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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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부터 나는 아내와 함께 하는 쇼핑을 멀리했었다.
필요한 물건만 후다닥 사서 쫓기듯 그 자리를 뜨는 나의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아내의 쇼핑 시간은 마냥 늘어져 기다리는 나를 늘 지치게 하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빨리 나가자고 몇 번이나 채근하는 나를 딱하다는듯 쳐다보다가도 어느새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물건에 시선을 뺏기곤 했다.  마침내  내가 슬슬 부아가 치밀어 참지 못할 지경에 처할 즈음에서야 아내는 못 이기는 척 뭉그적뭉그적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다시는 같이 나오지 않겠노라 다짐을 하면서도 지금껏 장롱면허를 갖고 다니는 아내를 생각하여 다시 쇼핑길에 따라 나서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들은 ’쓸모’를 따져 물건을 구입하지만, 여자들은 ’이야기’로 물건을 사는 듯했다.  하나의 물건을 손에 쥐고 그 물건이 놓인 장면을 상상하고, 그 물건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까지 하염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옳다구나 싶으면 기어코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했다.  결국 여자들에게 쇼핑은 단순한 물건 구매가 아닌,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의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며, 그 물건은 그들 사이에 놓인 작은 소품과 같은 것이다.
나는 아내를 보면서 그렇게 결론지었다.  여자들에게 쇼핑은 ’이야기’를 사는 것이라고.

최인호의 <인연>은 오래 전에 읽었던 피천득의 <인연>과는 또 다르다.
뭐랄까 조금 대중적이라고나 할까?   화려한 미사여구나 문학적 천재성이 돋보이는 그런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글을 읽는다기보다 시간을 넘나들며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추억이란 묘한 것이어서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어쩌면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술술 잘도 풀려 나온다.

"한 해도 저무는 세모의 저녁, 지금 이 순간에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서 한 벌의 헌 옷도, 한 닢의 동정도 베풀지 못하면서 내가 감히 말씀드릴 것은, 여러분 가슴속에 자라고 있는 행복의 꿈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 매달린 향기로운 과일을 따보라는 것이다." (P.39)

작가는 세월의 잔물결따라 골과 마루를 같이 넘어온 사람들과 그때의 빛바랜 잔상을 쓰고 있다.  커다란 풍파없이 살아온 것도 얼마나 감사할 일이겠는가.
자신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인생의 황혼에서 누군가에게 감사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가 보다.  겸손하고, 더 겸손하라는...

"가끔 한밤중 잠에서 깨어 멀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전히 내 손바닥에 남아 있는 체온에서 나는 두 분의 따뜻한 음성을 듣는다.  나는 안다.  그분들은 이미 세상에 안 계시지만 여전히 세상에 머물러 계심을.  내 손바닥이 기억하는 그 모든 시절의 추억들로 나는 안다." (P.275)

나는 어쩌면 '쓸모'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사람도, 물건도 쇼핑하듯 긁어 모았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없으면 감동도 없는 법.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인연은 그렇게 만들 일이다.  아내는  어쨌든 성마름 대신 여유를, 다른 살이들을 탓하기 전에 나의 내적 성찰을 쇼핑을 통해 가르쳐주려 했었나 보다.  이야기가 없는 인연은 매마른 대지에 부는 한줌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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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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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머리와 팔의 거리를 좁히는 일일 게다.
나의 글은 언제나 아귀가 맞지 않아 울퉁불퉁 거칠기 짝이 없어, 읽을 때마다 입 안에 흙모래가 씹히는듯 서걱거린다.
내가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작가 자신의 유년기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은 후였다.
그 전에도 작가의 작품을 더러 읽었었지만 작가의 글에서는 잘 벼린 칼의 시퍼런 날카로움도, 무릎을 칠만큼 독특함도 찾지 못했었다.  그저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밋밋함이, 옆집 아줌마의 긴 사설에서도 족히 들었음직한 이야기들이 작가를 오래 기억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고, 나는 그만큼 어렸었다.  
화선지에 번지는 푸른 잉크처럼 생각의 색깔이 원고지에 자연스레 배어 나오게 되기까지 작가는 오랜 세월을 침묵 속에 견뎌야 한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생각과 손이 한치의 틈도 없이 하나를 이루는 것, 작가의 생각이 독자의 머리에 부지불식간 살포시 얹힐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나 그 책을 읽는 사람이나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작가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글에서만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어느 것 하나 툭 불거져 뒤뚱거리는 것이 없다.
1부 내 생애의 밑줄, 2부 책들의 오솔길, 3부 그리움을 위하여의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교외 생활을 하는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지난 기억들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도 문학강연 같은 걸 하게 될 때는 소설이 지닌 이런 미덕, 쓰는 이와 읽는 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위안과 치유의 능력에 대해 말하곤 한다.  나는 내가 소설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걸 인정하고 소설가인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면 마치 허세를 부린 것처럼 뒷맛이 허전해지곤 한다." (P.24)

작가는 당초에 되고 싶었던 건 소설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소설이든, 시이든 무엇인가 써야만 견딜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꾹꾹 눌러 참았던 가슴 속 응어리가 한순간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려 할 때, 그렇게라도 외지치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누군가 낯 모르는 사람의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꺽꺽 울고 싶던 심정을 소심한 성격 탓에 그 맺힌 이야기를 원고지에 옮겨 적을 수 밖에 없을 때, 쓰는 이와 읽는 이는 시간과 공간을 떠나 같이 공감하게 되고,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서로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글이 구르고 굴러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 다듬어지면 비로소 독자의 머리에도 작가가 품었던 파란 물이 드는 것이 아닐까?

2부에서 작가는 자신이 읽고 기억에 남았던 책들을 기록하고 있다.
문태준의 시집<그늘의 발달>,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청준의 <별을 보여드립니다> 박경리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이 글들을 소개하는 첫머리에서 자신의 글이 서평도 독후감도 아니라고 했다.

"책을 읽다가 오솔길로 새버린 이야기입니다.  나이 들면서 숨가쁘게 정상으로 끌고가는 책보다는 도중에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거느리고 있어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책에 더 정이 갑니다." (P.183)

3부에서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이어진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박경리 여사님 그리고 박수근 화백, 세 분 모두 작가와는 이승에서 연을 맺은 각별한 관계인 듯하다.  80줄에 들어선 작가의 연세를 생각할 때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곁을 떠나는 그리운 이들에 대한 작가의 글은 밀어내고 싶은 거부감이 올라온다.
세월을 거슬러 오래도록 작가의 글을 읽고 싶은 나의 욕심이 헛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생각해보니 선생님과는 한 번도 허튼 수작을 해본 적이 없네요.  농담 한 번 안 하고 이 풍진 세상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셨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선생님이 가여워졌습니다.  이런 걸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연민이라 한다면 너무 외람될까요." (P.255)

박경리 여사의 추도문을 읽으며 나는 그분께 투영된 작가의 세월을 보았다.
산다는 것은, 먼지처럼 쌓이는 구질구질한 일상을 나만이라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 기억하고 보듬는 일이다.  내가 진정  힘써야 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이 지구별에 살다 갔다는 작은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오늘 요란스레 비가 내릴 것이라 했다.
그리고 생뚱맞게 겨울 황사가 몰려온단다.  거친 일기(日氣)에도 오늘을 살아내는 수많은 군상들은 또 얼마나 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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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잇는 250원의 행복한 식탁
고구레 마사히사 지음, 김우영.선현우 옮김 / 에이지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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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0년도 이제 딱 한달이 남았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 가득 울려퍼지고, 늘 그렇듯 까만 제복의 구세군과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언론 매체에는 자선과 기부를 독려하는 각종 프로그램이 족히 달포는 지속될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비롯한 각종 기부가 학급별로 반강제적으로 집행되었었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나는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던 성금 모금이 영 부담스러웠고, 친구들에게 농반 진반으로 "내가 불우 이웃인데 누구를 도와주란 말이야?" 하면서 불만을 표출하곤 했었다.  그랬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어른이 돼서도 공개적인 성금 모금 행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나는 나의 능력 범위에서 몸으로 부대끼는 노력 봉사를 선호한다.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결혼 전에는 가끔 꽃동네를 방문하여 중증 장애우의 목욕을 도와주거나 청소를 거들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따뜻한 체온에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었다.  세상과 이웃에 대한 믿음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이 있어 푸근해지는 그런 느낌.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웃’이라는 안전장치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믿을 건 오직 나밖에 없다는 식의 투쟁 의식, 그래서 더 악착스레 돈에 매달리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외로워지고...

이 책은 일본의 사회적 기업 "테이블 포 투(Table For Two)"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고구레 마사히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사회적 기업의 창업 지침서이다.
저자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상대적으로 기부 문화에 인색한 아시아에서 사회적 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타진하고,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자질과 기본 마인드 및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TFT는 이 ’먹을거리(食)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함께 건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2007년 2월 발족했다.
사원식당을 가진 기업이나 단체와 제휴해 보통 식사보다 낮은 칼로리로 영양 밸런스를 갖춘 특별 메뉴를 제공하고 가격은 20엔(250원)을 올려 설정한다. 이 20엔은 기부금으로 TFT를 통해 아프리카에 보내서 현지 아이들의 급식비로 쓰인다. 즉 ’식량이 남는 선진국’과 ’식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세계적 식량 불균형을 해결하는 상생의 구조이다.
그냥 점심 한끼를 해결함으로써 사회공헌에 참여할 수 있으니 생각만으로 일관했던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그 틀을 제공함으로써 생각을 실천으로 전환할 수 있는 ’큰 연결’, 즉 그 기본 틀을 형성해 놓은 것이다. 좋은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도 건강해질 수 있고, 이제까지의 자선 활동에서 갖기 쉬운 의무감이나 심리적 강제와 같은 답답함이 없는 점도 TFT의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는 이유가 된다. 

저자는 또한 맥킨지 앤드 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회사 쇼치쿠에서 일했던 저자의 이력답게 사회적 기업에도 철저한 비즈니스 스킬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 개략적인 전략을 저자는 5P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Purpose[목적, 달성목표], Partnering[제휴],People[조직, 인사],  Promotion[홍보],   Profit[이익, 성과]는  ’이익을 올리지 않으면 사업 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 사업과 동일하다는 관점이다.

사회적 기업은 비지니스가 아닌 자원봉사이고, 이윤추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불식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공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생활이 있고 노력이나 성과에 걸맞는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과 도전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장(場)이 열리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30대 중반에 자신의 ’천직’을 찾았다고 말한다.
비록 이제까지 해온 어떤 일보다 고생스럽지만,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고 타인을 행복하게 그리고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일하는 의미’를 찾는 길이며, 매일매일을 가슴 뛰는 두근거림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저자가 부럽다.   

 ’한 사람의 식탁을 둘러싸고 선진국의 참가자와 개발도상국의 어린이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함께 식사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테이블 포 투>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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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
미카엘 마르텐센 지음, 김진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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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는 노인을 보면 그렇게 궁상맞고 구질구질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절대 울어서는 안 되고, 울음이 헤프다는 것은 내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이들과 TV에서 방영하던 멜로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었다.  그때는 눈물샘을 자극하던 드라마가 어찌나 많았던지...  혹시 눈물이 솟을 듯한 장면이 나오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우는 모습을 들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내 어린 자존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어찌나 울었던지...
붉게 충혈된 나의 눈을 보면서 지켜보던 동료들이 집에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할 정도였다.

이 책은 사랑하는 딸 소피아가 생후 9개월째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부터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기까지 그 짧았던 인생을 저자 미카엘 마르텐센이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한 투병기이다.
페인트 가게 직원이었던 저자는 사랑하는 아내와 큰 딸 사라 그리고 장난스러운 두 마리의 개를 기르던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었다. 둘째 딸 소피아의 얼굴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생후 9개월부터 4살이 될 때까지 온 가족은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빠의 진한 부성애와 병마와 싸우는 소피아의 혹독한 전투, 그리고 고통 속에서 병마와 싸우는 어린 소피아를 통하여 고통과 눈물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희망, 지금까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사치품이 뭘까 하고 물어보면 돈이나 물건만을 생각한다.  그런데 진정한 사치품은 바로 시간이다.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감격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직장과 돈벌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놀아줄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하지 않는가.  이건 정말 큰 잘못이다.  아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지금 이 순간에 함께해 주는 일이다." (P.159)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치병으로 죽어가지만 설마 자신의 딸이 그런 병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저자는 이 믿을 수 없는 얘기에 오열한다. 그리고 투병을 결심하면서 치료에 괴로워하는 딸과, 주변 아동병동에서 죽어나가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서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끝없는 고통과 투쟁, 저자는 소피아의 생일날마다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수백 개의 풍선을 날려보내면서 독일 전국 각지와 주변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수많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는다.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에 감동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불치병으로 또는 두려움이나 절망과 싸우고 있는 많은 이들과 함께 희망을 안고 딸의 병마와 싸워나간다. 그 후 씩씩하고 당당하게 죽음과 맞서는 소피아의 모습은 독일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희망을 남기게 된다.

소피아는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다. 자신의 인생을 방관하며 살아온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점이 아닌가 싶다.

인생에 귀를 기울이는 법, 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밀도 있게 사는 법, 생의 순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도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작은 전사 소피아처럼 말이다.   4년간의 힘겨운 삶을 ’아름다운 소퓽’에 비유했던 네 살배기 소피아의 눈을 통하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 어린 꼬마에게서.

"전투는 끝이 났고, 결국 지고 말았다.  나에게는 아무런 미래가 없었다.  소피아가 없는 이 세상을 떠나고만 싶었다.  혹시 내가 숨을 멈추면 소피아가 가는 길을 동행할 수 있을까? 소피아가 다시 숨을 쉴 것만 같았다.  정말 죽은 걸까?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버린 걸까?" (P.211)

책을 다 읽고 퇴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는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음~~~~~음~~~~

나는 또 울컥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삶을 통 털어 누군가의 따듯한 위로와 시선 속에서 맘 놓고 펑펑 울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나 주어지는 것일까?
나는 ’어린 전사’ 소피아 덕분에 그동안 억눌렀던 눈물을 맘껏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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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학교 아이들
무사 앗사리드.이브라힘 앗사리드 지음, 임미경 옮김, 전화식 사진 / 고즈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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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은 그 사회의 고유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고, 아이들이 그 사회의 일원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배워야 할 것이 그리 많지 않았던 원시사회에서는 교육이 비교적 공평했을지는 모르지만,  현대의 교육은 그 전문성과 더불어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사치품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 책의 저자인 '무사 앗사리드'의 또 다른 작품 <사막별 여행자>를 감동적으로 읽었던 나는 부푼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고, 떨리는 손으로 책을 읽었다.  처음엔 그랬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나는 이내 실망하였고,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리뷰를 남길 의욕마저 잃었다.
저자인 무사 앗사리드와 그의 동생 이브라힘이 어려운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배움을 이어갔던 이야기는 이미 <사막별 여행자>에서 읽은 터였고, 책의 후반부에 기록된 "생텍쥐페리 사막학교"의 설립과 학생들의 이야기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나의 독서열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책의 내용이나 편집에 흠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가슴에 남아있는 <사막별 여행자>의 감동이 그만큼 강했던 까닭이다.
영화도 그렇지 않던가.  원작이 좋을수록 이어지는 2탄, 3탄의 후속작이 원작의 감동을 이어가지 못하듯이...  나는 이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사막별 여행자>를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보처리 기술자인 이브라힘이 자신의 부족인 투아레그족의 아이들을 위하여 보장된 고소득을 포기하고 사막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과 어울려 꿈을 키워가는 장면은 그나마 잔잔한 감동으로 남았다.

"밤에 아내와 아들, 딸과 나란히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삶에는 모든 것이 있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이 학교를 위해 싸웠고, 이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아직 허약한 부분이 있기는 해도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또한 꿈의 결실이라고 하기에 충분할 만큼 학교는 활기 있고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P.93)

사막의 유목민으로 태어나 지구별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한 무사 앗사리드와 이브라힘 앗사리드.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넬슨 만델라와 간디를 존경하는 내가 늘 꿈꾸어 온 것은 세상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야 할 그 세상이 내게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태어난 투아레그족 공동체, 나의 작은 사막학교이다.  내가 투아레그족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손에 든 벽돌 한 장을 어딘가에 쌓기 위해 지구를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P.220)

퇴근 후 나의 숙소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하나씩의 상처를 갖고 있다.
때로는 상처의 칼날이 자신을 찌르고, 다른 사람들에게마저 매몰찬 흉기로 다가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휑한 바람이 불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래서 그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저미도록 아프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지금 얼마 남지 않은 기말고사를 대비하여 각자가 부족한 과목을 자습중이다.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나의 숙소는 사막의 태양처럼 뜨겁다.
투아레그족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그들이 사막에 그리는 꿈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사막의 작은 학교의 아이들도 심한 모래바람에 그들의 꿈이 흩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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