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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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 대답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수 있겠으나, 내 생각에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은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자연이나 우주로 확장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무엇인가 가슴에 품고 늘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은 그 대상을 조금 더 많이, 더 잘, 그리고 더 가까이 있고 싶게 만들고,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그리움의 대상과 결부지어 생각하도록 한다.  종국에는 나 자신을 초월하여 그리운 대상과의 일치를 꿈꾸게 한다.

그리운 대상과의 일치를 간절히 원할 때, 그 욕망의 극점에 이르는 현상을 ’몰입’, ’사랑’, ’그리움’, ’넋이 나감’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지만 그 마음의 기저에는 언제나 그리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술가에게 그리움의 상실은 창조의 샘이 마르고 예술가로서의 삶도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가족, 연인, 자연 등 그리움의 대상은 비록 서로 다를지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간절함의 정도가 더할수록 그가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커질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리움의 대상은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이성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끌림이 그 중 으뜸이리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당사자는 비록 그 넘을 수 없는 한계에 아득함을 느끼겠지만 그럼으로써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설령 그 대상이 닿을 수 없는 신이나, 되찾을 수 없는 조국, 먼저 떠난 가족일지라도 이룰 수 없는 사랑임에는 연인과 무엇이 다르랴.

1919년에 시작하여 1924년까지 계속된 카프카의 편지는 한 여인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세 번의 약혼과 세 번의 파혼, 폐결핵을 앓는 병든 몸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선택했던 카프카.  카프카의 표현을 빌자면 ‘살아있는 불덩이’같은 밀레나는 진보계층을 형성한 ‘미네르바’출신의 그룹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였다. 대학에서 음악과 의학을 전공한 그녀는 지적이고 뜨거웠으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소비벽을 지녔는가 하면 온몸을 다바쳐 남을 도와주는 헌신적인 성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밀레나는 또한 동료들과 괴팍한 행동으로 화제를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한밤중에 공동묘지로 소풍을 가는가 하면 옷을 입은 채로 몰다우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화가나 문인,가수와 첫사랑을 나누기도 했고 이사도라 던컨식의 물결치는 의상을 입고 다니며 앞서가는 생존방식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카프카의 친구 오스카 폴락의 부인이기도 했던 밀레나와 카프카가 만난 것은 그의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하는 일이 계기가 되었다. 밀레나가 번역한 단편 <화부>는 카프카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그녀를 만난 카프카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의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이후 밀레나와의 교류를 지속하였다. 이때부터 카프카에게는 일종의 정신적 피난처가 생긴 셈이었다.

동시에 카프카가 지닌 ‘불안’에 대해서 밀레나가 얼마나 깊은 이해를 하였는가 하는 것도 카프카의 동료 막스 브로트와 그녀가 나눈 대화를 통해 확인이 된다. 카프카의 말년에 빈으로 이주한 밀레나는 프라하로 카프카를 자주 찾게 되는데 이 무렵 그때까지 쓴 일기를 그가 그녀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밀레나는 카프카로서 보면 삶과 예술이라는 상호 모순된 양방향의 길을 공유할 수 있는 유형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카프카와 밀레나의 사랑은 예술가의 비극적인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미완의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배경으로 해서 두 사람 다 서글픈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삶과 예술로 분열된 세계에서 문학을 통해 그 두 세계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하다가 불치병으로 생을 마치는 방식과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철저히 잊혀진 존재로 소멸되는 방식의 결합은 미완의 사랑을 매듭짓는 형식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컸고(13년) 밀레나는 기혼자였으며 자신의 기질과 상관없이 엄격한 가풍의 딸이었던 그녀에게 카프카의 유대인 신분은 간단치 않은 벽이기도 했다. 보다 큰 문제는 카프카에게 있었다. 그는 현실의 사랑을 완성할 정신적인 에너지가 당시로서는 고갈된 상태였다.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자신의 결핵을 확인한 카프카는 그 사랑을 추진할 심리상태가 되지 못했고 밀레나의 정열을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 너무도 컸다.


"인간은 이제껏 나를 기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편지는 항상 나를 기만했습니다.  그것도 타인의 편지가 아닌 내 자신의 편지가 말입니다.  그것은 나의 경우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특수한 불행이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일반적인 불행이기도 합니다.  손쉽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은 틀림없이 - 다만 이론적으로 볼 때- 영혼의 섬뜩한 혼란을 세상에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유령과의 교신인데, 그것도 편지 수신자로서의 유령과의 교신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령과의 교신이기도 합니다.  후자의 유령은 편지를 쓰는 사람의 손에 의해 편지 속에서 성장하고 혹은 다시 어떤 편지가 다른 편지의 증거가 되어 이 편지를 증인으로 내세울 때에는 일련의 편지 속에서도 성장합니다.  인간들은 어떻게 서로 편지로 교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멀리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붙잡을 수 있지만,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쓴다는 것은 탐욕스럽게 편지를 기다리고 있는 유령 앞에서 발가벗는 것을 의미합니다.  편지에 쓰여진 키스는 보내질 장소에 도착하지 못하고 유령이 도중에 홀딱 마셔 버립니다.  (P354 , 1922년 프라하에서 쓴 카프카의 편지 중에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완성된 사랑은 그래서 완료형이 되어버린 사랑은 예술의 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탈출구가 없는 사랑의 열기는 예술가의 영혼을 사르고 급기야 까만 밤에 별로 남는다.  우리는 오늘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까맣게 타들어가는 어느 예술가의 영혼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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