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수업 - 이별이 가르쳐주는 삶의 의미
폴라 다시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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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구에게나 이별과 상실의 경험은 아픔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에는 언제 다가올지 모를 이별의 순간이 항시 도사리고 있다.
결코 대면하기 싫은 그 경험을 신은 잔인하리만치 우리의 손을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고통과 상처와 발버둥질로 점철된 나날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밝은 태양 아래 서서 기억의 저편에 묻어둔 아픔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마치 남의 일인 양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걸어갈 때, 우리의 곁에서 희미한 등불이 되어준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다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작은 깨달음에 감사하며 미소짓게 된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로 유명한 모리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매주 금요일에 자신의 치료와 관계없이 인간대 인간의 만남으로 선택했던 폴라 다시.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잃고 다시 한 결혼도 남편의 학대로 5년만에 헤어져야 했던 그녀는 누구보다 상실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생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면, 그 일은 굳이 좋게 끝나지 않아도 된다."고 갈파한 에델 퍼슨(Ethel Person)의  말처럼 저자가 겪었던 상실의 고통과 치유 과정은 깨달음을 얻는 축복의 길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게 된 계기와 경험 그리고 교도소의 재소자들과 만남을 통하여 저자와 재소인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이혼한 지 5년째 접어들어서도, 전쟁 같은 생활 속에서도, 치유는 계속되었다.  나 자신이 눈앞에 전과 기록이 펼쳐진 죄수처럼 느껴졌다.  내게는 자신을 내팽겨쳤던 과거가 있었다.  그러기를 반복해 왔었다.  이제 와 달라지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한가 아닌가를 알아내는 건 차리리 쉬운 일이다.  보다 중대한 사안은 내가 날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이다.  만약 신뢰할 수 있다면, 내가 언제 위험한 길을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알까? 내면의 목소리가 내게 경고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리에 주의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것에 주의하고 있어야 했다.(P.31)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의 만남, 그리고 대학원 시절 심리 치료의 실습과정에서 만났던 어린 스콧이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저자 자신을 찾았을 때 저자 폴라 다시는 이 세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줄리아를 비롯한 담장 안의 그녀들.  그녀들은 내게 중요한 교훈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인생에서 정말로 귀중한 것은, 황량한 방에 발가벗고 서 있을 때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P.57)
루게릭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던 모리 교수와의 만남.  지적 오만과 무신론적 고집으로 똘똘 뭉쳐진 모리 교수.  그의 신체가 하나씩 그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팔과 다리와 눈을 통하여 우리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을 기억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그를 설득함으로써, 어쩌면 좌절과 분노로 생의 마지막을 보냈을지 모를 짧고 소중한 시간을 감사와 사랑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았다.  죽음을 잘 맞겠다는 강한 의지가 모리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저자 또한 자신에게 상실의 고통을 안겨준 음주운전자와 상대방을 인정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매우 서툴렀던 자신의 친아버지에 대한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랑할 수 있는데도 사랑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모리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는 전 인생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무수히 많았음에도 사랑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 자신의 체험과 성찰이 주는 잔잔한 메시지가 잔물결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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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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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마주보기 힘든, 어쩌면 피하고 싶은 대상이나 사건이 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옆자리의 누군가가 다 끝났노라고 알려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처럼, 나 아닌 누군가가 나의 불행을 대신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행운도 불행도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오직 어느 멜로 드라마의 끝장면처럼 평온하고 안락한,  웃음이 가득한 삶이 지속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포근한 봄날이 계속될 것이라 믿고 싶은, 자연의 순리도 거부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죽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영원한 단절.  작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누구에게나 삶의 시작과 함께 죽음은 예정된 것이지만 , 아득히 멀게만 느끼며 사는 까닭에 죽음은 언제나 막연한 그 무엇이고 상상 속의 실재로 남는 것이다.  어느 날 그 죽음이 자신의 곁으로 선뜻 다가왔을 때, 나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48세의 나이를 마감하는 겨울, 고등학생 딸과 대학생 아들을 둔 후지야마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자신의 삶이 6개월을 넘지 못하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인간은 정말로 혼자 있고 싶을 때,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많은 곳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그의 고백처럼 자신에게 다가올 절대고독의 순간을 두려워했다.
연명치료를 거부한 후지야마는 남은 기간에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이루지 못했던 첫사랑의 여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고등학교 때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졌던 친구와 화해하고, 자신이 배신했던 거래처의 사장에게 용서를 빌었다.
인생은 연필로 그리는 데생 같은 것이다.  연필로 몇 개의 선을 그리면서 조금씩 전체의 모습을 포착한다.  개중에는 아무리 봐도 실제보다 많이 삐져나온 선이 있다.  현실을 왜곡한 선이다.  지우개로 지울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그릴 텐데......"라는 선을 남기고 싶다.  남은 날들 안에서 인생을 수정하고 싶었다.(P.135)
그에게는 5년 동안 사귀어 온 15년 연하의 연인이 있다.
주인공은 아내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자신의 죽음을 털어놓는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죽음과 마주한 주인공과 자신의 사랑을 누구에게도 떳떳이 주장할 수 없는 여인은 그렇게 동질적이다.  작가는 죽음이라는 애절한 이야기를 그들 둘에 의지하여 풀어나간다.  죽음이란 삶에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그 모든 것에서의 해방이다.  명예도, 부도, 사치도, 체면도...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아들에게 자신의 연인을 소개한다.  살아 남을 사람에게 자신이 심판받기를 바라는 것은 죽는 자의 두려움을 얼마만큼 희석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사치란 '꺼림칙함'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면 언젠가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꺼림칙함이 사치의 정체이다.  나는 아일레이 섬 싱글몰트를 다시 입 속에 머금었다.  맛있지만 사치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 술에 대한 꺼림칙함이 없으니까.(P.238)
17살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작사가로, 영화감독으로, 프로듀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도 모르던 딸의 등장이었다.  주인공이 결혼 전 입사 동기와의 짧은 교제에서 태어난 딸의 등장과 그녀의 결혼식은 전체적 구성에서 군더더기와 같았다.  다양한 인물과 삶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다고는 생각되지만 작가의 지나친 욕심으로 전체의 통일성과 주제의 집중도가 희석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고 죽음을 맞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한 것일까?  나는 오랫 동안 치매를 앓아 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당신은 직감하지 못하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 전에 자신이 형성한 모든 관계를 갈등없이 풀어야 하나 보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늙은 코끼리가 담담히 무리를 떠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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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음악편지 - 교양 있는 초등학생을 위한 클래식 음악동화 지식을 여는 아이
신경애 지음, 조현경 그림 / 주니어중앙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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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었다.
실생활과 밀접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와는 달리 동화나 시를 읽으면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빛으로 되돌아 가는 느낌이다.  머리도 마음도 평온한 휴식을 취하는 듯 한없이 평화롭다.  
이 책의 부제는 <초등학생을 위한 클래식 음악동화>라고 적혀 있다.
대중가요와 팝에 익숙한 아이들이나 클래식 음악에 거북함을 느끼는 어른들이 이 책을 읽고 클래식과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작가는 바랐으리라.  책 읽는 것과 음악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음악만 들으면 하품을 하는 장난꾸러기 훈이는 어느 날 예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누나 현이를 따라 엄마와 함께 현이의 학교를 구경하러 간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하였던 훈이는 컴퓨터 게임이나할 요량으로 들어선 학교 도서실에서 자물쇠가 달린 먼지투성이의 책을 한 권 줍게 된다.  제목도, 지은이도 없는 이상한 책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꺼냈을 때 누나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자 표지에는 신기하게도 <쇼팽의 음악편지>라는 글자가 새겨지는가 하면 잠겨 있던 자물쇠가 저절로 열리고 책갈피 사이에서 한 장의 시디가 빠져나왔다.
공중에서 빙빙 도는 시디에서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쇼팽의 영혼이 나타나 훈이에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이 작곡한 음악 이야기를 들려준다. 
1810년에 태어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바르샤바에서 성장한 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 연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한 채 오스트리아 빈으로 그리고 프랑스 파리로 떠돌며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불운한 삶.  사랑했던 연인 마리아와의 이별 그리고 쇼팽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  섬세하고 연약했지만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삶을 불태웠던 피아노의 시인 그리고 결핵으로 점철된 불운했던 생애와 조국 폴란드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살았던 쇼팽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듣게 된 훈이는 이제 음악을 좋아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만난 한 선배형 때문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즐길 수 있으려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음악 감상에 무슨 공부가 필요하랴 싶겠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하듯 클래식도 그랬다.  우리의 귀에 익숙한 피아노 소품이나 바이올린 소품서부터 관현악곡과 성악곡의 감상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순서를 밟아 <클래식 백과 대사전>을 밑줄을 그으며 공부했었다.  그리고 짬이 나면 KBS 제1FM을 들으며 내가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며 그 리듬을 되새겼다.  그렇게 반복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토록 멀리하던 클래식과의 간격은 점차 좁혀졌고 선배형과  연주회에도 동행하게 되었다.   음악은 리듬의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며 박자의 붓으로 그리는 풍경이다.  그 숨겨진 언어를 이해하면 아름다운 풍경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영혼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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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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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 아마 지어낸 이야기 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쌀밥을 처음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강원도의 산골에서 다섯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맷돌에 간 옥수수와 감자를 섞어 지은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었다.  지금이야 그렇게 먹는 사람도 없으려니와 쌀밥만 먹던 사람들은 건강식이라고 부러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옥수수밥이라는 것이 워낙 소화가 빨리 되는지라 할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배 꺼진다며 뛰지 말라는 당부를 입에 달고 사셨다.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뛰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는 늘 잔소리로 들렸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우리집은 저녁만 먹으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었다.  산촌의 해는 유난히 일찍 진다.  그렇게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에는 허기로 잠이 깨곤 했었다.
간혹 간식으로 고구마를 삶아 놓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없을 때에는 주린 배를 쓸어내리며 해가 뜰 때까지 달아난 잠을 원망하며 이리 저리 몸을 뒤척여야 했었다.
그 첩첩산중에서 도시로 이사를 하고 나는 처음으로 쌀밥을 먹어 보았다.  반찬이라고는 왜간장 하나였지만 나는 반찬 없는 맨밥으로도 그 하얀 쌀밥을 다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로 배를 곯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도 제 시간에 끼니를 챙기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그런 나의 모습을 아내는 어른이 되어서 괜한 일로 짜증을 내는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볼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배고픔의 기억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 지글러에 의해 씌어졌다.
제목만으로도 짐작하겠지만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로 발생하며,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오천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비극적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지구의 한쪽편에서는 비만으로 죽어가고, 단른 한쪽편에서는 부족한 식량으로 생명을 선별하는 현실, 삼림파괴로 메말라 가는 농토와  기아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국제기업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생존을 갈망하는 그 사람들의 배고픔을 테러의 도구나 전쟁의 잔해 쯤으로 치부하는 정치인들, 소는 배불리게 먹이면서 사람은 굶어 죽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의 행태를 우리는 맬서스적 자연도태로 이해할 수 있을까?  가난 구제는 임금님도 못한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그들의 배고픔을 먼 나라 이야기로 눈 감아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기아로 죽어가는 끔찍한 현실을 아들 카림에게 들려주는 대화 형식으로 차분하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의 배후에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거대한 괴물이 지배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수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학문적, 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 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P.162)
저자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이 각성하고 연대하여, 기아를 극복하고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데 힘쓰자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정글 자본주의다.  세계경제는 식량 생산, 판매, 무역, 식량 소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P.169)
우리는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밝힌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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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경제학
세일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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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교육에 있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어려서부터 경제에 대한 체계적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소중한 가치로 대우받는 것이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의 교육에서 경제 부분은 항상 뒷전이었다.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이상은 점점 높아지는 반면 경제적 지식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는 누군가의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왜냐하면 경제적 지식이 높은 사람이 그 지식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경제적 부를 획득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경제학도 근대 산업사회 이후 놀라울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개인이 갖추어야 할 경제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우리 나라의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경제 교육은 애덤 스미스의 고전 경제학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경제 뉴스를 들어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잉글리쉬 디바이딩 현상을 언급하면서 영어를 강조하기는 해도 이코노믹 디바이딩 현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경제적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생활에서는 돈 계산만 잘하면 누구나 경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바라는 것은 경제적 풍요이다.  그 목표가 높다는 데 문제가 있고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이코노믹 디바이딩 현상은 한층 심화된다.  경제 지식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 놓이는 것이다.  소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약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에 의한 부의 집중, 그리고 서민 경제의 붕괴는 피할 수 없는 결과로 굳어지는 것이다.  경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소수 재력가에게는 100 % 맞는 말이다.  어쩌면 위기의 반복은 부의 집중을 가속화 시키는 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즉 서민의 경제적 손실이 고스란히 소수 자본가에게 부의 증가로 전이되는 것이다.  경제는 낭만이나 감성이 아닌 냉정한 현실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돈을 터부시하는 우리 나라의 국민적 정서와 소수 권력자의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2008년 말부터 Daum 아고라 경제토론방에서 인기를 끌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미네르바'가 떠오른다.  그러나 저자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기업의 임원을 지낸 분이라고 한다.  저자는 일반인을 위한 경제 상식 및 말못 인식하고 있는 개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챠트와 통계적 수치로 독자들을 이해시키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저축, 시장의 원리와 부동산 및 환율의 전망,  경제위기의 원인과 미래에 다가 올 대공황과 우리의 생존 전략 등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경제학 분야의 서적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수작을 찾기 어렵다.  맨큐의 경제학이 학문적 입장에서 좋은 책이라면 이 책은 분명 실생활에 있어 잘 씌어진 책이라 말할 수 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이 다소 부담스럽기는 해도 여유 시간에 파트별로 나누어 읽어도 좋을 듯하다.  

경제적 이상과 실제적 경제 행위의 격차를 좁히는 것은 경제적 지식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자신이 꿈꾸는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전적으로 ’운’에 의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운’이란 일상에서 반복되는 습관적 현상이 절대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앞에는 항상 행운이 따라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습관적 ’좌절’만 맛보게 된다.  자신의 경제 행위를 단순히 ’운’에 맡길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경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제 행위를 반성하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행운을 움켜쥐려 하지만 정작 찾아 나서는 사람은 없다."는 말은 준비된 자에게만 행운도 미소를 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목표와 계획을 세운 사람이라면 그 안내서를 보고 자신이 향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길에 존재할지 모르는 위험성도 살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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