대라고는 TV나 라디오, 컴퓨터가 유일하니 그들이 내 욕설에 맞장구를 쳐줄 리도 만무하고 등을 토닥이며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넬 리도 없지 않은가.

 

눈물을 머금고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읽어야지', 이를 악물었다. 장장 541쪽의 험난한 여정. 이건 뭐 숫제 마운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거나 진배없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읽어나갔다. 소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남동쪽 소웨토(흑인 거주지)에서 시작된다. 시너에 중독된 엄마를 돌보며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날라야 했던 소녀 놈베코. 분뇨 수거인에서 갑작스레 관리자가 된 그녀는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던 옆집 아저씨로부터 글을 배우고 매일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똑똑하게 말하는 방법도 터득한다. 유난히 셈에 밝았던 그녀는 우연히 손에 넣은 다이아몬드를 들고 소웨토를 탈출한다. 단순히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목적으로.

 

놈베코는 보도를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보상을 받기는커녕 가해자에게 보상하기 위해 7년 동안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가 간 곳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던 비밀 연구소 '펠린다바'. 교통사고 가해자였던 엔지니어는 그 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서 그는 오로지 아버지의 권력과 부유함 그리고 넘치는 행운으로 남아공 최고 핵 전문가가 된 인물이다. 놈베코는 연구소에 있던 모든 책을 독파하여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엔지니어를 도와 무난히 핵폭탄을 생산하게 되지만 생산된 핵폭탄은 여섯 개가 아닌 일곱 개였다.

 

연구소를 감시하고 있던 이스라엘 첩보원 모사드 A와 B를 따돌리고 스웨덴으로 망명한 놈베코. 그러나 그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잘못 배달된 핵폭탄 한 기를 떠안게 되고 망명자로서 인정도 받기 전에 핵폭탄과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 여차저차 하여 놈베코는 둘 중 하나만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쌍둥이 형제 홀예르1, 홀예르 2. 그리고 CIA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불안증에 걸린 미국인,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짝퉁 사기'를 일삼는 중국 여자들과 철거 예정지의 주택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핵폭탄 처리 방법을 고민하면서 말이다.

 

놈베코는 그 와중에도 스웨덴어를 배우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홀예르 2를 사랑하는 놈베코와 존재하지만 생각할 줄 모르는 홀예르 1을 사랑하는 셀레스티네의 좌충우돌 생활기가 그려지고 놈베코는 결국 스웨덴 수상과 국왕을 만남으로써 핵폭탄을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스웨덴 방문 기념품과 함께 중국으로 보낸다. 뿐만 아니라 놈베코와 홀예르 2는 수상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획득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복귀한다. 스웨덴 대사의 자격으로 말이다.

 

작가는 황당한 인물과 황단한 설정을 통하여 세계의 역사를 풍자하고 가장 낮은 신분인 놈베코로 하여금 지배층을 조롱하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체제를 비판한다. 작가의 생각은 여과없이 소설에 반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핵무기의 개발, 인권이나 환경문제 등 현대 사회의 부조리가 패키지로 등장하는 셈이다.

 

 "이로써 조지 W. 부시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반면, 알 고어는 심지어는 스톡홀름의 아나키스트들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환경 운동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부시는 사담 후세인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무기들을 모조리 파괴해 버리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p.386)

 

작가는 분명 특이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나와는 웃음 코드가 맞지 않았을 뿐. 얼마 전에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만큼이나 새로운 소설이지만 서양 작가의 풍자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작가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인지 아무튼 나는 힘겹게 읽었다. 정말 힘들었다. 힘들다는 게 감상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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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4-12-03 23:48   좋아요 0 | URL
아직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사 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데요....저도 끝까지 못 읽으면 어쩌죠...

꼼쥐 2014-12-04 18:1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악물고 한번 읽어보시죠. 그러다 이가 부러지면 책임질 수는 없지만.

별족 2014-12-04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끔찍했어요-_-;;;

꼼쥐 2014-12-04 18:14   좋아요 0 | URL
저는 다 읽지도 못하고 중도 포기했어요.ㅜㅜ

완벽한위로 2014-12-04 10:03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던 100세 노인을 정말 힘들게 읽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ㅁ-;

꼼쥐 2014-12-04 18:15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책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것 같아요.
최악이거나 최상이거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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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해 겨울방학에 나는 '명심보감'을 외우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뜻하는 바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당시 어머니는 하숙을 쳐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계셨고, 하숙생 중에는 몇 달 밀린 하숙비를 떼어 먹고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그 사람들은 으레 필요도 없는 옷가지며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를 마치 꼭 다시 오겠다는 맹세의 일환인 양 손도 대지 않은 채 떠나가곤 하였다.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올 것을 굳게 믿었던 까닭인지 아니면 물건에서 어떤 단서를 찾기 위함이었는지 어머니는 언제나 그 물건이 놓였던 자리를 한동안 정리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아두셨다. 약간의 미련이 묻은 그 옷 보따리를 말이다.

 

그해에도 그렇게 떠난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옷 보따리 속에서 모서리가 너덜너덜 닳아빠진 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명심보감'이었다. 기껏해야 '아들 자, 계집 녀'를 지나 '배울 학, 학교 교'의 수준에 이르렀던 나의 한자 실력으로는 눈에 익은 글자를 찾아내는 데만도 가뭄에 콩나듯 하였다. 버릴까? 하다가 왜 갑자기 마음을 돌이키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불현듯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전에 없던 호승심이 치솟았던 것이다. '이번 겨울 방학에 이 책이나 외워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친구들 앞에서 어려운 말을 줄줄 읊어대는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가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었다. 참으로 인연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명심보감' 외우기는 그해 겨울의 엄혹한 추위처럼 맵고도 쓴 것이었다. 자치기를 하자는 친구의 유혹도, 외발 스케이트를 타는 스릴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나는 집 밖 출입을 삼가한 채 명심보감과 한자 사전을 끼고 살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참담했다. 명심보감 초략본 19편 247조 중 계선편 11조를 간신히 외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알량한 지식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자왈, 위선자 천보지이복'으로 시작되는 명심보감의 문구를 이제 막 변성기가 시작되는 걸걸한 목소리로 읊을라치면 친구들은 마치 공자의 현신을 뵙는 듯 존경과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하였다. 개중에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한수 배움을 청하는 친구도 가끔 있었다. 나는 그럴 때면 '네깟 것들이 설명을 해준들 이해나 할 수 있겠냐'는 표정으로 뒷짐을 진채 한껏 점잔을 빼곤 하였다. 나와 공자의 첫 만남은 그렇게 특별했었다.

 

내가 공자를 다시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이었던 어느 봄날의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던 나에게 후광이 비치는 듯 밝게 빛났던 '논어'. 나는 익숙한 스승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웠었다. 그때 나는 '그래, 대학생이라면 적어도 '논어'는 읽어줘야지.'하는 심정으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미련없이 꺼냈던 것이다. 스승님을 다시 뵙는데 그깟 돈이 대수이겠는가. 그러나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의 깊이는 '명심보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내내 잘 읽지도 않는 논어를 마치 부적처럼 가방에 고이 모시고 다녔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만 주야장천 읊어대면서. 그랬던 내가 최근에 공자를 다시 만난 것은 우간린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통해서였다. 나에게는 이제 유식한 문구를 읊어댄다고 해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봐 줄 만한 친구도 없고, 그때의 치기는 더더욱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단순한 한자의 뜻풀이가 아닌 이야기와 에피소드의 방식으로 쓰였으므로 마음을 담아 조용히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공자의 가르침은 고지식하다거나 구태의연하다고 말한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장 보편적인 지혜는 쉽게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심오한 진리를 쉽게 설명하기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이제 나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의 의미를 간신히 깨우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아는 공자는 자신의 지난했던 삶의 체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무엇보다 가장 쉬운 말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은 의미를 새록새록 깨닫게 되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아, 진즉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초석이다. 단언컨대 공자의 가르침을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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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 - 언젠가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지만
정현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부터 얘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사실 제 취향은 아닙니다. 저는 글쎄, 뭐랄까 세심하거나 다정한 성격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내용부터 먼저 살피다가 뒤늦게서야 표지를 살피곤 하지요. '아, 이 책의 표지가 이랬구나' 나중에야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우연처럼 말이죠. 사람을 만날 때도 그래요. 어제 만났던 사람도 그날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도통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날 그 사람의 표정이 어땠는지, 목소리 톤은 어땠는지, 웃음 소리는 밝거나 어두웠는지 또렷이 기억하곤 하지요. 그런 성격을 가진 제가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기 전에 표지부터 말한다는 건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표지의 색깔은 음, 화이트 그레이라고 해야 할까요. 종이 표면은 천을 직조한 듯한 격자 무늬의 엠보싱이 보이구요. 중앙 상단에는 잠기지 않은 옷핀이 그려져 있고, 그 밑으로 '그래도,/사랑'이라는 책 제목이 행을 나누어 쓰여져 있습니다. 색깔은 암녹색쯤으로 보입니다. '사랑'의 '사'자와 '랑'자 사이에 부제인 듯 작고 검은 글씨로 '언젠가/너로 인해/울게 될 것을/알지만'이라는 문장이 역시 행을 나누어 쓰여져 있습니다. 그 밑으로는 약간의 여백을 두고 '정현주 지음'이라는 검은 글씨체가 보입니다. 표지에서 받은 저의 느낌은 깔끔하고 단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현주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나요? 음,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저는 처음인 것 같아요. 라디오 작가라고 하는군요. <별이 빛나는 밤에>, <최강희의 야간비행>,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FM데이트 강다솜입니다> 등 화려합니다. 이 책에 소개된 40 편의 사랑 이야기도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의 데일리 코너인 ‘그 여자의 노란 일기장’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 청취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를 새로 써서 엮었다는군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 뒤에는 작가가 보았던 영화나 책, 그에 어울리는 노래 등을 소개하며 작가 자신의 느낌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책은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SCENE 1 만나고', 'SCENE 2 사랑하고', 'SCENE 3 헤어지고', 'SCENE 4 그리워하고', 'SCENE 5 다시 만나다'의 다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뒤에는 장윤주, 최강희, 김동영의 추천사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책에 소개된 영화와 책과 노래의 제목이 색인처럼 실려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작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연 하나하나를 모두 읽고, 선별하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인생을 배울테니까요. 조금 길다 싶지만 작가가 선별한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사를 하고 며찰 뒤,

고양이가 사라졌다.

여자는 추운 겨울의 밤거리를 다니며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으나

골목 가득 냉정한 어둠만 가득 차 있을 뿐,

익숙한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달조차 얼어버릴 것 같은 밤.

여자는 온몸이 굳도록 골목을 헤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에 살던 집에 가보았다.

 

고양이는

거기 있었다.

 

주인이 바뀌어

아무리 소리를 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문 앞에 있었다.

그것이 꼭 자신의 모습 같아서 여자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주인이 떠난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고양이와

사랑이 떠났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사랑을 기다리는 여자.

 

둘은 함께 새로운 집으로 돌아왔고

여자는 말 없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이제는

여기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야."

 

그것은 마치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고양이가 다가와

얼어붙은 손을 따뜻하게 핥아주었을 때,

여자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편안하구나'하고 웃었다. (p.286~p.287)

 

제가 이따금 듣게 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는 '여성시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올라오는 시청자 사연은 어느것 하나 허투루 들을 수가 없습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저는 어쩌면 그 사연 하나하나를 통하여 인생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도, 영화도, 노래도 그런 것이겠지요. 이 책에 실린 사연들은 모두 사랑과 이별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랑, 참 쉽다' 느꼈지만 사랑 앞에서 늘 망설이고 주춤거렸던 제 젊은 날의 모습이 아로새겨졌습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쩌면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사랑도, 이별도 삶의 한 과정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사랑 앞에서 늘 망설이고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이 사람이다' 확신할 수 없는 게 사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설프고 서툰 사랑마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하고 황폐한 것인지요. 정현주 작가의 <그래도, 사랑>은 참 괜찮은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구성도 괜찮은 것이구나 느꼈다는 게 옳겟지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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