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
미카엘 마르텐센 지음, 김진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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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는 노인을 보면 그렇게 궁상맞고 구질구질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절대 울어서는 안 되고, 울음이 헤프다는 것은 내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이들과 TV에서 방영하던 멜로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었다.  그때는 눈물샘을 자극하던 드라마가 어찌나 많았던지...  혹시 눈물이 솟을 듯한 장면이 나오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우는 모습을 들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내 어린 자존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어찌나 울었던지...
붉게 충혈된 나의 눈을 보면서 지켜보던 동료들이 집에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할 정도였다.

이 책은 사랑하는 딸 소피아가 생후 9개월째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부터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기까지 그 짧았던 인생을 저자 미카엘 마르텐센이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한 투병기이다.
페인트 가게 직원이었던 저자는 사랑하는 아내와 큰 딸 사라 그리고 장난스러운 두 마리의 개를 기르던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었다. 둘째 딸 소피아의 얼굴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생후 9개월부터 4살이 될 때까지 온 가족은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빠의 진한 부성애와 병마와 싸우는 소피아의 혹독한 전투, 그리고 고통 속에서 병마와 싸우는 어린 소피아를 통하여 고통과 눈물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희망, 지금까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사치품이 뭘까 하고 물어보면 돈이나 물건만을 생각한다.  그런데 진정한 사치품은 바로 시간이다.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감격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직장과 돈벌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놀아줄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하지 않는가.  이건 정말 큰 잘못이다.  아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지금 이 순간에 함께해 주는 일이다." (P.159)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치병으로 죽어가지만 설마 자신의 딸이 그런 병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저자는 이 믿을 수 없는 얘기에 오열한다. 그리고 투병을 결심하면서 치료에 괴로워하는 딸과, 주변 아동병동에서 죽어나가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서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끝없는 고통과 투쟁, 저자는 소피아의 생일날마다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수백 개의 풍선을 날려보내면서 독일 전국 각지와 주변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수많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는다.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에 감동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불치병으로 또는 두려움이나 절망과 싸우고 있는 많은 이들과 함께 희망을 안고 딸의 병마와 싸워나간다. 그 후 씩씩하고 당당하게 죽음과 맞서는 소피아의 모습은 독일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희망을 남기게 된다.

소피아는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다. 자신의 인생을 방관하며 살아온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점이 아닌가 싶다.

인생에 귀를 기울이는 법, 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밀도 있게 사는 법, 생의 순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도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작은 전사 소피아처럼 말이다.   4년간의 힘겨운 삶을 ’아름다운 소퓽’에 비유했던 네 살배기 소피아의 눈을 통하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 어린 꼬마에게서.

"전투는 끝이 났고, 결국 지고 말았다.  나에게는 아무런 미래가 없었다.  소피아가 없는 이 세상을 떠나고만 싶었다.  혹시 내가 숨을 멈추면 소피아가 가는 길을 동행할 수 있을까? 소피아가 다시 숨을 쉴 것만 같았다.  정말 죽은 걸까?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버린 걸까?" (P.211)

책을 다 읽고 퇴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는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음~~~~~음~~~~

나는 또 울컥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삶을 통 털어 누군가의 따듯한 위로와 시선 속에서 맘 놓고 펑펑 울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나 주어지는 것일까?
나는 ’어린 전사’ 소피아 덕분에 그동안 억눌렀던 눈물을 맘껏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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