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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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뚱맞은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의 인생행로와 그 과정에서 정립된 가치관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더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대리만족이요, 억눌렸던 감정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나도 그랬다.

이 책을 읽게된 결정적 이유는 그의 말이 모두 '개구라'는 아니라는 데 있었다.
물론 나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지만 (우선 외모부터 맘에 들지 않는다.  텁수룩한 머리털과 콧수염도 그렇고) 그의 쾌도난마식 인생 상담은 극과 극의 평이 이어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작가 본인은 그런 평에 관심도 두지 않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지만 독자의 관점에서 속 시원함을 느끼기보다는 약간의 위험을 염려하게 된다.

'딴지일보'의 총수이자 자칭 '지식인'이라 주장하는 작가의 생각은 의외로 깊다.
이 책은 작가가 신문에 기고했던 글들을 편집해 모아놓은 책이다.  글은 질문과 답, 인생에 대한 Q & A 형식으로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나(삶에 대한 기본 태도)
  2. 가족(인간에 대한 예의)
  3. 친구(선택의 순간)
  4. 직장(개인과 조직의 갈등)
  5. 연인(사랑의 원리)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지나친 욕심이 우리의 선택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이런 고민들에 대한 해답은 나이가 든다고 하여 명쾌하게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만나는 소소하고 구태의연한 질문들, 이를테면 학창 시절에는 이성 또는 성적에 대해 고민하고, 직장생활을 할 땐 업무능력에 대해 고민한다.  집에서는 가끔 가족이 부담스럽거나 효를 다하지 못하는 것에 죄스러워한다.  연인 사이에서는 사소한 오해나 제3의 인물의 등장에 따른 고민 등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런 고민들이야 누구나 하는 것이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대답마저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런 고민에 대한 문제 해결의 방식을 교육받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문제 제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저 참고 인내하다 보면 잘 사는 날이 올 것이라고만 배웠다.  아무개의 아들로(또는 딸로) 태어난 이 땅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해진 코스를 따라 의심없이 사는 것만이 최선인 줄 알았다.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개망나니요, 상종 못할 인간이 되고 만다.  하기에 이런 고민들은 가슴에 묻고 오직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자기 객관화'에 지극히 서투르다.
작가는 이 점을 맹렬히 파고든다.  그리고 독자에게 권한다.  자신을 물끄러미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라고.  그러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사람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내가 누구인 줄도 모른 채 남의 기대를 충족시키고자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뒤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인생 700년 사는 거 아닌데, 부모에 대한 기대충족시키고, 애인에 대한 기대충족시키고 주변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먼저 충족시키고 나면, 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은 언제 찾을 것인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라는 말인데 이게 더 어렵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자기 인식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까지야 어찌어찌 할 수 있다 치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모든 관계의 부정, 또는 타인에게 형성된 나의 이미지의 파괴를 실행할 단계에서는 으레 뒤로 한 발 물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오른팔에 그러쥔 떡을 미련없이 놓으려면 그 아니 아깝겠나?

결국 첫 단추가 중요한 것이고, 이미 첫 단추를 잘못 꿴 사람들은 '운명이다' 생각하고 살 수밖에...  어떤 자기비하나 패배의식 없이 현재의 나를 즐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 듯 싶다.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작가의 답변은 실행이 불가능한, 또는 한참 버거운 것이겠으나 속은 시원하다.  역시 김어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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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봉지 속의 지혜 - 행복을 찾아서 떠난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앤서니 드 멜로 지음, 진우기 옮김 / 양문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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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어떤 집에 자신이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여자 아이와 자신의 일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빠가 살고 있었어.  그 오빠가 능력이 부족했다면 부모도 꾸지람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능력은 있으면서도 언제나 게으름을 피우는 아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도 철이 없는 오빠는 자신만 나무라는 부모에게 늘 불만이었지.  만약 네가 그 부모의 입장이라면 오빠에게 그것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어떤 꾸중도 하지 않고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내 말이 끝나자 그 학생은 "당연히 나무라야겠죠."하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이어 "너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그 오빠가 바로 너야."라고 말하자 그 학생은 움찔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무명(無明), 즉 무지(無知)라고 해.  알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나 싶지만 그 무지로 인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끝없이 괴롭히기 때문에 커다란 죄가 되는 거야.  그리고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죄는 아마 게으름이 아닐까 싶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니? "

그 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첫째 아이보다는 둘째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로부터의 지나친 관심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첫 아이의 탄생과 함께 초보 엄마, 초보 아빠가 되는 까닭이다.  아이도 그렇지만 부모도 아이에게 모르고 한 행동이기 때문에 다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1913년 인도 고아에서 태어나 1987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저술과 강의를 통해 영적 가르침에 대한 값진 유산을 남겼던 앤서니 드 멜로 신부님.  내가 신부님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깨어나십시오>였다.  어떤 강요나 현학적인 지식으로 독자를 주눅들게 하지도 않았고,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문장들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알게 했다.  그 후 나는 신부님의 팬이 되었다.  예수회 사제였지만 카톨릭이라는 종교에만 머무르지 않았던 신부님은 이 책에서 지구촌 구석구석의 오래 된 민담과 잠언, 격언과 일화들을 모아 자신의 생각을 곁들였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초보 엄마, 초보 아빠일 수밖에 없고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 않으려면 꾸준히 배우는 길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듯하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실수연발이고 언젠가 내가 마지막 제자를 받을 즈음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고대 인도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쥐가 한 마리 살았는데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늘 벌벌 떨곤 했다.  보다 못한 마술사가 그를 불쌍히 여겨 고양이로 만들어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개가 무서워 쩔쩔 맸다.  마술사는 다시 한번 마술을 부려 그를 개로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이젠 표범을 무서워했다.  마술사는 또다시 그를 표범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번엔 사냥꾼을 무서워하는 게 아닌가?  이젠 마술사도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 수밖에 없었다.  표범을 원래의 쥐 모습으로 되돌려놓고 마술사는 말했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쓴들 네놈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어.  겉을 아무리 바꾸어도 네 마음속에서 너 자신의 모습은 늘 쥐일 뿐이야."

겉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해서 내면의 모습까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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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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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수 있겠으나, 내 생각에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은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자연이나 우주로 확장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무엇인가 가슴에 품고 늘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은 그 대상을 조금 더 많이, 더 잘, 그리고 더 가까이 있고 싶게 만들고,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그리움의 대상과 결부지어 생각하도록 한다.  종국에는 나 자신을 초월하여 그리운 대상과의 일치를 꿈꾸게 한다.

그리운 대상과의 일치를 간절히 원할 때, 그 욕망의 극점에 이르는 현상을 ’몰입’, ’사랑’, ’그리움’, ’넋이 나감’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지만 그 마음의 기저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술가에게 그리움의 상실은 창조의 샘이 마르고 예술가로서의 삶도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가족, 연인, 자연 등 그리움의 대상은 비록 서로 다를지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간절함의 정도가 더할수록 그가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커질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리움의 대상은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이성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끌림이 그 중 으뜸이리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당사자는 비록 그 넘을 수 없는 한계에 아득함을 느끼겠지만 그럼으로써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설령 그 대상이 닿을 수 없는 신이나, 되찾을 수 없는 조국, 먼저 떠난 가족일지라도 이룰 수 없는 사랑임에는 연인과 무엇이 다르랴.

1919년에 시작하여 1924년까지 계속된 카프카의 편지는 한 여인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세 번의 약혼과 세 번의 파혼, 폐결핵을 앓는 병든 몸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선택했던 카프카.  카프카의 표현을 빌자면 ‘살아있는 불덩이’같은 밀레나는 진보계층을 형성한 ‘미네르바’출신의 그룹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였다. 대학에서 음악과 의학을 전공한 그녀는 지적이고 뜨거웠으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소비벽을 지녔는가 하면 온몸을 다바쳐 남을 도와주는 헌신적인 성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밀레나는 또한 동료들과 괴팍한 행동으로 화제를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한밤중에 공동묘지로 소풍을 가는가 하면 옷을 입은 채로 몰다우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화가나 문인,가수와 첫사랑을 나누기도 했고 이사도라 던컨식의 물결치는 의상을 입고 다니며 앞서가는 생존방식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카프카의 친구 오스카 폴락의 부인이기도 했던 밀레나와 카프카가 만난 것은 그의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하는 일이 계기가 되었다. 밀레나가 번역한 단편 <화부>는 카프카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그녀를 만난 카프카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의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이후 밀레나와의 교류를 지속하였다. 이때부터 카프카에게는 일종의 정신적 피난처가 생긴 셈이었다.

동시에 카프카가 지닌 ‘불안’에 대해서 밀레나가 얼마나 깊은 이해를 하였는가 하는 것도 카프카의 동료 막스 브로트와 그녀가 나눈 대화를 통해 확인이 된다. 카프카의 말년에 빈으로 이주한 밀레나는 프라하로 카프카를 자주 찾게 되는데 이 무렵 그때까지 쓴 일기를 그가 그녀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밀레나는 카프카로서 보면 삶과 예술이라는 상호 모순된 양방향의 길을 공유할 수 있는 유형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카프카와 밀레나의 사랑은 예술가의 비극적인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미완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배경으로 해서 두 사람 다 서글픈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삶과 예술로 분열된 세계에서 문학을 통해 그 두 세계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하다가 불치병으로 생을 마치는 방식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철저히 잊혀진 존재로 소멸되는 방식의 결합은 미완의 사랑을 매듭짓는 형식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컸고(13년) 밀레나는 기혼자였으며 자신의 기질과 상관없이 엄격한 가풍의 딸이었던 그녀에게 카프카의 유대인 신분은 간단치 않은 벽이기도 했다. 보다 큰 문제는 카프카에게 있었다. 그는 현실의 사랑을 완성할 정신적인 에너지가 당시로서는 고갈된 상태였다.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자신의 결핵을 확인한 카프카는 그 사랑을 추진할 심리상태가 되지 못했고 밀레나의 정열을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너무도 컸다.


"인간은 이제껏 나를 기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편지는 항상 나를 기만했습니다.  그것도 타인의 편지가 아닌 내 자신의 편지가 말입니다.  그것은 나의 경우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특수한 불행이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일반적인 불행이기도 합니다.  손쉽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은 틀림없이 - 다만 이론적으로 볼 때- 영혼의 섬뜩한 혼란을 세상에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유령과의 교신인데, 그것도 편지 수신자로서의 유령과의 교신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령과의 교신이기도 합니다.  후자의 유령은 편지를 쓰는 사람의 손에 의해 편지 속에서 성장하고 혹은 다시 어떤 편지가 다른 편지의 증거가 되어 이 편지를 증인으로 내세울 때에는 일련의 편지 속에서도 성장합니다.  인간들은 어떻게 서로 편지로 교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붙잡을 수 있지만,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쓴다는 것은 탐욕스럽게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유령 앞에서 발가벗는 것을 의미합니다.  편지에 쓰여진 키스는 보내질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고 유령이 도중에 홀딱 마셔 버립니다.  (P354 , 1922년 프라하에서 쓴 카프카의 편지 중에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완성된 사랑은 그래서 완료형이 되어버린 사랑은 예술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탈출구가 없는 사랑의 열기는 예술가의 영혼을 사르고 급기야 까만 밤에 별로 남는다.  우리는 오늘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까맣게 타들어가는 어느 예술가의 영혼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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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생각을 훔치다 - 박경철 김창완 최범석 용이… 생각의 멘토 18인
동아일보 파워인터뷰팀 지음 / 글담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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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에게도 인생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끈기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능력을 타고났으며 이것은 틀림없이 발휘된다고 믿어야 한다."
세계 최초로 방사성 원소를 발견하여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던 마리 퀴리의 말이다.  나는 때때로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각각의 나무가 모여 풍요로운 숲을 이루듯이, 개개인의 삶이 모여 인류 전체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리라는 믿음에 확신을 더하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오늘로써 중간고사를 모두 마치게 된다.
다니는 학교가 제각각이다 보니 4월 19일부터 시작된 시험이 오늘에서야 끝난다.  장장 3주에 걸친 시험 기간에 당사자인 학생들 고생이야 두말 할 것도 없지만 나 또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퇴근과 동시에 부리나케 숙소로 향했고, 기출문제를 프린트하고 아이들의 시험 일정을 확인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에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번씩이나 몸살약을 먹었고, 지금도 입안이 헐고 잇몸이 부르터 낫지 않고 있다.

내가 머무는 숙소 주변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면서 두 번째 맞는 시험이었다.
나는 '무료는 곧 학습 질의 저하'라는 편견을 불식시키고자 노력했었다.  비록 아이들은 형편상 돈을 내지 못하는 처지에 있고, 나도 돈을 바라고 가르치는 입장은 아니지만 최소한 아이들 마음속에는 최상의 교육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내 마음만은 그랬다.  그러나 결과가 항상 좋기만 할까.  지난 시험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아이가 있는가 하면, 비슷하거나 변화가 없는 아이도 있고, 오히려 떨어진 아이도 있었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 표정도 제각각이다.
자신의 예상보다 결과가 좋았던 아이들은 싱글벙글이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어깨가 축 처지고 표정도 어둡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언제까지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 시간을 쪼개어 가르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번 시험에 일희일비하는 학생들의 지친 어깨가 나를 힘들게 한다.  시험을 마친 학생들을 따로 모아 각자의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가졌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든 '적당히'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적당히'라는 말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독을 품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만들고 결국은 자신의 영혼도 병들게 한다.  비록 몸은 덜 피곤하겠지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었을 때의 기쁨은 결코 맛볼 수 없는 법이지.  결국 공부도, 어떤 다른 일에서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것을 뛰어 넘었을 때에만 기쁨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 기쁨을 한번 맛보면 어떤 고난도 즐겁게 받아들일만큼 중독성이 강하단다.  남들이 보기에는 저렇게 힘든 일을 왜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일도 정작 당사자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거란다."  

내일은 매년 찾아오는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는 말이 하루뿐인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18인의 명사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지난한 과정을 견디게 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고, 그 작은 성취가 주는 더할 수 없는 기쁨과 그로 인한 자신의 역량이 조금씩 확장되는 부수적 결과의 집합체가 한 명의 거장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고단한 삶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거장의 탄생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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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빼기 3 - 어느 날… 남편과 두 아이가 죽었습니다
바버라 파흘 에버하르트 지음, 김수연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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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다 한순간 맥이 탁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있었다.
계단의 끝은 하늘에 닿을 듯 멀기만한데 우두망찰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딛을 기력도 없어 무심한 행인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았던 그 망연자실함. 
그 자리에 붙박혀 땅으로 꺼져버릴 듯한 무력감.
그 어디에서도 나를 도와줄 자비로운 신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멀찍이 앞질러 가는 시간의 질주음만이 울부짖듯 귀청을 때리면 세상에 오직 자신만 세상 밖으로 멀리 내동댕이쳐진 듯한 느낌을 갖게 마련이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이를 잃고, 상실의 아픔 속에서  ’과거’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작가.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하는 피에로 바버라. 바버라의 남편 역시 피에로였다. 
이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사랑스런 두 천사 티모와 피니까지. 
이들 가족의 행복한 나날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아이들을 태운 피에로 버스가 건널목에서 열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고, 바버라는 세상에 덩그마니 홀로 남겨진다.

"내 가슴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이런 시간들을 ’과거’라고 부른다.  나는 이제야 ’과거’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됐다.  우리들이 함께 보냈던 순간들이 마치 비눗방울처럼 내 기억 속에서 날아다닌다.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면서, 눈앞에서 흥겹게 춤을 추듯이 날아다닌다.  반짝이며 스쳐가는 비눗방울 속에서, 나는 ’과거’에서 살고 있던 나 자신을 본다."  (P.12)

상실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걷고 있는 시간의 발목을 사정없이 부러뜨리고 만다.
발목이 부러진 시간은 절뚝거리며 일상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이내 정상적인 삶의 대열에서 나를 밀어낸다.  깁스를 했던 나의 시간이 다시 깁스를 풀고 밝은 햇살을 다시 보게 될 때에야 비로소 나는 일상적인 삶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과거라는 기억이 남긴 시간의 상처는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게 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희망이라는 건강한 힘줄을 얻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나를 기다리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세상이 나를 아프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세상이 인정사정없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 굴러간다는 사실 그 자체만도 내겐 아픔이었다.  저 바깥세상의 시간은 멈춰 있지 않았다.  지날 때마다 지난 삶과 조금씩 더 멀어지게 하고, 나를 내 가족들로부터 떼놓으려 할 것이었다."   (P.177)

끔찍한 사고를 경험한 지 5일 후, 바버라는 자신이 어떻게 가족들을 떠나보냈으며, 어떻게 삶이 흔들렸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친척들과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지인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다.  떠난 가족들의 장례식 대신 지인들과 함께 축제를 열어 고인을 기억하고자 했던 작가의 희망 메시지는 독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억압', '감정의 밀물' , '감정의 썰물', 새로운 '출발을 위한 모색'의 '상실의 4단계'를 꿋꿋이 견딘 작가의 강인한 의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왜 삶을 긍정하고 희망을 전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다.  작가의 앞날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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